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영주지역 불교문화유산 답사기]16 소백산일대의 강주(剛州)  

『삼국유사』‘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조의 현장을 찾아서 ①

소백산 자락에는 『삼국유사』에 언급된 몇몇 역사의 현장이 있다. 부석사, 죽령,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조의 현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현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단정 짓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한 원인으로는 구전에 의한 기록의 한계와 지명의 혼선 때문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때의 일이 일어난 곳을 강주(康州)라고 하면서 또 다른 지명으로 강주(剛州)를 언급하였다. 앞서의 강주는 현재의 진주를 말하는데, 이로 인해 오랫동안 ‘욱면’의 이야기가 진주 일원에서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삼국유사』의 기사에 등장하는 관련지명을 살펴보면, 『승전(僧傳)』에 부석사, 소백산, 하가산(下柯山) 등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강주(剛州), 즉 지금의 영주를 지칭한다고 『한국사찰전서』에서  권상로박사가 희방사 주지였던 해운 보선(海雲 寶璿)스님의 의견을 첨부하였다.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시초 혹은 초창기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삼국유사』의 ‘욱면비염불서승’ 기사를 전문 그대로 싣고, 그 현장에 대해 하나씩 고증해 나가고자 한다.

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 剛州: 지금의 영주)의 선사(善士) 수십 명이 서방(西方)을 구하려는 뜻으로 그 고을 경내에 미타사(彌陁寺)를 세워 만일(萬日)을 기약하고 계(契)를 만들었다. 그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郁面)이라는 한 여종이 있었다.

그녀는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마당에 서서 스님을 따라 염불하였다. 주인은 그녀가 직분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을 미워하여 매양 곡식 두 섬씩을 주며 하루 저녁에 그것을 다 찧게 하였다. 여종은 초저녁에 다 찧고는 절에 가서 염불하기를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당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위에 매어 놓고 합장하여 좌우로 움직이면서 스스로 격려하였다. 그때 허공에서 하늘의 외침이 있어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고 하였다. 절의 대중이 이 소리를 듣고 여종에게 권하여 법당에 들어가 예에 따라 정진하게 하였다.

얼마 안 되어 하늘의 음악이 서쪽으로부터 들려오더니 여종이 솟구쳐 집 대들보를 뚫고 나갔다. 서쪽으로 가 교외에 이르러 형체를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하여 나타나 연화대(蓮臺)에 앉았다가 큰 광명을 발하면서 서서히 사라지니, 공중에서는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 법당에는 지금도 뚫어진 구멍자리가 있다고 한다. 이상은 향전(鄕傳)이다.

『승전(僧傳)』을 살펴보면, “동량(棟梁) 팔진(八珍)이란 것은 관음보살의 응현(應現)이었다. 무리들을 모으니 1천 명이 되었는데,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노력을 하고, 한 패는 정성껏 수행하였다. 그 노력하는 무리 중에 일을 맡아보던 이가 계(戒)를 얻지 못하여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져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었다. 그 소가 일찍이 경전을 싣고 갔기에 경전의 힘을 입어서 환생하여 아간 귀진의 집 여종이 되어 이름을 욱면이라고 하였다. 욱면이 일이 있어서 하가산(下柯山: 안동 학가산)에 갔다가 꿈에 감응을 받고 드디어 도심(道心)을 발하였다. 아간의 집은 혜숙법사(惠宿法師)가 세운 미타사와 거리가 멀지 않아 아간은 항상 그 절에 가서 염불했는데, 여종도 따라 가서 마당에서 염불하였다”고 운운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9년, 을미(乙未) 정월 21일에 예불하다가 지붕을 뚫고 나가 소백산(小伯山)에 이르러 신 한 짝을 떨어뜨렸으므로 그곳에 보리사(菩提寺)를 짓고, 산 아래에 이르러 그 육신을 버렸으므로 곧 그 자리에 제2보리사(二菩提寺)를 지었으며, 그 불전(佛殿)에 ‘욱면등천지전(勖面登天之殿)’이라는 현판을 붙였다.

지붕 용마루에 뚫린 구멍은 열 아름 가량 되었으나 비록 폭우와 폭설이 와도 젖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호사자(好事者)가 금탑(金塔) 한 좌를 본떠 만들어 그 구멍에 맞추어 승진(承塵: 천장) 위에 안치하고, 그 이적을 기록했는데, 지금도 그 현판과 탑이 남아 있다.

욱면(勖面)이 떠나간 후 귀진 역시 그 집이 이인(異人)이 의탁해서 태어난 곳이라고 하여 희사하여 절을 만들어 법왕사(法王寺)라 하고 전민(田民)을 바쳤다. 절은 오랜 뒤에 폐허가 되었는데, 대사 회경(懷鏡)이 승선(承宣: 정3품 관직. 중추원 소속) 유석(劉碩)·소경(小卿: 종4품) 이원장(李元長)과 함께 발원하여 중창하였다.

회경이 몸소 토목 일을 했는데, 처음 재목을 운반할 때 꿈에 어떤 노인이 삼신과 칡신을 각 한 켤레씩 주었다. 또 옛 신사(神社)에 가서 불교의 이치로 효유하고, 그 신사 곁의 나무를 베어 내어 무릇 5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또 노비들을 더 두어 융성해져 동남지방의 유명한 절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회경을 귀진의 후신이라고 하였다.

논하여 말한다. 지방에 있는 고전을 상고하면, 욱면은 곧 경덕왕 때의 일인데, 징(徵)의 본전(本傳)에 의하면, 곧 원화(元和) 3년 무자(戊子:808) 즉 애장왕(哀莊王) 9년 때의 일이라고 하였다. 경덕왕 이후 혜공(惠恭)·선덕(宣德)·원성(元聖)·소성(昭聖)·애장 등 5대 모두 60여 년이나 된다. 징은 먼저요, 욱면은 나중이 되어 향전과는 틀리다. 그러나 두 기록을 남겨서 의문을 없게 한다.

이 기사의 무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주(剛州), 즉 영주 지역에 있었던 미타사라는 절로, 염불만일계가 결성되어 수십 명의 불자들이 모여 염불을 한 때는 제 35대 왕인 경덕왕(재위: 742년~765년) 때이다. 이상은 향전에 전하는 기록이라고 『삼국유사』는 밝히고 있다.

이어 『삼국유사』는 『승전(僧傳)』의 기록이라 하며 욱면의 전생과 현생을 말하고 그녀가  미타사에서 염불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였다. 욱면의 주인인 귀진의 집이 혜숙법사가 세운 미타사와 거리가 멀지 않음을 밝히고, 을미년 정월 21일에 서방정토로 날아간 상황을 적었다.

여기서 말하는 을미년과 기사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원화(元和) 3년과 관련, 앞의 을미년을 경덕왕 대에 적용을 하면 755년이 되고, 원화 3년 이후로는 815년(헌덕왕 10)의 일이 된다. 약 60여년의 시차가 생기는데 이 기사에서는 두 가지 기록을 모두 남겨 의문을 없앤다고만 하였다.

다음으로는 욱면이 염불을 했다는 미타사와 신 한 짝을 떨어뜨렸다는 보리사, 산 아래에 이르러 그 육신을 버렸다는 제2보리사, 그리고 귀진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는 ‘법왕사’의 위치 문제다.

미타사의 위치에 대해 『삼국유사』는 현재의 영주의 주경(州境), 즉 영주의 주 경계와 귀진의 집 인근을 지칭하며 13세기 말까지도 절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등장인물 가운데 혜숙 법사는 진평왕(재위: 579년~632년) 대의 스님으로 경주 안강에 그가 머물렀던 절(혜숙사)이 있었으며, 그의 일화 중에는 욱면과 같이 짚신 한 짝을 남겼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그가 신라십성(新羅十聖) 중 한 명인 ‘혜숙(惠宿)’과 동일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아울러 귀진의 집을 희사하여 만들었다는 ‘법왕사’는 한때 폐사가 되었다가 『삼국유사』가 저술된 13세기에는 동남지방의 유명한 절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왕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로는 폐허가 된 이 절을 중창하였다는 대사 회경(懷鏡), 승선(承宣: 정3품 관직. 중추원 소속) 유석(劉碩), 소경(小卿:종4품) 이원장(李元長)이라는 인물들이다. 회경 스님을 제외한 유석과 이원장의 관직을 고려해본다면 고려 12~13세기에 법왕사가 중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확정적인 위치를 알 수 없는 이들 절터와 유지는 1912년 작성된 「소백산 희방사 유지(小白山喜方寺遺誌)」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삼국유사』와 흡사하지만 욱면의 일화는 신라 흥덕왕 을미(乙未)년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흥덕왕 재위 기간인 826년부터 836년 사이에는 해당 간지가 없고, 정미년인 827년과 을묘년인 835년이 있다. 이 부분은 정미년 혹은 을묘년의 오기로 보인다.

이 기록에 따르면 『삼국유사』보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만 이 또한 현재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 구체적인 장소를 지목하기는 어렵다. 특히 귀진이 자기 집을 희사하여 만들었다는 ‘법왕사’를 ‘천왕사(天王寺)’라고 한 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욱면과 관련된 보리사에 대해 『한국사찰전서』에서 해운 스님은 보리사와 제2보리사의 위치를 각각 ‘풍기(豊基) 매촌(每村)과 단양군(丹陽郡) 월산리(月山里)’라고 하였지만, 해촌이나 월산리의 위치는 어딘지 알 수 없다.

「소백산 희방사 유지(小白山喜方寺遺誌)」에서는 첫 번째 신발이 떨어진 보리사는 ‘죽령 월산(月山)’이라 하였고, 두 번째 신발이 떨어진 제2보리사는 ‘갑장산(혹은 신장산(甲(申)藏山)’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한 이 글에서는 욱면의 육신이 통도사(通度寺)에 떨어진 것을 다비하여 뼈를 거두어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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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면이 등천하여 진신으로 변해 연화대에 올라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가면서 지났을 소백산 연화봉 정상의 풍경.

이제는 그녀가 등천했다는 절도, 신발을 버린 곳에 세웠다는 보리사도 모두 세월 속에 묻혀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욱면설화’는 소백산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욱면이 염불을 했던 ‘미타사’, 귀진이 집을 희사하여 지었다는 ‘법왕사(천왕사)’, 끝으로 욱면이 신발과 육신을 버렸다는 보리사 2곳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위치에 대해서 앞선 자료에서 그 단서를 찾아 할 것이다.

먼저 미타사의 위치다. 미타사는 『삼국유사』등의 기록으로 볼 때 귀진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귀진이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었다는 법왕사 혹은 천용사(용천사)를 지금의 풍기읍 금계리 용천동 절터로 비정한다면, 미타사는 이 절 산 너머 동쪽에 위치한 영전사지(靈田寺址)가 될 것이다.

특히 욱면(郁面)의 이름과 유사한 욱금(郁錦)리라는 동네가 있는 곳이다. 욱면이 등천을 한 법당을 ‘욱면등천지전(勖面登天之殿)’이라 하였다. 발음상 같은 ‘면’을 가지고 있는 한자 중에 ‘면(綿)’자는 욱금리의 ‘금(錦)’자와 닮아 후대에 ‘綿’자가 ‘錦’자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곳 영전사지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24호 ‘석조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많은 사찰관련 유물들이 있었다.(현재 풍기읍내의 영전사로 대부분 옮겨졌지만 지금도 일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다음은 욱면이 신발과 육신을 버린 보리사 2곳이다. 앞서의 기록들을 종합 정리하여 추정을 하면, 제 1보리사는 풍기 매촌, 제2보리사는 단양 월산으로 정리가 된다.

풍기의 지명 중에 ‘매촌’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곳이 없다. 다만 영전사지에서 소백산 너머 단양쪽의 경로를 살펴보면 풍기 쪽 죽령 정상 부근에 백룡사(현재 풍기읍 수철리) 옛 터와 함께 희방사에 있었을 산내 암자 중 한 곳을 지목해 본다. 이는 「소백산 희방사 유지」에 욱면의 설화가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어 육신을 버린 곳인 제2보리사가 있다는 단양군 월산리 또한 해당지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올산(兀山)과 올산리가 존재하고 있어 ‘올산’의 착오로 ‘월산’이라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 인근 대흥사(大興寺)를 지목할 수 있다.

특히 욱면의 육신이 통도사(通度寺)에 떨어져 그곳에서 다비를 했다는 것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단양 대흥사와 관련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경남 양산 통도사가 창건될 무렵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이 영향으로 통도사에서 다비를 했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