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두어 달 전에 용주사를 이야기하면서 용주사가 보유한 문화재를 말씀드리겠다고 하였는데, 뱉어낸 말이 빚이 되어 마음이 계속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기보다, 답사하기에는 날씨가 춥고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절집들이 문화재를 갖고 있는데, 그러한 문화재에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있으니 작은 관심을 주신다면 더 좋은 절집 방문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용주사 대웅보전은 1790년(정조 년) 창건 시 지어진 건물로 몇 차례 보수와 개축을 거쳤으나 당시의 골격을 간직하고 있어 작년(2017년 8월)에 보물 제19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팔작지붕의 아홉 칸 집으로 35칸이나 되는 운문사 대웅보전 등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절집입니다.
용주사가 국왕의 명에 따라 지어진 원찰이기에 대목장 이하 모든 장인들은 천년을 버티도록 튼튼하게 지었고, 감동도 철저히 감독하였을 터이니 어디에도 허투루 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절을 짓는 장인들 대부분이 승려였으니, 부처님을 모시는 집을 짓는 스님들이 마음이 어떠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대웅보전을 오르는 계단 소맷돌(대우석)에는 구름이 피어오르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조선 왕릉의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과 화성행궁 낙남헌의 계단(운각대우석)에 새겨진 문양과 같음을 보면 이 문양이 구름 위를 거니는 용(왕)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난히 넓은 계단 폭과 함께 국왕 전하의 방문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했든 소맷돌에 연꽃이나 덩굴무늬를 새기지 않았고, 그 아래 북 돌에 삼태극이 새겨진 것을 보면 용주사가 원찰로 세워진 사실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계단 옆에는 대웅보전이 있는 상대에서 흐르는 물이 기단으로 쌓은 벽에 물 얼룩을 만들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도록 누조(漏槽)가 설치되었는데, 이 또한 여느 절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조상님들의 문화재입니다.

 

한옥은 목재로 짜 맞춘 집이기에 물에 젖는 것을 피하여야 합니다. 특히나 기둥은 집의 무게를 모아 땅으로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때문에 기둥뿌리가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는데, 첫 번째로 찾아낸 것이 처마를 기단 밖으로 빼내는 것이고 두 번째가 기둥뿌리 아래에 주춧돌을 놓는 것입니다.
주춧돌은 자연에 있는 막돌을 그대로 쓰거나 다듬고 갈아서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막돌로 쓴 주춧돌을 덤벙주초라 하는데, 기둥은 막돌의 요철과 마주하는 밑면을 그랭이질 한 다음에 세워야 합니다. 덤벙주초에 대웅전을 지은 큰 절집도 제법 많이 볼 수 있는데, 용주사 대웅보전은 궁궐과 관아건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네모진 아래에 위는 동그란 형태의“천원지방형”을 사용하였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은 정면 기둥 사이에 공포가 두 개 얹혀있는 다포식 건물입니다. “공포”라는 장식이 한옥을 꾸밈에 필수적인 것임을 생각하면 한옥을 보는 재미는 훨씬 더 깊어집니다.

 

 

 

한옥 특징 중 하나는 기와지붕의 무게가 대단하다는 것으로 조선시대 암키와 한 장의 무게는 4kg 내외가 됩니다. 기와를 팔고 사는 단위는 “우리”라 불리는데, 한 우리가 2천장을 나타내는 걸 보면 큰 한옥 한 채를 짓는데 얼마나 많은 기와가 사용되는지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에 10,000장이 사용되었다면 기와의 무게가 무려 40톤이나 됩니다. 그리고 지붕의 물매를 잡기위해 흙을 올리고, 기와가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고자 물매 잡은 흙 위에 강회다짐을 하며, 암키와 밑에는 알매흙(새우흙)을 그리고 수키와 밑에는 홍두깨흙을 올리니 기와무게보다 훨씬 더 많은 흙(무게)이 지붕에 올라앉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 무게를 분산시켜 기둥으로 전달하기 위해 “평방”과 “공포”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한옥은 못을 치지 않고 짓는 조립식 건축물로 기둥머리와 기둥머리를 연결하는 “창방”이 있는데, 공포를 짓지 않았다면 지붕이 집을 짓누르는 형태가 되어 밖의 모습은 위엄과 모양새가 없고, 안에서는 천정이 낮아 옹색함과 숨쉬기조차 어려운 답답함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듯 공포는 절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적인 역할과 무거운 지붕을 받치는 강한 남성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현판의 좌우에는 각각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듯한 용머리 조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용은 불법을 지키고 보호하는 팔부신장의 하나로, 현판 좌측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습니다. 이는 용에게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지속시켜 줄 것을, 부처님의 안위를 평안하게 지켜 줄 것을, 불법이 설해지는 법당을 수호해 줄 것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절집에 가면 정면을 제외한 측면과 후면에 그려진 탱화 또는 십우도를 보게 됩니다. 그 탱화들 속에서 뱃머리에 큰 용이 장식된 배에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중생들과 물살을 가르며 사바세계를 건너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배는 극락세계로 가기위해 반드시 타야 하는 배로 “반야용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모든 불자들은 이 배를 타고 서쪽 극락정토 가기를 원합니다. 

 

용주사 대웅보전도 ‘극락정토로 건너가는 반야용선’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늠름한 용머리 조각을 배의 정면(船首)에 놓았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의 벽면에도 다른 절집들이 그러하듯 마야부인의 태몽을 그린 “도솔여래상”, 부처님의 탄생을 그린 “비람강생상”,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카필라성을 넘어 출가 모습을 그린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과 수하항마상”, “녹야전법상”, 열반상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불벽(佛壁, 포벽)이라는 좁은 삼각형의 모양이 생기는데, 그 자투리 공간에는 어김없이 부처님이 그려집니다. 그려진 부처님은 삼각형의 밑변에 어울리게 결가부좌를 하시고 수인을 달리한 모습으로 설법을 하시거나 명상에 잠겨 계십니다.

 

 

 

우리 선조들은 세상의 이치를 음양오행으로 풀고, 이를 다섯 가지 색깔의 조화로 나타냈는데 그 아름다움이 단청입니다. 그러나 단청은 아름답게 보이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목재건축물의 거친 것을 감추거나 목재의 부식과 벌레들의 충해를 막아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전통기법입니다.
단청을 하는 건축물로 궁궐, 사찰, 서원이 있는데 궁궐은 모로단청을, 사찰은 궁궐보다 한 등급 위인 금단청(錦丹靑)을, 서원은 긋기단청을 하고 있습니다. 궁궐은 권위와 기품을 나타내는데 치중하고, 서원은 검소함을 원칙으로 한 단청이지만 사찰은 궁궐과 서원이 사용하지 않는 비단무늬를 각양각색으로 도안해 부처님이 계신 곳을 화려하게 장엄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왕이 머무는 건물과 부처님이 계신 건물의 이름을 사정전(思政殿), 근정전(勤政殿), 대웅전(大雄殿), 원통보전(圓通寶殿) 등 “○○전(殿)”으로 짓는데, 숭유억불의 시대에 부처님이 계신 곳을 궁궐보다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부처님이 위대한 성인(聖人)임을 인정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