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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사리 친견으로 순례의 첫발 내딛다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 2017-01-20 (금) 15:54

[이학종 기자 인도성지순례기] 2- 국립델리박물관 부처님 유골을 친견하다
“황갈색 유골을 바라보는 불자들의 눈망울이 영롱한 사리가 되어 빛나다”


인도 성지순례의 첫 순례지는 수도에 위치해 있는 국립델리박물관이다. 8대 성지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델리박물관은 불자라면 반드시 ‘꼭’ 들려야할 장소이다.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8대 성지에서 부처님의 흔적과 숨결과 그곳에서 설한 가르침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다면, 이곳 델리박물관에서는 부처님의 육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리(유골)를 직접 친견할 수 있다.

 

불자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성물이다. 목숨 바쳐 귀의한 분, 그분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감동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더구나 이곳의 사리는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의 법구를 화장해 나온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부처님의 유골이다. 어쩌면 델리박물관의 부처님 진신사리만이, 전 세계의 사리 가운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진신사리는 1898년 고대 카필라바스투(가필라성) 발굴에 나선 펩페(W.C. Peppe)에 의해 발견되었다. 펩페는 당시 피브라하와의 메인 수투파(탑) 안에서 여러 귀중한 물건들을 발견하였는데, 그 물건 중에 작은 사리 용기의 뚜껑에 피브라하와가 고대 카필라바스투임을 입증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샤카 족의 붓다 세존의 사리용기로서, 그의 형제‧자매‧처자들이 모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델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부처님의 유골(진신사리)는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르에서 입멸에 든 후 수습한 사리를 8등분해 샤카족에게 배분된 바로 그 사리인 것이다.  

 

다만 이곳에 올 때마다 늘 슬퍼지는 것은, 이 너무나도 귀하고 성스러운 부처님의 유골이 힌두유물로 가득 찬 박물관의 한 모퉁이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빨리 전 세계의 불교도들이 힘을 모아 이 사리가 출토된 카필라바스투의 피프라하와에 세계최고의 여법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제 자리로 모시는 불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립델리박물관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유골) 탑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돌고 있는 불자들. 

승용차와 승합차, 버스, 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한 데 뒤섞여 정신없이 복잡한 델리의 거리를 지나 국립델리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입구는 1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박물관 정원에는 힌두신앙을 상징하는 남녀 성기 모양의 상징물이 놓여 있고, 이어 인도 전역에 산재한 아쇼카 대왕이 남긴 명문의 복제품을 만들어 언덕처럼 쌓아놓은 구조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힌두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박물관 입구 뜰에 설치되어 있다.

박물관 정원 한 곳에 인도 전역에 있는 아쇼카 대왕이 남긴 명문을 모아 작은 언덕을 만들어 놓았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힌두신들의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이곳에 오니 과연 인도가 힌두의 나라라는 것을 거듭 실감한다. 힌두의 신상들로 가득한 전시실을 거쳐 한참을 들어가니 불교 주제의 조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무불상시대 조각을 비롯해 간다라 풍의 입상 등 다양한 양식의 빼어난 불교조각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가까워지면서 이내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부처님 나라 인도에 와서 제일 먼저 찾아뵙는 부처님의 유골. 참으로 이번의 순례일정이 잘 짜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께서 재세 당시 수행하고 설법했던 장소를 순례하기에 앞서 부처님의 몸을 먼저 친견하는 것이니 순례의 감동이 남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무불상 시대의 불교조각들. 부처님을 법륜으로 상징해놓았다.

불상의 모습.

다양한 불교조각들이 박물관 안에 모셔져 있다.

드디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순례 일행은 너나없이 다가가 합장예배를 올린다. 몇몇 불자들은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 절을 올리기도 한다. 표정마다 감동과 기쁨이 가득하다.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보살님들도 보인다.

 



부처님 진신사리의 모습들. 유리벽에 놓여 있어 사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다.

“오늘 우리는 이 곳에서 인도성지 순례를 시작합니다. 부처님 성지순례를 부처님의 몸,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참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한 후 부처님 8대 성지를 순례한다면 각각의 성지가 더 큰 감동으로, 더 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와 기도를 올립니다. 박물관 쪽에서는 너무 오래 의식을 못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기도에 들어가겠습니다.”

 

혜총 스님의 말씀에 모든 일행이 가지런히 사리탑 앞에 배열했다. 간곡한 마음으로 오체투지와 삼귀의를 봉송하고 반야심경과 광명진언을 봉독했다.

 

혜총 스님은 사리의 공덕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리는 아주 수승한 복전입니다. <금경명경> ‘불사리품’에 이르기를 ‘사리는 계정혜를 닦아 얻은 바이며, 얻기가 심히 어려운 최상의 복전’이라고 했습니다. <반야경>에서는 ‘불신과 사리는 모두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을 닦은 바이다. 그러므로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이 함께 공양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도정부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유일하게 인정한 델리박물관의 불사리를 부처님을 대하듯 공양하고 공경하면 가지가지의 복덕과 가피를 받을 것입니다.”

 

사실 사리 신앙은 전 세계 불자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리는 범어로 사리라(sarira)라고 하는데 음역으로는 ‘실리라’ 또는 ‘설리라’라고 하고, 의역으로는 골신, 영골, 유신, 또는 견고자, 사리자라고도 부른다.

 

델리박물관의 진신사리처럼 부처님의 법구를 화장한 후에 나온 유골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필요 없지만, 사리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말들이 얼키고설켜 있다. 사리가 어디서 만들어지는 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혼재한다. 이를테면 털에서 만들어진다는 설, 살에서 만들어진다는 설, 뼈에서 만들어진다는 설 등이다. 또한 사리의 형태와 색채도 각기 다르다. 타원형, 큰 것, 작은 것, 둥근 것, 모난 것 등이 있고, 색채도 녹색, 홍색, 백색, 흑색, 잡색, 투명한 것 등이 있다. 물론 유골이 아닌 변화된 사리에 해당되는 말들이다.

 

중국 현장 법사의 정골은 광택이 있고 색깔이 있으며, 육조 혜능 대사는 입적한 후 전신이 부서지지 않았으며, 구라마집 삼장의 혀는 불속에서도 타지 않았다는 말을 불교에 입문경력이 쌓인 분들이라면 한두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불 속에 넣어도 타지 않으며, 견고하여 부서지지도 않는다거나 또한 사리를 친견하는 사람과 그 때에 따라 사리의 수량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등 신묘하다는 말, 밀페된 용기 속에서 사리가 증가하는데 과연 어디에서 오며, 또 없어지는데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말 등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사리는 부처님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가섭존자는 금강불괴의 육신사리로 입정에 들어가 계족산 바위속으로 몸을 숨겼는데 훗날 미륵부처님께서 하생할 때 몸을 나타내어 증명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이야기 등이다. 유골이 아닌 전신을 사리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중국 구화산의 김지장보살님이나 당나라 때의 육조 혜능대사, 명나라의 감산대사 등은 모두 법구 자체가 중국 남화사에 육신사리로 남아 있어 사람들이 예배 공경을 받고 있다. 중국출신의 스님 한 분이 태국에서 수행하다가 입적한 지 40여년이 지났는데도 육신이 무너지지 않고 있어 태국의 승왕이 호박선사라는 시호를 지어 올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오색찬란하거나 영롱한 사리도 있는데, 사리가 다양한 색깔을 띠는 까닭은 사리를 보는 자의 과거 선근공덕과 지극한 정성의 결과라는 이야기도 불가에 전한다. 그러니까 사리가 백색으로 보이면 상근기이고, 흑색으로 보이면 하근기라는 등의 이야기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일화가 전하는데, 근대 중화민국의 법학자인 화결 선생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화결 선생이 지성으로 불법을 믿고 아육왕사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를 친견했는데 흑색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업이 무거움을 알고 1주일간 밤낮으로 참회한 후 다시 사리를 친견하니 백색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리는 불교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무가보의 보물이자, 신성한 예경의 대상이다. 사리는 불교 신앙의 결정체로 여겨져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성보물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초기교단에는 무불상 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불상 대신 불적지와 사리가 그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 후 사리신앙은 탑파신앙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불상 신앙으로 변했다. 탑의 생명은 그 안에 사리가 봉안되어 있을 때, 이름 그대로 사리탑이다. 탑의 핵심은 바로 사리이다. 따라서 사리는 탑 속에 봉안되어 신앙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탑 밖으로 나와 유리관 속에 넣어져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눈요기 감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사리의 공덕은 친견자로 하여금 간절한 신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리는 신심 있는 불자들의 예경과 공양의 대상이었으며, 신앙의 귀의처인 동시에 중생의 복전이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리도 언젠가는 없어질 유위의 복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즉 법신의 사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주하며, 궁극에도 무너지지 않는 최고의 사리라고 할 수 있다.

 


지도법사 혜총큰스님의 지도로 기도와 발원을 하고 있는 법안정사 불자들. 표정에서 깊은 신심이 묻어나온다.

혜총 스님의 지도로 40여분 동안 지극한 기도와 예배를 마친 30여 명의 한국의 불자들은 스님을 필두로 탑돌이 의식을 시작했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합장한 채 탑을 도는 불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만 의식을 마치라는 통보를 하러 다가온 박물관 관리자들도 이 간절하고 성스러운 모습에 말문을 닫고는 의식을 다 마칠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그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순례단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탑돌이 의식이 끝난 후 불자들은 탑으로 다가가 유골을 친견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더 자세이 보려고 다투어 탑 주위로 몰려든다. 저마다 눈망울들이 빛나고 있다. 황갈색 부처님의 유골을 바라보는 불자들의 눈망울이 영롱한 사리처럼 빛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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