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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자심(不欺自心)④ 주고도 욕을 먹는 사람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6-07-27 (수) 09:59

[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65 – 사전 협의의 중요성


 

모든 글은 내 이야기고 내 생각일 따름이다. 그런데 모두 자기 이야기라고 한다. 왜 그러고 싶은지를 보면 좋겠다.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모양을 내며 행동을 하고 실천을 한다.


뭔가가 싫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빨리도 바로 싫은 표정과 몸짓이 나온다. 그리고 험담하거나 싸우는 등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한다. 아니면 적어도 상대를 불편하게끔 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산 정약용의 사의도 이런 의미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생각, 표정, 모양, 몸짓, 옷차림, 행동 모두를 잘 살펴야겠다.

 

괜한 오해를 자주 사는 사람 A가 있다. 마음도 착하고 다 좋은데, 한 가지 실수가 상습적으로 존재한다. A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잘해 주고 싶어서 한 마디를 하거나 행동을 한다. 하지만 상대방들은 그 별다른 생각 없음을 '개념 없음'으로 받아들이고 반격한다. 오해, 왜곡, 다툼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로 묘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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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오봉저수지의 연꽃

 

 

예를 들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A는 설렁탕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우연히 동료들과 같이 가서 먹게 되었다. 설렁탕 위의 고기 수육이 몇 개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B에게 그냥 퍼준다. A는 B를 비롯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 아니, 굳이 나쁘게 지낼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B가 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B는 고기를 매우 좋아하지만 A와 친하지 않고 친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당연히 A와 친한 모습을 남들에게도 보여주기도 싫다. 어쩌면 거꾸로 남들에게 오해를 사는 4차원과 같은 A와 굳이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고 그런 모습을 보일 하등의 이유도 없다. 까닭에 A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굳이 친해질 이유가 없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서 굳이 A에게 고기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은 B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B는 A 이외의 모두이기도 하다.

 

B는 마침 속이 좀 불편해서 해장할 겸해서 설렁탕집에 왔으나, 적어도 오늘은 고기까지 먹고 싶지 않다. 더욱이 다이어트도 해야 하는 등등 자기 설렁탕의 고기조차 먹고 싶지 않은 다양한 이유가 있는 가운데 A가 갑자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에게 고기를 건네 탕 위에 얹어준다. 오해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어서 B는 당황해 '버럭' 화를 낸다. "지금 뭐하는 건가요!"라고.

 

A 역시 속으로 화가 난다. 고기를 좋아하는 듯해서 다 알고 준건데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다. 하지만 A의 잘못이 맞다. 고기를 건네주려는 마음은 나쁘지 않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러고 싶은 자기 마음, 아니 그 욕심만을 중시한 것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자기가 줬을 때 B가 불편해 할 요소는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등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주고 싶은 자기 욕심만을 중시했다. 그런 욕심에 집착한 결과가 항상 이런 오해와 불필요한 사고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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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오봉저수지의 연꽃

 

 

해결할 방법은 우선 한 가지가 있다. 정중하고 조용하며 은밀하게 B에게 사전에 상의하며 물으면 된다. "제가 고기를 드리고 싶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고기를 드려도 될까요?"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싫다면 안 주면 되는 것이고 좋다고 하면 퍼주고 싶은 '자기 욕구'를 정당하게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A는 '정중한 초대'를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 B가 달라고 할 때 주면 된다. 하지만 B는 A에게 달라고 할 이유가 그다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주고 싶다면 사전에 정중하고 신중하게 상대방의 의사를 물으면 된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항상 바라봐야 한다. 확실하게 적어도 70∼80% 이상 상대방이 좋게 받아들이고 거의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정말 친밀한 상태가 아니라면 함부로(여기서는 사전 동의 없이의 의미) 상대에게 '마음'이든 '물건'이든 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전협의라는 그런 필터링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건 행복을 주고 베푸는 게 아니라 고통을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A도 B도 다 아프게 된다.

 

결국 뭐든지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의사를 살피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도 존중받게 되나 보다. 이게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지혜인 듯하다. 내가 제일 못하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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