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대로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잘 산다!” 그리고 잘 섞일 수 있으려면 사상 ‧ 의사표현 ‧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 종교를 살리고, 경제도 살리며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길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곳에서 문화가 제 자리를 잡을 수 없고, 그런 곳에서 경제 번영을 기대하는 것은 죽은 고목에서 새 순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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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이야기 하나: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 번영의 바탕에는 ‘사상의 자유’가 있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오랜 동안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80년 전쟁’이라고도 하는 스페인에 대항한 독립전쟁(1568~1648) 발발과 함께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하여 스페인에서 사실상 독립하였으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국제법적으로 완벽한 독립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곧 이어 ‘해양 강국 ‧ 무역 강국’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게 되었다. (쇄국 정책을 펴던 일본의 막부幕府 정권도 네덜란드 상인들에게는 나가사키 항을 개방하여 무역 거래를 하였고, 일본 측에서도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무역관을 통해 그들이 ‘난학蘭學’이라고 부르는 서양 학문을 수입하는 창구로 삼았다.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대학이 동양 연구의 중심 중 한 곳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오랜 지배를 받다가 80년에 걸친 힘든 독립 전쟁을 거쳐 공화국으로 출발한 네덜란드가 매우 빠른 속도로 번영을 누리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상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것이 국내의 지성계를 활발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억압 받던 학자들이 자연스레 네덜란드로 몰려들어 오게 한 덕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에서 ‘문화’가 제대로 꽃을 피우고 국가의 번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史實일 것이다.

혁명적인 네덜란드 공화국의 17세기는 범선을 이용한 항해와 발견으로 상징된다. 강력한 스페인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해방된 직후,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의 그 어떤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계몽주의 사조를 받아들여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하며 창의적인 사회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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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네덜란드가 그때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없었다. 지혜와 꾀에 의존해서 살아야 했던 이 작은 나라의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 정책이었다. 그들은 정통에서 벗어난 사조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다. 마치 1930년대에 나치에게 쫓겨난 유럽 지식인들이 대거 망명해 오는 바람에 톡톡히 덕을 보았던 미국처럼, 온갖 검열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던 당시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네덜란드는 문자 그대로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아인슈타인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의 안식처일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Decartes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페인Paine, 해밀턴Hamilton, 애덤스Adams, 프랭클린Franklin, 제퍼슨Jefferson 등과 같이 철학적 성향의 혁명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정치학자 존 로크John Locke에게도 네덜란드는 안식처였다. 위대한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 들이 홀란드라는 땅에 그때처럼 넘쳐났던 시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당시의 네덜란드 공화국은 렘브란트, 베르메르Vermeer, 프란스 할스Frans Hals 같은 걸출한 화가들과, 현미경을 발명한 레벤후크Leeuwenhock, 국제법의 창시자 그로티우스Grotius, 빛의 굴절 법칙을 발견한 스넬Snellius 같은 사람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네덜란드의 전통에서 라이덴Leiden 대학교는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고문의 위협을 받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라고 강요받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에게 교수직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갈릴레오는 네덜란드 사람이 설계한 스파이글라스spyglass를 개조하여 그의 첫 번째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망원경을 통해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변화, 달의 운석공 그리고 목성 주위의 네 위성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성들은 “갈릴레오의 위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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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강국으로서의 네덜란드와,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네덜란드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조선술의 발전이 모든 기술 분야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네덜란드 인들은 기술을 존중했으며, 사회 전체가 발명가를 제대로 평가하고 예우하는 분위기였다. 기술의 진보는 지식 추구의 자유가 전제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네덜란드가 유럽 출판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외국어 저작물의 번역 출판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된 서적이라도 네덜란드에서는 출판이 허용됐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의 정신과 낯선 사회와의 잦은 접촉은 자기만족의 타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사상가들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걸쳐 유효한 통념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수천 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주장들조차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이 지적되고 과감하게 수정됐다. (…)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개방적 사고와 생활양식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과 개척의 정신은, 네덜란드를 진취성과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드는 데 훌륭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코스모스 Cosmos》,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81, 283, 284, 286 & 287쪽)

이야기 둘: 잠시 꽃 피운 ‘한류’ 열풍의 배경은 ‘자유’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피아노 ‧ 바이올린 등 클래식 음악 연주와 TV 드라마‧ 영화 ‧ 가요 등 대중문화 분야에서 ‘한류韓流’ 물결이 크게 일어나 ‘한류 스타’들의 이름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명해졌고 그 영향으로 국내를 찾는 외국 관광객 숫자가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박정희-전두환 독재 체제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그 시절처럼 모든 분야에서 ‘자유’를 구속하고 있어도 위와 같은 ‘한류’가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 결코 일어나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경제 성장에 따른 자금 투자와 발전된 과학기술도 있었지만, ‘한류’가 탄생하는 마지막 방점傍點을 찍은 것은 1992년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우리 국민들이 획기적으로 사상 ‧ 출판 ‧ 예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과거 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군사 교육(敎鍊)을 받고 대학생 시절에는 군부대 입영 훈련까지 받았던 앞선 세대와 달리, ‘자유’를 누리는 데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의 머리와 가슴 ‧ 손에서 우리 국민을 감동시키고 해외에까지 그 감동을 전하는 ‘한류’가 태어날 수 있었던 사실事實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이야기 셋: 박근혜 정부와 경제계는 국가 번영의 바탕인 ‘자유’를 억압하는 데에 의기투합했다

2013년 2월 말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주요 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제에서 잘 드러났듯이 ‘문화 말살’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이 ‘자유’ 억압 정책을 뒷받침하는 작업을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앞장서서 실행했던 것이다.

박근혜 자신과 정권 담당자들이 아무리 무지하다고 해도, 경제인들까지 여기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면 어쩌는가. 경제인들한테 철학자 ‧ 역사학자가 되라고 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어떤 것이 부국강병의 길인지?” 정도는 헤아려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정권이 ‘블랙리스트’ 작업 같은 몰상식 ‧ 파렴치한 짓을 할지라도, ‘세상 흐름’을 아는 경제인들이라면 문화 전반과 사상 ‧ 출판 등에서 자유를 더욱 넓혀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외국에서 핍박받는 사상가와 학자들을 유치하는 일을 도와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전경련이 산하의 ‘자유경제원’이라는 곳을 내세워 초 ‧ 중 ‧ 고등학교 교과서를 정부에서 정하는 단 한 가지로 하는 ‘국정화國定化’ 찬성 캠페인을 펼치고 “자유를 억압하라!”고 외치는 수구파들의 시위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었으니, 이들이 한 짓은 이 나라의 문화 발전과 경제 번영을 억지로 막으려는 방해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고서도 경제 발전과 국가 번영을 기대했다는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 넷: 종교계도 뒤지지 않는 ‘자유’ 억압

박근혜 정권과 전경련에서만 이런 반反시대적 ‧ 반역사적인 ‘자유 억압’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불교 ‧ 가톨릭 ‧ 개신교를 가릴 것 없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 땅의 제도 종교 집안에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각 종교계의 지도자와 신도들도 이 억압에 익숙해서 ‘그것이 억압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개신교계에서는 심지어 이웃 종교계에 폭력을 저지른 일을 대신 사과하고 그 폭력으로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모금 활동을 펼친 것을 ‘우상 숭배’라고 몰아대며 신학교 교수를 파면하는 폭력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웃종교인 불교의 사찰에 가서 땅 밟기를 하거나 불상을 훼손하는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이슬람과 무슬림들에 대한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 ‘내부 입단속’을 잘 해온 가톨릭 집안에서도 주교를 비판하는 인사의 책은 성당 매점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게 하고, 대구의 희망원 사태 등을 바깥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포용을 강조해온 불교 집안에서도 이제 그 ‘넓은 마음’이 사라지고 있어서, “오직 내 것!”만을 내세우는 분위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런 잘못된 흐름이 멈추지 않는 바탕에는 “오직 좌선坐禪, 그것도 간화선看話禪만이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왜곡된 불교관이 있을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숱한 자유사상가들과 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외국으로 탈출하게 만들어서 결국 독일 제3제국의 몰락을 가져오고 학문의 주도권을 미국에게 넘겨주게 되었듯이, 이런 잘못된 신념과 불교계에 팽배한 ‘유일성唯一性’ 강조 분위기가 불교를 퇴보시키게 될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대로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잘 산다!” 그리고 잘 섞일 수 있으려면 사상 ‧ 의사표현 ‧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 종교를 살리고, 경제도 살리며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길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곳에서 문화가 제 자리를 잡을 수 없고, 그런 곳에서 경제 번영을 기대하는 것은 죽은 고목에서 새 순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