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인도성지순례기] 8- 부처님의 탄생성지 ‘룸비니’
“당신은 왜 사바세계에 오셨을까? 우리는 오신 뜻을 실천하고 있을까?”
 

가필라바스투(가빌라성). 이곳은 부처님께서 나고 자랐으며, 결혼을 하고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삶을 살았던 곳이다. 가필라바스투는 부처님께서 출가 전 29세까지 사셨던 곳이다. 이곳에서 부처님, 아니 고타마 싯다르타는 삶을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장차 왕이 되었을 때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부터, 친구들과 함께 너른 들판을 말 타고 내달리며 활을 쏘고 포효했을 것이다. 호연지기를 키우기에는 안성마춤인 가필라바스투. 지금도 망고숲을 울타리로 삼고 있는 이곳의 피프라하와 승원터와 간와리아 궁성터는 넓고도 시원하다. 이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며 무예를 닦고, 최고의 학문을 배우면서 전륜성왕의 자질을 다졌을 싯다르타의 모습이 환영처럼 펼쳐진다.

본래 가필라성은 네팔 틸라우라코트에 위치해 있는 작은 도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71년과 1979년에 걸쳐 행해진 피프라하와 및 간와리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발굴을 주도한 슈리바스타바에 의해 이곳 피프라하와에서 붓다의 사리가 담겨진 사리용기 및 이곳이 고대 카필라바스투였음을 입증하는 유적들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많은 학자들은 이곳이야말로 고대 카킬라바스투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델리국립박물관에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사리용기는 이곳 피프라하와의 메인스투파에서 발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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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광경은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그때는 없었던 거대한 연못이 메인스투파를 중심으로 왼쪽에 만들어져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고, 승원터 곳곳이 발굴되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간와리아 궁성터도 이전과는 달리 발굴이 끝나 성지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A.D. 409년 경 이곳을 찾은 법현은 그의 저서 <불국기>에서 “이 성에는 왕과 백성이 없고 매화 황폐했으며,…중략…백정왕(白淨王; 정반왕을 지칭)의 고궁터에 태자모(마야부인)의 형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태자가 흰 코끼리를 타고 어머니의 태내에 들어갈 때의 상(像)인 것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장도 <대당서역기>에서 “궁성 안에 건물터가 남아 있다. 정반왕의 정전(正殿)이다. 건물터 위에 정사가 세워져 있는데, 안에 왕의 상(像)이 만들어져 있다. 그 옆 멀지 않은 곳에 건물터가 있다. 마하 마야부인의 침전이다. 그 위에는 정사를 세우고 안에는 부인의 상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옆에 정사가 있다. 석가보살이 어머니 태내에 들었던 곳이다. 정사(精舍) 안에 보살 강신(降身)의 상이 만들어져 있다”는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카필라바스투로 추정되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인도의 피프라하와이고, 다른 하나는 네팔의 틸라우라코트이다. 그러나 발굴이 진행되면서 고대 카필라바스투는 피프라하와와 간와리아가 있는 인도쪽 영토로 점차 굳어지고 있다. 특히 왕궁터로 추정되는 간와리아 주변에는 싯다르타와 데바닷타가 씨름 경기를 벌인곳, 태자비 야쇼다라의 침궁터, 태자 싯다르타의 학당터, 싯다르타가 삶의 무상함을 느낀 정반왕의 밭, 유리왕에 의해 샤카족 9천9백90만 명이 죽임을 당한 곳, 부처님이 정반왕에게 설법한 니그로다 동산, 이모 프라쟈파티가 부처님께 금란가사를 공향한 곳, 8명을 왕자와 더불어 샤카 족 청년 500명을 출가시킨 곳, 싯다르타가 샤카 족 청년들과의 활쏘기 경주를 벌인 곳, 싯다르타가 쏜 화살이 떨어진 곳에 우물이 파여 화살샘이라 불렸던 곳 등에 스투파가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의 출가 이전 태자시절의 삶의 흔적이 어린 이곳은 앞으로도 보다 정밀한 발굴조사가 요구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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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의 핵심은 가필라바스투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에 자리하고 있는 룸비니 동산을 참배하는 일이다. 인천의 스승, 너무나 완전해서 사람의 몸으로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 되신, 성인 중의 성인 부처님께서 태어난 성지 룸비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에서 찾아온 불제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이곳을 참배하는 불제자들의 부처님을 향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표하는 열기는 간절함을 더한다.

지금 여기 룸비니 동산

오체투지로 예배올리고
위대한 여정에 감동하고
진저리치게 고마움을 절감할 밖에

지금 여기 룸비니 동산

깃발 펄럭이는 초원 위에
근심 뿌리째 뽑는 무우수 아래
무릎이 까지도록 절을 올릴 밖에

지금 여기 룸비니 동산

마야부인의 따뜻한 손길에
구룡이 뿜어낸 청량한 감로수에
진동하는 천지에 경외할 밖에

지금 여기 룸비니 동산

당신의 위대한 탄생에
걸음걸음 받쳐 피어오른 꽃송이에
유아독존 사자후에 눈물 흘릴 밖에

                               -졸시 '룸비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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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을 받은 피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즉위 20년(B.C. 249년)에 몸소 이곳에 와서 예배하였다. 이곳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세존의 탄생지임을 알리기 위해 왕은 석조의 부조(浮彫)와 석주를 세우기를 명하였다. 왕은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감하여 수확의 8분의 1만 내게 하였다.”

룸비니를 참배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고맙고 고마운 그분, 부처님께서 세상에 첫 출현을 하신 곳이니 불제자로서 어찌 감사의 눈물을 막을 수 있으랴.

아쇼카 석주 바로 옆에는 마야(Maya)부인을 기리는 흰색의 마야데비 사원(마야부인당)이 지어져 있다. 이 사원 안에는 아기 붓다의 강생 장면을 연상시키는 부조들이 남아 있어, 참배자들은 2천600여 년 전 부처님 강탄 당시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순례행렬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구석진 공간을 찾아 좌선에 들었다. 지긋이 눈을 감고 화두 대신, 부처님을 생각했다. 뭇 중생을 구원하시고자 사바세계로 강생하신 부처님의 한량없는 대자비심이 왈칵 감동으로 닥쳐온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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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기나긴 과거 전생에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몸을 헌신하고 헤아릴 수 없는 보살행으로 큰 공덕을 지어 하늘나라 도솔천에 태어나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셨다. 그러니까 호명보살은 부처님이 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렀을 때 부르던 이름이다.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 하는 중생을 보호하고 그 길을 밝게 밝혀주므로 호명(護明)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기 바로 전의 보살을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고 하는데, 현재 비어 있는 부처의 자리를 메운다는 뜻을 지닌다.

호명보살이 도솔천에 태어난 이유는, 이보다 낮은 천(天)인 사왕천이나 도리천·야마천 등에 태어나면 게으름과 욕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완전한 부처가 되기 어렵고, 이보다 높은 위치의 천인 화락천이나 타화자재천에 태어나면 고요한 선정만을 즐겨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4월 보름날(우리나라에서는 4월 초파일), 마침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로 내려오셨다.

마야데비 왕비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임신 10개월이 되던 때 출산을 위해 친정집으로 향하던 중 바이샤카 월(月) 보름날,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룸비니 동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한참을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출산의 진통이 찾아왔다. 마야데비 부인은 마침 사라수나무(無憂樹)의 늘어뜨려진 가지를 붙잡고서 아이를 낳았다.

이때 브라흐마(힌두교의 창조주, 불교의 범천)는 그의 손으로 아이를 받았고, 다른 신들과 천녀들은 시중을 들었으며, 또한 하늘에서는 더운 물과 차가운 물 두 줄기가 뿌려져 아이를 씻어주었다. 또한 아이를 낳은 후 왕비 마야데비의 몸을 씻기 위해 기름 가득한 연못이 생겨났다.

아기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시방을 차례로 둘러본 후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었으며 그때 밟았던 걸음마다 땅에는 연꽃이 피어올라 발을 받쳤다. 이윽고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킨 후 이렇게 외쳤다.

“하늘과 땅 위에 나 홀로 존귀하네. 삼계가 평안하지 않으니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無安 我當安之)” - 불본집행경
“하늘과 땅 위에 나 홀로 존귀하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제도하리라.(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 - 장아함경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다 고귀하며 이 세상의 주인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선포하고, 그런 세상을 당신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생명존중 선언이요,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이다. 또한 당신이 이 생에서 보여줄 삶의 모습에 대한 예언이다.

부처님이 탄생 선언을 마치자마자 천지는 진동하고, 바람은 흐름을 멈췄으며, 새들은 은신처를 찾고, 모든 나무들은 꽃 피고 열매를 맺었다. 고요와 평화가 온 누리에 충만했다.

순례객이 룸비니 동산을 다 빠져 나간 후에도 한참 동안을 마야데비 사원 안에 앉아 있었다. 세 번째 방문하는 것이지만, 오늘처럼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것이 고맙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가만히 합장하고 부처님께서 원력을 세워 이 사바세계에 오신 의미를 새겨본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탄생게에 그 답이 잘 드러나 있다.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만 중생을 구하시겠다는 것, 그래서 대승경전 ‘법화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것을 일대사 인연이라고 하고, 불지지견 개시오입(佛之知見 開示悟入)이라고 표현했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사리불이여, 무엇을 모든 부처님께서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신다고 하는가? 그 일대사인연이란 무엇인가?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깨달으신 지혜를 열어서[開] 그 마음이 툭 트이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깨달으신 지혜를 보여주기[示] 위해서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깨달으신 지혜를 경험하고 확인하고 깨닫고[悟] 성취하게[入] 하려고 이 세상에 출현하였느니라.“   

이 부처님의 간절한 원생(願生)을 생각하니, 사람 몸 받고 태어나 부처님의 가르침까지 만난 나의 금생이 이토록 소중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오직 공덕을 지으며, 부처님의 대보살심을 흉내라도 내며 살아가야 하겠구나, 하는 다짐이 심연으로부터 저절로 일어나고 있다. 두 뺨으로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석가모니불 염송은 그칠 줄 모른다.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이제 문을 닫아야 할 시간입니다.”

관리인이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 요청을 듣고서야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멈춘다. 어둠이 드리워진 룸비니를 뒤로하고 몇 번이고 뒤돌아 은은한 조명으로 장식된 마야데비 사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성지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