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너그러우신 하느님께서는 다른 신앙인들도 그들 나름의 길을 통해 하느님을 찾아와 그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주시기 않을까요? 그래야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라는 명예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크게보기

‘형제종교인이 보는 개신교의 배타 교리’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공동선》 편집부의 요청을 받고 오래 망설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개신교계의 배타적’인 모습은 거의 매일 지켜보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라면 뭐라고 할 말이 있지만, 기독교 교리에 대해 문외한인 제가 그런 배타적 현상의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교리를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공부를 겸해’ 이 고통스런 ‘숙제’를 해보기로 하였으나 여전히 자신은 없습니다.
  
개신교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현재 불교와 가톨릭을 비롯한 다른 이웃 종교계들 중 어느 곳 하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곳이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리던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한다”는 말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진 지 오래된 것이 우리의 종교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에 유독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는 데 대해서는 개신교 쪽에서 ‘이유 있는 항변’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항변’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더 배타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으로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개신교 보수 교단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의 여유자금을 들여오는 이른바 ‘스쿠크 법’과 전라북도 익산시에 무슬림들을 위한 식품을 생산하는 ‘할랄식품단지’ 조성 계획을 적극 반대하는 운동이 매우 거세게 펼쳐졌습니다. 이 운동에는 목사와 일반 신도들 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이혜훈 의원을 비롯한 일부 개신교 신자 국회의원들도 적극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을 밝힐 자유와 권리를 누구든 갖고 있지만, ‘스쿠크 법’과 ‘할랄단지’에 대한 이들의 반대 이유에는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렇게 되면 무슬림들이 대거 유입되어 테러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전혀 근거 없는 비난과 비방’만 있을 뿐 ‘이유 있는 반대’라고 납득할 수 있는 구석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난 10월 15일 한국개혁신학회(김재성 회장)가 개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서울 서초구의 대형 ‘사랑의 교회’ 신자인 이혜훈 의원은 심지어 “한국에도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많다”, “할랄 식품 단지는 ‘지하드’(聖戰) 전략”이라며 거의 선동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이의원의 말이 사실이고, 그 근거가 분명하다면 그는 이 내용을 국회 대정부 질의나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통해서 확실하게 제기하고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는 신심 돈독한 개신교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국정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신교인들만을 주 대상으로 그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정치 행위라기보다는 ‘개신교 보수 세력 결집’을 노리는 비겁한 정치 술수로밖에 볼 수 없게 됩니다.
  
이슬람과 무슬림 문제 다음으로 이웃종교인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것은 ‘동성애’에 대한 대다수 개신교인의 ‘증오’에 가까운 반대 운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게도 동성애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로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불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 붓다 당시의 실상을 담고 있는 여러 경전과 율장을 살펴보면, 2600년 전에도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불교인들이 저처럼 동성애에 대해 “쉽게 동의는 안 되지만 인정은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이것은 동성애 문제뿐 아니라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관용적인 불교인의 ‘종교적 유전자’와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교인으로서는, 개신교 목사 ‧ 신도들과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극렬하게 동성애 반대 운동을 펼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개신교계는 몇 해 전에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이다”는 주장을 펼치며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또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친 이슬람, 동성애 옹호자”라며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10월 14일 한국교회언론회에서는 미국 대통령으로 “힐러리가 당선되면 동성애 · 이슬람과 급진 페미니즘 정책의 압력이 거셀 것”이라며 도날드 트럼프를 옹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여, 이 소식을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웃 종교인이라 말하기가 매우 주저하게 됩니다만, 솔직히 세계 역사에서 무슬림이 일으킨 전쟁과 테러로 숨진 사람들이 많습니까, 아니면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가 일으킨 전쟁, 그리고 기독교가 미주와 아프리카 ‧ 호주 대륙 등지에서 서구 제국주의와 손잡고 죽음으로 몰아간 현지 주민들의 수가 많습니까? 무슬림 테러 위협을 거론하는 개신교 목사님들이나 이혜훈 의원이 세계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본다면, 아니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저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몇 대목만 읽어보면 그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아무 거침없이 ‘한국 내의 무슬림 테러 위협’을 쏟아내며 국민들을 협박할까요?
  
이제까지는 이 모든 문제들이 일부 신자들의 잘못된 신앙과 보수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라고 치부하며 기독교(개신교) 교리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니 이제 어쩔 수 없이 “저들의 교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송(宋)나라 시절 주희(朱熹)나 조선 왕조의 사상적 기초를 세운 정도전도 처음에는 불교 교리에 우호적이다가, 현실로 드러나는 당시 불교계의 부패를 접하면서 ‘불교계 현실 문제 비판’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불교 교리’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갔던 역사가 있듯이, 아마 저를 비롯한 수많은 이웃종교인들과 무(無)종교인들이 개신교에 가지는 감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다른 이웃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심각한 사회 갈등을 일으키는 이런 문제들이 개신교의 목사와 신자들의 개인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라면, 그 책임은 교리에 돌려야 할까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요한복음》(14:6)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마르코복음》(12:29)의 가르침이 그들의 눈과 가슴을 너무 좁게 가두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무종교인이나 다른 이웃종교인들은 물론이고, 어찌 보면 형제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가톨릭과 이슬람에 대해서 그토록 배타적이 되고 심지어 그들을 상대로 ‘영적인 성전(聖戰)’을 선포하기까지 하는 것일까요?
  
그냥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을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요?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너그러우신 하느님께서는 다른 신앙인들도 그들 나름의 길을 통해 하느님을 찾아와 그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래야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라는 명예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다음으로는 정치 현실에 대한 개신교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한국 개신교계는 “모든 권세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사람은 누구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일제의 한국 강점을 용인하고 그들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시켜주었으며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고 박정희 정권 탄생과 시월유신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쿠데타를 지지하고 협력하였으며 이명박의 수구 보수 정권과 사이좋게 손발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비장의 무기[傳家寶刀]와도 같이 여겼던 《로마서》13장의 가르침을 버리고 결사적으로 권세에 대항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신앙을 트집 잡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경전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멋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의 말씀으로 설립된 로마 성(聖) 교회는 가톨릭교회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 즉 이교인 뿐 아니라 유대인, 이단자들도 죽기 전에 가톨릭교회로 돌아오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오히려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영원한 불에 빠지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다”고 했던 가톨릭교회의 ‘플로렌스공의회(1439~1445) 선언’으로 인해 그 뒤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유럽 개신교인들이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았는지 잘 알고 있다면 그 고통의 짐을 다른 이웃종교인들에게 똑같이 지게 하는 어리석은 일은 멈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최근의 백남기 농민 사망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맞아 대다수 국민은 어려움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 거룩한 물결에는 특정 종교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종교인들이 앞장서고 있고, 그래서 ‘종교가 불필요해진 세상이 되었다’는 세간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 흐름을 이끌 수 있는 데에는,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예수님께서 “울지 말아라”고 위로한 뒤 “젊은이여 일어나라!”고 외쳐서 결국 죽음의 강을 건너갔던 아들을 살려내 “예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는 《누가복음》 7장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배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경전 몇 구절’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며 무종교인들과 이웃종교인들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일은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위로하고 그 아들을 살려내 주셨던 예수님, “수고하고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을 돌보는 개신교인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특별한 선교 전략이 없어도 신자 숫자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고, 이런 분위기를 다른 이웃 종교에서도 받아들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는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는 무슬림 테러와 그에 따르는 무슬림 혐오증을 과감하게 버리시고, ‘동성애가 세상을 파멸시킨다’는 미신(迷信)도 훌쩍 날려 버리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베드로전서》5:7)
  
에마뉘엘 카통골레와 크리스 라이스의 《화해의 제자도》에서는 “역사는 악과 불의에 연루된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경고한다”고 하였습니다만, 멀지않은 미래에 “역사는 세상에 선(善)과 정의(正義)를 구현해온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장한 모습을 높이 평가하고 찬탄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네이버 블로그 <香山의 세상이야기 - 葉落糞本>과 격월간 《공동선》 2016년 11-12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