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못된 놈들아, 너희들이 나를 망치고 한국 불교를 수백 년 뒷걸음질 치게 하려는게냐? 바로 네놈들이 육군비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런 짓을 할 시간과 돈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쓰란 말이다, 이놈들아!”라며 야단치고 몽둥이찜질(棒)을 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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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이야기 하나.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발견하여 세계 과학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2~1727)이 55세 때에 일어났던 일이다.

1696년 스위스의 수학자 장 베르누이Johan Bernoulli가 동료 수학자들에게 그 당시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던 최속 강하선最速降下線의 문제를 도전 형식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는 연직면 위의 두 점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한 물체가 윗점에서 아랫점까지 오직 인력의 영향으로 떨어져 내려간다면 어떤 형태의 곡선 경로를 따라야 가장 짧은 시간에 강하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였다. 베르누이는 본래 마감일을 6개월 후로 잡았다. 하지만 라이프니츠Leibniz의 요청에 따라 1년 반으로 연장했다. 라이프니츠는 당시의 선구적인 학자로서, 뉴턴과는 독자적으로 미분법과 적분법을 발명한 수학자이다.

도전장이 뉴턴에게 전달된 시각은 1697년 1월 29일 오후 4시. 그때부터 그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뉴턴은 변분법變分法*이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의 수학을 발명했고 이것을 이용해서 최속 강하선의 문제를 해결한 뒤, 정리한 답을 돌려보냈다.

뉴턴의 풀이는 그의 요구대로 익명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해결책의 뛰어남과 독창성으로 말미암아 저자의 이름이 저절로 밝혀졌다. 베르누이는 해답을 보자 “발톱 자국을 보아 하니 사자가 한 일이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코스모스 Cosmos》,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159 & 160쪽)

이야기 둘.

세상 사람들은 이미 떠나간 위인을 그리워하고 그를 영웅이나 성인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을 그리워하는 한국 불교도들의 심리에도 아마 이런 것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분을 보는 각자의 시각이나 관점 그리고 이 두 분을 받드는 후손들의 방식에 대한 견해는 다를지 몰라도,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한국 현대 불교 역사에, 그리고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이 두 분을 한국 근현대 불교의 최고 거목으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분이 한국 불교에서 차지했던 위상이 ‘백수의 제왕’이라고 하는 ‘사자’에 비견될 것이다.

이야기 셋.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스님은 성철 스님을 닮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성철 스님을 뛰어넘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발 그래 주면 좋겠다. 아니 계 ‧ 정 ‧ 혜戒定慧 삼학三學에서 성철 스님보다 훌륭한 선지식이 진제 스님 말고도 여러 분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 한국 불교의 발전을 보여주는 표시일 것이고, 그래서 크게 경하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진제 스님은 ‘성철 스님을 뛰어 넘는 인물’이 되고 싶은 욕심만 있지, 실천에서는 아직 한참 멀어 보인다. 성철 스님은 경전과 선어록의 넓고 깊은 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참선 수행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분에게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투철하였던 분이었다. 성철 스님이 워낙 큰 산이어서 그런지, 이 점에서 성철 스님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진제 스님에게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철 스님께서 처음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어 서울이나 해인사에서의 취임(또는 추대) 법회를 거부하고 마지못해 짧은 취임 법어 한 장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으로 하였을 때, 1980년대 초반 어두움에 갇혀 있던 한국 사회에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희망의 빛을 전해주었던가. 진제 스님도 성철 스님에게서 최소한 이 한 가지만은 배우고 닮았다면, 정치가 엉망이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얽혀서 쩔쩔매고 있는 국민들에게 감동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제 스님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처음 종정이 되었을 때에야 그토록 오랫동안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던 자리였으니, 조계사에서 추대(또는 취임)법회를 열 수도 있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는 때에 다시 거창한 추대법회를 한다고 하는 데에는 동의는커녕 이해도 해줄 수 없다.

지금 불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가. 게다가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바쁜데, 그 와중에 추대법회 한다고 법석을 펴는 것이 옳을까. 이른바 대권 주자들을 포함해서 숱한 정치인들이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시늉을 할 것이고, 이 모습을 보고 “모두가 내 아래에 와서 절을 했다”며 만족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기껏해야 “그냥 그랬어!”라는 정도의 평가가 나올 것이다. 이런 데에 만족하면 진제 스님은 ‘사자’는커녕 ‘토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넷.

종정 진제 스님은 제발 “거창한 추대법회 같은 짓 그만두라!”고 할喝을 하시라. 그래도 스님을 존경하는 갸륵한 마음에서 계속 고집을 부리는 상좌나 권승權僧들이 있으면, “이 못된 놈들아, 너희들이 나를 망치고 한국 불교를 수백 년 뒷걸음질 치게 하려는게냐? 바로 네놈들이 육군비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런 짓을 할 시간과 돈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쓰란 말이다, 이놈들아!”라며 야단치고 몽둥이찜질(棒)을 해주시라. 이렇게 해주시면 베르누이가 뉴턴에게 보낸 찬사처럼, 불교도뿐 아니라 온 국민과 나라 밖 외국 사람들도 “우리가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진제 스님은 사자가 확실해!”라며 감동하고 존경할 것이다.

‘토끼’로 머물지 ‘사자’가 될지, 그 해답은 진제 스님이 가지고 있다.

* 변분법變分法: 미분방정식 풀이 방안 중 변분법은 어떤 물리량이 최소화되는 값이 미분방정식의 해가 되도록 방정식을 변환한 후 최소화 기법을 적용하여 미분방정식을 풀이하는 기법이다. (출처: 《최신 대기과학 용어사전》)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