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달다. 그리고 108 번뇌'전 여는 권금영 작가
12월 4일까지 법련사 불일미술관서 작품 24점 선보여

설화에 따르면, 진표율사(718~?)는 친구들과 잡아 꿰어 물속에 담가둔 개구리가 이듬해 죽지 않고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뒤 생명을 고통에서 구제할 것을 서원하며 12세에 출가한다. 자장암 주위를 떠나지 않는 개구리를 위해 자장율사가 바위에 구멍을 뚫어 살게 했다는 설화도 내려온다. 이처럼 불교 설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개구리로 백팔번뇌를 형상화한 전시회가 22일부터 열리고 있어 주목된다.  
 
"작고 하찮게 여겨진 개구리가 우리네 모습과도 비슷한 점에 주목했어요. 수많은 알들이 죽고 잡아먹히죠. 도태되지 않은 알들이 험난한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성체가 되고요. 밤과 낮을 고통으로 지새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작고 연약하지만 어두운 겨울을 뚫고 봄을 깨우는 개구리를 바라보며 어두운 시기 힘든 분들이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12월 4일까지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권금영 작가는 22일 미디어붓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에 대해 이 같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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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달다. 그리고 108 번뇌'란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인간의 백팔번뇌를 개구리와 개구리알로 형상화해 인간의 번뇌와 기쁨을 관조하는 작품 24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출품작은 "사는 것이 왜 주로 고단한 것인지, 왜 고통 속에 밤과 낮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인지 거의 매일 생각했다"는 작가의 화두가 낳은 108번뇌 연작들이다.

작가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함에도 그러지 못한 제 자신이 먼저 깨어나야 했다"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경종으로써 개구리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항상 앞으로만 가는 개구리가 우리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옹기종기 모여 뭉쳐진 알의 모습도 우리 사회 모습처럼 보였어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다른 모습도 재미있고요."
   
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영국에 넘어가 2009년 미술 공부를 본격 시작한 권 작가는 이런 이유로 2010년부터 개구리 작품에 몰입해 만 6년 간 작품을 준비해왔다.
 
출품작은 불일미술관 1층에 자리한 1관과 지하에 자리한 2관에 나뉘어 걸렸다.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된 에칭과 한 장만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모노프린트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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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에서는 산화시킨 아연판에 잉크를 묻혀서 찍어낸 에칭 작품을 볼 수 있다. 모두 108번뇌의 의미를 담은 개구리를 형상화했다. 낚싯대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개구리부터 조각조각 무너져 내린 나무토막을 부여잡고 가까스로 매달려 오르려는 개구리 모습까지 다양하다. 이에 대해 "소통이 안 되고, 답답할 때, 혹은 우울한 시기에 작품을 보며 각자의 경험을 떠올려 108번뇌를 자유롭게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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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관의 출품작은 에디션 없이 오직 하나뿐인 작품으로 표현한 실크스크린 모노프린트 작품이 대부분이다. 1관과 달리 은은한 파스텔톤으로 고요하고 빛나는 색감과 소재를 사용한 개구리알이 잉크 농도나 압력을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권 작가는 "1관에서 본 개구리도 아름답고 고요하며 찬란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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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닐 등을 감아 300×160㎝의 규모로 개구리알을 표현한 107번과 2012년 영국에서 선보인 바 있는 유리로 된 작품 53번은 가장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던 '애증의 작품들'이다.

알의 서로 다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0.5톤에 달하는 비닐을 손으로 일일이 감아야 했고, 영국 단체전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작품을 한국에 들여오지 못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집중해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움 끝에 전시를 열게 된 소감으로는 현 거주지인 영국을 떠나 한국에서의 작품 준비와 운반, 생애 첫 개인전, 관람객의 선호와 공감 등의 문제로 극도로 긴장됐다면서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신진작가에게 '개관 20주년 기념 신진작가 공모전 당선작 전시'의 길을 열어준 불일미술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미술관은 대개 유명하거나 안정적으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작가를 선호하기에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열정을 가진 이들이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저처럼 디딤돌이 돼줄 곳이 많지 않은 신진작가를 위해 공모전 전시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이번 전시 후 영국으로 돌아가 108번뇌를 주제로 한 연작 108점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경제적 사정과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한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판화전공 석사과정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 권 씨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 작품을 통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사람의 마지막 힘은 웃음에서 나오기에 작품 속에 놓치지 않으려 한 웃음 포인트도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집회를 하다 쉬고 싶은 분을 비롯해 누구나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작품을 보고 같이 웃고 힘든 일 함께 털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