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인도성지순례기] 6- 불교 교화의 중심지 ‘사왓띠’ (1)

제타 태자 땅에 수닷따 장자의 원력으로 세운 최초의 재가 설립사찰
 
사왓띠(1) - 보시(布施)

산치대탑의 여운이 가실 줄 모른다. 산치대탑에 새겨지고 조각된 엄청난 종류의 부처님 이야기, 불교설화 등을 살펴봤으니 그 감동이 쉬이 사라질 리 없다. 어쩌면 산치대탑에서 부처님 일대기와 전생담, 다양한 부처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망라했으니, 이제부터 시작할 부처님 7대 성지순례는 온전히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마음을 느끼는 것에 충실하면 될 것이다. 참회와 기도, 발원과 함께 각 성지에서 펼쳤던 부처님의 설법, 일화 등을 곰삭히는 것으로 부처님 7대 성지 순례에 임하리라, 다짐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새벽부터 서둘러 아침 산치대탑을 순례한 덕에 정오가 되기 전에 산치를 떠날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7대 성지 중 첫 번째로 찾아갈 사왓띠(쉬라바스티, 사위성)를 향한 긴 여정에 들어가야 한다. 아마도 인도 성지순례 여정 중에 가장 긴 이동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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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팔에서 2시 40분 출발하는 특급 열차를 타고 아그라로 향하는 일정에 맞춰 점심을 마치고 일찌감치 보팔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곳이 인도이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에 기차가 출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1년 전보다는 많이 개선됐겠지 하는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아그라에 도착할 시간인 오후 10시에 가까워 열차는 가까스로 출발했다. 그래도 불만을 터뜨리거나 항의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기차역 여기저기에 누워 잠을 자거나 모여 앉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편안하고 눈빛은 영롱하다. 짜증이나 분노는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눈이 마주치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참 착한 심성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어린이들과 젊은 아가씨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면서 인도를 느껴보자. 특급 열차에 올랐다. 특급 열차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녁 간식도 주고, 뜨거운 물도 제공된다. 열차의 좌석 위 짐칸에는 엄청난 양의 여행용 가방이 빼곡하게 올려져 있다.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으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아그라는 사왓띠로 가는 길 도중에 하루 들려가는 곳이다.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인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인도여행 일정에서 아그라는 거의 포함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그라에 있는 최고수준의 특급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새벽녘에야 아그라에 도착하면서 무산됐다. 다만 잠시 들러 샤워만 하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순례단은 아그라를 떠나 버스 편으로 럭나우로 향한다. 예정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이지만, 사탕수수를 실어 나르는 트럭차량들로 지독한 교통체증에 또 다시 시달려야 했다. 저녁 늦게야 럭나우에 도착해 모처럼의 휴식을 취했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첫 번째 성지 사왓띠로 떠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산치에서 사왓띠까지의 여정이 이번 순례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중간에 타지마할을 구경하는 매력적인 팁이 있기는 하지만 광활한 인도의 대지의 절반 가까이를 종단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오전 7시에 럭나우 호텔에서 나와 5시간 거리에 있는 사왓띠이지만,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기원정사에 도착했다. 3번째 찾아왔지만 감동은 갈수록 더하다. 포근한 기운과 안정된 풍광이 최고의 수행처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후우~, 잠시 눈을 감고 기원정사가 내뿜는 향훈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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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숲속의 빈터
불자들의 마음의 고향에 서 있네
바람 한 줌 뺨을 스쳐 가는데
줄지어 앉은 남루한 수행자들 미동도 않고
여기 복전 있으니 시주하시오, 시주하시오

인천의 스승이 가장 오래 머문 곳
수닷따 대장자의 원력이 어린 곳
외도의 모략을 인내로, 이적으로 물리친 곳
부처님께서 가장 많이 설법하고 수행하신 곳
최강국 코살라를 진리의 힘으로 정복한 전초기지

상서로움 충만한 진리의 초원
부처님의 숨결, 흔적, 목소리 곳곳에 서려 
불자들의 고향으로 우뚝 한 제타의 숲 
나는 이곳에 합장한 채 하염없이 서 있네

하늘엔 잿빛 구름 흔적 없이 흐르고
아난다 보리수 이파리들 청풍에 춤추는데

               - 졸시: 사왓띠 기원정사에서

사왓띠는 부처님이 가장 오래 동안 머물며 전법과 수행을 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 평생 설법하신 횟수가 1500여 회에 이르고, 그 중 960여 회의 설법이 기원정사에서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있을 만큼 사왓띠가 부처님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그렇기에 이곳은 스치듯 지나칠 수 없는 성지 중의 성지이다.

사왓띠는 보시, 전법, 방편, 이적의 가르침을 불제자들에게 보여준 상징적인 곳이다. 이 위대한 불교성지 사왓띠를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스럽다. 나는 이곳 사왓띠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시와 전법, 방편, 이적의 4개 주제로 대별해 살펴볼 요량이다. 따라서 이곳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꽤 길어질 지도 모른다.

1. 보시

다 알다시피 코살라 국의 수도 사왓띠의 남쪽에 위치한 기원정사는 수닷따 장자의 원력으로 조성됐다. 아내의 나라 마가다 국의 수도 라즈기르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귀의한 수닷따 장자는 부처님의 정법이 자신의 나라인 코살라 국에서도 널리 전해지기를 원했다. 마가다 국이 신흥강국이라면 코살라 국은 전통의 강국으로 부처님의 나라였던 카필라 국을 속국으로 거느린 대국이었다.

수닷따 장자가 죽림정사로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 부처님은 “어서 오라. 수닷따여!”라며 반가이 맞았다. 부처님께서는 수닷따 장자를 위해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에 대해 설법을 하고, 이어 보시와 지계의 과보로 천상(天上)에 태어난다는 것에 대해 설법했다.

보시, 지계, 생천(生天) 사상은 그 당시 인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던 정신세계였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사람들의 관심사를 설법의 소재로 삼아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에서 야사 등을 교화할 때도 보시와 지계, 그리고 하늘 세계에 대해 설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아무튼 수닷따는 그 자리에서 부처님 설법의 내용을 깨달았고, 그 즉시 삼보에 귀의했으며, 평생 동안 재가 수행자로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우루벨라에서 가섭 3형제를 교화하고, 그 여세를 몰아 라즈기르에서의 대설법으로 마가다 국 교화의 기틀을 다진 부처님으로서는 코살라 국에 대한 교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 코살라 국은 외도인 자이나교와 유물론적 사상이 성행하고 있었다. 어쩌면 수닷따 장자의 청을 부처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당신의 일생을 통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된 전법(傳法)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을 지도 모른다.

금강경의 제1 법회인유분에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기원정사’는 잘 알려진 것처럼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으로 한역되었다. 부처님은 생애 후반기 20여 년간 우기(雨期)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현존하는 경전의 상당수를 이곳에서 설했다.

기원정사 터는 원래 코살라 국의 프라세나짓(파사익)왕의 태자인 제타(기타祇陀)가 소유한 약 24만 평에 달하는 원림(園林)이었다. ‘풍경이 좋고 숲과 꽃과 샘과 못, 수석(水石)과 기이한 새, 짐승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곳이 부처님께서 머무실 최적지로 판단한 수닷따 장자(금강경에서는 급고독으로 표현했는데, 여기에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의복 등을 나눠주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가 이 땅을 매입하려 하자 제타 태자는 원림을 금으로 다 덮으면 땅을 내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절대로 땅을 내 주지 않겠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나 수닷따 장자는 제타 태자의 ‘무모한’ 제안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대거 투입해 금을 사들여 원림을 덮어가기 시작했다. 수닷타장자가 절반(약 12만 평) 가량 원림을 금으로 덮었을 때, 제타 태자는 수닷따 장자에게 금을 덮는 작업을 중단하라고 요청한 후 왜 장자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었다. 수닷따 장자로부터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제타 태자는 깊이 감동하여 나머지 12만 평까지 흔쾌히 내주었다. 그러니까 수닷따 장자는 승단에 보시를 한 대 시주자(施主者)였고, 아울러 당대 최고 권력자인 코살라국의 태자까지 감동시켜 원림 전체를 기증하도록 인도한 화주자(化主者)의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

수닷따 장자는 이 원림에 정사를 세웠다. 정사의 중심부에는 부처님이 머무실 향실(香室)을 지었고, 그 주변으로 제자들이 머물 승방(僧房)과 식당 등 부속건물을 세웠다. 부처님께서는 사왓띠에 도착해 기원정사를 보시고는 정사의 이름을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이라고 지었다. 제타(祈陀) 태자와 수닷따(給孤獨) 장자의 의해 지어진 정사이므로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기원정사는 기수급고독원 정사를 줄여서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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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원정사의 모습은 어땠을까. 서기 407년에 이곳을 찾았던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궁성 건물의 유적은 주위 20여리가 되어 심하게 황폐되어 있지만 주민들은 살고 있었다. 가람은 수백 개나 있지만 허물어진 것이 많다. 승려들은 정량부(正量部)의 학설을 배우고 있다.”

현장 스님의 기록에는 407년 당시 기원정사 일대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그 주변에 프라세나짓 왕이 세운 왕원정사(王園精舍)를 비롯하여 수닷따 장자의 집터, 앙굴리마라의 집터, 아쇼카 스투파, 동원녹자모강당(東園鹿子母講堂) 등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한 프라세나짓 왕이 조성한 전단향 불상과 그 불상을 모신 법당도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기원정사에 관한 기록 중에는 법현 스님(法顯, 342~423년경)의 <불국기(佛國記)>가 있다. 법현 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전단향 불상을 모셨던 간다꾸띠(香殿)는 7층의 장엄한 건물이었으며, 건물 안에는 연등을 밝혀 나날이 그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쥐가 등의 기둥을 갉아 먹는 바람에 번개(幡蓋)에 불이 붙고 정사에 옮겨 붙어 전소됐다. <불국기>는 이어 “국왕과 백성들은 모두 전단향 불상이 타버렸다고 크게 슬퍼하였으나 4~5일이 지나 동쪽 작은 정사의 문을 열자 홀연히 불상이 보였으며,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여 함께 2층으로 정사를 고쳐 짓고 불상을 제자리에 모셨다”고 기록했다.

간다꾸띠 건물을 2층으로 재건립해 전단향 불상을 모신 것은 훗날 현장 스님이 기원정사를 방문했을 때에도 남아 있었다. 현장은 <불국기>에서 당시의 간다꾸띠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만 한 벽돌집만이 견고하게 홀로 남아 있다. 그 안에 불상이 있는데, 옛날 여래가 33천에 올라 그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고 돌아올 때 프라세타짓(파사익) 왕이 모신 것이다.”

이후 기원정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A.D.724년 경 이곳을 찾은 신라승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사위국의 급고원 안에 큰 탑이 있는데 절도 있고 스님들도 있다”는 단편적인 기록만을 남기고 있다.

훗날 발굴과정에서 기원정사는 이 시기(8~9세기)에 이르러 잠시 부흥의 기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2세기 챤드라왕조 기간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중수를 거듭하면서 12세기 중반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점차 잊혀지면서 폐허로 변했다.

아무튼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기원정사는 약 2만 평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22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 미발굴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직도 발굴한 곳이 많이 남아 있지만 발굴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에서 일단 마무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 재세 시 최초의 사원이었던 라즈기르의 죽림정사와 함께 2대 사찰로 기록되는 기원정사는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죽림정사가 빔비사라 왕에 의해 세워진 국립 사찰이라고 한다면, 기원정사는 수닷따 장자라는 한 재가자의 원력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사찰이다.

수닷따 장자가 없었다면, 수닷따 장자의 원력에 의해 세워진 기원정사가 없었다면 불교의 위상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수닷따라는 위대한 재가자의 보시행이 있었기에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진리를 만 중생을 향해 온전하게 펼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