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스물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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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오빠 서울법대 후배인 40대의 젊은 검사장 ‧ 판사 출신 변호사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가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이번에는 매년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주로 어머니들) 수만 명씩을 서울광장에 모아놓고 종교집회를 개최하는 ‘성공한 목사’가 십 수 년 동안 어린 여학생들을 상대로 저질러온 성 범죄까지 전해져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러 차례 발각이 되어 피해자 부모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각서를 써주기도 했고 이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의 후원자인 장로의 질책을 받고서도 비슷한 각서를 써주었다고 하는데 각서 정도로는 ‘괜찮다’고 여겼던지 그 뒤로도 숱한 사고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언론에까지 크게 보도되면서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지, “저를 따랐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상처 입지 않았기를 바란다”는 이상한 사과문을 내더니, 그것으로도 여론이 잠잠해지지 않자 뒤늦게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을 사죄하며 살겠습니다”는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십 수 년 동안 여러 차례 문제가 드러났었다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이 다른 기사에 나오더라.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 목사는 번번이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좋게 해결하면 좋겠다”는 말을 그 단체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에게 말했고 그러면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무장된 신도들은 다시 그 말을 믿고 ‘문제를 그대로 덮어주는 미덕美德(?)’을 발휘했던 것이다. 아, 이 아름다운 광경이 부럽다!

우리 철수 오빠도 그 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그때마다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좋게 해결하면 좋겠다. 덮어주고 가자!”는 그 미덕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그놈의 ‘민주화’ 역병이 불교계에까지 전염되어 들어온 뒤로는 그 미덕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놈의 ‘민주화’가 가져온 폐해가 크고 넓어서, 문화 예술과 사법 부문을 넘어 불교계까지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백합이 썩을 때 그 냄새는 잡초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고 했다. 오빠가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기반이 된 그 재단 쪽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퍼진다’는 소문이 여러 해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그 냄새의 발생 지점을 모르고 있었고 특히 철수 오빠에 대해서는 나치스 치하의 유대인들처럼 ‘설마 그분이?’ 하면서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인데 결국 백합 썩는 냄새처럼 지독해지고 난 뒤에야 ‘아, 이럴 수가? 그 분, 아니 그놈이 이런 지저분한 짓을 했다니 …….’ 하면서 땅을 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수백 년 뒤 서울에서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예측해낸 셰익스피어, 그를 일컬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부르는 이유를 여기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철수 오빠 옆에서 퍼져 나오는 그 ‘썩는 냄새’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는 것만으로 모자라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드나들며 구역질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직은 멀리까지 퍼지지는 않아서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지만, 과거 인연으로 오빠와 식사를 하게 된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슨 냄새가 이리 독하지? 부산 여러 곳에서 난다는 그 냄새와 같은 성격인가 ……?” 하면서도 오빠를 의심하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우리 철수 오빠가 ‘불교의 미래와 생태 위기를 걱정하는 고뇌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불교 지성인’이라고 각인되어 있어서 그럴 터인데, 만약 이 냄새의 진원지가 철수 오빠인지 알게 된다면 그들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이며 분노도 아주 클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방식을 쓰든 냄새를 없애야 하지만, 막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 전범들도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신을 다시 훼손하고 화장을 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결국 다 드러나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철수 오빠나 나처럼 그런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냄새를 없애서 우리 비리의 증거를 인멸堙滅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본들 그게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버틸 수도 없고 ……. 내가 이 정도로 답답하니 철수 오빠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 밤마다 흉몽을 꾸지 않고 어찌 넘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 이모 목사처럼 일단 위급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그 동안 제 잘못이 매우 컸습니다. 오늘부터 사죄하는 의미로 모든 자리를 놓고 떠나서 나에게 상처를 입은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 잘못을 참회하며 살겠습니다. ……”며 ‘쇼(show)’로라도 사과를 할 철수 오빠가 아니지 않는가.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결국 강제로 끌어내려갔던 숱한 사람들처럼, 마지막까지 버텨보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는 오빠의 법대 후배 우모 수석비서관처럼 우리 철수 오빠도 끝까지 버틸 것이다.

이런 저런 인연이 있는 법조계 선후배들을 만나 ‘피해나갈 길’을 찾아보려고 기를 쓸 것이다. 자신이 배신했던 불교계 선배와 친구들을 찾아가서 “내가 예전에 잘못했던 것은 인정하니, 재단 운영하며 저지른 배임과 비리는 없었던 일로 덮어 달라!”며 사적인 의리와 인간적인 정리에 호소할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하며 믿어주다가 숱하게 배신당한 그들이 이번에도 속아줄 것 같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 불쌍한 철수 오빠 …. 오빠 혼자라면 괜찮겠지만 착하디착한 올케 언니와 아들과 딸은 어떻게 하라고 그 고집을 부리십니까? 오빠 도움으로 벌은 돈 일부라도 내놓을 테니 이쯤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쇼를 해보세요. 그러면 마음 여린 분들이 나서서 “철수를 살리자!”는 운동을 펼칠 지도 모르잖아요. 철수 오빠,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입니다. 교묘한 법 논리로 설사 감옥에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비판의 눈길과 손가락질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오빠의 자식들은 감당해야 할 운명이라고 쳐도, ‘우리 할아버지가 최고!’라고 믿고 있을 손자 ‧ 손녀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견뎌야 합니까?

철수 오빠, 제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호소하겠습니다. “우리 오빠 좀 살려 주세요! 이번 위기만 넘기게 해주시면 한 달 안으로 오빠 스스로 그 자리를 떠나게 설득하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호소를 한다고 해서 오빠에 대한 불신이 가슴 가득한 이들이 믿어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애를 써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오빠와 나, 올케 언니와 조카들 그리고 그 조카들에게서 태어난 오빠의 손자 ‧ 손녀들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요. 오빠,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