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천 기자
hgcsc@hanmail.net 2017-01-23 (월) 13:36
마음 활짝
주경 지음, 마음의숲
280쪽, 1만5000원
산사에서 접하는 선승들의 법문에는 게송이 자주 등장한다. 비록 그 내용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낭랑한 음성이 울려 퍼지는 것만으로도 멋진 광경이다. 그 한문게송들이 바로 선시이고 선시가 게송이었다. 서산 부석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는 조계종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주경 스님이 오랫동안 즐겨 읽던 고승들의 선시를 모아 이야기를 붙였다.
“‘시(詩)’라는 한자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자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곧 절에서 하는 말이 시라는 것입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의 끝을 종종 시로 정리하곤 하셨습니다.”(5쪽)
어느 시대에나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어려웠으며, 백성들은 궁핍한 마음에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왔다. 그때마다 고승들은 수행을 하면서 시로 마음을 다스리고 슬기롭게 삶을 대처해가는 방향을 제시해왔다. 은유와 역설로 이루어진 선시에는 고승들의 깨달음이 응축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선시들 역시 짧은 시 한 편으로 우리 시대를 대변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현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선시를 읽으며 고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고, 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진리의 꽃을 피웠던 시대의 스승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삶과 행복은 물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조언도 함께 전한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오늘 남긴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서산대사(240~241쪽)
많은 정치인 경영인들이 좌우명처럼 새기고 있는 유명한 선시이다. 주경 스님(사진)은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이 시를 애송하며 나라 일을 하신 김구 선생의 걸음을 떠올린다.”며, 독자들에게 “수많은 후배들의 앞길에 남겨진 아름다운 발자국이 되라”고 권한다.
저자는 더 많이 갖기 위해 권리를 남용하고 특혜를 받는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한 일침, 이민계를 들어 떠나는 청년들에 대한 미안함, 요즘 시대를 대표하는 신조어인 ‘헬조선’에 대한 안타까움, 실언, 허언, 망언, 폭언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토로하고,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며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싶은 삶이지만, 참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주경 스님은 인정하면 깨닫게 되는 이 순간의 소중함, 비우고 버릴수록 채워지는 행복,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 고되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쉼,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연습,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성찰까지 삶에서 중요한 화두 여섯 가지를 64편의 선시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