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 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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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요즈음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국가의 100년 대계를 세우고 실행하는 정책 부서인 교육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 각 과장을 거치고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대통령실] 행정관을 지낸 뒤 교육부로 돌아와 정책기획관을 맡고 있는 어느 고위공무원이 기자들 앞에서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된다. 국민의 99%인 민중은 개 · 돼지다. 이들은 개 · 돼지로 취급하고 밥만 먹여주면 된다.”고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또,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KEI)의 최고 책임자가 자체 워크숍에서 “천황폐하만세!”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데, 이 인사의 아버지는 1979년 12.12 군부 쿠데타의 핵심 중 한 명으로 전두환 정권 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냈다고 하고 본인 말로는 할아버지도 일제의 조선 수탈 기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했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

이 두 인물을 질타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도 철수 오빠는, 늘 그래 왔듯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중들 앞에서는 “나쁜 놈들 …….”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가족들만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 국민의 99%가 아니라 99.9%가 개 ‧ 돼지처럼 먹여주기만 하면 되는 밥통들인데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난리를 치는 거야. 그들이 프랑스 철학을 아냐, 공맹孔孟과 석가모니를 아느냐? 내가 보기에는 교육부 나 국장이나 이 센터장은 다음번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켜서 이 나라 보수 우익의 기둥으로 키워도 되겠던데, ‘민주화’ 바이러스 때문에 이런 일에도 흥분하고, 이런 훌륭한 인재들을 여론 재판으로 죽이는 이 나라가 정상이냐? ……”라며 이 두 인물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드러낸다.

우리 철수 오빠는 이처럼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부정직했다.’ 오빠는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참지 못했고, 그래서 세상을 향해 그 오만한 냉소를 계속 던지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주 젊었을 때부터 속임수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F. 스콧 피츠제랄드 지음, 김석희 옮김, 《위대한 개츠비》, 열림원. 94 & 95쪽을 살짝 고쳐서 인용함) 자신을 믿었던 친구를 속이고 심지어 피를 나눈 형제인 나를 속이는 일도 다반사茶飯事였으니, 지금 최고 자리를 차지한 재단에 들어가서 그곳을 장악하는 일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던 것이다.

타고난 ‘부정직不正直’ 말고 또 우리 오빠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또 다른 특기와 장점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 그 잘못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만든 쓰레기를 오빠가 직접 나서서 치우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톰 뷰캐넌과 데이지처럼 철수오빠는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박살내놓고는, 돈이나 무신경, 또는 그들을 서로 묶어준 어떤 것 속으로 숨어버린 다음,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치우게 했다.’(위 책 《위대한 개츠비》, 277쪽)

내가 엉터리 공사를 해서 문제가 불거진 그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경계에 자리 잡은 수련원’의 경우에도 재빠르게 쓰레기 치우는 아이들을 동원해서 ‘날림 공사’ 현장을 살짝 가리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나도 크게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오빠가 뛰어난 점은, 이번에는 쓰레기 치우는 일을 다른 아이에게도 시킨다는 것이다. 평소 오빠에게 불만이 있으면서도 차마 대들지는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나를 발탁해 측근으로 삼아주지 않을까’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에게 쓰레기 치우는 일을 맡겨서 이 수련원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선전하라고 시키니까, 이 아이는 감지덕지感之德之해서 그야말로 둔마지로鈍馬之勞를 다하게 된 것이다. 아, 철수 오빠의 뛰어난 용병술 …!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인가, 오빠가 계략을 꾸며서 떠나게 한 인사에게 “이 문제가 확대되고 사법처리를 받게 되면 귀하의 책임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운명체인 것 아시죠?”라면서 반半 협박을 해서 속으로는 불만을 가득 품고 ‘열여덟’ 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살고 있던 그 인사까지 “금철수錦鐵秀 이사장은 아무 잘못도 없다”며 관계자들을 설득하러 다니게 만들었다. 이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철수 오빠를 하늘이 알아주어 일찍이 장관과 국무총리를 하게 했다면 우리나라가 ‘미국-중국-러시아-일본美中露日’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일이 없이 교묘한 줄타기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시야도 좁고 규모도 작은 불교계 안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정직’을 최대 무기로 갖추고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이들이 치우게 하는 능력을 갖춘 철수 오빠를 국무총리가 아니면 최소한 외무부장관이라도 시켜주어야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 내 생각엔 그리 되면 오히려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을 속여 가며 이익을 챙길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혹 자신의 이익을 챙길 때에는 이런 재주를 갖추었지만 국가를 위하는 일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가 대통령이라도 철수 오빠처럼 ‘부정직’한 사람은 등용하지 않을 것도 같다.

갈홍葛洪이 《포박자抱朴子》 <광비廣譬>편에서 “지렁이를 아름답게 꾸미고 찬란하게 장식한다 해도 오색구름을 타고 높이 오르게 할 수 없고, 가짜 새를 깎고 다듬어 울긋불긋 색깔을 넣는다 해도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날게 할 수 없다. 짚으로 만든 강아지를 황금이나 비취로 꾸민다 해도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며 빨리 치달리게 할 수 없고, 재주가 천박한 사람에게 총애와 녹봉을 풍성하게 내린다 해도 천지를 깨끗하고 태평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똑같이, 철수 오빠가 아무리 동서고금의 사상가를 들어가며 ‘인류 문명의 위기’와 ‘생태 위기’를 거론한들, 오빠가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태평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동생인 나, 오빠의 두 아들과 올케 언니가 안다. 그리고 오빠와 오월동주吳越同舟 ‧ 동상이몽同床異夢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인물, 오빠가 어질러놓은 쓰레기를 치우는 오빠의 사냥개들도 잘 안다. 철수 오빠는, 본인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고 장식을 한다 해도 결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지렁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렁이가 용인 줄 착각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할까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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