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스물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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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보다도 돈독敦篤한 우애를 간직해온 철수 오빠와 나는 다른 일에 있어서도 그랬지만 공사불이公私不二의 정신을 지키는 점에서도 100% 일치하였다. 그러니까 오빠가 재단의 최고 책임자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증개축의 명분으로 20억 원이 넘는 수련원 공사를 내가 맡아 ‘언제 무너져 내릴 지도 모르는’ 엉터리 시공을 하였고, 그것도 바깥에서 문제를 삼는 불행한 일만 안 생겼으면 2년 쯤 뒤에 내게 다시 보수 공사를 맡겨 5억 원 정도는 벌게 해주기로 되었는데 그놈의 ‘민주화’ 역병疫病이 오빠 가까이에까지 번져서 엉터리 공사가 소문이 나고 신문에까지 대서특필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내게 오기로 되어 있던 보수 공사는 준공된 지 1년 만에 엉뚱한 놈이 차지해서 돈을 벌게 해주었으니, 이때부터 실은 오빠와 나 사이에도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철수 오빠의 아방궁이 있는 그 건물의 한 층에 ‘순수 채식 사찰음식점을 열겠다’면서 한 달에 600만 원 정도 들어오던 임대료 수입을 포기할 때에 ‘혹 내게 그 식당을 운영하게 해주려나?’ 하고 기대를 하며 오빠에게 예전보다 훨씬 더 사근사근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7~8개월이 지난 뒤 뜬금없이 “식당은 맞지 않아서 1인용 사무실로 바꾸어 임대하겠다”며 다시 공사를 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공사도 내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층을 여러 달 동안 비워 두었어도 오빠 개인에게는 전혀 손해가 없다. 수천만 원의 손실은 재단이 입는 것이니 오빠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수천만 원 정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점에서도 철수 오빠는 탁월한 분이다.)

그래서 내가 오빠에게 강력하게 따졌다. “그까짓 수련원 한 2년 동안 문 닫아놓고 있다가 무너질 기미가 보이면, 나한테 10억 원짜리 보수 공사 주면 좋잖아요. 4억 원이면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나머지 중에서 오빠와 내가 3억 원씩 공평하게 나누어 쓸 수 있을 터인데 뭐가 그리 급해서 다른 아이에게 보수 공사를 주는 거예요? ‘식당 운영하겠다’고 했다가 1인용 사무실을 만들어 임대하는 쪽으로 바꾼 그 공사는 왜 내게 주지 않아요? 오빠 그 아이에게 빚진 일이 있거나, 책잡힌 일이 있기라도 한 거예요? 넥슨 김회장이 대학 친구 진모 검사장에게 꼼짝 못하듯이 그 아이가 오빠의 비밀 장부라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냐고요?”

이런 말을 들은 오빠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동생, 잠시만 참아! 내게 다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밖에서 강풍이 불 때는 납작 엎드리는 게 좋아. 그리고 그 놈은 1회용이야. …”라면서 나를 달래기만 한다. 예전 같으면 내게 야단을 쳤을 터인데,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나오는 것에서도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에 내가 엉터리로 공사를 마치고 이리저리 해서 준공검사까지 받고 난 뒤에, 조경공사라는 명목으로 나도 모르는 업체에 2억 원짜리 공사를 시켜서 수련원 주변에 산책로 대충 만들고, 나중에 추가로 1,500만 원을 더 주었다는 소식이 최근 내 귀에 들어온 것이다. “아니, 뭐야? 내게 상의도 안 하고 …”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화가 치밀어 얼마 전 그 현장에 다녀왔더니, 이것은 나보다도 훨씬 더 엉터리 공사였다. 산책로 하나 내는 데에 2억 1,500만 원이라니 …….

철수 오빠가 내게도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생겨서 이런 식으로 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내게 일을 시키지 않은 데에 대한 섭섭한 마음까지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제 70년 간직해온 철수 오빠와의 그 깊은 우애도 서서히 틈이 나서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돈의 위력 앞에서는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소용없다”고 하던 옛 어른의 말씀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와 철수 오빠가 이러면 안 되는데 …. 자칫 잘못하면 둘 다 잡혀 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데 ….

이왕 오빠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기로 한 마당에 철수 오빠라는 인물 됨됨이가 어떤지 솔직히 말해보자.

나치 군대가 라트비아를 점령했던 시절 유대인 학살에 적극 참여했던 유대인 수용소 경비대장 아라이스Arajs라는 인물은 “숨어있던 450명의 유대인을 학살시키려고 공동묘지로 끌고 가면서 만돌린으로 쇼팽의 장송곡을 직접 연주하는 엽기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나치 대학살: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최호근 지음/ 푸른역사. 202쪽)고 한다. 그런데 우리 철수 오빠야말로 한국판 아라이스라고 해도 그리 잘못될 게 없을 것이다. ‘그 놈’과 음모를 꾸며서 불교계 선배들을 재단에서 몰아내고 수십 년 동안 재단에서 땀을 흘렸던 직원들을 쫓아내고서도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즐길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고서는 ‘금선생의 문화 싸롱(Le Salon Culturel de Monsieur Geum)’인 ‘○○아카데미’에서 “내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떻고…”, “라캉은 이런 말을 했어. … 그런데 한국 불교는 뭐 하고 있느냐?”, “붓다의 본래 가르침이 이런데 현재 한국 불교는 아주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이걸 바로잡을 사람은 서울 법대를 나온 나밖에 없다”라며 입에 거품을 물며 떠들어대거나, 가라타니 고진을 초청해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자신이 ‘한국 불교계의 최고 지성’을 넘어 ‘세계적인 지성인’ 반열班列에 들어가겠다며 웃음을 지을 그런 사람이다.

철수 오빠를 잘 아는 이들은 요즈음 그 재단 돌아가는 꼴을 보고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잘 났다는 전임 이사와 감사들은 어떻게 하다가 그 놈한테 밀려나서 지금 ‘저런! 이걸 어쩌나?’ 하면서 혀나 차고 있느냐?” 그러나 이 점은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의 유대인들에 대한 위험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도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그들이 나치 독일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던 것이 ‘설마?’ 하는 식의 인간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갖고 기다리다가 결국 모든 유대인들이 절멸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던 것처럼, 오빠의 선배인 그 재단의 전임 이사들과 직원들도 철수 오빠에 대해 ‘설마?’ 하는 식의 인간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다가 멍청하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 오빠가 현재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었던 법대의 그 선배님은 요즈음 상황이 전해져도 “철수가 설마?”하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말은 철수 오빠에게 당한 사람들과 그 재단에 딱 들어맞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철수 오빠는 보통의 상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이 쇼팽의 장송곡을 연주하는 라트비아 유대인 수용소 경비대장 아라이스와 같은 별종別種이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심지어 피를 나눈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

그런데 우리 오빠에게 속아서, 아니면 그 소박한 인간적 믿음 때문에 ‘설마?’ 하다가 큰 코 다친 선배들이나 ‘어 …!’ 하고 있다가 크게 당한 직원들을 잘 보면서도 아직도 철수 오빠와 그 하수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키는 일인데 어떻게 해요? 내게 무슨 힘이 있어요?”라며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도피하는 이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도 오빠와 함께 그곳의 돈을 좀 빼먹기는 했지만, 당신들처럼 멍하니 있다가 당하는 데에는 당신들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건 변명도 핑계도 그 무엇도 아니오. 스스로 ‘나는 로봇이나 다름없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말을 해? 그 아이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게 되면 오빠 말을 거역하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내가 저지른 그 엉터리 공사의 비리도 다 드러날 것이며 앞으로 절대로 다른 공사를 받아서 돈을 벌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될 터인데 ……. 아무래도 요즈음 이어지는 폭염暴炎 때문에 내 머리가 이상해졌는가 보다. 이걸 어쩌나?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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