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 않은가"

 

■ 이병두 칼럼 ■ <종교평화연구원장, 종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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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시내 한 사찰에 걸려있는 연등. [사진 = 미디어붓다 DB]

 

‘부처님 오신 날’, 불탄절(佛誕節)을 앞에 두고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대통령 이름이 적힌 봉축연등 보시금 봉투를 들고 전국의 250여 사찰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봉투에 들어가는 연등공양금(蓮燈供養金)은 많게는 50만 원 정도에서 30만 원, 작게는 10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국 사찰에서는 과거 왕조시대의 관습을 이어 대통령 이름으로 등을 달아 왔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불교 거사이든 개신교 장로이든 천주교 평신도이든 차별하지 않고 국가 원수 또는 행정 수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국가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었다. 그 연등 값을 따로 받은 적이 없었다.

대통령 이름의 연등을 달아 달라고 전국 사찰에 현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와 관계가 멀어지고 그것이 악화(惡化)되면서 나름 ‘관계 개선용’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종의 당근이나 ‘달래기 용 사탕’ 같은 것이었다.

박근혜 정권으로 바뀐 2013년이 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기회였으나, 이 봉투를 가지고 불교계 인사들을 만나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이용하려던 청와대 참모들과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숫자가 늘어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찰 주지에게 전화를 걸어 “스님, 이번에 대통령께서 연등 공양금 보내셨지요? 제가 애써서 명단에 들어간 사실은 아시겠지요. ……”라면서 자기 생색내기에 바쁜 이도 있었다.

국가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일만 해도 심신이 피로할 고위 정책 담당자들이 대통령 이름이 찍힌 봉투에 담긴 돈을 들고서 고위급 승려들을 찾아다니는 일까지 흔해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일이 진행되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야 그렇다 치고, “대통령 이름으로 연등은 달아드릴 테니 제발 돈봉투 들고 절을 찾아다니지 말아 달라!”고 불교계에서 미리 선언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수천 개의 사찰 중에서 250여 곳만을 엄선해서 대통령 이름으로 된 돈 봉투를 전하니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절과 차별 문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혹 MB가 불교계 분열 통치 정책 차원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대통령 연등 값은 받지 않으면 좋겠다. 창피하지 않은가.

※  네이버블로그 <향산의 세상이야기-葉落糞本>에 실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가져왔습니다.

원문 주소 http://blog.naver.com/lestofilos/220695926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