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세상의 상식을 뒤엎은 그것
심심 미묘하니 어찌 알리오.
격정에 매이고 무명에 덮인 사람은
이 법(法)을 깨닫기 어려우리라. (상윳타 니카야 6:1)

 

 

 

붓다는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전법을 고민한다.
붓다가 얻은 정각의 내용은 ‘연기(緣起)의 법칙’이었다. 이것은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관계성의 법칙, 상의성(相依性 서로 의존함)의 법칙이었다. 붓다는 이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과 인간에 적용해 보았으며 이 법칙이 그 모든 것에 두루두루 통함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화를 뛰어넘는 과학의 길이었고 이기주의를 넘어선 공동체 정신에의 길이었다. 그 내용은 ‘신화(神話)의 바다’에 빠져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특히  탐욕이나 노여움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관계성’의 법칙이라면 붓다 스스로만 알고 있어서는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그것을 전하고 표현해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것, 그것이 깨달은 붓다에게 남은 길이었다.

 

그래서 붓다는 “이 법을 누구에게 전할까”를 고민한다. 그는 처음에 자신에게 명상을 가르쳐줬던 알라라 칼라마,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전법을 하려 했지만 그들이 이미 생명을 다했음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자신과 함께 고행 수행을 했던 5비구가 붓다가야로부터 280km(직선거리로는 200km) 거리의 바라나시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를 찾아 간다. 불타여행사의 순례단이야 ‘버스’라는 ‘신족통(神足通)’을 발휘해 몇 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걸어서 그 길을 간 붓다는 몇날며칠을 걸렸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전법륜탑’으로 여겨지고 있는 다메크 탑. 기단부의 직경 28.5m 높이 33.5m.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이 처음 탑을 쌓을 때는 작은 규모였으나 서기3~5세기 굽타왕조 때에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되었고 외벽의 감실과 장식 무늬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슬람 세력이 이 탑의 파괴를 시도해 윗부분부터 일부 부수었으나 완전히 부수지는 못했다고 한다. 파괴되기 전 원형의 추정높이는 43.6m.


“싯다르타가 타락했다”라며 네란자라강에서 싯다르타를 떠나 바라나시 근교 이시파타나의 녹야원에 와 있던 다섯 비구 콘단냐, 밧디야, 밥파, 앗사지, 마하나마는 멀리서 오는 싯다르타를 보고 모른 척하기로 했지만, 가까이 다가온 붓다의 위의를 보고 자신들도 모르게 예를 갖춘다. 그리고 다섯 도반이 교대로 탁발해온 것을 먹어가면서 붓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콘단냐가 깨달음을 얻는다. 붓다는 감격하여 “콘단냐가 깨달았다”라고 환호성을 터뜨리고 “등불은 옮겨질 수 있구나”라고 탄식한다. 또한 콘단냐에게 특별히 ‘아야 콘단냐(깨달은 콘단냐)’라는 칭호를 내린다.

 

이것이 경전에 나타나는 ‘초전법륜’과 관련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는 ‘진리’를 깨달은 ‘여래’의 위의와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이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고 그저 기쁨을 고요히 만끽했다고 경전은 전한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이 옮겨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했다. 이는 ‘신으로서의 붓다’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러므로 다른 종교에서는 더더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서 아르주나는 살생을 할 수 없다며 참전을 거부한다. 크리슈나는 “전장에서는 다만 육체를 죽이는 것이며 영혼은 죽일 수 없다”라는 논리로 참전을 설득한다. 아르주나는 결국 설득당한다. 그러나 아르주나가 설득당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크리슈나의 신성(神性)에 의해서였다. 아르주나는 크리슈나가 신으로서의 자신의 위대한 모습들을 시현하는 것을 보고는 전쟁에 나갈 것을 결심한다. 구(舊) 기독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신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반면에 붓다가 가르친 것은, 다만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였다. 성스러울 성(聖)자가 있지만 신비스러울 것도 없는, ‘고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고 그 이론 하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설한 것이다. “삶은 이런 것이니 이렇게 살아라”라는 가르침을 폈는데 그걸 제자들이 거부한다면, 붓다의 깨달음 자체가 의미를 상실할 것이었다. 이미 우파카라는 외도에게서 그런 실패를 경험한 터이므로, 5비구에게 설법하는 붓다는 기도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한 제자가 사성제팔정도를 이해하자 붓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전법륜을 증거하는 유적들이 사르나트에는 많다. 녹야원 인근에는 영불탑(迎佛塔), 즉 5비구가 붓다를 맞이한 것을 기리는 탑이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역시 녹야원에 있는 아소카 석주다. 석주에는 “아소카 왕이 재위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신 것을 기념하여 탑을 세웠다.”라고 쓰여 있다. 불멸(佛滅) 후 200년도 넘게 지난 시점이었으나 왕이 학자와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즉 당대 최첨단 문명의 힘을 빌어 고증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 콘단냐가 깨달았음을 붓다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붓다의 사성제 팔정도 강의를 듣고 콘단냐가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라고 말했을까?
18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나는 퇴직 후 내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직업으로서의 기자’에 대해서 학부모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 후 ‘소감 나누기’ 시간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한 시간쯤 계속된 내 강연을 내가 생각도 못한 한 문장으로 정리해 내는 말을 듣고 나는 짜릿한 행복감에 젖었었다. 그것은 학생이 나의 가르침을 주체적으로 요약했기에 가능했다.
나의 강의는 나의 노동이고 나의 삶이다. 그 삶의 의미는 ‘관계’로부터 결정된다. 결국 나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남이다. 의미는 나의 마음을 타인들이 알아주고 그 마음들이 서로 연결될 때 발생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연결된 중생들이 붓다의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붓다의 마음을 내야 한다. 이것은 ‘지극정성을 다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관계할 중생들에게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석가모니야 2600년 전 사람이고 그의 가르침은 이미 수많은 수단으로 다 알려졌으며,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분인데 그분에게 무얼 더 기대한다는 말인가? 석가모니는 열반을 앞두고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설했다. (무언가 숨겨 놓았다가 열반 직전에 펴 보일) ‘스승의 주먹’ 같은 것은 내게는 없다”라고 선언했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은밀하게 전달되는 브라만교나 힌두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열린’ 가르침이다.

 

석가모니는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말라. 그것을 철저히 검토하여 그것의 진리를 재발견하라”라고 가르쳤다. ‘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당시 세계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런 현대적 가르침을 설한 것 자체가 커다란 혁명이었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석가모니를 신으로 만들고, 그 위신력에 기대어 자신의 복을 비는 기도를 한다. 남편의 승진을 빌고 자녀의 대학입시 합격을 기원한다.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같은, 뜻도 모를 주문들이 복을 가져다 줄 힘을 갖고 있다고 믿으며 기계처럼 그 주문을 왼다. 주문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니, 이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행태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불교가 아니라 힌두교나 브라만교를 믿는 것이 아니겠는가? 막스 베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탈주술화(脫呪術化)’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된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개명천지 과학의 시대에 가장 과학적인 종교 불교가 이런 미신적인 행태로 오염됐기 때문에 현대의 젊은이들이 불교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글 · 사진 =김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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