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회

 

                          찬달라 여인, 사마리아 여인

 

 

 

 묘유스님은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른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는 선가의 수행을 하고 있었다. 선가에서는 밥을 적게 먹는 것도 여러 가지 수행 중 하나였다. 밥 먹는 양을 보면 수행의 정도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선승도 있었다. 뱃속에 들어가는 음식이 작아야 머리가 맑아지고 색심이 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묘유스님이 오후불식을 하는 것은 체중감량과 저녁식사의 뒤치다꺼리가 귀찮아서 그런 것 같았다.  두세 명 살던 스님들이 동안거 기간에는 모두 선방으로 가고 없으므로 괜찮다고 말했다.
 “보다시피 선방으로 다 가고 나 혼자 있어요.”
 “무섭지 않으세요?”
 “처음엔 무서웠지요.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어요. 두려움도 내가 만들어서 붙들고 있는 망상이더라고요.”
 실제로 묘유스님의 얼굴에는 두려움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후불식으로 체중을 감량해서인지 튀어나온 광대뼈가 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번들번들했다.
 “두려움을 놓아버리니까 편안해지더군요. 경험해 보세요. 처음에는 거친 바람소리만 들려도 별 생각이 다 났어요.”
 “스님께서야 수행자이시니까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묘유스님이 찻자리를 마련했다. 찻자리 용도의 보자기를 걷자 다관과 수구, 찻잔들이 나타났다. 다기들은 모두 안쪽만 백자유약이 발라진 듯했고 다기 겉면은 흙색 그대로였다. 묘유스님이 차를 우린 뒤 능숙하게 따랐다. 찻잔 안이 백자이므로 찻물 색깔이 달빛처럼 투명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안기는 찻잔의 감촉은 가는 모래를 만지는 것처럼 거칠거칠했다. 선융과 주혜는 방금 저녁식사를 하고 온 탓에 입안이 개운하지 못했는데, 차를 마시고 나자 입안이 상쾌해졌다. 마치 입안을 헹군 느낌이었다. 공양처소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주혜가 전기밥통에서 밥을 푸고, 선융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대충대충 먹었던 것이다.
 “오늘 큰일 날 뻔했어요. 눈보라는 자연의 경고이기도 하지요. 폭우나 폭설은 나서지 말고 근신하라는 자연의 메시지 같아요.”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절박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날은 산길이 뚫린 뒤에 와야 안전해요.”
 “스님, 저희들은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묘유스님이 눈을 찡그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무언가 직감이 온 듯 빠르게 말했다.
 “진공스님께서는 거사님이 선방에 입실했다고 하던데요.”
 “몇 년 전에 서래사를 나왔습니다. 목재회사에서 근무도 했고요.”
 “환속했다는 건가요?”
 “예, 5년 됐습니다.”
 “아가씨를 만나 환속했군요.”
 “그런 셈입니다.”
 “아! 그랬군요.”
 묘유스님이 이번에는 주혜를 보고 물었다. 
 “서래사 신도였나요?”
 “죄송합니다만 저는 교회 신자예요. 아버지가 목사님이거든요.”
 묘유스님은 주혜가 목사 딸이라고 하자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했다. 선융이 목사 딸을 절에 데리고 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묘유스님이 들고 있던 찻잔이 흔들렸다. 그러나 묘유스님은 놀란 감정을 재빨리 수습했다. 선융은 5년 전에 묘유스님이 속가의 오빠인 진공스님을 만나러 왔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고 여겼다. 수행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노련하게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묘유스님의 태도는 차분하고 냉정했다.
 “아버님 교회는 어디에 있나요?”
 “서래사와 가까운 면소재지에 있습니다.”
 “목사 따님이 거사님을 만나 여기까지 오다니 흔한 일은 아니군요.”
 “스님, 제가 이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선융이 당황하며 말하자 주혜가 갑자기 흐느꼈다. 밖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우엉우엉 하고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어린 부엉이가 절의 대나무 숲 너머까지 내려와 우는 소리였다. 묘유스님이 주혜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독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시절 인연이 있어요. 때가 되면 피할 수 없는 인연이 생기지요.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치듯이 그래요.”
 “목사님은 저를 이해해요.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한다고 말씀하죠. 그런데 흔쾌하시지는 않아요.”
 “목사님께서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시지 않으니 다행이에요. 그러나 두 사람이 불행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실 거예요.”
 “스님, 저는 딸 입장에서 목사님을 이해해요. 저라도 아빠라면 신중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스님, 문제는 저입니다. 절에 다니시는 저의 어머님께서는 아예 누워 버리셨습니다.”
 창원에서 목재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선융의 어머니는 선융의 출가까지는 허락했지만 목사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극력 반대하다가 결국에는 병이 나버렸다.
 “저의 잘못이 큽니다. 어머님을 설득하지 못하고 주혜 씨를 고생시키고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선융이 의기소침해졌다. 자신만 바라보고 살던 어머니에게 효도는 못할망정 병  나게 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선융은 채무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자살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팠다. 어머니는 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드센 사업가였다. 때마침 주택경기 회복이라는 행운이 따르기는 했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파산 직전의 목재회사를 우여곡절 끝에 회생시킨 여장부였던 것이다.
 “저의 어머님은 강한 분이죠. 부도난 회사를 살릴 정도로 집념도 강하시고요. 하지만 저 때문에 쓰러지셨으니 저는 못된 자식일 뿐입니다.”
 “그런데 거사님, 아가씨를 데리고 온 이유가 뭐죠?”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저희들 결혼주례를 서주시라고 왔습니다.”
 “뭐라구요?”
 “무작정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묘유스님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웃음소리가 커서 선융이 움찔할 정도였다. 거절하겠다는 뜻의 웃음이 분명했다.
 “주혜 씨 아버님인 목사님께서 주례를 서 주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주례를 서 주신다면 저의 어머님께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님께서 저희 결혼을 인정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스님이 주례를 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스님, 결례인 줄 알면서도 찾아왔습니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군요. 산길이 뚫릴 때까지 절에 있다가 돌아가세요.”
 주혜도 묘유스님에게 간청을 했다.
 “스님, 선융 씨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선융 씨 어머님을 잘 모시고 싶어요. 주례를 서 주세요.”
 “목사님께 부탁하세요. 결혼한 분이시니 주례 설 자격이 충분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주례는 선융 씨 결정에 따르기로 했어요.”
 “스님, 제가 주혜 씨를 설득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선융이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묘유스님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묘유스님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 같은 조악하게 제본이 된 작은 책을 주혜에게 주면서 말했다.
 “읽어보면 내가 왜 주례를 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마등가경(摩登伽經)>이란 불경이에요. 마등(摩登) 집안 딸이 아난존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자 부처님께서 두 사람이 법매(法妹)가 된다면 허락한다는 이야기예요.”
 법매란 법(진리)을 추구하는 자매란 뜻이었다. 그러니 천민인 마등 집안의 딸이 연모하는 아난과 법매가 되려면 부처를 찾아가 출가해야만 가능했다. 부처는 두 사람의 사랑을 조건부로 허락하고 있는 셈이었다.

 

 묘유스님에게 주례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온 주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혜는 다시 불을 켜고 앉아 안적사로 온 것을 후회했다. 선융의 표현을 빌자면 절박한 마음으로  눈길을 걸어 왔는데 공연히 헛고생만 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잠이 저만큼 달아나버렸다. 부엉이 울음소리도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바람이 불현듯 방문을 덜컹덜컹 잡아당기기도 했다. 주혜는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는 눈 덮인 산길이 트이기를 기도했다. 절에서 하느님에게 빈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절을 벗어나고 싶었다. 짧은 기도를 끝낸 주혜는 묘유스님이 준 <마등가경>을 엎드려서 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불경이었다. 용어가 낯설었지만 읽다보면 잠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이른 아침이었다. 가사를 걸친 아난은 발우를 지니고 사밧티 성으로 들어가 탁발을 하였다. 이윽고 아난은 정해진 거리를 다 돈 뒤 기원정사 숲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길옆에는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우물 너머 들판을 오가는 사람들은 마을사람들이었다. 우물가에는 사성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인 찬달라 신분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프라크리티였다. 그녀는 흙으로 구운 항아리를 들고 와서 물을 기르려고 하였다. 아난이 우물가로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여인이여, 저는 지금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소. 물을 떠 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찬달라 신분인 프라크리티가 말했다. “사문이시여, 제가 물을 아끼고자 주저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달라 무리인 제가 만약 물을 드린다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되옵니다.” 아난이 말했다.
 “여인이여, 사문으로 불리는 이들은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저 아난에게는 귀하고 천한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물을 마시고 싶을 뿐이며 여기에 오래 머물지 않겠습니다.” 프라크리티가 곧 우물의 물을 떠서 아난에게 건네주었다. 아난은 물을 다 마신 뒤 곧장 그가 머무는 기원정사 숲으로 돌아갔다. 아난이 가버린 뒤 프라크리티는 아난의 반듯한 용모와 아름다운 음성, 점잖은 말투와 조심스러운 몸가짐 등에 반해서 이성에 대한 욕망이 맹렬히 일어났다. 뜨거운 애착이었다. 프라크리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비구를 남편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라크리티는 다시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주술에 능하시니, 아난 비구를 다시 오게 하여 내 남편이 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서 어머니에게 이 일을 낱낱이 말씀드려야겠다.’ 항아리를 머리에 인 프라크리티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분은 부처님 제자일 거예요. 저는 그분이 정말 좋아요. 아난 비구를 남편으로 삼고 싶어요. 어머니 능력이라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딸을 가엽게 여겨 꼭 제 소원을 이루어 주세요.” 어머니가 프라크리티에게 말했다.“비록 주술을 외더라도 두 부류의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단다. 첫 번째는 욕심을 끊은 사람이고, 두 번째는 죽은 사람이란다. 그 밖의 사람들은 내가 마음대로 다스리고 움직일 수 있지. 부처님께서는 덕이 높으셔서 왕께서도 지극하게 믿고 공경하시고 있단다. 만약 내가 아난을 데려 오려고 하는 것이 탄로 나게 된다면, 우리 찬달라 무리는 모두 죽음을 당할 거야. 부처님께서는 이미 번뇌가 다하셨고, 제자들은 모두 욕심과 번뇌를 여의었다고 들었어. 일찍이 이 어미는 생사의 윤회를 끊은 분들은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고 들었지. 그런데 이 어미가 어찌 그분들에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겠니?” 프라크리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슬피 울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그분을 오시게 하지 않는다면, 저는 목숨을 끊어버리고 말겠어요.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겠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아난 비구와 결혼하는 것뿐이에요.” 어머니는 어쩔 줄 몰랐다. 이윽고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프라크리티에게 말했다. “목숨을 버리지는 마라. 내가 주술을 외어 반드시 아난 비구를 이곳으로 오게 하겠으니 제발 목숨만은 버리지 마라.” 이윽고 프라크리티의 어머니는 집안 거실에 벌레가 날아들지 못하도록 소똥을 바르고 마른 띠를 하얗게 깔았다. 그런 뒤 마당 한 가운데에 모닥불을 놓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차나무 가지를 108개 들고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마당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차나무 가지를 한 개씩 불 속에 던졌다.
 
 아마리 비마리 구구미 삼마녜 빈다미차야 뎨보바리사디 비뎨 유다뎨아사디 비삼마야 마라사 삼마디 바다이사
 “천상이든 악마든 건달바든 화신(火神)이든 지신(地神)이든 저의 이 주문을 들으시고, 또한 제 의식을 받으시고, 아난 비구가 빨리 이곳에 꼭 이르게 해주소서.” 프라크리티의 어머니가 주문을 마치자, 아난은 마음이 미혹되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걸어서 찬달라의 집으로 찾아왔다. 아난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본 어머니가 프라크리티에게 말했다. “아난 비구가 이 부근에 이르렀으니 지금 너는 자리를 깔고 향을 피우고 꽃을 뿌려라. 몸을 예쁘게 단장하는 것도 잊지 말고.” 프라크리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집 안을 장식했다. 보석을 단 의자를 들여놓고 마당에 물을 뿌리어 깨끗하게 청소한 뒤 여러 가지 꽃을 꽃밭에서 따다가 뿌렸다.>

 

 주혜는 <마등가경>에 나오는 아난과 천민 여인의 만남이 성경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목이 마른 예수와 아난이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는 장면이 너무 같았고, 멸시받고 사는 두 여인의 처지가 매우 비슷했다. <마등가경>의 여인은 타고날 때부터 천한 일을 하고 사는 천민이었고, <요한복음>의 사마리아 여인은 창녀처럼 결혼하지 못한 채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가련한 여자였다. 주혜는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이 성경 말고도 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몇 마디 엄숙하고 진지한 대화 끝에 바로 예수의 순한 양이 돼버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달리 아난 비구를 남편으로 삼고자 주술가인 어머니를 붙들고 자살하겠는 둥 애걸하는 찬달라 여인의 무모한 갈애가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주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선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소등을 하세요. 절에서는 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불을 끌게요.”
 “주혜 씨. 잘 자요.”
 “선융 씨 내일 봐요.”
 주혜가 방문을 열자, 선융은 벌써 가버리고 보이지 앉았다. 주혜는 아난이 왜 찬달라 신분의 여인에게 가서 마실 물을 달라고 했는지, 혹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예수가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전하고자 갈릴리를 가면서 일부러 사마리아에 들러 굳이 부정한 여인을 만나 우물물을 달라고 한 행동과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던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한 <마등가경> 때문에 주혜는 밤새 뒤척거리다가 꼭두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주혜에게는 어린 부엉이가 문득문득 울고 바람이 꿈결처럼 방문을 두드리는 낯선 절의 하룻밤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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