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회

 

                                마음의 병

 

 동안거가 끝나고 난 이틀 뒤였다. 진공스님이 서래사 옆에서 사는 선융을 불렀다. 종무소 김양 아가씨가 선융에게 와서 진공스님이 부른다고 전해주었던 것이다. 아직 한겨울이었지만 선융이 사는 집은 햇볕이 잘 들어 봄 같은 온기가 감돌았다. 마당가에는 손톱만한 싹들이 올라와 점점이 파랬다. 질경이의 어린  잎들도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에 덮여 있던 싹들이었는데 얼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선융은 김양을 보내고 난 뒤 아침 겸 점심을 차렸다. 주혜가 어제 가져온 반찬과 방금 끓인 무국이 있어 차려 먹기만 하면 되었다. 주혜는 천국교회와 선융이 기거하고 있는 집을 오가곤 했던 것이다. 주혜가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린 싹들은 선융이 사는 마당가에만 난 것이 아니라 울타리 밖의 논둑에도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양지바른 서래사 법당 옆의 매화나무는 곧 꽃을 피울 듯 물방울처럼 망울져 있었다. 주지 방 마당가 목련의 꽃눈들도 한껏 부풀어 갓난아기 엄지손가락만 했다. 꽃눈들이 머잖아 툭 터질 것만 같았다. 까치 한 마리가 선융을 경계하듯 목련 가지에 앉았다가 날아오르면서 깍깍깍 소리쳤다.
 “스님, 선융입니다.”
 “들어와. 기다리고 있네.”
 “안거 때라 일부러 오지 않았습니다.”
 진공스님이 선융의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공양은 했는가?”
 “집에서 먹고 왔습니다.”
 “절 공양간에 와서 해결하라니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숟가락 하나 더 놓는다고 절에 무슨 피해가 있겠는가.”
 “절에서 공양할 일이 생기면 그때 하겠습니다.”
 진공스님은 빈 집에 들어와 사는 선융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 손볼 데가 많았을 텐데 괜찮던가?”
 “인부를 불러 허물어진 부엌 벽만 공사를 했습니다. 큰방 도배는 풀을 쒀서 저와 안사람이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해야지. 시골에서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부르면 돈이 드니까.”
 “면소재지에서 겨우 미장이를 수소문해서 부엌 벽을 수리했습니다.”
 “안거 때라 나갈 수 있어야지.”
 선승들은 안거 기간이 되면 산문을 벗어나지 않았다. 삭발하고 목욕하는 날은 예외로 치는 추세였지만 그래도 진공스님은 선원의 규칙을 지켰다. 진공스님은 선원의 규칙을 청규(淸規)라고 했다. 선융 역시 선원의 규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절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저를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선융당을 부른 것은 다른 게 아니네. 안적사 묘유스님이 아프다고 하네. 이번에는 오래가는구먼. 알다시피 묘유스님은 내 속가 동생이지. 아무래도 안적사를 가서 내 눈으로 봐야겠어.”
 “상황이 안 좋으면 입원하도록 권유하셔야죠.”
 “선융당이 운전 좀 해주겠는가? 내 상좌는 운전을 못해.”
 “당연히 모셔드려야죠.”
 “차는 김양이 빌려놨어. 종무소 뒷마당에 있는 승용차네.”
 “걱정 마십시오. 선방 스님들은 모두 잘 계시죠?”
 “선원장 스님도 ‘운동권스님’도. 하하하.”
 “선방에 진원스님하고 ‘울보스님’만 남아 있고 어제 아침에 다들 만행 떠났다네. 영어를 잘하던 ‘유학파스님’은 한 달 전에 왔다 갔어.”
 “그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부산에서 명상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운영이 잘 된다는데 두고 봐야지.”
 “왜 그렇습니까?”
 “인기란 뜬구름 같거든. 무엇보다 참선과 명상은 달라. 참선이 마음의 병까지 근치시켜준다면 명상은 그때그때 임시 단방약일 뿐이지. 명상이 사람들에게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네. 달리기 경주하듯 사는 사람들에게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유리컵 안에 흙탕물이 들어 있다고 비유할 수 있겠군. 가만히 두면 흙과 물이 분리가 되어 맑은 물처럼 보이겠지. 그런 차원을 얻을 수 있는 게 명상이네.”
 “참선과 명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까?”
 “선융당이 해봐서 알잖은가.”
 “저는 무엇이 명상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유학파스님’은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거네. 아는 것이 많으니까.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밥맛을 설명해 보라면 하겠는가? 구수하다, 달다, 맛있다, 배부르다 등 다 적확한 말은 아니지. 설명의 한계가 아니겠나.”
 진공스님은 선융에게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선융이 경험해 봤으니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선융은 진공스님이 ‘잡철을 순금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참선’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더 묻지 않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선융은 승용차에 진공스님을 모시고 서래사를 떠났다. 면소재지까지는 비포장도로 산길이었으므로 서행을 했다. 승용차가 심하게 요동쳤지만 진공스님은 도로 상태에 대해서 별 말이 없었다. 선융이 참지 못하고 불평했다.
 “열댓 사람 사는 마을까지도 군에서 도로포장을 해주는데 스님들만 사는 절이라고 무심한 것 같습니다.”
 “도로가 포장이 돼도 문제네. 차들이 절까지 쑥쑥 들어와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거든.”
 “아마도 선거 때 표가 적으니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서래사 대중이 몇 십 명이라면 당장 포장을 서둘렀을지도 모릅니다. 정치인들은 오직 표만 쫓아다닌다고 합니다. 인격 같은 것은 개한테나 주라고 한답니다.”
 “선융당이나 나나 똑같은 한 표군 그래.”
 “표로만 보이는 정치인 눈에는 그러겠죠. 그러나 감히 제가 어찌 스승이신 스님과 같겠습니까?”
 “평등한 것에도 차별이 있다는 말같이 들리는군. 하하하.”
 “모순입니다. 하하하.”
 선융도 진공스님을 따라서 웃었다.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한 단면이었다. 면소재지를 벗어나자 고속도로와 연결된 지선부터는 도로포장 상태가 아주 좋았다. 진공스님은 곧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핸들을 잡고 있는 선융은 심신이 아주 편했다. 군대생활 3년 동안 내내 대대장 운전병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운전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천국교회 사택에 살면서 겪은 고민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달리는 승용차 밖으로 떨어져나가 버린 듯했다. 선융은 마치 주거지 제한이라는 형을 살고 있다가 풀려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은 주혜가 방 문틈에 꽂아놓은 선융의 편지를 읽고 있을지도 몰랐다. 진공스님을 모시고 안적사에 다녀온다고 메모지를 꽂아두고 왔던 것이다. 승용차 안으로 찬 공기가 달려들었다. 토막잠에서 깬 진공스님이 승용차 안의 공기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승용차는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진공스님이 말했다.
 “운전을 잘하는데.”
 “군에서 운전병이었거든요. 운전 하나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참선한 사람은 뭐든지 잘하지. 집중력이 뛰어나니까.”
 “스님께서도 군 생활을 하셨겠습니다.”
 “난 베트남 파병부대 병사였지.”
 “총을 들고 전투를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참전은 했지만 나는 전투부대 병사는 아니었어. 사단에서 파견한 군종사병이었거든.”
 “그래도 전투 경험은 있으셨겠습니다.”
 “작전 나가면 나도 따라 나갔으니까. 전투부대가 작전하는 참혹한 곳에 몇 번은 있었지.”
 “그럴 것 같습니다.”
 “작전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병사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네.”
 “제가 복무할 때도 군종사병이 내무반을 들락거렸습니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었지. 허지만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더군.”
 “죽고 사는 운명이 따로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정해진 운명이 어디 있겠어. 허지만 작전 중에는 반드시 몇 사람이 전사하거든. 하느님, 부처님 찾아도 소용없어. 총구가 생사를 말해줄 뿐이야. 신이 있다면 오직 총구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총구에 목숨이 달렸으니까. 부처님도 하느님도 무력할 뿐이었네.”
 “전쟁터에서는 기도가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융당은 빨라.”
 “스님, 무엇이 빠르다는 말입니까?”
 “머리 회전이. 하하하.”
 선융은 웃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긴장했다. 진공스님이 가지고 있는 비밀 하나를 발견한 듯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진공스님이 예불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법당에서 기도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도를 전담하는 부전승과 달리 선승이니까 으레 그러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진공스님의 그러한 태도는 베트남전쟁 참전경험과 무관치 않은 듯했다. 선융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저는 스님께서 백일기도나 천일기도를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맞아. 나는 그때부터 기도는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지. 귀국해서 절로 돌아와 오직 참선만 한 것도 파월경험 때문이었어. 참상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네.”
 “전투부대를 계속 따라다니셨습니까?”
 “군 생활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겠는가? 군법사님께 사단으로 복귀시켜달라고 간청했지만 소용없었어. 누가 전투부대 군종사병을 하고 싶겠나. 눈앞에서 병사들이 죽어가는 최전방인데. 나는 병사들에게 참호 같은 곳에서 기도를 했어. 내 임무니까. 허지만 나를 속이는 기도였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전사한 병사들에게 미안해. 죽어가는 병사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진공스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선융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눈빛’에서 마음이 쓰라렸다. 선융은 진공스님의 아픈 곳을 공연히 들춰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선과 기도는 수행자로서 좌우의 날개 같은 것인데, 진공스님의 경우는 한쪽 날개가 퇴화돼버린 것 같았다. 진공스님이 지나치게 참선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은 그러한 불구의식 때문인지도 몰랐다. 선융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진공스님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저기,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가 갈까요?”
 “그러게.”
 “스님, 점심이 이르기는 하지만 드시고 가지요.”
 선융은 화장실이 가까운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웠다. 요의를 해결하고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진공스님도 화장실을 먼저 들렀다. 화장실에 일을 보던 사람들이 진공스님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승복을 입은 모습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그러나 진공스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요의를 해소했다. 식당은 화장실과 정반대 쪽에 있었다. 선융이 진공스님을 안내했다.
 “스님, 무얼 드시겠습니까?”
 “국수나 한 그릇 하지 뭐.”
 “저는 얼큰한 동태찌개를 먹겠습니다.”
 “내가 내겠네.”
 진공스님이 손을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자 선융이 재빨리 계산대 앞으로 가서 휴게소 제복을 입은 아가씨에게 말했다.
 “국수 하나, 동태찌개 하나 주세요.”
 선융이 식권 번호표를 받은 뒤 말했다.
 “스님, 저 자리로 가시죠. 식권 번호표를 받았으니까요.”
 진공스님이 자리에 앉자 게걸스럽게 밥을 먹던 손님들이 멈칫했다. 앉아 있는 진공스님의 자세는 선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위풍당당했다. 비로소 어수선한 식당에 사람다운 위엄과 무게가 얹힌 느낌이었다. 
 전자게시판에 21번 국수가 먼저 떴다. 그리고 뒤라고 할 것도 없이 바로 23번 동태찌개도 나타났다. 선융이 배식구 앞으로 가서 국수가 한 사발 놓인 스테인리스 소반을 들고 와 진공스님 앞에 놓았다. 그런 뒤 자신이 시킨 동태찌개 소반을 들고 왔다. 동태찌개는 선융이 숟가락으로 휘저을 때까지 누런 양은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진공스님이 국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른다는 것을 기억하나?”
 “스님을 미소 짓게 하기 때문에 승소라고 하죠.”
 진공스님은 젓가락으로 국수발을 능숙하게 건져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선융은 동태찌개 국물이 짜고 매운 데다 동태 살마저 딱딱해서 우물우물 먹는 시늉만 했다. 한두 개의 충치 탓이었다. 진공스님이라도 점심을 만족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스님, 차라도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아니, 뜨거운 물만 마시면 되네. 난 커피가 몸에서 안 받아.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오거든.”
 “저는 캔 커피를 하나 뽑아오겠습니다.”
 “운전할 때 졸지 않으려고 그러는구먼.”
 “네, 스님.”
 선융은 점심을 한 뒤부터 어렵고 우러러보이기만 했던 진공스님과 한결 친근해진 기분이 들었다. 진공스님도 선융을 재가상좌처럼 여긴 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안적사까지는 얼마나 남았는가?”
 “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 묘유스님이 날 원망할지도 모르겠어. 아무리 출가했다지만 오빠인 내가 묘유스님을 돌봐준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사실은 내가 부모나 다름없었거든.”
 “부모님이 안 계신 모양이죠?”
 “우리 부모님은 묘유스님이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셨네. 밤길에 묘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트럭이 부모님을 치고 달아난 거야. 친구들과 놀다가 온 묘유가 현장을 봤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어.”
 “트럭은 달아나버렸습니까?”
 “경찰이 잡고 보니 운전수는 만취한 상태였어.”
 “스님께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결국 묘유는 학업을 포기하고 서래사에 와 있었어. 그러다가 출가하고 말았네. 한때는 병원치료를 받고 묘유 스스로 기도해서 나았지만 완치가 안 된 것 같아. 이삼 년 터울로 도지거든.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의식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네.”
 “좋은 병원도 많은데 완치는 불가능합니까?”
 “묘유스님이 앓는 것이 바로 심병(心病), 마음의 병인 것 같아.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업 속에 있으니 그 이치만 깨달으면 가능하겠지. 참선하면 인과를 몸으로 깨달아버릴 수 있는데 묘유스님은 그게 어려워. 전생에 학자였는지 탐구하고 분별하는 습(習)이 많거든. 선방보다는 불경을 배우는 강원이 마음 편하다는데 어찌하겠나. 억지로 선방에 앉힐 수 없는 일이지.”
 “묘유스님이 불경에 해박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잖은가. 우리 승려들은 더 더욱 아는 게 병이야. 불교란 한없이 비우는 종교거든. 내가 없어질 때까지.”       
 사춘기 여고시절, 부모의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나서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는 죄의식에 시달려온 묘유스님을 선융은 이해했다.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며 놀다가 귀가하던 밤길에 자신을 마중 나온 부모가 사고를 당했으니 묘유스님은 평생 동안 죄의식에 갇혀 살지도 몰랐다.
 “누에를 아는가?”
 “잘 모릅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클 때는 누에를 치는 집이 많았지.”
 “저는 도시에서만 살았거든요.”
 “농촌에서 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 누에는 흰 실을 뽑아 고치라는 집을 지은 뒤 번데기로 변해 그 고치 속에 갇혀버린다네. 마치 묘유스님이 그래. 그럴 때는 어찌하겠는가. 번데기가 그러하듯 스스로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야 살 수 있어. 누구도 꺼내 줄 수가 없어. 스스로 고치 속으로 들어갔으니 스스로 고치 밖으로 나와야 하지.”
 진공스님은 냉정했다. 묘유스님이 죄의식이라는 실로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 갇히었으니 나방이 되어 스스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진공스님은 묘유스님이 나방이 되려면 참선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지만 선융은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진공스님의 독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선융의 생각으로는 묘유스님을 가두고 있는 죄의식을 없애만 준다면 참선이든 기도든 염불이든 상관없을 듯했다. 참선이나 기도나 염불 속에서 묘유스님의 죄의식이 씻어지기만 한다면 스님의 심병은 말끔하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스스로 각성해서 치유하라고 하는 것은 환자더러 의사가 되라는 강요와 같은 주문인 까닭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