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사진)이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의 차기 조계종총무원장 추대설'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미디어붓다>는 이 글에 대한, 품격을 갖춘 지지 또는 반론의 글이 도착할 경우 함께 게재할 방침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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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하신지요?

큰스님을 두세 번 뵌 적이 있으나 사사로이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매체를 통해 간간히 흘러나오는 법문과 대담을 들으며 스님의 수행력과 덕화에 감복하면서 많은 불자들이 스님을 따르고 존경하는 이유에 대해 서툴게나마 짐작하곤 합니다. 

스님을 차기 총무원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고 법장 스님을 생각했습니다. 2003년 3월, 스님과 같은 문중이신 당시 세납 62세의 법장 스님께서 제31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시고 방미와 방북 행사를 추진하실 때 이런저런 도움과 의견을 드린 일 등으로 인해 남다른 연을 맺은바 있기 때문입니다.

종단의 중요 인사들이 설정 스님을 차기 총무원장으로 추대하고자 한다는 것은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여느 후보자 스님들과 달리 향후 종단 전체에 미칠 파급이 중대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수락을 결정하신 바도 아니기에 무어라 섣불리 말할 상황은 아니나 몇 가지 염려되는 바가 있기에 꾸지람을 무릅쓰고 필을 들었습니다.

세납이나 방장의 위치 그리고 원로의원이라는 직함이 총무원장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결코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원로회의 의원과 방장은 법납과 세납이 최고 위치에 이르신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종단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그 운영이 종헌질서에서 어긋남이 없는지를 큰 틀에서 살피시고, 반드시 역할이 필요할 때 경책을 통해 바로잡으셔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할 것입니다.

종헌도 “방장은 선, 교, 율을 겸비한 법계 대종사급, 승납 40년 이상의 본분종사라야 한다” 했습니다. 또 원로의원은 “승납 45년, 년령 70세, 법계 대종사급의 원로 비구로 구성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랜 수행과 종단 살림살이 등 이사(理事)를 두루 경험하여 깊은 지혜를 갖춘 분들이 원로의원이 되시어 평소에는 한 발치 물러서 계시나 종단이 어려울 때는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르침을 제시하는, 이름 그대로 ‘어른’으로서의 역할과 상징이 매우 큰 분들이 원로의원 스님들이십니다. 

반면에 총무원장에 대해서는 “총무원장의 자격은 승납 30년 년령 50세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어느 정도의 법납에 이른 스님으로서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이 가능한 나이인 50세 이상을 적정 연령으로 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상징체로서가 아니라, 한 교단의 행정수반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고도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는 일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설사 시행착오가 있다 해도 5, 60대 중진에게 종단을 통리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종단의 인재를 양성하고 훈련시키며 부지런하게 혁신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것이 종단의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요, 장기적으로 볼 때도 그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단의 최고위급인 어른께서 종무일선의 수장으로 내려오심은 종단의 위계구조와 질서에 혼란을 가져오고 혁신과 발전을 답보시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종단 내외에서 존경받는 어른을 총무원장직에 모심으로써 대중의 화합을 도모한다고는 하지만, 대중 화합은 종헌질서를 잘 지키고 종무행정이 투명하며, 대중에게 참여의 기회와 정재의 배분이 공정하고 균등해 질 때 가능한 것이지 결코 법납과 세납이 높고 최고위급이라는 명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하시는 등 조계종단의 근현대사와도 궤를 같이하신 큰스님이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무엇이 종단의 문제이며, 무엇이 발전과 혁신을 발목 잡고 있는 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리라 여깁니다. 그렇다면 스님께오서 직접 총무원장직을 수임하시기 보다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거침없이 방향을 제시하시고, 종단과 종도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경책하며 지도하심이 본분사라 생각합니다.

큰스님을 추대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현 시점에서 스님께오서 총무원장직을 흔연히 수락하시게 된다면, 종정예하는 물론 같은 원로의원 스님들께서 총무원장이신 스님과 종단운영에 대해 권위를 갖고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교시나 유시를 내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종단의 최고 어른께서 총무원장직을 맡는다면 소통은 더욱 차단되며 건전한 제안과 비판마저 중지돼서 언로가 아예 막히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외람되지만 그만큼 종단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그 분위기와 흐름이 혁신적이고 소통이 자유로울 때 희망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역사가 그러했고, 당장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종단이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이웃종교와 경쟁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이 있고, 대중의 직선제 요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 종단 혁신에 그야말로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제아무리 전임 총무원장스님의 업적이나 포교와 교육정책이 수승하다 해도 향후 총무원의 흐름과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하면 퇴색할 것입니다.

설정 큰스님께서 총무원장직을 수행하시면서 종단혁신과 중흥불사를 통해 한국불교와 종단을 반석위에 올려놓으신다면 그보다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 희망일 뿐입니다. 벌써부터 안팎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칫 스님의 높으신 정진력과 인품에 생채기를 남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앞섭니다. 거칠고 파편화된 종단 현실은 스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존경심에도 화살을 돌릴 것입니다. 이것이 스님께서 추대에 대해 아직 수락을 하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례를 무릅쓰고 공개서신을 작성한 이유입니다.

큰스님께오서 이 서신을 보실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스님의 지혜로우신 판단과 덕화가 종단을 아름답게 장엄하기를 바랍니다. 큰스님과 본사 대중에게 참회의 절을 올리며 졸필을 거둡니다.

불기2567년 7월 31일

法應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