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정 박사 ‘지눌 마음수행의 역사적 변용’ 발제 내용 놓고 뜨거운 공방

이종수 교수·탁효정 박사 “개념 설명 필요”, “논지 전개방향 아쉬움” 논평

“지눌의 마음수행은 시대를 넘어 한국불교사상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교사상가이자 삼교합일의 회통적 명맥을 이루었던 득통기화, 허응당 보우, 서산 휴정 등은 사상적 특면에서 지눌의 영향을 받았고, 이들 모두가 일정부분 지눌의 사상에 연맥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근대 민중종교로서 창시되었던 동학·천도교와 원불교에서도 지눌의 사상이 수용·변용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정혜정 박사(원광대)가 지난 5월 28일 열린 불교학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지눌 마음수행의 역사적 변용’에서 지눌의 돈오점수와 정혜쌍수의 의미를 재검토하고, 이것이 근대시기 동학·천도교에 일정부분 계승되었음에 주목하며 의암 손병희의 <무체법경>에 와서 어떤 변용을 낳았는지 마음수행의 구조를 탐색했다.

정 박사는 “지눌은 ‘성(性)을 지칭하는 자성정혜(自性定慧)’와 ‘상(相)을 따라 수행하는 수상정혜(隨相定慧)’ 두 가지로 정혜를 구분하면서 모든 수행은 이 양자를 겸비한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며 “자성정혜는 깨달음의 측면에서 본 것이고, 수상정혜는 깨달은 후 닦아나가는 수행적 측면에서 본 것인데, 기존 연구는 자성정혜를 돈오돈수라고 하고, 수상정혜를 돈오점수라 하여 자성정혜가 상근기에 해당하는 수행이고 수상정혜는 중하근기에 해당하는 수행으로 나눠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그러나 이는 자성정혜와 수상정혜를 양 날개로 수행을 삼는 지눌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지눌의 돈오점수의 수행은 돈종의 수행으로서 깨달은 자성정혜로 생각마다 무념의 근본삼매로 닦는 수상정혜이며 이는 북종의 수상정혜의 수행과 다른 것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득통과 보우, 서산 모두가 지눌의 영향 속에서 사상적 변용을 거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며 “이는 동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단정지었다. 정 박사는 “동학은 한울님(天)을 천심(天心), 혹은 자심과 자성의 ‘성심(性心)’으로 표현했고 ‘심즉천(心卽天)’이라 말했지만 ‘천심’, ‘심즉천’이라는 말은 득통, 보우, 서산 등 조선 선불교의 삼교회통 전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고 지눌 역시 자성을 신(神), 천진(天眞), 정혼(精魂)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또한 의암은 사람이 자성을 깨닫는 것(覺性)은 ‘자심을 자성함(自心自誠)’에 있고 한울과 스승의 권능에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 지눌 역시 깨달음은 부처도 스승도 필요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 견성돈오하는 것이라 하였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지눌이 말하는 점수란 깨달아 근본삼매로 닦는 두 가지 원수(圓修)와 원점(圓漸)을 포함하는 것으로 점원(漸圓)이 아닌 것”이라며 “지눌의 점수는 돈이 있는 점수이고, 모든 행을 고루 닦음에 있어서 오직 무념을 근본으로 삼는 수행이기에 돈수의 점수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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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박사의 발제에 대해 논평에 나선 이종수 순천대 교수가 정혜정 박사의 발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교수는 “논자는 돈오점수의 원수(圓修)와 원점(圓漸)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며 “발표자는 왜 이 두 개념에 주목하는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으며, 마음수행의 재검토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원수와 원점의 개념이 다른 개념인지? 잘 이해되지 않으며 아울러 원수와 원점이 점원과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발표자는 정과 혜를 분리할 수 없으므로 쌍수라고 이름붙일 것도 없고 지눌의 정혜쌍수는 자성정혜와 수상정혜의 쌍수라고 했지만, 자성정혜와 수상정혜는 근기에 따라 분리한 수행법이므로 쌍수(雙修)가 성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정과 혜는 체용으로써 서로 분리할 수 없으므로 쌍수가 성립된다고 생각된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또 “정 박사는 지눌이 말한 원수와 원점, 그리고 정혜쌍수가 어떤 사상적 맥락에서 나왔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지눌 마음수행의 올바른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논평에 나선 탁효정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도 논평에서 “발제의 제목이라던가 발제의 전개과정으로 볼 때, 정혜와 돈점의 중요성보다는 논자가 각주로 처리하고 있는 지눌의 <진심직설>에서 제시한 무심공부를 열 가지로 제시한 내용이 보다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 같다”며 발제의 전개방향에 대한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탁 박사는 “논자는 지눌의 심성(心性), 득통의 본성(本性), 보우의 진심(眞心), 서산의 영심(靈心), 동학의 성심(性心) 등은 스스로의 본성을 깨닫는다는 측면에서 거의 비슷한 개념으로 쓰여졌고, 이를 지눌의 영향 속에서 사상적 변용을 거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그러나 견성의 개념은 지눌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불교의 근본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즉, 지눌 사상의 역사적 변용이라는 논지 전개보다는 불교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동학에서 나타나는 불교적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 더 맞다는 것이다.

탁 박사는 또 “논자의 동학에 대한 주장이 지눌의 ‘일물(一物)의 자성각득(自性覺得)’과 맥락이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는 얼핏 보기에 비슷한 것이지 ‘본래의 나를 인정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측면에서는 결정적으로 다른 개념으로 파악된다”며 “아(我)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불교의 무아사상 내지 지눌의 공적묘유(空寂妙有)와는 다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중에서도 질의가 쏟아졌다. 이평래 충남대 명예교수는 성(性)과 상(相)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리가 없는 것이 이 발제의 아쉬움이라며, 이 부분을 명료하게 정의했다면 보다 논지의 전개가 쉬웠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경집 진각대 교수는 “그동안 발표되었던 정 박사의 발제를 살펴보면 불교관련 용어의 명확한 개념 정립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에 대한 보완을 주문했다.

잇단 지적이 잇따르자 정혜정 박사는 “여러 가지 지적에 대해 감사드린다”면서도 “어떤 것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을 해달라. 불교용어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받고자 한 것이 이번 불교학연구회 봄 논문발표회에 발표를 신청한 이유”라고 답변했다.

불교학연구회의 이번 춘계학술대회는 각 발제마다 논자와 평자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공방이 오가는 등 시종 열기 속에 진행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밖에도 김성연 박사의 ‘1910년대 불교근대화론과 종교적 지평의 확대’, 박오수 박사의 ‘조선불교회의 역사와 성격’, 김종진 박사의 ‘1930년대 <불교>와 문학場>’, 우동필 박사의 ‘니까야로 본 중론의 십이연기’ 등의 논문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