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사 온돌방은 뜨거웠다. 벽 틈으로 새든 연기에서는 상큼한 소나무 송진 냄새가 났다. 선융은 속옷이 젖을 만큼 땀을 흘렸다. 그런데도 얼굴과 다리는 여전히 시렸다. 방문은 꼭 닫혀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짧은 꿈을 꾸었던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눈길을 걸었던 것일까. 하루 종일 눈보라 속을 걸었던 느낌인지도 몰랐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선융은 얼굴과 다리가 몹시 가려워 문지르고 주물렀다. 발바닥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려웠다. 주먹으로 발바닥을 몇 번이나 때렸지만 가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발바닥의 혈관이 얼었다가 녹고 있는 느낌이었다.
 선융은 묘유스님과 주혜의 목소리를 듣고는 방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어느 새 하늘 끝자락이 칙칙하게 붉었다. 노을마저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혜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얼얼하지만 좋아지겠죠.”
 “스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셔요.”
 선융이 묘유스님을 보고 합장했다.
 “스님, 잘 계시죠?”
 “밖으로 나오지 말고 몸을 더 따뜻하게 해줘요. 큰일 날 뻔했어요.”
 묘유스님은 삼십대 중반이지만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다. 말할 때마다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해맑았다. 선융은 자신보다 다섯 살 정도 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승가에서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따져보는 것이 있다면 출가한 햇수였다.
 “법당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선융은 법당으로 들어가 삼배했다. 불단의 부처가 선융을 넌지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서래사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본 부처였다. 부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미소 짓고 있었다. 부처의 미소를 보자 서래사의 시절이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그때 서래사 법당의 부처가 선융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라’며 자애롭게 당부했던 것이다. 선융은 서래사 법당 마룻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선융뿐이었다. 남 몰래 흘린 눈물은 다소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법이었다.   
 대학시절 불면증이 심해져 휴학계를 낸 뒤 요양하려고 찾아간 곳이 바로 서래사였다. 경상도 거창 덕유산 자락에 있는 서래사는 작은 절이 아니었다. 절의 대중은 15여 명 남짓이었다. 진공 주지스님과 선방에 든 제자인 상좌 두 명, 젊은 선승이 10여 명, 그리고 자칭 소프라노라며 노래를 아무 때나 부르는 종무소 여직원과 공양처소인 향적당에서 조리하는 중년 여인 등이 절의 대중이었다. 선융의 불면증은 의사도 정확하게 처방전을 내지 못했다. 병원을 찾아가면 늘 수면제와 소화제를 처방해 주었는데 약기운이 떨어지면 불면증은 다시 도지곤 했던 것이다.
 선융이 여러 절 가운데 서래사를 찾은 이유는 거창이 고향인 선배에게 소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선배는 서래사 주지 진공스님에게 전화를 해서 선융이 요양하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숙식에 대한 경비는 요구하지 않았다. 진공스님이 요구하는 것은 절 대중의 일과에 맞추어 행동하라는 것뿐이었다. 새벽예불하고, 아침에 도량을 비질하고, 향적당에서 함께 공양하고, 오후에는 정랑을 청소하고, 저녁예불에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래도 선융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많았다. 절에 갇혀 답답하다는 기분이 전혀 안 들었다. 난생 처음 스스로 시간을 쪼게 쓰는 주체적인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낮에는 뒷산을 산책이나 등산을 하고, 밤에는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선융이 가지고 온 책은 10여 권이었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공자의 <논어>, 정약용의 <목민심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 소로우의 <월든>,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카뮈의 <이방인>, <영어사전>, <한자사전> 등이었다.     
 그러나 선융은 밤에 독서를 오래 하지는 못했다. 낮에 산짐승처럼 산을 오르내려서 피곤한 탓이었다. 절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뒤척거리기는 했지만  굳이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잠을 잘 잤다. 서래사에서 생활한 지 3달이 지난 뒤부터는 초저녁만 돼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졌다. 소등만 하면 바로 꿈 없는 깊은 잠 속으로 골아 떨어졌다. 깊은 잠을 잔 덕분에 예전 체력이 돌아왔다. 자극적인 파나 마늘, 부추, 양파, 달래 등 이른바 오신채(五辛菜)가 빠진 심심한 반찬에다 시래기된장국이지만 밥을 남기지 않았다.
 선융은 스님들보다 밥 먹는 속도가 빨랐다. 공양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 출가하기 전의 직업이 언뜻 보였다. 선융은 스님들과 차별을 받듯 다른 식탁에서 떨어져 공양했다. 그런데 식탁의 위치 때문에 스님들의 공양하는 습관을 훔쳐볼 수 있었다. 공양하기 전에 스님들 모두가 외는 오관게(五觀偈)는 짧지만 장중한 게송인데 어찌 들으면 젊은 래퍼가 읊조리는 느린 랩 같았다.
  한 방울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이 몸을 길러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수고한 모든 이들이 선정삼매로 밥을 삼아 법의 즐거움이 가득하여지이다.

 

  선융이 가장 흥미를 느꼈던 스님은 독재정권에 맞서 반독재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하고 출가한 이른바 운동권 스님이었다. 스님은 늘 상대와 대결하듯 공양을 했다. 거리에서 데모하면서 경찰과 싸워온 습관인지도 몰랐다. 투쟁의 대상이듯 밥과 반찬을 거칠게 먹었다. 숟가락질과 젓가락질도 소리 나게 했다. 진공스님의 지적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송이버섯요리가 나오자 반찬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스님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식탐이라기보다는 송이버섯을 자신이 뒷산 솔숲으로 올라가 구해왔으므로 먼저 시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절대로 주저하거나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권 스님이 옳지만 절은 모두가 한 몸인 듯 수행해야 하는 곳이므로 그의 행동은 불행하게도 다른 스님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또 한 스님은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체격은 씨름선수처럼 뚱뚱한 편이었다. 스님은 밥 자체를 좋아했다. 밥이 나오면 코를 벌름거렸다. 밥 냄새가 향기로운 듯했다. 그래서인지 뚱뚱한 스님의 공양습관은 특이했다. 먼저 밥을 다 먹고 난 뒤 반찬을 따로 먹었다. 밥과 반찬을 함께 섞어 먹으면 밥과 반찬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뚱뚱한 스님은 다른 스님들에게 밥 먹는 즐거움을 주는 감초 같은 역할을 했다. 아무리 밥맛이 떨어진 스님이라도 뚱뚱한 스님 앞에 앉으면 입맛이 돌았던 것이다. 뚱뚱한 스님은 평생 다른 스님과 다투지 않을 것 같았다. 항상 볼록한 배를 내밀고 다니며 스님들과 잘 어울렸다. 스님이 되지 않았더라도 사회에 적응을 잘 했을 것 같은데 왜 출가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스님이 되려고 절에 갔다가 받아주지 않자 다시 대학생 때 출가를 시도해 성공한 스님이었다. 그러니 스님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고집이 좀 센 성격이라고 봐야 옳았다.
 또 선융의 눈에 띄는 스님은 늘 중간에 서 있는 선방 책임자인 선원장스님이었다. 스님은 향적당으로 올 때도 앞에 걷거나 뒤에 서지 않았다. 중간에 있는 듯 없는 듯 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까닭은 스님의 맑은 눈빛과 어눌한 말투 때문이었다. 스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스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했다. 스님이 공양하는 모습은 항상 명랑했다. 음식보다는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는 것 자체가 유쾌한 듯했다. 공양 시간 중에 마주 않은 스님과 담소하며 별것 아닌 화제에도 크게 웃곤 했다. 스님이 출가한 동기는 다소 특별했다. 고등학생 시절 스님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누군가는 나 때문에 떨어지는데 하고 크게 고민했고, 또 신문 등에 선행 기사가 나오면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지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스님은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고통스러운 날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처럼 순진한 고등학생이 대학입시 공부를 하려고 어느 암자에 갔다가 암주스님의 법문 한 마디를 듣고 출가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암주스님의 한 마디는 ‘선(善)도 악(惡)도 버리라’는 중국의 선승 혜능의 말이었다. 악을 버리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선을 버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목에 걸려 있던 가시가 쑥 내려가 버리는 통쾌함도 느꼈다. 선도 집착하면 독선이 되고, 위선이 되고, 병이 된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그 길로 암주스님의 제자가 돼버렸는데 설령 그런 사연이 없었더라도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 소박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또 한 스님은 울기를 잘했다. 향적당 공양주인 중년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절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래서 ‘울보스님’이란 별명이 붙었다. 스님들이 선방 마당에 난 잡초를 뽑을 때도 스님을 뺐다. 군대에서 잡초를 뽑는 사역 중에 ‘살아 있는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없다’며 울었다는 스님이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진공스님의 통역담당 스님도 잊히지 않았다. 스님은 무엇이든 설명하려고 했다. 진공스님이 선방 밖의 벽에 걸어 놓은 ‘침묵을 하면 입에서 연꽃이 피리라’는 나무 패(牌)를 무색케 했다. 외국인에게 편견과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선의 자유로운 즉흥성을 이야기하면서 ‘선은 재즈’라거나 선의 명상적인 실용성을 이야기하면서 ‘선은 기술’이라는 등등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소임이 통역이기 때문에 설명하는 습관이 생긴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진공스님은 통역담당 스님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선(禪)은 말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 것이냐며 질책했다. 그러나 통역담당 스님은 선이란 모양과 이름이 없는 신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기술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니 통역담당 스님이 서래사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편, 진공스님을 시봉하는 상좌 두 사람은 진공스님의 인격과 명성에 만족스러운 듯했다. 진공스님의 상좌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자부심이 지나쳐 풋중이라고 비난받은 적이 있었다. 향적당에 올 때도 언제나 진공스님 좌우에 서서 소맷자락을 펄럭였다. 선융이 볼 때도 진공스님은 선승으로서 매력이 넘쳤다. 풀 먹인 장삼을 정갈하게 입고 다니는 진공스님의 당당한 모습에는 위의(威儀)가 있었다. 진공스님의 성격은 깐깐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공양하는 모습은 학처럼 고고했다. 그러고 보면 오관게에 입각해서 공양하는 스님은 진공스님과 선원장 스님뿐인 듯했다.
 선융이 서래사에 머문 지 6개월이 다 돼갈 무렵이었다. 선방스님들은 하안거가 끝나자마자 바랑을 메고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떠나버렸다. 진공스님 상좌도 어린 스님 한 명만 남았다. 대중이 서너 명만 남게 된 절은 썰물이 빠져나간 개펄처럼 적막해져버렸다. 때마침 가을이 되어 절은 냉기가 돌고 쓸쓸하기조차 했다. 가을이 깊어졌을 때는 낙엽이 절 마당과 계단을 뒤덮었다. 선융과 진공스님의 상좌가 쓸지만 그때뿐이었다. 자고 나면 바람에 날려 온 낙엽들이 여기저기서 뒹굴었다.
 신나는 사람은 종무소 여직원이었다. 스님들의 이부자리를 빨거나 면소재지 약국으로 가서 약을 사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는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온 여직원은 스님들이 없는 산철의 시간을 즐겼다. 그녀는 경내에서 큰 소리로 <보리밭>을 불렀다. 선융은 그녀가 흥얼거리는 <보리밭>을 수십 번 들어서 노랫말을 외울 정도였다.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그러나 남녀 정랑의 입구가 이쪽저쪽으로 분리돼 있기는 하지만 아침에 볼 일을 보는데 홀연히 그녀의 <보리밭>이 가깝게 들려올 때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은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선융은 정랑에 앉아서도 <보리밭>을 부르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선융은 아무 데서나 부르는 그녀의 노래를 제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서래사의 잔살림을 하는 직원이고 선융은 더부살이하는 처지이므로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동안거가 시작하는 보름 전쯤이었다. 진공스님이 선융을 주지 방으로 불렀다. 진공스님의 은사스님이 큰절에서 오셨으니 인사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진공스님의 은사스님은 80세가 넘은 노승이었다. 진공스님도 명성이 자자한데 은사스님이라고 하니 선융은 잔뜩 긴장을 한 채 삼배를 올렸다. 그런데 노승의 행동은 뜻밖에도 어린아이처럼 천진했다. 노승이 천진한 말투로 선융에게 물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람은 이성이 있고 짐승은 본능만 있습니다.”
 선융은 노승이 원하는 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말했다. 그러자 노승이 다시 물었다.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는데 이 뜻을 아는가?”
 선융은 말문이 막혀 진땀을 흘렸다. 대답을 할 수 없을 뿐더러 몹시 긴장을 해서였다. 수행자나 대답할 수 있는 선문답인데 휴학생 선융이 답변한다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노승이 다탁 위 사발에 담긴 포도 알을 던져 입안에 넣었다. 행동이 고승답지 않고 장난스러웠다. 선융은 갑자기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노승이 선융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동작을 보였는지도 몰랐다. 노승이 선융에게 다시 한 마디 했다.
 “답답하지?”
 “네."
 “깨쳐봐. 속이 시원해질 거야.”
 진공스님이 눈치를 주자 선융은 뒷걸음질 치며 방문을 열고 주지 방을 나왔다. 그런데 노승이 선융을 뒤따라 나와 마루에 서서 또다시 같은 말을 던졌다.
 “학생, 출가해서 깨쳐봐.”
 “.....”
 선융은 엉거주춤 물러섰다. 진공스님이 선융을 불러 세운 뒤,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은사스님께서 이렇게 간곡하게 권유하시는 것을 처음 보았네.”
 “너무 뜻밖의 말씀이라 대답을 못했습니다.”
 “자네에게 무언가를 보신 것 같네. 그래서 마루까지 따라 나오셔서 말씀하신 거네.”
 선융은 진공스님이 노승의 행동에 지나치게 의미를 덧붙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노승이 선융에게 무언가 자상하고 친밀감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노승은 서래사에서 자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지프차 한 대가 오더니 노승을 싣고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사라졌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선융은 마른걸레를 들고 법당 안을 청소했다. 법당 안을 청소하기는 처음이었다. 불단에 올라 보니 뜻밖에도 먼지가 수북했다. 부처의 어깨 위나 손바닥에도 먼지가 쌓여 있었다. 부처의 손바닥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자 부처의 손금이 드러났다. 선융은 자신의 감정선과 생명선, 운명선이 비슷해 놀랐다. 부처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증거인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융은 부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미소 짓는 부처가 선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융은 무언가 대단한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렇구나. 부처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구나. 저렇게 항상 미소를 지을 수만 있다면 부처가 되는 것이구나. 스님이 되고 부처가 되는 길이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 나도 스님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겠구나.
 선융은 참지 못하고 주지 방으로 올라가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진공스님에게 고백했다. 그러자 진공스님이 선융의 손을 맞잡은 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다음날 선융은 주지 방 앞마당에서 삭발했다. 진공스님의 강요가 아니라 선융이 자청해서였다. 이후 선융은 동안거가 시작되자마자 행자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진공스님의 허락을 받고 선방에 입실했다. 그러니 선융이 출가한 동기는 서래사 부처의 미소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래사 부처의 미소와 조우한 순간 마치 캄캄한 밤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별 하나를 만난 듯 눈앞이 밝아졌던 것이다.
  주혜가 법당 밖에서 말했다.
 “주지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비로소 선융은 자신이 안적사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당 안의 부처는 안적사 아미타불이었다. 아미타불은 미래의 부처였다. 그제야 법당 안의 현실적인 추위가 선융을 덮쳤다. 선융은 진저리를 치며 법당을 나왔다. 밖은 이미 살얼음 같은 산그늘이 절 마당까지 내려와 깔려 있었다. 허공에 얼어붙었던 노을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