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정 기자
chammam79@hanmail.net 2017-03-08 (수) 17:02서양 선 수행자 노만 피셔, 8일 방한 기자회견서
8~24일 다르마프렌즈 주관 6개 강연 및 수행지도
“대한민국의 혼란 정국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한 정신(sanity)을 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미래 사회에서도 인간의 가치와 존재를 강화하고 보존하기 위한 성찰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 불교의 선 수행이 필요합니다.”
미국 출신의 서양의 대표적 선(禪) 수행자 노만 피셔(Norman Fischer, 사진)가 8일 다르마프렌즈(dharmafriends)의 초청으로 첫 방한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혔다.
노만 피셔는 서양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불교공동체인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의 주지와 에브리데이 젠(Everyday Zen) 공동체의 상임법사 등으로 활동하며 일상의 삶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화하는 데 주력한 인물이다. 구글의 명상프로그램 SIY(Search Inside Yourself)의 개발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노만 피셔는 이날 대한민국의 혼란 정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마음이 아프다”고 운을 뗀 뒤 “미국에서도 강렬한 정치적 감정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한국이든 또 다른 사회든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반복해 견뎌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큰 혼란 속에서 강한 부정적 감정이 확대․재생산되지만, 인간이라는 하나의 큰 가족이 함께 하고 있기에 서로를 경청하는 방식으로 인간으로서의 토대를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한 정신(sanity)을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만 피셔는 “매일 호흡과 몸을 자각하며 에너지와 힘에 집중하는 선수행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공유하는 생명의 힘과 직접적으로 접하게 된다”면서 “그것을 통해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존재들의 가슴을 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가 하는 이야기는 선수행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면서 “만일 여러분이 한국 정치의 난맥상으로부터 살아남고 싶다면 매일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만 피셔는 “홀로, 고립된 느낌은 왜곡된 상태로, 혼자 밥을 먹어도 우리는 실상 혼자가 아니다”면서 “수행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존재와의 연결을 일깨우고, 자신의 삶 안에서도 더 깊은 우정, 연대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해서도 선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만 피셔는 “실질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이론적으로는 과학 기술(technology)의 발달로 진일보한 컴퓨터가 인간 의식의 모든 것을 로봇에 이식해 재현해 낼 수 있다고까지 얘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죽음도 없고, 죽음이 없다면 인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래의 과학 기술에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과학 기술의 발달로 너무나 많은 정보와 기회 등이 주어지고 있지만, 정작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와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관계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는다며 “과학 기술로 인간의 가치와 존재를 강화하고 보존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그로부터 역행하는 것에는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과학 기술이 가져오는 중독 등의 문제와 파장을 알아차리기 위해 깊은 성찰이, 불교의 선 수행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 등 삼독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이해함으로써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서 “선의 뿌리가 되는 대승불교는 사랑의 방향으로 모두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적 깨달음에 치중한 한국불교에 대한 지적에는 “선의 뿌리에 자비가 있고 모든 존재의 보편적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서 “선에 깃든 강렬한 불꽃이 오랜 시간 속에서 면면히 이어왔다는 것이 중요하며, 지금 당장 강렬한 불꽃이 안 일어날지라도 다시금 그 불꽃을 피어올려야 할 때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만 피셔는 8일 오후 7시 대중강연 ‘내가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입니다’(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를 시작으로 ‘텅 빈 충만, 염화미소의 자비심’ 자비산림대법회(10~11일 상도선원),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대중 강연(13일 부산 홍법사), ‘행복한 삶, 평화로운 죽음’ 특별 강연(14일 부산 관음사), ‘우레와 같은 침묵의 소리’ 참사랑의 향기(16~19일 해남 미황사), ‘깨어 있는 우리, 아름다운 세상’ 조찬 강연(21일 서울클럽) 등 6개의 강연과 수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르마프렌즈는 2003년과 2013년 틱낫한 스님을 초청하는 데 주력한 금강 스님(미황사)과 미산 스님(상도선원), 지현 스님(송광사), 권선아 스트리트젠 대표가 주축이 돼 한국불교의 전통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한 성찰을 위해 새로운 불교의 흐름을 이끄는 스승을 초청하는 모임이다.
미산 스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워드의 최고 지성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끊임없이 준 노만 피셔의 초청 강연을 통해 불교를 믿지 않거나 종교를 갖지 않은 분들까지도 어떤 삶의 가치로 살아가야 하는지, 인류를 평화롭고 행복하고 유익하게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만 피셔의 첫 방한에 맞춰 최근 그의 저서 <마음훈련-미친 세상에서 평온하게 살기 위한 59가지 매뉴얼>(팡세)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