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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지혜로운 삶으로 이끄는 것”

진흙속의연꽃 | | 2016-10-18 (화) 15:57

[‘진흙속의연꽃’의 불교이야기] 100- 최상의 효도란 무엇인가?
“믿음·지계·보시·지혜의 공덕 쌓으면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아”


왜 새겨들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강연이나 법문을 들을 때 귀담아 들을까? 아마 대부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별도로 메모를 해 놓지 않는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일 공부하는 학생이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시간만 때운다면 어떻게 될까? 학습효과도 거의 없을뿐더러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법문할 때 새겨들으라고 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모든 사실의 뿌리가 되는 법문을 설할 것이다. 듣고 잘 새겨라. 내가 설명할 것이다.”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새겨듣는다는 말은 ‘주의 기울여 들어라’는 이야기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필기구가 없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면 잘 귀담아 듣고 기억해야만 했다. 마치 뼈에 새기듯이 가르침을 기억하고자 애썼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기억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다.
 
 
 “뿐니야여,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었고, 찾아와서, 가까이 앉아, 질문하고,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더라도, 가르침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A8.82)
 
 
부처님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가 준비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법을 설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믿음을 내야 한다. 그 다음 찾아 와서 물어 보라고 했다. 물은 것에 대하여 가르침을 설했을 때 ‘귀담아 들으라’ 고 했다.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귀담아 들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법을 설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한 것을 기억한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기억한 것을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여래가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A8.82)라 했다. 탐구로서 끝나는 것일까? 부처님은 실천을 강조했다.
 
실천까지 단계는 어떤 것일까? 경에 따르면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고, 가르침을 기억하고,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고, 의미를 알고 원리를 알아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한다면” (A8.82)라 되어 있다. 부처님은 실천을 강조했다. 그것도 법답게, 여법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한다’라 한 것이다. 보시의 가르침도 그렇다.
 
진정한 효도는
 
보시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리고 큰 과보를 받는다. 그런데 보시보다 지계하는 것이 더 수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하는 것만 못하다. 수행을 하면 보시와 지계와 비교할 바 없는 헤아릴 수 없는 과보가 기대된다고 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산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효도잔치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이다. 좋은 옷을 사 드리고 안락한 거처를 만들어 드리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부모를 불법승 삼보로 인도하는 것이다. 남은 여생을 보시하고, 지계하고 수행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최상의 효도인 것이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부모의 경(mātāpitu sutta, A2.32)’이 있다. 먼저 부모의 은혜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두 분에 대하여는 은혜를 갚기가 쉽지 않다. 두 분이란 어떠한 분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수행승들이여,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이고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이고 백년을 지내고 백년을 살면서, 향료를 바르고 안마를 해주고 목욕시키고 맛사지를 해드리며 간호하는데, 그들이 어깨 위에서 똥오줌을 싸더라도 수행승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갚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로 하여금 이 칠보로 가득한 대륙의 지배자로서 왕위에 취임하도록 하여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갚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을 낳고 양육하며 세상에 내보내는 많은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A2.32)

 
 
경에서는 먼저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나를 여기에 있게 한 것은 부모의 은혜라는 것이다. 부모가 똥과 오줌을 가리지 못해 간호해 준다고 해서 은혜를 다 갚는 것도 아니고 칠보를 가진 왕권을 준다고 해서 은혜를 다 갚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이어지는 부처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믿음이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믿음을 권하고, 믿음에 들게 하여 믿음을 확고하게 하고, 계행이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계행을 권하고, 계행에 들게 하여 계행을 확고하게 하고, 인색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보시를 권하고, 보시에 들게 하여 보시를 확고하게 하고, 지혜가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지혜를 권하고, 지혜에 들게 하여 지혜를 확고하게 하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것이며, 넘치게 갚는 것이다.” (A2.32)
 


부모에게 믿음과 계행과 보시와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오줌똥을 받아 주는 것도 좋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사드리는 것도 큰 효도이지만 더 큰 효도는 부모를 지혜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한평생 믿음 없이 살았다면 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에 귀의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효도라는 것이다. 이렇게 삼보에 귀의 하였을 때 계행이 없이 살았던 부모는 늦게나마 지계하는 생활을 하고, 한평생 인색하게만 살았던 부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함으로써 보시공덕을 짓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가르침을 알려 드려 지혜 있는 삶으로 유도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가족제도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족을 제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자신은 열심히 절에 다니고 열심히 수행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가면 스님들이 늘 하는 말은 “가족과 손잡고 나오십시오”라는 말이다.
 
나이 들어 늙은 부모님들은 한평생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삶에 바쁘다 보니 지혜로운 삶에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늦게나마 삼보에 귀의하게 하고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 좋은 일인가? 믿음과 함께 보시하고 지계하는 삶을 산다면 천상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보다 더 큰 효도가 있을까?
 
치매에 걸린 부모의 똥과 오줌을 걷어내는 것도 효도이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사드려서 호사시켜 주는 것도 효도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가르침을 알려 주는 것이다. 보시하고 지계 하는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더욱 좋은 것은 지혜로운 삶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늦게나마 나이 든 부모에게 수행해보기를 권유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은 그때뿐이지만 믿음, 지계, 보시, 지혜의 공덕을 쌓아 놓으면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부모에게 최상의 효도는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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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무상상 2016-10-20 15:41:40
답변  
진흙님...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진흙님은 줄곳 불교의 목표는 해탈이고 또한 해탈이외의 것을 말하는 것은 전부다 틀린 것이다. 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압니다. 또한 불교의 행복론에 대해서도 전혀 엉뚱한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만족감에 의한 행복론을 펼치면서 저의 "버림에서 오는 불교의 행복론"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보시 효도등등 기존의 진흙님의 해탈만이 불교의 가르침이다라는 논조에서 벗어난 글을 보게 됩니다. 해탈론만을 쓸려니 경전의 문구가 바닥이 난 것은 대충 눈치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기존의 논조까지 180도 바꾸어서 전혀 쳐다보지도 않던 불교의 행복론이나 중생들의 삶까지 살피는 모습은 웬지 어색하고 곁눈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님이 이리저리 말을 바꾸고 붓다의 가르침을 자신의 이해력 수준에서 해석하는 것이야 님의 능력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기존의 주장까지 버리는 모습은 여간 어설프고 측은해 보이는게 아닙니다.

대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린 후에 첫 마디가 자라고 그 첫 마디를 의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마디가 하늘을 향해 올라 갑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를 구성하고 있는 사부대중에서 재가자는 재가자로써 덕목이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수행승이 재가자처럼 행동해도 안되고 더우기 재가자가 수행승처럼 행동해도 어설픈 것입니다. 재가자의 16가지 덕목을 갖출려고 노력하고 보시하고 자비심을 내는 것은 대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고 첫 마디를 키울려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조차 없으면서 마치 붓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인냥 출가승을 가르칠려고 경전문구 옮겨와서 얇은 불교 지식으로 타 종단을 비난하는 대신에 진흙님은 부모님을 사찰로 인도하시거나 또는 가족들 전부가 불교를 믿는지 또는 내 자식을 불교도로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무상상 2016-10-20 15:58:17
답변  
우리 중생들이 해탈하고 열반을 획득하는 길을 모르는게 아닙니다.
경전문구 한귀절이면 충분합니다.
"사성제를 알고 팔정도를 닦아서 탐진치 삼독심을 제거하면 열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생들이 이걸 알면서도 열반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은
수행력과 지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불교학자분들(스님들 포함)이 진흙님만큼 불교에 대해서
몰라서 하루가 멀다하고 글을 올리지 않는게 아닙니다. 또한 이곳에서
몇년씩이나 경전공부하는 학자분들이 경전에 나와 있는 글자 읽을줄
몰라서 밤낮을 잊고 경전공부에 몰두하는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중생이란 강병균교수님 말처럼 환망공상에 휩쌓여
있거나 망상이나 전도몽상을 하는 경우 입니다. 불교는 중생들의 세간에서
출발한 종교입니다. 따라서 용수보살은 그의 중론에서 "세간의 진리없이는
절대적 진리는 설해질 수 없고 절대적 진리 없이는 열반은 획득되지
않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불교는 중생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헤어날 것인지를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가르침에는 출가자와 재가자로 엄연히 구분
되어 설법이 진행이 됩니다. 우리가 250여개의 계율을 지키면서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출가승에게 설법해진 것들이 적용이 되겠는지요?
그래서 상윳따 니까야에 보면 "꼬살라 사람들에게 설법한 것"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고 경전에는 재가자들보고 돈 많이 벌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출가승에게 돈 많이 벌어라는 설법이 통하지 않듯이 250여개의 계율을
지키는 출가승에게 행한 설법이 재가자들에게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말이 많으면 주워담을만한 말이 없고, 쓸모없는 글들이 많으면
휴지통만 쌓이게 됩니다.
다원 2016-10-20 22:38:50
답변 삭제  
<<<진흙님...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진흙님은 줄곳 불교의 목표는 해탈이고 또한 해탈이외의 것을 말하는 것은 전부다 틀린 것이다. 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압니다. 또한 불교의 행복론에 대해서도 전혀 엉뚱한 세속적인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만족감에 의한 행복론을 펼치면서 저의 "버림에서 오는 불교의 행복론"을 외면했습...그런데 요즈음은 ....문구가 바닥이 난 것...눈치챘지만 그렇다고... 논조까지 180도 바꾸어서 ...기존의 주장까지 버리는 모습...어설프고 측은해 보이는..
...재가자의 16가지 덕목을 갖출려고 노력하고 보시하고 자비심을 내는...행동조차 없으면서 마치 붓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인냥 출가승을 가르칠려고 ...비난하는 대신에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무상상 2016-10-20 15:58:17
...해탈하고 열반을 획득하는 길을 모르는게 아닙...경전문구 한귀절이면 충분...불교는 중생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헤어날 것인지를 알려주는 가르침...출가자와 재가자로 엄연히 구분 되어 설법이 진행이 됩.. 우리가 250여개의 계율을 지키면서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출가승에게 설법해진 것들이 적용이 되겠는지...경전에는 재가자들보고 돈 많이 벌어라고도 하고 있습...출가승에게 돈 많이 벌어라는 설법이 통하지 않듯이 ...출가승에게 행한 설법이 재가자들에게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상상뎃글중]>>>

  [무상상 국어분석]
<불교는 중생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헤어날 것인지를 알려주는 가르침.../[무상상뎃글중]>
<--[다원 왈~]
∙연꽃은 재가자에게 출가자처럼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미디어 붓다는 출,재가 구별없는 공간이다. 단 출가자에게 해당하기도 하고 출가자가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경전에 의지한 교학적 글쓰기를 한다. 재가자는 불교적인 해탈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면 된다.

[무상상의 국어독해력]- 그런데 무상상은 출가자가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교학적 수준의 글에다가 무상상은 재가자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서 다른 글을 썼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당연히 재가자들의 관념에 맞는 무상상의 글은 어떤 경우라고 64견이며 교학적인 꽃님이의 글맥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트집과 왜곡이다.
왜? 출가자 수준에서 읽어야 할 글에 맹신족 재가자를 들이대나???

위 본문 꽃님이 글은, 신행에 도움이 될 만한 재가자가 읽어야 할 논조인데... 교학적 논지가 바뀌고 밑천이 떨어진거냐고??? 심뽀가 꼬이나???

  [무상상 인지분석]
<...출가자와 재가자로 엄연히 구분 되어 설법이 진행이 됩../[무상상뎃글중]>
<-- 이글을 보면 무상상은 대기설법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듣는 것인지는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가자와 관계된 글을 재가자 국어로 읽고... 지금처럼 재가자가 읽어야 할 글을 대기설법까지 운운하며 출가자 학승 수준으로 곡해를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심하게 독맹... 문장유희라고 비난을 했다...
참으로 적주불자(무상상 애드립)가 따로 없다.
이거는 2016-10-20 22:59:05
삭제  
재가론인가? 출가론인가?
무슨설법인가? 대답하시게...
-------------------------------
<<...불교는 해탈하여 열반을 한다고 합니다.
.....해탈과 열반은 다른 개념입니다.
.....불교는 해탈을 넘어서 열반이라는 세계를 주장하는 종교입니다. /[무상상 뎃글 중]>>

재가보시해탈구경열반교 교리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려 불교는 모르겠는데... 초기불교는 아닌 것이 확실해...
불교와 대승불교가 섞인거 같고...

해탈 다음에 열반하는 거는 맞고 그것도 합리적자동순차론까지는 이해해 주기로 한다...

다른개념...??? 열반세계를 주장....???? <--이거 어디서 주서오신거시나???  어디 학술지에서 읽으셨는지??? 정말 거북합니다...

주장은 주장이니까... 그런다 하고...
옳든 그르든 꽃님이처럼 근거라도 좀 인용하시면 안되나요???
아함경이나요? 니까야나요???
아함경을 니까야처럼 헷갈리게 해도 안되지만... 전혀 아닌 것을 진짜 같이 하면 정말 지옥갈거여...

.무외산파보시재가해탈구경열반당 출법게송-->아라한이 되면 이전에 지은업도 받지 않는다[실론섬=무상상]
.보시재가해탈구경열반당 1차결집-->현세구경열반론
.보시재가해탈구경열반당 2차결집-->능견수견론
.보시재가해탈구경열반당 3차결집 공시-->해탈열반각별론

나 다원이요..^^
다원 2016-10-21 17:24:30
답변 삭제  
<<...사성제를 알고... 팔정도를 닦아서... 탐진치 삼독심을 제거하면 열반...입니다"/[무상상 뎃글중]>>

<--이렇게 말하면 국어인 이유
팔정도를 닦아서 삼독을 제거하나???
삼독이 제거되지 않는 상태의 팔정도가 가능하나???
국어식 표기로 팔정도의 시작인 정견도 마지막 단계의 정정과 오락가락인데... 정정상태의 견도만을 정견이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탐진치 삼독이 멸진한 상태라야 팔정도가 가능하지 않나?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보이는대로 보는 것도 구벼라지 않는 사람이 팔정도를 닦는다고...???
이거 누가 읽어야 하는 것이나??? 출가자??? 재가자인가???
말이쉽지. 팔정도를 닦아서 삼독을 제거한다????
국어하는 것이여? 불교하는 것이여???
수필이라면 내 참 것다...
공리주의도 합리주의도 아닌 아전인수식 국어문장유희를 하면서...
엄청난 열정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아는 바의 경전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글을 쓰는 꽃님이의 칼럼을 논평한다고...???

정말 쓸모없는 말이 많으면 주워담을 만한 말이 없고, 쓸모없는 글들이 많으면
휴지통만 쌓이게 됩니다.
재가중생 2016-10-28 16:19:00
답변 삭제  
어허, 참! 연꽃은 왜이리도 어리석은 글을 쓰는고?
연꽃은 아직도 진흙속에서 헤메는 중생이...당신자신부터 먼져 구제에
온힘을 다하고 , 노력 , 정진하시시요!
그리고  연꽃중생은 블로그에다 뻑하면, 동지스님들을 빈나하구 그러는데..
내한가지 물어봅시다!. 연꽃중생은 동진스님들보다 잘한게 뭡니까?
사람이 자꾸 그런데다 비난하구, 쓸데없이 에너지낭비하면 않됩니다!
허허허. 동진스님들의 이야기를 자꾸 재미삼아 물고늘어이유가 뭡니까?
그래! 연꽃중생이 ...오로지 다른중생들 앞에선 기가 팍 죽는데, 동진스님들의 좋지 않은 범계의 일례들 앞에선 펑펑 큰소리칠 이유가 있습니까?
허허! 그거 수수께끼 같구만그래 당신이나 똥인지, 된장인지 앞가림부터 하구선 그런 소리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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