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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 여래장, 일심은 ‘아트만’과 다른 것일까?”
김왕근 slbu@naver.com 2016-05-09 (월) 11:02
[김왕근 불교담론] 현대불교에서 깨달음의 의미⓸- 대승불교의 신비주의
“‘선정’ 통한 깨달음은 苦의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된다는 판단으로 버렸던 것”
깨달음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견해를 개진했던 김왕근 붓다로살자 편집장이 '현대불교에서 깨달음의 의미'를 주제로 자신의 담론을 펼친다. 이에 <미디어붓다>는 김왕근 편집장의 글을 게재하기로 했다. 단 김왕근 편집장의 견해가 미디어붓다의 논지 및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둔다. 편집자.
-------------------------------현대불교에서 깨달음의 의미
1, 깨달음이란?
2. 브라만교의 깨달음
3. 싯다르타의 깨달음
4. 대승불교의 신비주의
5. 현대 불교의 깨달음
4. 대승불교의 신비주의
싯다르타의 이론은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하여 생하고 멸한다”는 ‘조건생조건멸(條件生條件滅)’이었다. 우주 삼라만상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의존성’의 관계에 있다. 세상을 이렇게 보는 것은 브라만교의 세계관과 어떻게 다른가?
브라만교는 ‘브라만’과 ‘아트만’을 실체로 상정함으로써 현실로 존재하는 ‘나’를 소외시킨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나’일 텐데, 지구상에 유한한 생명을 갖고 태어난 ‘나’가 어떻게 생을 영위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그 ‘나’ 이외의 다른 ‘참나’를 찾아가야 하는 삶이라면 ‘나’의 중요성은 감소한다. 만약에 내 몸 안에 있는 ‘아트만’을 찾지 못하는 것이 곧 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며 ‘아트만’을 찾는 것이 또한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면, 지구상 대부분의 인생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번 생에 이 일은 틀렸네”라는 식의 말을 한다. 이것은 “이번 생에 못하면 다음 생에 하면 된다”는 낙관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떤 것이든, 이번 생에서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할 가치는 없어진다. ‘영생’을 얻은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무가치해진다. 왜냐하면, 언제든 그 가치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꼭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이루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가치는 ‘삶의 유한성’을 전제한다. ‘삶의 유한성’은 우리가 부딪히는 ‘실제’이기도 하다. ‘아트만’ 혹은 ‘참나’의 추구는 이런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한’을 얻겠다는 헛된 시도다.
“모든 것은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그 ‘상호의존성’을 만든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질문을 하는 것을 싯다르타는 ‘희론(戱論)’이라고 해서 금기(禁忌)시 했다. 이런 질문은, 이 세상이 어떤 하나의 원리로부터 시작됨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본질주의자’라기보다는 ‘실존주의자’이다. 서양 중세의 종교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존주의자들이 보기에 인간은 어떤 목적 없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싯다르타는 여기서 삶의 의미가 될 기반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의미가, ‘타자와의 관계’로 인해서 비로소 생긴다는 것이다.
연기법에 따르면 존재의 근거는 다른 존재이다. “이것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생기므로”, 현상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서로의 근거가 된다. “그런 존재들 자체의 근거, 즉 ‘상호의존성’은 누가 만들었나?”라는, 한발 더 나간 질문을 싯다르타는 다루지 않는다. 그는 다만 무시(無始) 이래로 ‘상호의존성’이 있었다는 가정을 하는 것이다. 그 가정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상황을 가장 현실감 있고 알기 쉽게,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가 언제부터 생겼고 누구에 의해서 생겼으며 왜 생겼는지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지식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인간의 실제 삶에서 별 중요성도 없다. 인간이 신(神)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은, 무모하고 불필요한 행위일 뿐이다. 서양 철학사를 통틀어 언어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회의하고 분석한 것으로 평가되는 20세기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지어다.”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짧은 시간만을 허락받은 인간이 그런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사치이며 무의미한 일이다. 싯다르타가 죽음을 맞이한 자리에서 “모든 생성된 것은 소멸한다. 그러므로 정진하라”고 한 것은 희론(戱論), 즉 헛된 이론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일에 쓰라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싯다르타 자신이 죽음의 순간까지도 제자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싯다르타가 ‘부처’로 추앙받는 것은, 제자들의 깨달음에 그리고 2600년을 격한 후손들의 깨달음에까지도 그가 공헌했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인해 제자와 후손들이 변화했다는 것, 그 사실이 있음으로 해서 싯다르타의 삶은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싯다르타는 진리를 깨닫고 중생에게 그 진리를 전하는 데에 온 생애를 불태운 ‘사람’이었다.
형이상학과 ‘믿음’에의 회귀
그런데 싯다르타 사후(死後), 대승불교의 논사(論師)들은 싯다르타가 답하기를 거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다시 매달렸다. 대승불교는 원래 붓다 사후에 이루어진 부파(部派)불교가 지나치게 난삽한 이론 전개를 일삼아 불교를 일부 출가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하며 일어난 불교 대중화 운동이었다. 그러나 명쾌하고 실용적이었던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대승불교의 논사 자신들이 오히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비이성적(非理性的) 이론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대승불교에서 진여(眞如), 법신(法身),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 등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논구된 형이상학의 언어다. 인도의 마명(馬鳴:100∼160?)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승불교의 개론서’라고도 평가되는 대승기신론은 ‘절대자’로서의 ‘여래’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위대한 지혜의 광휘요, 우주를 비추는 보편적 빛이며, 참되고 적절한 지식이며, 청정무구한 마음이며, 영원자, 복된 자, 자기 제어자, 청정한 자, 불변자, 자유로운 자이다.”라고 한다.
대승불교의 이러한 ‘형이상학’ 혹은 ‘믿음’에의 회귀는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 전통은 우리의 선조들에게도 나타난다. 고려 시대 ‘국사(國師)’ 지눌 스님의 ‘목우자 수심결’을 보자. 지눌은 “만약 불성(佛性)이 이 몸에 나타나 있다면 이미 몸 가운데 있어서 범부를 여의지 않을 것인데, 무엇으로 인해 저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대의 몸 가운데 있지만 그대가 스스로 보지 못한다. 그대는 하루 열두 때 가운데 배고픈 줄 알고 목마른 줄 알며, 추운 줄 알고 더운 줄 알며 혹 성내고 혹 기뻐하니 마침내 이것이 어떤 물건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불성이다. 그러므로 임제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대(四大. 세상을 구성하는 땅 물 불 바람의 네 요소)는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모르고, 허공도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모른다. 단지 그대의 눈앞에 뚜렷이 홀로 밝아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비로소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라고 하였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라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또한 너의 본래 마음이다. 곧 불성이 지금 그대의 몸에 있는데, 어찌 밖에서 구함을 빌리겠는가?”
지눌의 이 답변은 명쾌하지 못하다. 질문은 “무엇으로 인해 저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인데 답변은 “불성을 몸 안에서 구하지 않고 밖에서 구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질문자가 “만약 불성(佛性)이 이 몸에 나타나 있다면 이미 몸 가운데 있어서 범부를 여의지 않을 것인데”라고 가정하고 있음을 보면, 이 사람은 자신의 몸 가운데에 있는 불성을 보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는데도 그렇다. 이는 지눌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靈的)이고 모호한 가설을 일방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눌은 “아는 사람은 이것이 불성인 줄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정혼(精魂)이라고 부릅니다”라고도 하며 “너는 마땅히 진실로 믿어야 한다”고도 한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이 깨달은 곳(해오처 解悟處)이 있다는 것도 믿지 못하여”라고도 한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마음 안에 ‘영혼’으로서의 ‘아트만’이 있고 이것을 보아야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할 수 있으며, 이미 그렇게 해탈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고, 이성(理性)으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끊임없이 믿는 마음을 내야 한다는 비불교적 교설(敎說)이다.
대승불교는 “본질은 소멸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양의 파도는 높거나 낮을 수도 있겠지만, 물 그 자체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전체 우주는 변화의 측면뿐만 아니라 불변하는 측면도 지닌다. 후자는 진여(眞如), 즉 모든 존재의 토대로서 무시간 무공간으로 영속하는 절대자이다. 궁극적 실재는 모든 존재에 편재(遍在)하기 때문에 개개의 모든 존재는 잠재적으로 전체이며, 종교적인 언어로 말해서 모든 개인은 잠재적인 붓다이다. 여래의 지혜를 지니지 않은 중생은 하나도 없다. 일체 중생이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허망한 생각과 애착 때문일 뿐이다. 어떤 변형도 겪지 않은 채 온갖 형상을 띠는, 만유에 편재하는 토대로서의 법신(法身)은 비인격적인 절대자, 즉 우파니샤드의 브라만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진여와 법신 등의 개념은 싯다르타의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발전된 것이다. 설일체유부, 중관파, 유식학파, 화엄, 선불교 그리고 원효와 의상, 지눌, 서산대사 등으로 이어지는 이론의 논리적 일관성이 없지 않다. 설일체유부는 “내가 없다”는 싯다르타의 ‘아공(我空)’ 사상을 이었다. 그러나 객관적 존재는 있다는 법유(法有)를 주장했다. 나가르주나로 대표되는 중관파는 나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존재 또한 실체를 갖지 않는다는 아공법공(我空法空), 즉 공(空)사상을 제시했다. 유식(唯識)파는 유부의 법유(法有)도 부정하지만 일체를 공으로 환원하는 중관의 공종(空宗)도 부정한다. 공은 가(假)를 형성하는 공이기 때문에 무(無)만이 아니라 유(有)의 측면도 지닌다는 것이다. 유식은 가(假)를 형성하는 아뢰야식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엄은 아뢰야식 자체가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것으로 본다. 중중무진연기 속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은 본래 그 자체가 진여(眞如)의 드러남이라는 것이다.
선불교는 아공 법공에 대한 체계적 교설을 이해하는 것보다 공을 직접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선불교에 따르면 수행자는 자신 안에 있는 불성을 자각해야 한다. 표층 의식과 말나식을 통과하여 심층 아뢰야식의 흐름까지를 포착하는 깨어있는 정신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만남이 ‘돈오’이며 이는 달마 대사의 ‘면벽 9년’ 같은 수행을 필요로 한다.
원효와 지눌 등 한국의 선사들도 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원효는 중생 누구나 일체의 차별성을 포괄하는 무한자로서의 공(空)이지만 스스로를 신비스럽게 안다는 일심(一心)의 사상을 전개했다. 지눌은 마음속에 지각의 대상이 없는 본래의 고요한 상태에 마음 본래의 빛이 작용하고 있다는 공적영지(空寂靈知)로서의 인간 본성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서산대사 또한 마음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깨달음이 있어야 참다운 수행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마음과 별개로 ‘신령스러운 마음’을 상정하면 이는 결국 브라만교에서 주창하는 ‘아트만’의 개념과 같아진다. 대승불교는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트만’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나 자신에 의지해서 빛을 밝힌다”는 ‘자등명(自燈明)’의 원칙을 위반하고 브라만교의 신(神)을 받아들였다. 불교는 아미타불, 미륵보살, 약사여래불,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등의 보살과 여러 천신(天神)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은 우파니샤드의 각자(覺者), 기독교의 구세주, 니체의 초인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는 혼자 힘으로는 자체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는 이 세계를 돕기 때문이다.
불교가 브라만의 신들을 받아들인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싯다르타 자신이 당시 회자되던 브라만의 신화들을 인용하고 인정하면서 법문을 했다. 사회가 온통 브라만의 신화의 맥락에서 논의를 하고 있으므로, 그 맥락을 외면하고서는 논의 자체를 전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은 극구 배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가 죽은 후에는 결국 싯다르타 자신이 신격(神格)을 갖게 됐고 그 밖에 다른 신들도 채용됐다. 불교는 브라만교 안에서 혁명적으로 일어났지만, 그러나 그 교리가 싯다르타 사후에 핵심에서 이탈했고, 결국 브라만교를 닮아갔다.
싯다르타는 인도 문화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힌두교 신앙은 싯다르타로부터 윤리의 최고 형태를 흡수했고 브라만교 체계는 인류애와 이성에 모순되는 요소들을 내던져버렸다. 그러나 브라만교가 “붓다는 (브라만교의 신 중 한명인)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주장했을 때, 불교는 거꾸로 힌두교에 동화되는 가운데 점차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불교가 자신의 차별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과학문명이 최고로 발달하고 있는 21세기에 더욱 그렇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이야말로 오늘날의 실용적인 욕구에 부합하며 신앙과 과학 간의 갈등을 화해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철학의 요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초기 불교의 주요 원리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 발달의 여러 단계나 개조(開祖), 즉 싯다르타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신화적인 전설 등으로부터 싯다르타 가르침의 핵심을 분리해낸다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용이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고사(枯死)한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에게 있는 영적(靈的)인 갈구, 신(神)에 의지하고자 하는 욕망, 신화와 전설에 끌리는 마음 등은 인간 이성에의 믿음보다도 더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업(業)과 윤회(輪廻)
싯다르타가 출가를 한 것은, 끊임없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업(業)과 윤회(輪廻)는 불교의 전통 이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 혹은 삶 이전의 세계를, 이성이나 언어로는 알 길이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증험되거나 지금 즉시 알 수 있거나, “와서 보라”고 할 만한 성질의 지식이 아니다.
싯다르타의 가르침과 다른 성격의 이 ‘윤회론’을 우리는 믿어야 할까? 불교는 ‘이해’의 종교이지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윤회론은 불교 이론이 아닌 것 아닐까? 인간의 영혼, ‘아트만’이 죽음 이후에 새 몸을 받아서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는 원래 브라만교의 이론이었는데, 불교는 이 전통을 계승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절하는 것일까? 만약 ‘무아(無我)’론을 불교의 핵심 이론이라고 한다면, ‘아(我)’가 애초에 없으므로 윤회 자체가 불가능하며 결국 주체가 있을 수 없는 ‘윤회’란 비(非)불교 이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현생에서 쌓은 업의 과보를 내생에서 받는다”, 혹은 “오늘날 내가 받는 현세적인 핍박은 전생에 내가 지은 죄의 결과다”라는 업(業)의 이론도 당연히 폐기돼야 하는 것 아닐까? 불교 이론 안에는 이런 모순과 긴장이 있다.
불교의 유식(唯識) 이론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유식학파는 윤회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식(識)에 대한 이론이다. 유식은 “과거의 업을 함장(含藏)하며 윤회의 주체가 되는 ‘아뢰야식’이 있다”고 한다. “아뢰야식이 있다”는 이 설(說)은 결국 무아(無我)론이 아니라 유아(有我)론이다. 이는 또한 불가피하게 ‘우주론’과 ‘존재론’, ‘형이상학’을 포함한다. 이는 싯다르타가 ‘희론(戱論)’으로 배척한 것이다. “독화살에 맞은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독을 제거하고 해독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그 전에 그 독의 성분이 무엇이고 누가 화살을 쐈는지 등을 규명하는 데 한눈을 팔면 화살에 맞은 사람은 죽고 말 것”이라는 ‘독화살의 비유’는 유명무실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유식학파의 이론은 대승불교의 전통에 깊은 영향을 남겼으며 오늘날 한국 불교에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을 일별하지 않고서는 한국 불교를 논할 수 없다.
유식학파의 이론은 부파불교, 그 중에서도 설일체유부의 ‘아공법유(我空法有)’론과 중관학파의 ‘아공법공(我空法空)’ 이론을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공법유’란 ‘나’는 없지만 ‘존재’는 있다는 사상이다. 이는 20세기의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의 이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 사르트르는 그의 책 ‘존재와 무’에서 인간을 ‘무(無)의 존재’로 규정했다. 인간은 ‘의식’의 존재인데, ‘의식’이란 인간 이외의 존재가 없으면 즉 의식의 대상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이며 결국 ‘유령’과도 같은 ‘무(無)’의 존재다. 인간은 대상을 의식하고, 그 의식하는 자신을 다시 대면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 상황을 모색하는 존재다. 말하자면 인간은 외부의 존재를 투사하는 동영상 카메라와도 같다. 그러나 인간은 그 카메라영사기와는 다른 차원을 갖는다. 인간은 그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영상을 찍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한다. 인간은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며 동시에 ‘끊임없는 고민이며 결정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대면한다는 뜻에서 인간을 대자(對自)존재(pour soi)라고 하고 의식이 없는, 인간 이외의 사물을 즉자(卽自)존재(en soi)라고 한다.
물론 인간 존재는 즉자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의 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다른 존재들처럼, 집이나 나무, 산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 때, 그 인간은 ‘의식’을 말한다. 인간이 생명으로서의 ‘의식’의 활동을 멈출 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시체’에 불과하다. 인간은 그의 몸을 통해서 ‘의식’의 활동을 하는 존재, 혹은 ‘의식’ 그 자체다. 이렇게 생각하면, 숨이 끊어져서 나와 소통할 수 없게 된 나의 아버지의 시체는 이미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죽은 시체를 끌어안고, 죽은 아버지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헛된 일이다. 나의 아버지는, 죽는 그 순간부터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의 아버지의 목숨이라는 그 생명의 에너지로 합쳐졌던 모든 세포들은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인간에게는 영혼과 몸의 2개 차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즉자존재-대자존재의 2개 차원이 있다.
‘즉자 존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대자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러나 본질이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무(無)를 본질로 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그는 나름 정열적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정열은 결국 아무런 이익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고,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는 열정에 어떤 이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무익한 정열’이다. 인간에게 본질이 있다면 자기로부터 연유한다는 뜻의 ‘자유(自由)’인데, 그 자유로부터 연유한 고민과 결정들이 궁극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에서 인간은 비극적인 존재다. 이것이 사르트르의 인간론이다.
그런데 중관학파는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주의 다른 모든 존재 <사르트르식으로 표현하면 ‘즉자존재’, 불교의 용어를 쓴다면 법(法)>도 사실은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 대상으로서의 법이 공하다는 것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당신은 이미 본 것을 보고 있지 않다. 아직 보지 않은 것을 보고 있지도 않다. 이미 본 것이 아닌 동시에 아직 보지 않은 것이 아닌, 보는 행위의 그 찰나적인 대상은 비존재이다.” 보는 자, 보는 행위의 대상, 보는 행위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각과 지각되는 대상은 상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중관의 아공법공(我空法空) 사상은 삼제게(三諦偈)라 명명된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 「관사제품」(觀四諦品) 24장 18게에 그 핵심이 요약돼 있다. "중인연생법, 아설즉시공, 역위시가명, 역시중도의"(衆因緣生法, 我說卽是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수많은 씨앗이 조건을 만나 존재를 생성한다. 나는 이것을 ‘공(空)’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연에 의해서 생성된 것에 ‘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것은 임시로 붙은 이름(假名)일 뿐이다. (생성된 실체 없는 것에 임시 이름을 붙이는) 이것이 ‘중도(中道)’가 의미하는 바다.” 중관 사상은 공(空) 가(假) 중(中)의 연결 개념으로 펼쳐진다.
한편 유식(唯識)이란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唯) 식(識)”이라는 뜻이다. 감각 기관, 즉 ‘아(我)’로서의 육근(六根)과 감각 대상, 즉 ‘법(法)’으로서의 육경(六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인간이 있는 것으로 집착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와 ‘존재’는 의식(意識)이 만들어낸 것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空)의 존재로서, 그것에 이름을 붙인 자에게만 제한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식과 중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중관이 공(空)을 강조했다면, 유식은 식이 만들어내는 가(假)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하겠다.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다고 일컬어지는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때, 이는 “내가 생각한다는 그 사실로부터 ‘나’라는 주체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으므로 ‘나’의 존재가 증명된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는 다만 “지금 내가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이 식(識)의 현상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나는 그 식(識)으로서의 ‘나’를 원초적이고 직관적으로, 이성적인 반성 이전에 전반성적(前反省的)으로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재해석한 데카르트다. 이에 따르면 “다만 의식(意識)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데카르트를 이렇게 해석할 경우, 이는 불교 유식학파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식은 이 식(識)과 아(我)를 데카르트보다 더 철저히 구분했고 식(識)의 ‘구조’를 더 정밀하게 규정했다.
유식학파가 말하는 식(識)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은 감각 기관으로서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다. 즉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의 작용이다. 이들 기관은 각각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작용을 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각을 느끼고 그리고 의식한다. 그런데 의식은 의식 이전의 전 오식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 면이 있다. 의는 안이비설신의 오근처럼 인식 기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이미 인식이다. 이 의(意)의 자기 인식을 유식에서는 제6식 다음의 심층적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제7식이라고 한다. 마나스(manas)라고 이름 붙은 이 식을 중국에서는 말나식이라고 음역했다.
말나식은 안이비설신의가 느낀 감각을 종합해서 자기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그런데 인간은 지금 현재의 감각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들의 소산이기도 하다. 경험은 나의 의식에 흔적을 남기며, ‘그 흔적들을 모두 종합하는 나’가 상정된다.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그 종자(種子)들을 함장한 이 식은 그런 뜻에서 장식(藏識)이라고 불리며 원어의 음을 살려서 ‘아뢰야식’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의식이나 의지보다 더 깊이 감추어진 식으로서, 우리가 흔히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마음’이다.
이 아뢰야식은 개념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요가 수행자들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경험되고 발견되었다고 한다. 해심밀경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그 정황을 보여준다.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비바사나사마타 중에서의 영상(影像)은 그 마음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다름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상은 오직 식(識)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식의 대상은 오직 식이 현현한 것일 뿐이라고 나는 설한다.”
이로부터 유식학파는 “식의 주체도 식이고 식의 대상도 식”이라는 ‘일체유식’을 주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형이상학, 존재론이 된다. 형이상학이란 곧 신화다. 불교의 우주 생성론, 즉 업으로부터 우주와 신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구사론(俱舍論)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모든 중생들의 업력이 작용함으로써 풍륜(風輪)이 생겼다. 그 위에 다시 모든 중생들의 업력이 작용해서 큰 구름과 비가 일어나 수레바퀴만한 물방울을 풍륜 위에 뿌리고, 이 물이 쌓여 바퀴를 이루니 그것이 수륜(水輪)이다. 어떻게 해서 수륜이 옆으로 넘쳐흐르거나 흩어지지 않는가? 모든 중생의 업력이 이를 받쳐서 넘쳐흐르거나 흩어지지 않게 함이 마치 먹은 음식이 소화되기 전에는 끝내 숙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며...(중략) 금륜 위에 아홉의 큰 산이 있는데 수미산이 그 가운데에 있고 외륜산 바깥에 사대주가 있으며, 인간은 동서남북 사대주 중 남쪽의 섬부주에 산다.
유식은 마음의 구조 분석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결국 신화가 됐다. 우주 생성론은 어떻게 전개하든 신화(神話)가 될 수밖에 없다. 구사론에 있는 위의 구절은 “처음에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가 ‘내가 여럿이 되어 볼까’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불이 생겨났고 불이 ‘내가 여럿이 되어 볼까’라고 생각하여 물이 생겼으며 음식이 생겼고 이런 식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생겼다”라고 하는 브라만의 신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식학을 전공한 한자경 교수는 “‘무의식 차원에서 작용하는 심층식의 활동과 흐름을 꿰뚫어 보는 내적 직관’으로서의 현상초월적 눈의 주체는 우주 바깥의 신도 아니고 우주를 창조한 브라만도 아니다.”라며 불교와 브라만교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누구나의 마음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진실한 성품 곧 불성(佛性)이자 여래장(如來藏)이며, 한마디로 말해 일심(一心)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유식성을 자각한 마음은 자신의 개체적인 사적 관점을 넘어서서 전체 현상을 하나의 통일적 지평으로 인식하는 참다운 지혜의 눈을 얻게 된다. 관계 단절적인 고립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객관 물자체로서의 사물 역시 실재하지 않는다는 아공 법공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집과 법집을 벗은 아공과 법공 속에서 드러나는 진리가 곧 진여(眞如)이다.”라고 ‘유식(唯識)’을 옹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불성, 여래장, 일심은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아트만’과 다른 것일까? ‘아트만’이란 우주의 중심 생명으로서의 ‘브라만’이 각각의 인간 몸속에 파견돼 나타나는 영혼이다. 불성, 여래장, 일심은 우리 마음 안에 내재돼 있는 현상 초월적 주체다. ‘마음 안에 내재돼 있는 현상 초월적 주체’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영혼’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내용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아트만’론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라다크리슈난은 싯다르타가 형이상학 혹은 영혼의 문제에 침묵을 지켰을 뿐, 영혼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유식학파는 형이상학의 영역까지 연구 범위를 넓혔다. 그 결과는 브라만교의 ‘아트만’론과 유사한 것이 됐다. 브라만교와 유사해졌다는 것이 ‘틀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결과로서의 불성, 여래장, 일심이라는 것들이 싯다르타가 설하는 진리의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싯다르타의 진리는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열반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과학적’ 성격의 ‘열린’ 진리이며 그러면서도 인간의 ‘실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진리여서 ‘지금, 여기’의 삶을 혁신하는 진리이다. 그러나 유식학파가 주창하는 ‘아뢰야식’은 요가를 수행하는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닫힌’ 진리여서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또한 근기가 떨어지는 중생이 깨닫기 위해서는 아승기겁이 걸리는 ‘어려운’ 지식이며 특별한 스승 밑에서가 아니면 얻기 어려운 지식이다.
무엇보다 ‘선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이 깨달음은 싯다르타가 시도하고 성취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苦)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에 버렸던 것이다. 싯다르타가 ‘고락중도’를 외치면서 ‘고행’과 함께 양 극단 중 하나로 지목하여 폐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승 불교의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 극단의 길을 옳은 것으로 여겨서 갔다. 그 결과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아서 부처 되겠다”는 헛된 욕망, 이기적인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을 좇으면서 자신의 진짜 삶을 소외시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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