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동국대 교수팀, 명상‧운동을 통한 집중력 지표화 기기 개발 성공
“찰나 길이 연구하다 개발…아동 ADHD‧우울증‧치매 진단 검사에도 유용”

크게보기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이 최소 단위인 ‘찰나’의 길이는 얼마일까? 찰나는 인간에게 인지 가능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말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1찰나는 1/75초가 된다. 1찰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 지속한 사건을 우리의 감관에 인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각의  경우는 인간에게 인지 가능한 최소 단위의 시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그 길이는 불전에서 말하는 찰나의 길이, 즉 1/75초에 근접한다. 그렇다면 촉각의 세계에서도 1찰나가 1/75초일까?

찰나의 길이가 궁금했던 한 불교학자가 찰나의 길이를 측정하는 실험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우리 몸에 가해지는 순간적인 촉각자극을 인지하는 기기를 개발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그는 불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찰나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언젠가 이를 측정하는 실험을 꼭 해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지난 2013년 중반 1년 동안의 안식년을 받아 촉각자극분배장치를 제작하여 개인적인 실험을 시작하였다.

김 교수는 순간적으로 촉각자극이 발생하더라도 마치 잔상과 같이 그 촉각이 여운이 남기에 찰나를 측정하는 실험에는 실패했지만, 촉각자극분배장치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촉각자극을 모두 인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번 연구에 사용하는 촉각자극분배장치(제품명: Sati-Meter, 위 사진)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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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자극분배장치는 피험자의 신체 표면 여러 곳에 소형진동모터가 내장된 촉각자극기를 부착한 후 그 가운데 몇 개를 선택하여 짧은 시간 동안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진동시키고, 이 때 피험자가 인지한 촉각 자극의 개수 또는 패턴을 실제로 발생한 그것과 비교하여 피험자의 인지(認知) 또는 오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촉각자극기의 작동시간이 어느 한계 이하로 짧아지거나 촉각자극기의 작동 개수가 어느 한계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이를 정확히 인지하기가 힘들어지는데, 그 때의 ‘작동 개수’ 또는 ‘작동 시간’은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의 촉각 주의력의 한계가 된다. 즉 촉각 자극에 대한 인지능력을 ‘개수’나 ‘시간’이라는 숫자로 표시하여 수량화(數量化, Quantification)하는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책임연구자 김성철 교수의 실험장면)

Sati-Meter는 명상과 운동을 통한 주의 집중력 향상을 통해 아동 ADHD, 우울증, 치매 진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기를 개발한 김성철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기기를 개발하는 한편, 이 기기를 이용한 실험결과를 다룬 논문 ‘명상수련자의 촉각 주의력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지난 11월 25일 한국불교학회가 주최한 2016추계전국불교학술대회를 통해 발표했다.

명상수행 중 집중력(사마타) 향상을 돕는 기기의 개발 및 실험연구 결과를 발표에 교계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발표장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은 청중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특유의 빠른 속도, 애매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 김 교수의 발표는 논문 발표가 진행되는 내내 모든 이의 시선과 귀를 붙잡아두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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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한 논문 ‘명상수련자의 촉각 주의력에 대한 실험적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2015년 학제간융합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작년 9월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실험한 자료와 연구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김 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는 Sati-Meter를 사용하여 실험했던 결과를 논문으로 최종 작성했다. 이번 연구에는 연구책임자 김성철 교수을 비롯해 공동연구원 김진석 응용통계학과 교수, 사공정규 정신의학과 교수, 안양규 불교학부 교수, 그리고 연구보조원 강남옥‧김지명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자 등 총 6명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김성철 교수(동국대) 연구팀은 이날 논문을 통해 주의 집중력의 수준을 Sati-Meter를 활용해 신체 촉각의 인지 여부를 수량화한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했음을 밝혔다. 즉 피험자의 신체 표면 여러 곳에 소형진동모터가 내장된 촉각자극기를 부착한 후, 선택적으로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진동 자극을 발생시키면, 피험자가 인지한 촉각 자극의 개수 또는 패턴을 실제로 발생한 자극과  비교하여 피험자의 인지 또는 오인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Sati-Meter를 개발한 후 대한민국 특허 제 10-1558082호(2014년 2월 27일 특허 출원, 2015년 9월 30일 특허 등록)까지 받았다.

주의 집중력은 일반적으로 각종 심리학 영역에서 인지능력 및 학습능력과 관련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 능력은 명상 등 정신적 훈련이나 상담·언어치료 등 심리치료와 같은 심리 개선 과정 시 요구된다. 해당 능력의 발현 정도에 따라 과정의 지속 및 선택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각 단계마다 피험자의 집중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험자의 단계별 지침 수행 여부를 피험자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의견에 의지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단계별 상황에 부합하는 객관적이고 세부적인 지침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 교수는 명상의 전 과정을 ‘훈련’과 ‘효과’의 두 단계로 구분할 때 그 ‘효과’의 측면에서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훈련’의 단계가 아직 과학화, 객관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구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명상 붐이 정신치료, 심리치료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측면을 갖지만, 명상이 약물과 상담을 보완하는 제3의 치료법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훈련 방식에서도 객관화, 과학화,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김 교수는 즉시 촉각 주의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장치인 ‘촉각자극분배장치’를 개발에 착수하였고 이번 실험을 통해 이 장치의 효용성을 입증하기에 이른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명상의 마음챙김(Mindfulness) 기술은 수행 중 발생하는 신체의 촉감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최근 서구 사회에서 주목받는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완화)나 CBT(인지행동치료) 등의 심리치료법은 대부분 명상의 마음챙김(또는 알아차림) 기술을 활용한 것들이다.

그런데 김성철 교수는 마음챙김(알아차림) 시 발생하는 신체의 촉감에 집중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마음챙김(알아차림) 수행법은 호흡 시 일어나는 촉감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몸과 마음에서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 남방 불교계의 대표적인 명상법으로 우리나라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마음챙김(알아차림)은 불교 고전어(古典語)인 빠알리어(Pāli語) Sati의 영어 번역어다. Sati를 한자권에서는 염(念)이라고 번역했다. 또한 Sati를 Awareness(알아차림)이나 Attention(주의)로 번역하기도 한다.

김성철 교수팀은 명상의 ‘마음챙김(알아차림)’ 기술에 착안, ‘촉각자극분배장치’를 개발하여 심리 훈련을 받는 피험자의 집중력 수준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이 성공은 수행의 정도를 객관화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김 교수팀은 Sati-Meter 장치를 통해 자극을 준 개수나 시간 차이를 수량화하여 피험자가 인지한 결과와 비교했다. 두 개의 데이터가 상호 부합하면 집중, 그렇지 않으면 산만으로 분류했다. 즉, 상호 부합하는 데이터 비율이 높은 경우 집중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 교수팀은 명상의 종류나 운동의 종목에 따라 신체 좌측과 우측의 촉각  주의력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는 성과도 거뒀다. 정적인 수행(고엔카 위빠싸나) 또는 사격 같은 정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신체 좌측의 촉각 주의력이 발달했다. 신체의 좌측은 우뇌의 지배를 받는다. 즉, 신체나 표적의 공간적 위치에 주의를 집중하는 행위를 지속할 경우 대뇌의 우반구가 발달하여, 신체  좌측의 인지 능력이 발달한 것이다.

반면 동적인 수행(일반 위빠싸나) 또는 농구 같은 동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신체 우측의 촉각 주의력이 발달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언어나 움직임과 같은 순차적 사건의 인지를 담당하는 대뇌의 좌반구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처럼 촉각 주의력의 발달 부위로 피험자가 어느 활동에 특화됐는지 유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수치는 선수 선발을 할 때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김 교수는 명상과 같은 정신적 훈련이나 상담과 같은 심리적 치료 단계의 집중력을 과학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면, 보다 효율적인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아동·청소년의 주의 집중 능력 측정 검사에 응용이 가능하다면, 학업에 대한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심리장애를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성과는 명상이나 심리치료 등 정신적 활동의 효과를 측정하고 진단할 때 집중력의 고저를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한 것”이라며 “향후 전 연령대 현대인을 대상으로 요구되는 심리적인 문제, 가령 ADHD, 우울증, 치매 등의 예방법과 치료법 개발에도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특히 지극히 주관적 체험인 불교명상의 깊이를 객관적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는데, 실험을 통하여 그 효용성을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명상 등 불교수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100세 시대에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또렷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바라는 현대인들의 노후 필수품으로 머지않아 Sati-Meter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전망이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불교공부를 위해 과감히 포기하고 불교학자의 길을 걸어온 김성철 교수. 이 과학자 같은 불교학자가 보여주는 늘 새롭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실험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 의미도 크고 재미도 있으며, 신선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