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경연구회, 5월 13일 외길 김경호 선생 특강 및 금사경 제작시연회

국내에서는 첫 시연회–참석자들 한 치 떨림 없는 붓 움직임에 탄성 자아내 

사경의 과정은 그야말로 인욕과 정진의 과정이다. 권위 있는 경전의 원전을 5종 이상 구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일일이 비교하며 대교작업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작업을 전통사경으로 할 것인지, 전통사경을 한 차원 발전시킨 작품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현대적인 작품으로 할 것인지의 구상을 마쳐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제작의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향이 정해지면 작품 제작에 필요한 최상의 재료들을 만들어야 한다. 아교수(녹교수), 금니 또는 은니, 종이의 선택, 사경실의 온도 및 습도 조절 등이 치밀하게 갖춰져야 한다.

사경을 하는 중에는 숨도 크게 쉬면 안 된다. 미세한 호흡이 아니면 붓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붓털 1, 2개에 묻은 아교는 3초 정도가 지나면 굳고, 아교가 굳으면 금니나 은니가 종이에 묻지 않게 되므로 3초 이내에 정확히 붓질에 들어가야 한다. 금니와 은니 사경시에는 눈을 깜박여서도 안 된다. 잡생각이 들어서도 안 된다. 마음의 동요는 곧바로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경에 들어가지 전에도 세밀히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 음식을 많이 먹어도 안 되고, 잠이 부족해서도 안 된다. 또한 작은 물건이라도 들면 안 된다. 손 떨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경에 들어가서도 조금이라도 몸이 무겁거나 마음이 조급해지면 즉시 붓을 놓아야 한다.

사경은 이렇듯 어느 한 과정도 소홀히 하면 100% 만족스러운 작품을 이루어낼 수 없다. 순간순간 최고의 집중력으로 최선을 다해 정진하는 것이 사경이다. 그러므로 가장 정직한 작품이 사경이라고 할 수 있다. 사경은 일반 서예와 비교해 수백 배의 공력이 소요된다. 숙세의 불연이 있지 않고서는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수행이(물론 최고의 작품을 위해서) 사경이다.

사경은 인욕과 선정, 정진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을 행복으로, 수행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원하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 또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전통사경의 계승과 발전도 절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국내 유일의 전통사경 기능전승자 외길 김경호 선생이 사경의 가치 등을 살피며 금사경을 시연하는 매우 드문 행사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마련됐다. 
 
한국사경연구회는 5월 13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미술세계 아카데미에서 외길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사진)의 전통사경 특강을 개최했다.
 
김경호 회장은 이날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란 주제의 특강을 통해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 보현행원품>, <금강경> 등의 경전 내용을 살핀 뒤 “사경은 몸과 마음의 청정을 바탕으로 경전의 진리의 말씀을 서사하며 마음에 새겨 실천하는 수행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구려에 불교가 공인된 372년 사경이 시작됐다면서 사경이 인쇄술을 개발시킨 연원이며, 세계 불교미술의 역사 중 사경예술을 가장 찬란히 꽃피운 고려 시대에는 중국 사경을 재창조해 원나라에 사경승을 파견했을 정도로 세계 제일의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경이 고려왕조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로 자리잡고 국가와 백성의 안위와 행복을 발원했기에 인류 역사상 보편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또 장구한 역사 속에서 사경에 의해 전법이 이뤄졌기에 사경이란 불자라면 누구나 해야만 하는 불교의 수행법 중 가장 오래된 수행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청정한 재료와 도구로써 흐트러짐이 없이 한 점 한 획에 담아야 하기에 가장 중요한 신행법이라고 역설했다. 

이밖에도 국가중요문화재인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사경 유물이 200여 점이 넘으며 한국 서예사를 논할 때에도 사경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날 특강 후에는 제11회 한국사경연구회원전의 원만 회향과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국내 최초로 김경호 선생의 금사경 제작시연회가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은 앞서 미국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7~8회에 걸쳐 고려 전통 금사경 제작법에 대한 설명회와 시연회를 개최한 바 있으나, 국내에서의 금사경 제작시연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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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경 시연회를 지켜본 청중들은 외길 김경호 선생의 가는 붓끝이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미세한 선형을 그으며 움직일 때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최고의 집중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금사경 시연의 모습은 왜 사경이 최고의 수행법인지를 저절로 알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