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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앎을 가진 자만이 지혜로운 선지식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7-03-03 (금) 10:36

[하도겸의 여의봉] 8 - 질문도 못하는 사람



질문도 못하는 사람

 

질문 있냐고 하니, 이미 답을 알고 있어서 질문을 못한다고 합니다.
질문을 하기도 힘들어서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안 하면 되나요?
그래도 질문을 하면 다를 수 있고 달라지는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정말 질문을 안 하겠느냐고 물으면 바로 눈치를 채고 “그럼 그냥 할게요”라며 간단한 질문만을 합니다.
 

“Just do it”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겁니다. 그냥 하면 되는 걸 처음 질문에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머릿속에 있는 자기만의 답을 진실된 답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그건 다 안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사 그게 정답이라고 해도 머리로 아는 건 아는 게 아닙니다. 가슴으로 아는 것도 다 아는 게 아닙니다. 머리라는 이성과 가슴이라는 감성, 그리고 배라는 욕망이 모두 일치되어 그런 몸으로 실천해야 앎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 이런 몸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하튼 몸으로 안다는 것은 바로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지행합일을 말합니다. 실천할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해야 한다고 느껴도 머리는 안 해도 좋다고 여기고 또 배로도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한다면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머리와 가슴과 배로 알아야 아는 것이지만 그래도 실천은 안 한다면 아는 게 아닙니다. 해야 비로소 아는 것이 또 있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가기 전에는 나와서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게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정말 다양한 변수가 있기에 경우의 수도 많습니다.


아는 것 자체도 시공간 맥락 등에 따라 계속 변화해서 중간 중간에 항상 고칠 게 많습니다. 모든 게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에 어느 하나를 바로 실천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말 당신은 아나요? 실천하는 앎을 가진 자만이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잘 알아들었습니까?”라는 물음은 결국 “당신은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가요?”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는 번역기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지혜로운 선지식이며 보살의 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두려워서 취재를 거부하는 승려들


스스로 행복하다는 한 승려가 옵니다. 홍보를 도와달라고 하는데 전혀 그런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만나려고 했더니, 홍보는 부탁드리지만 취재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도 못 만나게 합니다. 그 승려의 아시아 법인이 있는데 기자나 개인 친견은 규정상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국 측 주최 측은 ‘조선일보’ 기자도 안 만난다니 이해해달라고 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주최 측의 말과는 달리 나중에 보니 모 통신사 기자를 비롯해 몇몇은 만나서 간단한 기사만을 전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지나가던 길에 들려서 그 승려의 법회를 들어보니 그냥 그랬습니다. 법회 가운데 단상 위에 연출된 승려의 모습은 수행자가 아닌 일개 연예인이었습니다. 역시 실력 없고 이름만 있는 연예인 승려들은 늘 이런 식인 듯합니다. 은둔 기간에 찍은 사진들은 온통 연출된 것들뿐이니, 결국 사진사와 같이 여행가는 것을 은둔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마케팅만 능숙한 승려들이 나와 세상을 속일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뭘 그리 숨길 게 많아서 취재를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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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위에 그린 승무도(수묵화)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역사의 신


역사는 흐르는 것이라 배웠는데, 요즘 역사는 잘못된 시점을 찾아 고치는 자정작용을 하는 듯합니다. 병신년 12월은 1987년 6.29로 돌아간 것 같고, 정유년 1월은 1960년 4.19로 돌아간 듯합니다. 그리고 지난 2월은 1945년 12.27 신탁통치반대운동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결국 아무리 국정교과서에서 내용을 바꾸려고 해도 이 시대는 8.15로 이전으로 돌아가 임시정부와 위안부 문제 등 일제강점기의 부일세력에 대한 친일청산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옷의 첫 단추를 다시 고쳐야 이 탄핵의 역사적인 사단은 끝이 날 듯싶습니다. 역사는 순환하며 자정하기도 하나 봅니다. 역사의 신은 그렇게 우리를 아니 스스로를 목욕시키나 봅니다. 역사가 바로 나이며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밥하기

 

거의 외식을 하다가 가끔 밥과 반찬을 간단히 만들어 먹습니다. 가스에 양은냄비를 올리고 물을 반만 넣어 끓이면서 식사준비를 시작합니다. 물이 끓는 동안 쌀을 씻어 압력밥솥에 앉힙니다. 프라이팬을 꺼내서 카놀라유를 바르고 김치를 살짝 볶기 시작합니다. 김치가 “내게 왜 그래?”라고 하며 성을 내며 독한 냄새를 뿜을 때, 냄비 속에서 끓던 물을 자작하게 붓습니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이나 야채 등과 함께 청양고추 한쪽만 넣습니다. 물이 끓으면 새롭게 남은 끓던 물을 다 넣고 간장 등 양념을 넣은 후 뚜껑을 닫고 계속 끓입니다. 그 사이에 상에 수저 한 짝을 놓을 때 즈음이면 어느덧 밥솥은 반갑게 부릅니다. 밥을 푸고 가스를 잠그며 찌개를 푸는 10분 동안 모든 준비를 끝냅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언제나 밥이나 간식을 짧은 시간에 만들던 방법으로 이제는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스승에게서 제자로 특별히 무슨 계보나 증거도 없이 이렇게 삶의 정수는 전달이 됩니다. 같이 생활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의 모든 일상은 부모와 스승의 일상이며 그 모습은 결국 우리의 대스승인 부처님의 삶이기도 해야 합니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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