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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자심(不欺自心)③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6-07-12 (화) 13:31

[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63 –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진을 본다는 것은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이나 풍경을 보는 건가요? 그렇게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다른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진의 가치는 그런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느낀다고 말하는 것 가운데 우리의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욕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진을 찍은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나요? 아니 그런데 그 마음을 이해했다는 사람도 참으로 많습니다.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도 그렇습니다. 물론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마음대로입니다. 제멋대로입니다. 내 맘대로입니다.

 

하지만 누가 알아요?! 내가 좀 더 잘 맞췄는지요?
혹시 알아요? 그러다 보면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지요?
그 마음을. 그 욕망을. 그리고 내 마음을.
차 한 잔 합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죽음이 끝은 아닙니다.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언제나 행복한 듯합니다. 대부분 천인(天人)이 되거나 아니면 귀신으로 남겠지만 업에 따라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은 우리 불교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말은 '윤회전생'과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죽음' 앞에서는 '상실'과 '괴로움', '외로움' 그리고 '슬픔'을 느낍니다. 우리 곁을 떠난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웃으면 보내주는 게 친구고 가족이 아닐까요?

 

뭘 더 기다리는지…….

말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은 힘들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서 바로 내가 하는 것이 나입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자화상들입니다. 불혹이라는 마흔을 지난 당신은 이미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거의 배웠고 필요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도 이미 거의 만났습니다. 뭘 더 기다리고 계신가요? 지금 여기서 바로 당장 시작하면 됩니다. Just do it!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그래서 마을 골목을 한껏 걸었습니다. 누가 내게 오늘을 즐길 자유를 준 것일까요? 시베리아의 추위 속에서도 알몸으로 서 있어야 하고 사하라 사막에서 맨발로 걸어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놀라운 기적과 같은 고마움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1등이 되면 행복할까요? 승진을 하면 행복할까요? 다 환상일 따름입니다.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해 하세요. 정말 바라는 게 있으면 한 걸음만 조금씩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 보세요. 너무 큰 걸음으로 빠르게 나아가려고 하지 말고요. 그러다보면 갑자기 차원과 안목이 달라지는 곳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도 바라지 말고 나아가세요. 왜냐하면 행복을 찾으러 다니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한데 왜 행복을 찾으세요?

 

행복은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늘 함께 합니다. 행복은 오직 나만이 지금 바로 여기에 초대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도반이 행복입니다. 그러니 이성친구가 유혹해도 쫓아가지 마세요. 잡을 수 없고 잡아도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아주 조금만 서서히 다가가세요. 그러면 사랑도 이뤄집니다. 부처님은 최고의 '밀당가', 다시 말해서 '밀당'에 있어서는 고수 가운데 고수였을 듯싶습니다. 다가가지 않고 오게 하는 그런 '밀당'으로 행복을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지만 쫓아다니면서 즐겁고 상대도 좋다고 하며 남들도 보기 좋다고 하면 그때는 한번 쫓아가 보세요. 왜냐하면 그것도 재미고 행복이니까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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