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기고․견해

어떻게 해야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병두 | beneditto@hanmail.net | 2017-05-11 (목) 10:44

- 처음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

                                                                                        
 

 

필자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촉발된 촛불 민심이 정권을 바꾸었다. 통상 두(2) 달 정도 걸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릴 틈도 없이 당선과 동시에 집무에 들어간 신임 대통령이 발길이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기간만큼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가 실기失機‧失期할 가능성을 줄여주기 때문에 다행일 수도 있다.
  
부디 부처님 말씀처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 마무리도 좋은” 대통령이 되길 기원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고려 태조 왕건과 곡성 태안사 광자廣慈 대사 사이에 오고 간 대화 한 대목을 소개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 왕조를 세운 뒤 광자 대사가 훌륭하다는 명성을 듣고 사신 편에 친서를 보내 “대사의 덕을 우러르고 사모한 지 이미 오래 되오니, 그 거룩한 모습을 뵙고자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연로年老하셔서 보행하시기 힘들까 염려되나, 말을 타고 한 번 왕궁으로 오시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친서를 받은 대사가 “노승이 출가한 이래로 이제 80에 이르렀지만 아직 말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산승山僧도 왕의 백성이오니 어찌 감히 임금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하고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고 걸어서 개경에 도착했다.
  
왕건은 대사를 맞이해 영빈관[儀賓寺]에 모시고 극진한 예를 다하니 여러 신하들이 놀랄 정도였다. 왕건과 광자 대사가 서로 예의를 갖추어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임금이 “짐이 하늘의 도움을 받아 난세를 구제하기 위해 흉포한 무리들을 주살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대사는 “폐하께서 오늘 제게 묻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국가가 부강하고, 백성이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역주 《조선불교통사》4, 88 & 89쪽에 실린 <桐裏山 大安寺 敎諡廣慈大師碑銘> 내용을 발췌 수정함)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 부도(보물 제 274호): 2014. 12. 26. 촬영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 부도비(보물 제 275호): 2014. 12. 26. 촬영. 비석은 모두 깨어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았다.

 

 

혹 문재인 대통령이 불교계나 다른 이웃 종교계의 어른들에게 “어떻게 해야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에게 예산 많이 늘여주십시오”라는 격 떨어지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고, 광자 대사의 말을 그대로 모방해서 “선거 과정에서 먹었던 마음과 오늘 제게 묻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국민이 행복하고, 평화 통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주면 정말 고맙겠다.
  
아니, 굳이 종교계 어른들에게 묻지 않더라도 문 대통령 스스로 이런 마음을 가져 주기를 기대해본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