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필자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박근혜-최순실-김기춘’ 게이트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창피하게 여기다가, 그 분노를 새로운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자랑스러운 모습에서 다시 희망을 보고 자부심을 느끼며 ‘말 많고 일 많았던’ 2016년 병신년을 보내고 있다.
  
이 틈새에 지난 12월 21일 매우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연합뉴스 베이징 진병태 특파원이 전해온 <중국에 백기 든 몽골 “달라이 라마 다시 못오게 할 것”>이라는 기사를 본 순간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잠시 숨이 콱 막혔다.
  
이 기사에 따르면, 몽골이 지난달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데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에 백기를 들었다. 첸드 뭉흐어르길 몽골 외무장관이 몽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몽골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티베트가 분리할 수 없는 중국의 한 부분이며 티베트 문제는 중국 내부의 일이라는 것을 확인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달라이 라마는 지난 1979년부터 달라이 몽골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법회를 갖는 등 몽골인들에게는 정신적 지도자의 역할을 해온 바 있고, 올해에도 지난 11월 18∼21일에 몽골을 방문하여 몽골 최대사원인 간단사원(간등사)과 대형체육관 등에서 대중 강연을 갖고 몽골 학자 및 청년대표들과 만나는 등 일정을 수행했으며, 이는 티베트와 역사적 · 종교적 연원이 깊은 몽골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였다. (같은 티베트 불교 전통의 금강승Vajrayana 불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몽골인들의 천막인 게르에는 달라이 라마 사진을 모시고 있고 라싸 순례와 달라이 라마 친견을 소원으로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몽골과 티베트는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가깝게는 1911년 중국에서 청淸 제국이 붕괴한 뒤 몽골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티베트 승려를 몽골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한 적도 있다.)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강력하게 반대해오던 중국 정부는 “몽골에 금융 및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정부 간 회담을 무기연기한데 이어 몽골 남부에 접한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세관 당국이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에 대해 통관비 징수를 시작했다.” 현재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 몽골로서는 중국 정부의 이와 같은 강도 높은 보복조치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8월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했을 때에도 중국이 ‘철도운행 중단 · 항공노선 폐쇄’ 등 몽골을 압박하는 여러 조치를 내놓았지만 몽골 정부는 “달라이 라마 방문은 순수한 종교 문제이다”며 이를 이겨왔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나는 여러 달 전에 사드배치와 달라이 라마 방한의 정치 역학적 관계에 대하여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사드 배치 계획 이후 중국 정부가 우리에 대해 다각도로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어서 그 파편을 맞게 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릴 지경이다. 게다가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계획에 맞서서, 중국 정부도 신무기 도입 등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땅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한 판 붙어보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는데도 무능력한 ‘박근혜-최순실’ 정부는 손 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 성공은 점점 멀어져갈 것이다. 자존심 강한 몽골도 중국 정부에 굴복했으니, 미국 · 중국 · 러시아 · 일본 가릴 것 없이 강대국의 요구에 쩔쩔매며 다 들어주는 한국 정부가 이를 슬기롭게 풀 가능성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중국 정부의 마음이 바뀌어서 “그래, 달라이 라마에게 방한 비자를 발급해도 모른 척 할 테니 한국 정부 뜻대로 하시오!”라고 하기 전까지는 달라이 라마를 우리 땅에서 뵙고 그분의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일에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지만. 이 문제만큼은 손톱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