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의식 혁명가 붓다가 이끄는 행복의 길은?

최승천 기자 | hgcsc@hanmail.net | 2016-05-13 (금) 21:36

 


 

세계해탈을 위한 붓다프로젝트
원담 지음, 민족사
438쪽, 1만8500원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 소원을 빌면 복을 주는 분,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제시해 준 분 등 각자의 근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과 정도가 다르다. 부처님오신날엔 무엇보다도 인간붓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태어난 날을 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원담 스님은 붓다가 되기 전의 인간 싯다르타가 품었던 질문에 주목한다. ‘왜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왜 어떤 사람은 죽도록 일만하고 부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싯다르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궁을 벗어나 농민들이 일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왕족 신분으로 누리는 모든 안락과 편의가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서 나오는 것임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안락한 삶이 자기가 잘나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인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부조리 즉, 지배와 피지배, 빈부격차, 계급제도의 비극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성 밖으로의 외출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슬픔, 번뇌, 좌절, 고통을 모르고 살던 ‘온실 속 화초’가 성 밖에서 진짜 세상을 보게 됐다.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이해로는 도대체 뚫고나갈 수 없는 ‘백척간두 진일보’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패배적 감상에 젖거나 그냥 지나쳐버린다. 싯다르타와 보통 사람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싯다르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라는 울타리(아트만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길(붓다 프로젝트의 시작)을 찾나 나섰다. 저자는 우리도 붓다처럼 느껴보고, 붓다처럼 살아보자고 권한다.

 

붓다의 생애를 주제로 한 책들은 지금까지 주로 붓다 개인의 수행이나 붓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 이에 비해 붓다의 눈으로 본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의식 혁명을 이룬 혁명가 붓다가 이끄는 행복의 길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 우리 현실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붓다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가르침을 프리드리히 니체, 칼 마르크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알렉시스 토크빌 등 근현대 정치 · 철학가들의 사상과 견주어 본다. 붓다의 삶(보살의 삶)을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가의 삶과 비교한다. 또 영화 <매트릭스>, <설국열차> 등을 예로 들어 자본주의 체제와 그 안에 사는 인간들의 삶을 통찰하기도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온갖 욕망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떠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은 사회적 조건에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둘을 함께 가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때 사회 운동가였던 저자가 출가해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에센스로, 좌절과 원망, 허무와 불안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2600여 년 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아 붓다가 된 싯다르타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서원을 담고 있다.

 

원담 스님은?

 

 

197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산업공학을 전공하다,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후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회장에 당선, 5월 민주화 대행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광주민주화항쟁에 함께 하려 했지만 광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고향에 은거했다. 그해 9월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의장 겸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 시절 그는 두 어깨에 민중의 모든 고통과 운명을 짊어진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번민했고,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괴로웠다. 그러면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부처님의 방식으로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83년 군 제대 후 송광사로 입산 출가. 영명사에서 은거하던 정법 스님을 만나 사제관계를 맺고 ‘원담(圓潭)’이란 법호를 받았다. 해인사에서 사미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90년 5월 지리산 칠불사 운상선원에서 3년 결사에 들어갔다. 2년째 되던 해에 심장수술로 결사를 중단, 치료를 마친 후 의성 고운사 고금당선원에서 수행을 재개, 100일 용맹정진을 마쳤다. 1994년 백양사 운문선원 서옹西翁 선사 문하에서 참선 수행을 하며, ‘부처님은 어떤 수행으로 깨달았나?’라는 원초적 질문을 품고 초기불교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후 인도, 미얀마, 티베트, 미국 등지를 돌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의성 수정사 주지를 거쳐 현재 경남 진주시 동성동 도과선원의 선원장으로 활동하며 붓다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기에 힘쓰고 있다. 도과선원을 통해 불교와 다도, 인문학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지성의 확장을 꿈꾸며 시민연대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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