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59 – 인사가 만사라지만…

인사가 만사라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분이 승진을 앞둘 때 마음이 설렙니다. 뭐라도 조금 도움이 되고 싶은데, 인사권자도 아니어서 마음만 넉넉할 따름입니다.

주변에 혹시 아는 분이 계시면 그분에 좋은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하지만 간혹 좋은 이야기를 들은 분의 지인 가운데는 인사와 관련이 있는 분도 계신 듯합니다. 모르고 해도 결국 그분에게 부탁한 꼴이 됩니다. 어쩌면 알고 그렇게 이야기를 전한 것이 되기도 하나 봅니다.

스스로의 인사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의 인사도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말을 듣고 전하는 중간에 있는 분을 인사권자가 아무리 친해도 어떻게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속 변하는 인사권자의 성향도 고려대상이구요.

괜히 청탁으로 들렸다가는 한방에 훅하고 날아가는 이유도 있죠. 하도 경계가 모호해서 전 그걸 ‘살얼음판’에 자주 비유하기도 합니다.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의 경험이야기처럼 그만큼 신중하게 조심조심 살펴서 가야 하는 일입니다.

조바심을 내어 아는 분을 만나고자 전화를 합니다. 약속일이 되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못 만나게 됩니다. 뜬금없이 전화로 할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냥 있다 보면, 아무것도 안 한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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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 공항의 비행기들

그런데 그런 일은 사실 안 한 게 나은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탁을 안 해서 잘되는 경우도 있고, 부탁했다면 더 잘 안 되었을 가능성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못 만나는 이유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도 못 만난다면 그건 천시를 놓친 거겠죠. 여하튼 인사가 어디까지인지 천명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항상 전 제 진심을 믿습니다. 감히 자존감이라고 해서 죄송하지만, 진심으로 인사를 다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하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결국 안 되면 괜한 선심을 쓴 것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천시가 안 따를 때는 그분이나 저나 그냥 조신하게 지내야 합니다. 소나기를 피해가듯 ‘해’가 뜨기를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안목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정말 복이 오겠죠.

어쩌면 그분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 의도적인 듯도 해요. 뭘 해주기를 바라면서 만나는 게 참으로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만남도 없습니다. 뭔가를 바라면서 만나는데 그게 뭔지를 스스로 아는 것과 스스로도 모르는 것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는 ‘조고각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건 말 안 해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말 안 하면 모르는 것도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어요. 괜한 사족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남의 이야기였지만 제 이야기이기도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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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 공항의 비행기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바로 나

올해 맡은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반드시 성공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나입니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할 따름입니다.

노심초사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로 고통을 사서 하는 듯합니다. 아무런 욕심도 없다는 이들이 노심초사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말 욕심이 없다면, 무슨 그리 걱정이 많고 의심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무아(無我)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생각이나 말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이걸 아는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벗어난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쉽습니다. 진정으로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가는 이가 바로 ‘무아’지경을 넘은 사람입니다.

걱정 근심 없이 의심도 없이 고통을 사서하지 않는 사람이 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몇 겁이 지나기 전에 저도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뇌과학과 사이비교주

요즘 부쩍 (뇌)과학이니 인문학적 융복합이니 우주, 영성, 과학 등등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말은 다 근사한데 결국 영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과학으로 채우려고 하는 비스무리한 행위들의 발산인 듯합니다.

시도야 좋지만 결국 과학으로 채울 수 없는 엄청나게 깊은 골짜기들을 과학자의 ‘영성’으로 대신 메우려고 하나 봅니다. 결국 과학자로 시작한 리더를 영성지도자, 나아가 종교권능자로 만드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21세기는 이렇게 ‘liberal arts’를 하는 과학자들을 사이비교주로 변질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불교’를 알면 과학의 부족한 면이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모든 ‘liberal arts’의 채우기 어려운 부분이 채워집니다.

참 좋은 친구

예전에 한때 참으로 열심히 일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밤새 일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전화 오면 다시 회사로 가서 일하고 술 먹다가도 다시 들어가서 일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남의 일까지 내 일이 되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는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차츰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역시 그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를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가 ‘그’를 보는 시간은 그래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종일 ‘그’만 본다고 합니다. 아니 그러고 싶어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1/10도 다 못한다고 푸념합니다. 저는 1/100도 못 보고 있는데 참 부럽습니다.

그의 경험은 제게 많은 위안을 줍니다. ‘나’를 보는 시간을 늘렸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등한시한 적은 없다고 전합니다. 그는 프로입니다. 돈을 받는 이상 그 이상으로 하며 반드시 성과를 보입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주객이 전도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어진 업무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틈틈이 한다고 합니다. 직업적인 일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하는 취미가 가십 같은 관심사가 점점 진짜 일이 되어갑니다.

회사를 가든 집에 돌아가든 밖에 있든 간에 계속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를 보고 저는 “대체 언제 쉬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지, 쉬고 있는지 아니 놀고 있는지 전혀 분간이 안 간다고 전합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진짜 일처럼, 아니 때로는 일보다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경계 구분조차 잘 안 되게 되었습니다. 아니 안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맞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언젠가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술에 물을 탔는지, 물에 술을 탔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부 다가 술인지 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려면 쉽게 알 수도 있겠지만, 사실 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자기를 너무 쉽게 ‘물’로 보지는 말아줬으면 한다며 웃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술을 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에게 있어 물과 술은 직업과 취미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요? 여하튼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같습니다. 참 좋은 도반이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