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더 이상 오빠에게 돌팔매 던지지 마세요”

이병두 | beneditto@hanmail.net | 2016-07-27 (수) 16:55

이병두 엽편葉片 소설 ‘철수와 영희’, 그 스무 번째 이야기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행복을 지킬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출신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순수박물관》의 주인공이 어느 한 순간을 회상하며 하는 독백이다.(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순수박물관》1, 민음사, 15쪽)

 

요즈음 철수 오빠, 그리고 10여 년 동안 오빠와 오월동주吳越同舟 ‧ 동상이몽同床異夢해온 ‘그 놈’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그 행복했던 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린 거야?’라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독백하듯 털어놓는다. “나는 아주, 아주 큰 고통을 겪었다. (…) 도둑처럼 구석에서 몰래몰래 고통을 겪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더구나. (…) 고통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고, 이대로 가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위 책 《순수 박물관》1, 154 & 155쪽) 이와 똑같이, 아마 오빠와 ‘그 놈’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여기던 그 시절에도 내가 보기에는 이 두 사람이 큰 고통을 겪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도둑처럼 구석에서 몰래 겪는 고통, 올케와 아들들에게도 말 못하는 재단 운영상의 여러 가지 비리 …… 등등으로 아무도 안 보는 어두운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놈’도 ‘종교시설을 운영하면서 슬쩍슬쩍 챙긴 돈으로 단란주점 다니며 호기를 부리던 일들’, ‘음모를 꾸며서 여러 선배들을 쫓아냈던 일’, ‘자신을 친 아들처럼 아껴주던 전임 이사장이 돌아가신 뒤 그 가족에게 인사조차 다녀오지 않은 배신’, ‘재단 지원금 나누어주면서 이곳저곳에 자기 인맥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겸임교수兼任敎授라는 그럴듯한 직함까지 얻어낸 일’, ‘깨달은 척 하면서 참선 지도한다고 함부로 나냈던 일’, ‘엉터리 공사인 줄 알면서도 완벽하다고 거짓말 한 일’, ‘누군가를 지목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일’ …… 등등으로 혼자서 얼마나 긴 고통의 세월을 보냈겠는가.

 

오빠와 ‘그 놈’, 둘 다 어두운 구석방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거룩한 불교 지성인인 척, 대단한 명상 수행자인 척 해야 했으니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이라도 자비심慈悲心이 있는 이들이라면 철수 오빠와 ‘그 놈’을 십분十分, 백분百分 이해하고 설사 이들에게 큰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감싸주고 이들이 돌팔매를 맞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자비慈悲’를 내세우는 불교인들이 그까짓 공사비 십 수억 원 챙겨먹었다고 해서, 프랑스에 20억 원 들여서 ‘이름만 수련원’을 사놓고 그것을 점검한다는 핑계로 올케와 달콤한 추억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아들이 관련된 공익 재단에 몇 억 원 지원했다고 해서, 문화센터에서 돈 좀 챙겨 룸살롱을 다녔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느냐 말이다.

 

오빠와 ‘그 놈’이 오빠의 법대 후배인 진 검사장처럼 수백억 원 사기를 쳤느냐, 최모 변호사처럼 범죄인 꺼내주겠다며 100억 원을 요구했던가, 대우조선 남모 사장과 고모 사장처럼 수조 원대 회계 조작을 해서 수천억 원을 나누어 먹었더란 말이냐. 이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어두운 방구석에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철수 오빠와 ‘그 놈’은 양심범良心犯에 가까운 사람들이니 이제 이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그만 쏘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물론 오빠가 주변 사람들한테 ‘잘난 척’ 하고, 자신이 이 나라 최고 수준의 법대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다른 사람들을 얕잡아보면서 인심을 잃은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오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나한테는 어떤 것이 유럽산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방한 물건을 가짜이기 때문이 아니라, ‘싸게 샀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챌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정말 나쁜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상표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 .”(위 책 《순수 박물관》1 , 236쪽)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파순의 말과 똑같이, 실상 오빠에게는 ‘이 나라 최고의 법대를 나온 최고의 불교 지성인’이라는 이 타이틀이 중요할 뿐이지 그곳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배워서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하는 점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상표가 누덜누덜해지고, 그곳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결국 오빠의 졸업장은 형식상은 명품이지만 실제로는 ‘짝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 어찌하는가.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법대 출신’이라는 그 짝퉁 타이틀 마저도 효력을 상실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 검사장급 이상 검사의 62.5%가 나왔다는 그 법대 출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어서 이제 철수 오빠가 더 이상 ‘잘난 척’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7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옛날의 그 기백을 잃고 올케에게도 쩔쩔 매게 된 오빠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에 오빠가 애처롭고 불쌍하다. “오빠, 왜 그러셨어요? 힘 있을 때 주변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지금 이렇게 외롭게 되지 않으셨을 것 아닙니까. 올케언니에게도 잘 해주고, 아들들한테도 자애로운 아버지 이미지를 쌓아놓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직원들도 위해주는 척하고, 오빠가 챙기는 것의 10분의 1만이라도 그들과 나누어 드셨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으셨을 터인데 ……. 아, 왜 그러셨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지만, 오빠의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앗아가 버릴까봐 이마저도 조심스럽다.

 

이 소설을 읽어주시는 애독자 여러분, 우리 철수 오빠를 살려주세요. 더 이상 오빠에게 돌팔매 던지지 마세요. 철수 오빠 스스로 ‘이제 날개를 접을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몇 년 만 더, 올케 언니 비행기 표도 재단 공금으로 살 수 있게 해서 두 분의 아련한 추억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빠 아들인 내 조카가 참여하는 공익재단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오빠 재단에서 매년 5억 원씩만 지원하고 그 덕으로 조카가 그럴듯한 대학교 정교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애독자 여러분, 철수 오빠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질게 했지만 가족에게만은 진실한 분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주세요. 가족을 위해서 작은 업무상 배임과 비리를 저질렀을 뿐이니, 수천억 원을 해먹은 대우조선 전임 사장들이나 오빠의 법대 후배 최모 변호사 ‧ 진모 검사장과 오빠를 똑같은 범죄자로 몰지는 말아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철수 오빠, 가족에게는 아주 좋은 남편이고 오빠이고 아버지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대한민국에서 철수 오빠처럼 공사불이公私不二 정신을 확실하게 실천에 옮긴 분을 다시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쓸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주실 분은 필자의 E-메일 <beneditto@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