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만 자라고 초롱처럼 생겨 “금강초롱”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꽃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 금강산 비로봉 밑에 일찍 부모를 잃은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누이는 돌아간 어머니를 대신하여 동생을 살뜰한 정으로 보살펴 주었고 동생은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극진히 사랑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누이가 뜻밖에 앓아눕게 되었는데 차차 병이 심하여 좋다는 약을 다 구해다 써 보았으나 좀처럼 낫지 않았다. 동생은 약제를 구하여 누의의 병을 고쳐야겠다는 오직 한 생각으로 이산 저산 골짜기를 헤매며 약초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지쳐 개울가 벼랑에 기대어 누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물소리만 정답게 들리는데, 뜻밖에 그리운 어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불쌍한 아들아, 네 누이의 병을 고칠 약이 이 세상에는 없단다. 달나라의 계수나무 열매만이 약으로 되는데 네 힘으로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느냐. 외진 산중을 속절없이 헤매지 말고 돌아가거라.” “어머니 달나라에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나요?” 동생은 어머니 품에 안기려고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보니, 그것은 안타깝게도 꿈이었다.

 

너무나도 서러워 한참 동안 목 놓아 울던 동생은 하늘나라가 아무리 멀어도 기어이 올라가 계수나무 열매를 구해 오리라 마음먹고 백천동 골짜기에 100살 된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저 달나라에 가는 길을 가리켜 주세요.” “이 세상에서 하늘이 제일 가까운 곳은 비로봉인데 그 마루에 올라서면 달나라에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는 사람이 못 가는 딴 세상과 같은 곳이란다. 동생은 달나라에 갈 수만 있다면 비로봉이 아무리 높고 그 길이 사람이 감히 가기 힘든 험로라 할지라도 기어이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온 동생은 앓는 누이에게 근심을 끼칠까 염려 되여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누나, 내 좋은 약초를 구하러 비로봉 마루에 갔다 오겠어요.” "얘야, 험한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늦지 않게 돌아와야 한다.” “염려 말아요. 금방 갔다 올게요.” 누이를 안심시키고 길을 떠난 동생은 생사를 결단하고 벼랑바위를 따라 위로 오르다가 떨어져 살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결심을 굽히지 않고 오르고 또 올라 비로봉 마루까지 당도하였다.

 

 

 

하지만 정작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보니, 하늘위의 달나라에 갈 길은 없었다. ‘날개도 없고 사다리나 밧줄도 없이 어떻게 올라가랴.’ 애를 태우며 동생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서 훨훨 날아가는 학을 보면 학이 되고 싶고 비로봉 등판에서 불어치는 돌개바람을 보면 돌개바람 속에 휘말려 날아다니는 가랑잎이 되었으면 하며  하염없이 앉았는데 어느 덧 해는 지고 밤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아, 누님이 나를 기다리겠는데...., 근심스러워 집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때 갑자기 머리위에서 “좌르릉, 좔랑좔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너무도 무서워 얼른 잣나무 솦 속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하늘 중천 높이 뜬 달에서 은사다리가 주르르 내리 드리우는데 사다리를 타고 어여쁘게 생긴 선녀가 물병을 안고 사뿐사뿐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 월궁선녀로구나. 금강약수를 길러 오는 게 분명해....” 이렇게 생각하며 황홀하여 지켜보는데 선녀는 황룡담의 물을 길어서는 흰 바위 곁에서 빛을 내는 돌을 꺼내 하늘에 대고 비쳤다.

 

한 번은 오른 손에 쥐고 비치고 한 번은 왼손에 바꾸어 쥐고 비쳤다. 그리고는 돌을 바위 구멍에 다시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사다리가 주르르 내려왔고 선녀는 그것을 타고 올라가 버렸다. 동생은 드디어 달나라로 올라 갈 수 있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서움도 잊고 흰 바위로 달려가 선녀가 두고 간 돌을 꺼내 보았다.
그것은 오색 찬연한 빛을 뿌리는 보석이었다.

 

한편 병석에 누워있던 누이는 약초 캐러나간 동생이 밤 깊도록 돌아오지 않아 불길한 근심 속에 마음을 태우다가 초롱불을 켜들고 동생을 찾아 나섰다. 누이는 비로봉 마루까지 가겠다고 한 동생을 찾아 기슭과 골짜기들을 살피며 다음 날 밤 비로봉 마루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비로봉 마루에 올라서자 멀지 않은 바위 벽 쪽에서 이상한 광채가 번득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달려가 보니 그것은 금사다리가 하늘에서 땅에 드리운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로 동생이 올라가고 있었다.

 

누이는 동생을 불렀다. 누이의 목소리를 들은 동생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누나, 계수나무 열매를 따가지고 올게 기다려.” 금사다리는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동생의 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누이는 두 팔을 벌리고 돌아오라고 발을 구르며 동생을 찾았으나 누이의 애절한 목소리는 산울림으로 퍼져갈 뿐이었다.

 

누이는 초롱불을 마주하고 앉아 온밤을 새웠다. 그때부터 누이는 동생과 헤어진 비로봉 마루에 매일 밤 초롱불을 켜들고 찾아 올랐다. 오늘이나 돌아올까 내일이나 돌아올까 기다리며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하늘로 올라간 동생은 낮선 세상에 이르러 마침내 계수나무 열매를 딸 수 있었다. 그는 적삼을 벗어 열매를 싸안은 다음 누님이 애타게 기다릴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둘러 금사다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때 하늘나라 법질서를 맡아보는 사천왕이 동생을 보았다. 인간 세상의 사람이 신선 나라를 침범하였다고 대단히 노하여 금사다리를 들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 갈겼다. 그때 그만 은사다리, 금사다리는 꽈르릉하는 천둥소리를 내며 비로봉 마루에 떨어져내려 수 천 수 만 개의 층계를 이룬 바위 돌로 변했다.

 

사천왕은 인간 세상에서 올라온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데 사천왕은 잡아온 사람이 소년인 것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하여 달나라에 올라왔느냐?” 사천왕은 노여움과 함께 경탄에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년은 어리둥절하여 서 있는데 신하들이 말을 되받아 “올라오게 된 연고를 아뢰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제야 동생은 전후사연을 말한 다음 적삼소매에 싸 넣은 계수 나무열매를 보이면서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난 사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특하구나 인간 세상에 이같이 지극한 남매간의 사랑이 있는 줄을 내 미처 몰랐노라.”하더니 다시 분부를 내렸다. “천궁에서 제일 날랜 용마를 태워 보내라.” 이리하여 소년은 계수 나무열매를 따가지고 용마를 타고 비로봉을 향해 질풍같이 달려왔다.
 

 

하지만 신선나라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천년과 같은지라 너무 긴 세월이 지나 동생은 누이를 만날 수 없었다. 동생과 헤어진 그날부터 하루같이 초롱불을 켜들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기다리던 누이는 끝내 그리운 동생을 만나지 못한 채 숨이 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이가 죽을 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초롱불만은 천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꺼지지 않고 그대로 켜져 있었다. 그 불은 이상하게도 점점 더 빨갛게 켜져 있다가 꽃으로 변하였다.
 
동생은 비로봉 마루에 내려 누이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에선가 꽃향기가 풍겨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누이가 들고 있던 초롱불 같은 아름다운 꽃이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 초롱꽃” 동생은 사랑하는 누나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안고 누나와 함께 오르내리며 정을 뜨겁게 나누던 잊을 수 없는 봉우리들과 골짜기에 그 꽃을 정성 담아 옮겨 심고 애지중지 키우며 가꾸었다.

 

초롱꽃은 이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갈라져서 살수 없는 오누이의 살뜰하고 순결한 마음을 담았기에 오로지 금강산에만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리고 언제나 동생을 애타게 기다리는 누나의 모습처럼 하늘 속의 달나라를 향해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짙은 향기를 풍기며 사람들에게 우애의 깊은 정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금강초롱꽃”이라 부르며 특별히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강초롱(사진 : 불별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