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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한다면 ‘고통’도 함께 나누길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7-02-21 (화) 13:18

[하도겸의 여의봉] 7 - 좋고 싫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쉬운 일 같아도 실제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좋을 때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맛있는 밥도 사주고 싶고, 옷도 사주고 싶고. 생각은 쉽고 말까지는 쉽습니다. 하지만 실천까지 가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서 주는 것은 선행도 아니고 잘해 준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좋아한다면 싫을 때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희생이고 봉사이며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라도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기 힘들고 하기 싫을 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일을 같이 하기 싫어도 상대가 원한다면, 아니 그 상대를 좋아한다면 맛있는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며 같이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참아주면서 싫어도 해줬다고 할 거라도 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딴소리 하려면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일단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딴소리 안하면 더 좋습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해 보면 언젠가 점차 내가 왜 굳이 지금 여기서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걸 모르니 매번 다른 사람들에 대해 ‘싫다’고 떠들게 됩니다. 나는 소중하다는 말도 필요 없이 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소중하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더 소중하거나 버금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은 좋다고 할 뿐 실제로 실천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그냥 ‘단어’를 사용할 것일 따름입니다. 공허한 메아리일 따름입니다. 실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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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그물망처럼 얽힌 인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그물은 싫든 좋든 흔들리고 출렁이기까지 합니다. 풍파를 만든 것이 아니더라도 한 번 물결이 치면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흔들림이 편안할 때만 좋아하고 격랑이 치거나 할 때는 싫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은 바다에 같은 파도, 그리고 같은 흔들림입니다. 정말 바다가 좋다면 그 흔들림의 강도와 상관없이 좋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난 착한 바다만 좋아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말을 바꾸면 난 “착한 사람”만 좋아한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착한 아내여서 같이 산다” 또는 “착한 남편이어서 데리고 산다” 등등 참으로 재미있는 말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좋을 때야 누가 나쁘겠습니까?


멀미를 할 것 같아도 멀리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멀미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혼자 걸어서는 먼 지방에 사는 친구를 오늘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남’이 소중하다면 버스의 멀미 정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싫음을 이야기하면 그냥 조건반사적으로 염리심이니 출리심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모두 알음알이일 따름이라고 한 수행자는 전합니다. 말은 누구나 합니다. 그 말이 참이라면 이미 참사람으로 참세상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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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싫은 것도 감수, 즉 달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장합니다. 그렇지 않고 싫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에게 욕하고 화낸다면 이런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하무인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은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의 마음, 즉 성품은 화를 낼 때마다 한 단계씩, 아니 어쩌면 날개 없이 끝없이 추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일 따름입니다.


100번 좋아서 잘한 것보다 1번 싫다고 안 하고 오히려 욱해서 화내고 욕하는 것과 무엇이 중요할까요? 판단은 언제나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핑계거리가 언제나 있고 변명하면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기에 내 판단이 아니라 같은 내 판단이라도 상대방이 내게 그랬을 때를 살펴봐야 합니다. 예가 좀 그렇지만, 정말 아끼던 개가 한 번 꽉 물어서 병원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알 것입니다.


이야기가 좀 많이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로 통합니다. 내가 싫더라도 정말 좋아한다면 ‘고통’도 좋으니 함께 나누세요. 그게 바로 ‘좋아함’이며 그게 ‘사랑’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좋아하고 계신가요?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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