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편지, 선시, 손 글씨 담아 … 미발표 명동성당 강론 전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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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법정(글씨) , 현장(엮음) 지음, 책읽는섬
192쪽, 1만2800원

“(…)출가란 단순히 육신이 살던 집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인격이 형성된 다음 보다 나은 가치를 향해 일체의 것을 내던짐이다. 오늘날 한국 승단의 현실을 두고 살펴볼 때 몇 사람이나 진정한 출가를 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출가수행자의 사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개인의 자질인 것이다. 머리나 깎고 먹물 옷만 입었다고 해서 출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00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127쪽)

대원사 티벳박물관장 현장 스님이 출가 1년 전 고등학생 시절 법정 스님으로부터 받은 편지 일부분이다. 편지에는 출가수행자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간절하게 밝힌 내용이 가득 들어 있다. 법정 스님의 속가 5촌조카였던 현장 스님은 1975년 4월 송광사로 입산출가했다. 42년이 지난 지금도 경책하는 뜻으로 한 번씩 꺼내보고는 한다.

현장 스님은 2010년에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 ‘무소유의 향기’라는 이름의 법정 스님 선묵전을 열었다. 법정 스님의 편지와 연하장은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법정 스님의 편지와 연하장에서는 지인들과 함께한 소소한 일상과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풍경이 엿보인다. 홀로 수행하는 상좌를 걱정하고, 수도자의 자세를 다듬도록 격려하며, 세상의 지인들에게 감사하고, 그릇된 행위를 질책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응원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법정 스님의 꼼꼼한 글씨 속에 담겨 있다. 이 글 27편을 읽다 보면 우표가 도착한 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은 법정 스님이 보이고, 산과 새와 꽃과 풀, 구름 말고는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수도승의 피땀 어린 정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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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대도행보살에게 보낸 손글씨

법정 스님은 생전에 붓이나 붓 펜으로 글씨 쓰는 것을 즐겼다. 법정 스님은 이것을 두고 스스로 ‘붓장난’, ‘먹장난’이라 불렀다. 지인과 도반들에게 편지나 연하장을 보낼 때면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글을 보내고는 했다.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수도하는 산승에게 지인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쌓인 정은 끝까지 버리지 못한 마지막 것이었으며 그들의 안부를 묻는 ‘붓장난’은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22편이 실려 있다.

법정 스님의 다양한 종교 교류 활동을 보여주는 6편의 글과 함께 이 책의 압권은 명동성당 강론이다. 1998년 2월 24일, 축성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 제대 앞에 잿빛 승복을 입은 승려가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두 달 전인 1997년 12월 14일에 길상사 낙성법회를 갖는 동안 예고 없이 김수환 추기경이 찾아와 불자들과 음악회를 즐기고 축사를 했던 것의 답례 형식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강론에서 법정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억제하면서 선택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아름다움이자 삶의 미덕이라며, 어떻게 하면 청빈의 덕을 쌓을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이 강론은 다행히 이해인 수녀가 따로 녹음을 한 CD를 보관했던 덕분에 19년 만에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강론의 일부가 공개되기는 했지만, 전문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정 스님이 가신지도 어느새 7년. 1년에 한 번 길상사에서 모시는 추모법회 외에는 별다른 행사가 없다. 이 책을 엮은 현장 스님은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것도 좋지만 스님의 사상을 사회화시키는 일에 조금 소홀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비친다.

“요즘 나라에도 어른이 없고 불가에도 어른이 없다. 스님의 종교교류활동과 스님께서 남기신 선묵을 통해서 무소유의 향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