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경구 써야 유식해 보인다? … 한국불교계 고질적인 병통

우리말《아함경》의 ‘칠불쇠퇴법’·‘국왕의 열 가지 덕목’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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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지난 11월 9일 박근혜 대통령(나는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부를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아서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냥 ‘박’이라 부르지만 공적인 자리이니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초청으로 청와대를 예방한 조계종 총무원장(자승)이 ‘수목등도화(樹木等到花) 사재능결과(謝才能結果) 강수류도사(江水流到舍) 강재능입해(江才能入海)’라는 경구를 인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구절이 《화엄경》에서 인용되었다는 청와대 발표 때문에 일어났다.
  
여러 매체와 개인들이 “《화엄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구절”이라면서 총무원장이나 총무원의 무지無知를 탓하는 언설을 쏟아냈다. 나는 처음 이 보도를 보고서, ‘왜 한문 경구를 인용했을까? 한문 구절을 써야 유식해 보여서 그랬을까? …….’ 하는 의문을 가졌을 뿐 그 구절이 《화엄경》에 나오든 어느 선어록에 나오든 아니면 어떤 선사의 선시 구절이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문제는 단지 현 총무원장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한문 경구를 써서 유식한 척’ 해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한국 불교계의 고질적인 병통病痛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청와대 만남과 관련해서 가장 좋은 길은, 설사 초청이 왔어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바람직스럽기로야 분명한 거부 입장을 밝히는 것이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없는 일정이라도 억지로 만들어 거부하든가 아니면 없는 ‘설사 병’ 핑계를 대서라도 그 자리에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 차선의 방법을 썼어야 한다. 만나는 자리에서 국민의 여론을 전하며 따끔한 경책을 해주었어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은유적으로라도 ‘대통령의 길’을 제대로 알려주었어야 한다. 내가 그 자리에 갔다면 아마 《아함경》에 나오는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다음 두 가지를 말했을 것이다. 그것도 한문 구절을 인용하지 않고, 쉽게 옮겨진 우리말 경전으로.
  
첫 번째는 흔히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이라고 알려진 ‘국가와 승가가 무너지지 않고 부강해지는 일곱 가지 비결’을 들어 대통령을 각성시킬 수 있었다.
  
첫째, 자주 모임을 갖고 서로 바른 일에 대해 의논합니다. 둘째, 임금과 신하가 공명정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들을 존경하는 기풍이 있습니다. 셋째, 옛 풍습을 지키며 예의를 존중합니다. 넷째, 부모를 효도로 섬기고 어른을 존경합니다. 다섯째, 돌아가신 조상을 받들고 유업 잇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도덕적이며 음란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고 계율을 지키며 바르게 생활합니다. (《장아함경》 <유행경遊行經>)
  
두 번째는 ‘국왕의 열 가지 덕목’을 들어 수행자들을 일깨우셨던 《증일아함경》 <결금품結禁品>의 가르침이다.
  
만일 국왕으로서 열 가지 덕을 성취하면 나라를 오랫동안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재물에 집착하지 않으며 조그만 일로 화를 내거나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신하를 비롯한 아랫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며 그 말을 따라주는 것입니다. 셋째, 항상 베풀기를 좋아하며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넷째, 권력으로 남의 배우자를 빼앗지 않으며 자기 배우자를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람들을 억울하게 가두어서 원망하지 않도록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술을 적게 마셔서 마음이 거칠거나 어지럽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향락을 멀리하고 정사에 힘써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덟째, 법에 따라 다스리고 교화하되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홉째,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믿으며 그들과 늘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열째, 병 없이 건강하며 기력이 강성하도록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증일아함경》 <결금품結禁品> 제6경)
  
이 두 경전을 뽑아서 전해주고 예방 자리에서 읽어주었다면 어느 누구도 “왜 그런 자리에 갔느냐?”고 비판을 하거나 비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차은택’ 등을 둘러싸고 요즈음 드러나고 있는 사실을 보면 현재 이 가르침과는 180도 어긋나는 일만 해온 것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혹 마지막 ‘기력이 강성하도록’이라는 구절이라도 지키지 않느냐고 항변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비아그라나 태반주사 · 마늘주사 등등은 건강을 좋게 하는 약이 아니라 건강을 망치는 약이라는 것이 의약계의 통설이 아닌가 말이다.
  
예방 자리에서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 길게 말할 필요 없이 이 경전 구절만 전해주고 덕담을 건네고 왔어도, 국민들은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억지로 한문 구절을 찾아서 어려운 일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버리고, 어렵고 효과도 없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곳이 불교이던가.
  
돌乭!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