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 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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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치하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나치 대학살에 큰 책임이 있는 슐레겔베르거라는 인물이 종전 후 뉘른베르크 군사 법정에서 행한 마지막 변론에서 ‘정의正義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워온’ 자신에게 ‘이런 재판은 치욕’이라고 주장했단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혹 우리 철수 오빠가 이런저런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를 받게 된다면 이 슐레겔베르거와 비슷한 주장을 할 것이다. “나는 오로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잘못 가고 있는 불교를 내 이념에 맞추어 바로잡기 위해 싸워왔다”고.

그런데 그 말, 철수 오빠가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그 말을 누가 믿어줄까? 하긴 전두환씨가 두 아들과 아내 이순자씨, 동생 전경환씨 그리고 처남 이창석씨를 위해서 기업가들에게 빼앗은 돈과 국민 혈세血稅로 이루어진 국고를 제 쌈짓돈처럼 사용私用했듯이, 철수 오빠도 동생인 나와 오빠의 아들 등 ‘가족을 위한 정의情誼 실현’에는 뚜렷한 자취를 남겼으니 철수 오빠가 ‘나는 대한민국에 정의를 구현하려고 태어난 인물’이라고 주장을 해도 틀릴 것은 없다.

문제는 우리와 동향同鄕으로 ‘1% 귀족이 나머지 99%를 지배하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교육부의 그 소신所信 있는 고위공무원은 여론의 화살을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술 탓’으로 돌릴 수라도 있지만, 모범적인 법대 졸업생에 예의 바른 공무원 출신인 오빠는 결코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실수를 하거나 한 적이 없으니, 모든 것을 ‘술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다는 데에 있다. 하긴 평소 술을 즐기지 않았으니 오히려 “소주 몇 잔만 마셔도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속임수를 쓰기가 쉬울 수도 있다. 아참 이 기발한 내 생각을 1초라도 빨리 전해야겠다. “오빠, 어려운 일이 닥치면 무조건 발뺌 하세요. 그래도 안 되면 ‘마시지도 못하는 술 몇 잔 했더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고개만 가로 저으며 답답한 척 하세요. 그렇다고 옛날식으로 물고문을 하거나 ‘책상을 탁 쳐서’ 오빠가 ‘억하고 쓰러지게’ 할 기관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요.”

남은 과제는 오빠를 이끌어준 그 ‘법대 선배님’이 끝까지 오빠의 잘못을 모르게 하고 오빠 조직에서 오빠가 어질러 놓은 쓰레기들을 치우는 청소부와 사냥개들이 오빠를 배신하고 대드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조종하는 일인데, 이게 쉽지 않다. ‘그 선배님’의 귀와 눈을 완벽하게 막는 것도 힘이 들지만, 그동안 오빠가 편하게 부려왔던 이 청소부와 사냥개들이 “내가 쓰레기 치워주면, 사냥해주면 내 몫은? 나한테는 무엇을 줄 것이냐고요? …… 지난 몇 년 동안 하신 짓, 내가 모든 사항을 머릿속에 갖고 있거든요. 컴퓨터에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언제라도 쓸 준비를 해놓고 있거든요.”하며 그 동안 오빠에게 당한 서러움을 한 순간에 다 갚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도저히 불감당不堪當이라는 데 있다.

세상이 잘못 되어 그놈의 ‘민주화’ 역병疫病이 널리 퍼진데다가 오빠 스스로 이들에게 신의信義를 보여준 적이 없어서 이들도 속으로는 오빠를 불신해왔지만, 그보다 현실적인 것은 오빠의 운명이 끝나가고 있음을 이들도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단 한 가지를 할 때에도 대가를 요구할까봐 겁이 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빠를 두렵게 하고 밤마다 흉몽凶夢을 꿀 수밖에 없게 하는 일은 또 다른 데에 있다. 철수 오빠가 사랑하고 올케와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땅 프랑스, 그 프랑스 출신의 작가인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며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글에서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라고 한 이 구절이 요즈음 오빠에게 섬뜩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진실이 폭발해서 오빠뿐 아니라 우리 가족들 날려버릴까’ 두렵다는 것이다.

아, 내게 ‘진실을 영원히 땅 속에 묻어둘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 ‘진실’ 같은 것들은 영원히 땅 속에 묻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드러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세상, 그 놈의 ‘민주화’ 바이러스가 가져온 후유증이 틀림없다.

이참에 ‘민주화 척결 연대’와 함께 ‘진실 매장 연대’도 만들어볼까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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