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타 스님이 들려주는 금강산 전설

“어느 날 종운의 눈앞에 묘길상 전체가 금덩어리처럼 보였다”

미디어붓다 | | 2016-06-22 (수) 19:00

[법타 스님이 들려주는 금강산 전설] 11 - ‘묘길상’ 전설

 

 

 

고려말기 내금강 표훈사에 나옹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어렸을 때 승려가 된 그는 일찍부터 불학에 마음을 두고 많은 불교서적을 읽어 불교의 교리에 능통하였고 그 지식 또한 깊고 풍부하였다. 그리하여 나옹은 금강산의 여러 절들에 불교를 전파하고 그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사로까지 되었고 고승으로 명망이 높았다.
 
 세월이 흘러 고령이 된 나옹은 어느 날 자기가 살아온 한 생을 감회깊이 돌이켜 보았다. 어려서 금강산에 들어와 불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 십 년 오로지 잡념 없이 불도만을 연구하고 수많은 제자를 키웠으며 절간들을 짓는데 한 몸 바치었으니, 그만하면 불학자로서 마음에 꺼릴 것이 없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혜택 속에 고통 없이 살아가는 속세를 보지 못한 것이 큰 한이었다.  이 소원까지 풀고 기쁜 마음으로 생을 마치고자  마음먹은 나옹은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산속을 내려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찾아갔다.

 

 나옹이 어느 한 마음에 이르러보니, 산천의 풍치가 아름답고 그윽한 정서가 넘치는지라 스스로 기분을 돋구며 여기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이 모두다 불화를 모르고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그가 담을 높이 둘러친 어떤 집 대문 앞을 지나갈 때였다. 그 안에서 심히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왔다. 웬 일인가 해서 안에 들어가 보니, 집 주인인 듯한 양반이 열 두어서너 살이나 되었을 어린 아이에게 모질게 매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았더니, 주인 양반이 저에 아버지가 자기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많은 빚을 남겨놓고 죽었는데 아들인 이 아이가 빚도 물지 않고 종살이도 하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날 밤 나옹은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 나옹이 어느 외딴 처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밖에서 투닥투닥 발자국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서 “잡아라, 죽여라.” 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그가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니, 웬 군사들이 장정 하나를 붙잡고 뭇매를 안기고 있었다. 키가 구척 같은 장신의 젊은이가 순식간에 땅에 쓰러져 피를 낭자하니 흘리고 있었는데 그 정상은 보기조차 처참하였다.  알고 보니 군사들은 그를 도적이라고 하면서 매를 안기었고 그는 자지는 도적이 아니라고 항거해 나섰던 것이었다.

 

‘왜 세상이 이렇게 소란스러우냐. 부처님의 뜻은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선한 일만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로 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내 지성이 부족했던 탓 인가보다.’

 

 

내금강 묘길상. 높이 15m, 너비 9.4m, 고려, 북한 국보급 제102호.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만폭동에 있는 아미타여래상. 고려시대 아미타여래불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과 조각기술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옹은 애초에 품었던 세상 구경을 단념하고 다시 절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부처를 마주하여 불학에 바쳐 온 한 생을 자부했던 자신을 뉘우치고 무엇인가 큰일을 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두루 궁리하던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큰 불상을 하나 새기는 것이었다. 부처를 하나 크게 새기어 그의 신령스럽고 자비한 뜻을 더 널리 알려주자는 것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옹은 부처를 새길 만 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산세가 우람차고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다움에 한쪽에는 만폭동과 통하는 길이 있어 불공을 드리러 오기도 좋은 곳이었다.

 

 그는 아찔하니 높은 절벽으로 된 바위 벼랑에 내세를 가르쳐주는 미륵보살의 상을 새기기로 하고 다음날부터 숱한 석공들과 승려들을 불러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벼랑에 올라가 먹줄을 치고 미륵의 화상을 그런 다음 석공들에게 쫓게 하였다. (일설에는 나옹 자신이 새겼다는 말도 있다.) 또 그 앞에는 넓은 터를 닦고 암자를 지은 다음 큰 석등까지 세워 절을 찾는 사람들이 아무 때고 불공을 드릴 수 있게 하였다.

 

 나옹이 돌아보니, 보살은 수려한 산발을 타고 내려오다가 급작스레 끝이 난 단애절벽에 붙어 거연히 틀고 앉았는데 그 거룩함과 신령스러움이 비길 데 없었다. 그래 나옹은 부처의 이름을 ‘묘길상’(미륵의 딴이름)이라 하고 그 앞의 절을 ‘묘길상암’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나옹은 이제는 부처의 뜻이 멀리 퍼지게 되고 그 위엄도 있게 되었으니 사람들도 그 뜻을 받들리라 생각하고는 스스로 만족에 겨워 하다가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다.

 

나옹이 이렇게 애를 써서 불상을 새기고 절까지 저어 놓았지만 웬 일인지 그 후에도 부처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옹을 받들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다 어디론가 흩어져가고 묘길상암에는 종운이란 승려가 혼자 남게 되었다. 나옹의 말대로 부처만 잘 믿으면 불화도 없어지고 잘 살게 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부처를 믿어도 잘 살기는커녕 주림을 면할 수가 없었고 혹한의 겨울에는 몸에 스며드는 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종운은 핍박하는 생활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게 하여 달라고 부처님에게 빌고 빌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년째 거듭하던 어느 날 종운의 눈앞에 묘길상 전체가 금덩어리처럼 보였다.

 

 종운이 너무 반가와 그 한쪽 귀를 쪼아보았더니, 금이 분명한지라 우선 키가 닿는대로 따내어가지고 장에 팔러갔다가 막상 돈을 받으려고 하니 그것은 금이 아니라 보통 돌이었다. 화가 난 종운은 아무리 열심히 빌고 빌어도 은혜를 모르는 놈은 바로 부처 네놈이로구나 하고 절을 뛰쳐나와 평민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나옹이 그렇게 애써 새겨놓은 부처는 제 몸뚱이까지 떼운 채 버림을 받고 산골짝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지금도 묘길상에 가보면 종운이란 승려가 떼어낸 귀와 부서진 자리가 그대로 있다. 묘길상 암은 사람 없이 오래되어 스스로 무너져 내렸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고 그 옆에 세웠던 석등만은 아직 그대로 제자리에 있다.

 

 * 금강산의 묘길상은 높이 40m나 되는 자연석에 그대로 새긴 부처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자연석상이다. 그 부처가 앉아있는 키가 15m이며 너비가 9.3m로서 포개고 앉은 무릎의 높이만 해도 사람의 키보다 손가락 하나가 더 높다. 또한 금방 웃는 듯한 눈매와 입맵시는 매우 생동하면서도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위엄스러운 자세에 비해볼 때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 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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