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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법문
중현 지음, 아름다운인연
256쪽, 1만5000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해 보려고 오늘부터 백일기도를 시작한다. 광화문의 경찰 차벽에 갇혔던 세월호 가족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기도를 시작하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다. (…) 일상의 늪 속에 빠져서 망각하지 않기를, 남을 위해서 나 스스로를 헌신했던 그 치기 어린 청춘의 시간들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남을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잊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 ‘사람의 도리를 한다는 것’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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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 스님(사진)이 한국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한꺼번에 드러낸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쓴 글이다. 그는 늦깎이이다. 출가 전 뜨겁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1985년 5월 23일, 대학생 83명이 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 83명 가운데 23명이 구속됐다. 당시 고려대 행정학과 3학년 오태헌(중현 스님의 속명)은 구속된 23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86년 석방된 이후 91년까지 노동 운동을 계속했다. 어느 날 진보적 이론이 개인적인 고뇌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30대 중반인 1998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지금은 비 내리는 산속의 작은 절에서 뉴스를 통해 세월호 투쟁 소식을 듣는다. 저 자리에 같이 있지 못하는 자신을 잠깐 책망하다가, 먼 옛날 투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을 때 지금의 자신처럼 어딘가에서 뉴스로나마 소식을 접하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했을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 사람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나마 남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마음을 내려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본다.

스님은 어느 날 배고플 때만 찾아오는 길고양이의 모습과 행동을 세세하게 관찰하고는 그 고양이가 우리의 눈을 열어줄 스승일수도 있음을 발견한다.

고양이는 티끌만큼의 기대나 믿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마당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은, 내게 왜 그런 구멍이 뚫렸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것은 혼자가 되어서 홀로된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내 영혼에 뚫린 구멍은 오직 나만이 채울 수 있다. 고독은 내 가슴에 뚫린 구멍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지혜는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며, 지혜를 닦는 수행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 ‘길고양이의 법문’ 72쪽 

전남 순천 송광사가 펴내는 사보 〈송광사〉의 편집장 중현 스님이 〈송광사〉에 연재한 글과 페이스북에 올린 일상 법문 50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귀한 깨달음의 순간들을 따뜻하고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포착해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스님은 또한 내 마음과 마음 바깥의 소소한 일상, 그 일상 바깥의 복잡한 세상일들을 산책자처럼 거닐며 보물과도 같은 값진 깨달음의 순간들을 독자들의 마음에 던져 놓는다. 긴 여행과 짧은 산책, 지극히 소소한 일상과 깊은 수행의 시간들을 넘나드는 그 길은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 내 바깥을 돌아 온전한 나에게로 이르는 먼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