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62 –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

지금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성공에 대한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의 저변에는 ‘낱장 광고’나 신문 가십 같은 어처구니없는 극단적인 ‘왜곡’된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보면 오히려 성실하고 온화하고 재치도 있으며 재산도 있고 권력도 있으면서도 겸손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면서 같이 공부도 하고 대화도 하며 술도 먹지만 그들도 같은 인간으로, 아니 보통 사람들보다 선량한 이들의 퍼센트가 1% 이상 더 많은 듯하다.

내가 그들보다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난 그들에게 비굴해져본 적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모르는 불교 수행 티베트 이야기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올 때 방종하지 않고 입을 닫았고, 부득이 대답해야 할 때는 아는 대로 말했으며 그들도 겸손하게 들었다.

가끔 필요 이상으로 칭찬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하심’을 잃지 않았다. 그들의 ‘칭찬’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볼 때는 어떠할까? 그들의 방정식 대로 볼 때 ‘성공’하지 못한 이를 대할 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세속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모습에는 권력기관의 속성이나 언론의 대응,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세, 전문 경영인의 양심 등 수많은 화젯거리 속에서도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겸손과 하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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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 모습

나도 그러하다. 자존감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열등감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고 나의 부족함으로 빈자리에, 아니 자리를 치워서 상대를 받아들이며, 자존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자존감으로 당당하게 대하며, 비굴하지 않고 겸손하고 하심하는 것이 아닐까?

아부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부는 자존감이 없으며 비굴하며 또 그들의 ‘성공’을 원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떤 모임을 가든 양극으로 스펙트럼을 펼쳐보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지만 잘 보면 전혀 다르다. 모두들 봄철 나뭇잎의 색깔을 하고 있더라도 그 색은 같지 않다. 색 뿐만 아니라 향도 다르고 촉감도 다르다. 그런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피라미드나 사닥다리 형태로 구분이 된다. 하이어라키를 수평으로 스펙트럼처럼 본다고 해도 구분이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작년 겨울에 이미 땅에 떨어져서 밝힌 나뭇잎 색으로 고동색인 분들도 있다. 대부분 정년을 하거나 현직을 떠난 분들인데 산전수전까지 다 겪어서 이미 한 세월을 지나 한 소식을 했다. 숙성 발효된 보이차 가운데 봄차로 만든 92년산 춘첨청병처럼 약간의 파릇파릇함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이들은 그들을 초록색으로 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색깔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는 분들 가운데 가끔 ‘겸손’하지 못한 이들은 끈 떨어진 그들이나 세상적인 성공을 못해본 나 같은 이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이 모임에 잘 안 어울린다’로 시작해서 ‘좀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같이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는 식으로 무언의 눈치를 주는 이들이 가끔 포착된다. 난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걸까에 대한 검토를 나름 마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놀라운 일은 대부분 이런 이들에게서 우리가 가져갈 것은 없다. 왜냐하면 뭔가를 빼앗긴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마음이 넉넉해서 텅 빈 것이 아니라 욕망에 사로잡혀 실제로 배부른데도 허기가 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놀랍게도 얼마 못가서 모임을 그만두거나 자신의 현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다들 이유는 짐작하는 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걸 본인도 아니 무의식적으로 아는 듯하다. 그러기에 ‘빼앗김’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자기최면을 거는 것일까?

같이 있어도 색이 다르다. 초록은 동색이고 같은 차라도 녹차 포종차 우롱차 보이차처럼 다르다고 하면 많이 다르다. 하지만 각각의 차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다만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있고 그런 자존감의 확장시켜 남에게 겸손하고 하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런 생각도 한 분이 있으면 차 한 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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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 모습

동대문 네팔 쉼터를 돕는 여성분들이 오셨다. 급하게 필요한 게 있어서 챙겨드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쥐약이었다. 쥐가 출몰하는데 끈끈이로는 큰 쥐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약국에 갔더니 외국인(네팔인 또는 네팔에서 온 이주배경을 가진 귀화 한국인이나 영주권자)에게는 쥐약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냐며 바로 아는 약사님께 전화를 했다. 약사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독극물이어서 한국인들에게도 안 판다고 하고 요즘은 제조조차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외국인이어서 안 판다고는 하지 않고 그냥 없다고 했나 보다.

같은 말을 하는데 받아들임이 다르다. ‘손해 본다’, ‘빼앗긴다’. 아물지 않은 열등감의 상처들이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 가면 같은 말이라도 갑자기 몰입해서 ‘화’를 내거나 ‘불평’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본다. 수행을 한다는 그룹에서도 그러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입은 ‘왓칭(watching)’이니 ‘어웨이크니스(awakeness)’를 떠들면서 실제로 스스로조차 관찰을 못한다.

먼저 너만 봐라. 너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 굳이 말을 하자면 그 말을 뒤집으면서 ‘상대’의 아픔을 지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나 모임에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어쩌다 그렇게 하면 ‘짓궂음’으로 이해하는 ‘바보’나 중재를 함으로써 레프리의 역할을 하려는 ‘간세’가 등장한다. 언제나 그런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모두들 자신의 역할을 알기에 그렇다. 딱 그만큼의 역할을 할 정도로 무르익어 스스로의 위치를 노출시킨다. 리딩 당하는 줄 모르면 리딩한 것을 자랑한다. 무언으로 넘어갈 것을 굳이 이야기해주는 성의는 보지 못한다. 중재를 할 때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사람이 어쭙잖게 나선다. 아픔, 열등감, 자존심을 덮으려는 ‘권력욕’이다.

요즘 여기저기에 말만 번지르르한 ‘강사’들이 늘었다. 말은 누구나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을 봐야 한다. 스스로만 잘사는 사람인지 남도 돕는 사람인지. 말만 그런지 언행일치를 하는지. 언행이나 지행일치를 하는 이의 말에는 울림이 있고 그 울림속의 밀도도 참으로 압력이 대단하다. 그게 있어서 펼쳐짐이 있나 보다.

울림에 펼쳐짐은 고작이고 밀도가 느껴지는 이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일상적’인 말을 보다 ‘철학적’으로 말만 떠드는 ‘현학적’인 이들도 늘었으며, ‘과학’을 앞세운 교주들도 나타났다. 말을 쉽게 전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통해 보다 어렵게 만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세상이 너무 아파서 그런 듯하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어떤 운동권들은 좋은 집에서 떵떵 거리며 살며 정치를 농락하고 ‘철학’을 이야기하며 실제로는 주변의 착하고 어린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그런 인간들 가운데 자신이나 주변인들의 사고를 가끔 본다. 참 안타까운 일들이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다. 하늘의 공평함이.

성공했으면서도 ‘빼앗기는 듯하다’고 한 사람이 네팔 쉼터의 이주민과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이야기를 이해한 사람이 있으면 차 한 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