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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일심공동체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진흙속의연꽃 | | 2017-03-22 (수) 16:36

[‘진흙속의연꽃’의 불교이야기] 122- 꼬삼비분쟁과 육화(六和)의 가르침
“다투지 말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라”

 

세상 살면서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툼이 일어난 것을 알고 보면 놀랍게도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것입니다. 남모르는 사람과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습니다. 늘 가까이 하는 사람, 시모와 며느리, 부모와 자식, 형제나 자매간의 다툼입니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의 다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툼이 일어날 때는 피 튀길 정도로 격렬하다는 사실입니다.
 
다툼은 승속을 가리지 않습니다. 피 튀기는 다툼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다툼이 일어났을 때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파탄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증오와 분노, 적개심으로 가득하여 다투었을 때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툼이 일어나면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초토화 되듯이 다투고 나면 남아나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다툼으로 인한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화합하며 살 수 있을까요?
 
언젠가 비구니도량으로 순례법회간 적이 있었습니다. 비구니 교육기관이기도 한 그 절에는 숙소로 사용되는 전각이 있습니다. 큰 방에서 학인스님들이 함께 머무는 공간입니다. 그 전각을 ‘육화요(六和寮)’이라 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순례단을 안내한 비구니 스님은 신(身), 구(口), 의(意), 계(戒), 견(見), 이(利)의 화합을 통한 승가의 여섯 가지 화합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청암사 '육화요'

육화에 대하여
 
육화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승육화경도 있고, 달리 표현된 육화경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화는 대승불교의 산물일까요? 초기경전을 보면서 놀랍게도 육화에 대한 이야기가 맛지마니까야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육화의 가르침은 맛지마니까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맛지마니까야 ‘꼬삼비 설법의 경(M48)’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 가르침이 있습니다.
 
 
1)
“수행승들이여, 여기 수행승은 동료 수행자에 대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자애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킨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
 
2)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은 동료 수행자에 대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자애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킨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
 
3)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은 동료 수행자에 대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자애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킨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
 
4)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이 여법한 소득 즉 정당하게 얻어진 것이 있다면, 하나의 발우에 있는 것일지라도, 이와 같이 소득을 남김없이 나누어, 계행을 지키는 동료들과 함께 물건을 사용해야한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
 
5)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이 결점이 없고 하자가 없고 섞임이 없고 오염이 없고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마찰이 없어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행이 있는데, 수행승은 이와 같은 계행 속에서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계행과의 일치를 도모해야한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
 
6)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은 고귀한, 해탈로 이끄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실천하면, 올바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데, 수행승은 이와 같은 견해에 관하여,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그 견해와의 일치를 도모해야한다. 이것은 새겨 둘 만한 것으로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이다.”(M48, 전재성님역)

 
 
신구의 삼업에 대한 것을 보면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 자애로운 언어적 행위,  자애로운 정신적 행위라 하여 ‘자애’가 키워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에서 신구의 삼업은 “부드럽게 행동하라, 자비롭게 말하라, 남의 뜻을 존중하라”라고 설명되어 있어서 그 의미가 확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 항은 ‘이익’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소득이 있을 때 함께 사용하고 나누어야 함을 말합니다. 대승에서는 “이익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라”라 했습니다. 다섯 번째 항은 ‘계행’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행’이라 했습니다. 대승에서는 “화동(和同)하고 애경(愛敬)하라”라 했습니다. 여섯 번째 항은 ‘견해’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해탈로 이끄는 견해’라 했습니다. 대승에서는 “정법(正法)에 의한 정견(正見)만을 같이 해야 한다.”라 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육화에 대하여 신(身), 구(口), 의(意), 이(利), 계(戒), 견(見)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계(戒), 견(見), 이(利), 신(身), 구(口), 의(意)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육화에 대하여 신(身), 구(口), 의(意), 이(利), 계(戒), 견(見) 순으로 말씀 하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견해’에 대하여 가장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해탈로 이끄는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신, 구, 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계행을 청정하게 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바른 견해로 화합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섯 가지 것들 가운데 그것을 실천하여,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해탈로 이끄는 원리로서의 고귀한 견해야말로 가장 뛰어나고 이것이 가장 종합적이고 가장 포괄적이다.”(M48)라고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견해의 화합에 관해 길게 설명합니다. 육화에서 앞서 다섯 가지는 견해의 화합을 위한 예비단계 내지 준비단계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견화는 해탈로 이끄는 바른 견해로서 ‘사성제’를 말합니다.
 
육화가 잘 실천 되고 있는 곳
 
부처님이 수행승들에게 여섯 가지 화합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은 꼬삼비에서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여기 꼬쌈비 시의 수행승들은 말다툼하고 언쟁을 하고 논쟁하고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릅니다.”(M48)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분쟁을 부처님도 막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서로 싸우는 비구들에게 법문한 것이 육화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육화의 법문에 대하여 “사랑을 만들고, 존경을 만들고, 도움으로 이끌고, 논쟁의 불식으로 이끌고, 화합으로 이끌고, 일치로 이끄는 것들”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아누룻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서로 싸우는 꼬삼비를 뒤로 하고 유행했습니다. 유행하다가 아누룻다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아누룻다가 있는 승가는 꼬삼비와 달리 화합하며 잘 지냈습니다. 육화가 잘 실천되고 있는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 ‘오염에 대한 경(M128)’에서 아누룻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여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 단지나 배설물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우면, 손짓으로 두 번 불러 손을 맞잡고 치웁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M128,율장대품 Vin.I.352, 전재성님역)
 

 
이 경은 맛지마니까야와 율장대품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러면 아누룻다와 존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내고 있는가?”라고 묻자 아누룻다가 위와 같이 답한 것입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

 
아누룻다의 말을 간단히 한마디로 요약하면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오물이 떨어져 있다면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치우는 것입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탁발에서 돌아오면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까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에 상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쓰레기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듯이 승가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솔선수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라 했습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지 치우기는 순번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담당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탁발 갔다가 먼저 되돌아 온 자가 식사할 자리를 마련하고, 식사가 끝나면 가장 늦게 먹은 자가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가정이나 조직, 단체에 적용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piyacakkhūhi)
 
아누룻다는 육화를 실천한 자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육화에서 몸에 대한 것을 보면 “자애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킨다.”(M48)라 되어 있습니다. 언어와 정신에 대한 것도 자애로운 행위를 일으킨다라 하여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애로운 행위를 일으킬까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냅니다.”(M128, 전재성님역)
 
 
아누룻다는 수행승들이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냅니다.”라 했습니다. 이구절과 관련하여 초불연에서는 “서로를 우정 어린 눈으로 보면서 머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와 ‘우정 어린 눈으로’의 차입니다. 이는 빠알리어 ‘piyacakkhūhi’를 번역한 것입니다.
 
우정을 뜻하는 말은 일반적을 ‘metta’라 합니다. 사랑을 뜻하는 말은 ‘piya’라 합니다. 특히 삐야(piya)는 남녀나 연인사이, 또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비록 수행승들이 우정의 공동체에서 살지만 자애를 나타내는 표현에 대하여 metta대신에 piya를 사용한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름답게 묘사된 삼화(三和)

 
수행승들이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piyacakkhūhi)”바라 본다고 했을 때, 이 말은 언화(言和)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낸다면 다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 식으로 서로 눈빛 만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신화, 언화, 의화가 모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누룻다의 말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을 향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애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애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애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 전재성님역)
 
 
이 문장은 ‘꼬삼비 설법의 경(M48)’에 언급된 육화 중에서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자애인 삼화(三和)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초기경전은 서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일심동체가 되는 과정
 
경에서는 정신적 자애인 의화에 대하여 나타낸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는 구절입니다. 바로 이 마음이야말로 일심동체가 되는 마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경에서는 일심동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라 되어 있습니다. 이제 일심동체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상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면 합니다. 서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면 다툼이 그칠 날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따랐을 때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그 사람 마음이 되었을 때 다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라 했습니다. 일심동체라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심이신(一心異身)’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공동체
 
일심동체가 되었을 때 다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 식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라고 한 것은 육화 중에서 ‘신화(身和)’에 해당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승들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육화 중에서 언화(言和)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행승들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는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라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심동체가 되었을 때 이는 육화 중에서 의화(意和)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 운동을 한다면 화합하리라 봅니다. 맞벌이부부라면 먼저 온 사람이 식사준비를 한다든가, 나중에 온 사람이 설거지를 한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여기에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말한다면 금상첨화 일 것입니다. 마침내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따랐을 때 한마음이 됩니다. 더 이상 다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삶의 방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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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숙취해소 2017-03-24 20:26:26
답변  
여명808에 대해서는 왜 대답을 않하지. 꿀먹은 벙어리요. 물어봤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고 계신가. 삼보에 대한 믿음만 확고하면 불자라서인가. 숙취해소 음료수에 대해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좀 해달라는데. 그동안의 글들로 봐서 괜찮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미디어붓다가 같은 편이라 눈치가 보이시는가?
술이안깨면 2017-03-24 23: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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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808이 아주 좋아요...
딴지 마켓에 술술풀리고는 더욱 좋고요.

글고 궁금하면 니가 찾아서 더 공부하고....
멀 더 갈차달라고 때거지냐? 염치도 없는 넘이네?
무슨 공부를 그렇게 허냐!

니가 초기불교 관점이 틀리면 머하고 맞으면 머할래?
공부 하는 자세도 아니고...
알고 있는 지식도 찌라시 같구만...

배꼽이 졸린다... 아흠!! 풋푸~~~!!
불자 2017-03-27 10: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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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없으면 입을 다물던가. 인격의 바닥을 드러내는군. 숙취해소 음료 광고하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러면서 계를 논해. 차리리 이참에 술집을 차려라. 초기불교 술집. 여명808은 서비스로 주면 되겠네[.니들은 장복하겠구나.
불자 2017-03-29 1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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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808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천박한 인견만 드러내고 있군. 남 비판에는 신나하더니 자신에 댛나 정당한 비판에는 욕설로 대응하는 크라스가 돋보이는군. 그래도 여명808 광고는 너무하는 것 아니냐. 그래도 니가 불자라면 안된다고 해야지. 안그래. 미디어붓다에 잘 좀 이야기해봐라. 아무리 궁해도 그정도 상식은 있을 것 같은데.
박쥐인간 2017-03-29 11: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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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이 얘기, 저기서는 저 얘기, 여기서는 대승 비난, 저기서는 대승 찬양, 여기서는 불음주, 저기서는 음주도취, 이름도 못 밝히는 주제에..
저넘은시방 2017-03-30 00:10:30
답변 삭제  
이 말을 알아먹는 상식도 읍는 거 가트요.
콘돔 2017-03-29 11:47:58
답변  
이참에 콘돔 광고도 좀 하지 그러냐. 맨 정신에 숙취해소 음료를 마실수는 없고 술 쳐먹고 마셔야 할텐데 술을 마시면 음욕이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콘돔도 필요할 것 아닌가. 숙취해소와 콘돔을 세트로 판매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할 것 같은데.
씨알은 2017-03-30 0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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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필요허냐?
근디 너는 안필요허것다.

안먹는 넘이 술먹으면 음욕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꼬자가 되 불거든...

이게 먼 소리나믄...
너같은 사람은 절대 술먹으면 안된다는 말이여...
꼭꼭 여명808은 챙겨가지고 다니고...
여기 광고 헌거 감사하다고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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