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나무 그릇에 마음을 담고 싶구나”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 2016-04-26 (화) 11:15

소설가 정찬주-화가 정윤경 부녀의 정성어린 손길에서 탄생한 특별한 그림책
“아빠와 딸의 사랑이 스민 그림책이 전하는 청아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아우, 좋은 글이란 그것이 시든, 수필이든, 동화든, 칼럼이든 간에 읽고 나면 마치 압정으로 꾹 눌린 것 같은 강한 여운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그런 글 말고, 독자에게 진한 감동과 교훈의 여운이 통증처럼 남는 글 말일세.” 

 

평소 호형호제하며 사는 정찬주 작가가 언제 기자에게 ‘좋은 글쓰기’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다. 정찬주 작가의 글은 그래서 늘 통증을 수반하는 감동과 교훈으로 남는다. 물론 예서 통증이란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청량한 기운을 말한다.

 

지난 4월 23일, 기자는 30여 명의 ‘미디어붓다 봄날 봄꽃 여행’단과 함께 쌍봉사 건너편 산자락에 자리한 정찬주 작가의 글집 ‘이불재(耳佛齋)’를 방문했다. 아우가 하는 일에 늘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작가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여행단 전원에게 신간 <마음을 담는 그릇>(작가정신)을 정성껏 친필로 쓴 저자 사인과 함께 ‘이불재 방문 기념’으로 나눠주었다.

 

책으로만, 또는 매스컴으로만 만나던 유명작가와 손을 맞잡고, 즐겁게 담소하는 자리가 펼쳐졌다. 이 자리에서 작가는 영국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돌아와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둘째 딸 (정)윤경이가 삽화를 그린 책을 나눠주면서, 글보다는 그림을 더 열심히 봐 달라고 당부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윤경의 그림.

책을 펼치니,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림에 집중됐다. 모자이크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은 문외한에게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고흐의 화풍이 깃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잔잔함 속에 치열함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몽환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다양하고 과감한 색상은 샤갈의 화풍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순간 ‘그 아버지의 그 딸’, ‘청출어람’ 따위의 표현이 떠올라 홀로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림을 보고 나서 글을 읽었다. 10분 남짓이면 충분히 읽을 짧은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경전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큰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스님, 왜 끌질을 할 때마다 절을 하세요?
절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만들 수 있잖아요.”
“목탁이나 나무 그릇에 내 마음을 담고 싶어서다.” --- p.9


우리 스님이 들려준 얘긴데요. 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대요.
별에서 다시 태어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대요.
스님, 정말 그럴까요? 우리 스님은 벌써 별에 사는 사람 같아요.
어젯밤에 이렇게 혼잣말을 했어요.
‘별을 담을 수 있는 나무 그릇을 만들었으니
이제 할 일이 없군.’ 하고 말이에요.” --- p.28

마음을담는그릇.jpg크게보기


정찬주 특유의 편안하고 단아한, 마치 차 한 잔 마시라는 조주풍의 문체로 표현된 한 편의 동화는 감동과 교훈의 압정을 기자의 심장에 꾸욱~ 찔러 넣었던 것이다.  

 

낡은 절 풍경사에 사는 조약돌처럼 머리가 동글동글한 아이와 가지 굽은 소나무를 닮아 허리가 휜 스님. 스님은 하루 종일 향나무로 나무 그릇을 깎는데, 끌질 열 번에 절 한 번을 한다. 나무 그릇을 하나를 만들려면 수천 번 절을 하게 되는 셈이다. 티 없이 맑은 아이는 그런 스님이 마냥 좋기만 하다. 그래도 스님이 만들어 아이에게 만들어 준 나무 그릇은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쁘게 둥글지 않고 모과처럼 삐뚤빼뚤했기 때문이다. 소나무 스님이 별나라로 떠난 후 소년은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돌샘에서 그 그릇으로 별을 두어 개 담았다. 그때 아이는 나무그릇 속에서 소나무 스님의 미소 짓는 얼굴과 맑은 두 눈을 보았다. 

 

그림책 <마음을 담는 그릇>은 소설가 아빠 정찬주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딸 윤경 씨의 정성 어린 손길에서 탄생한 특별한 그림책이다. 서정적인 글과 섬세하고 세련된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소나무 스님의 순수한 품성과 동자승의 티 없는 마음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 풍경이 편안하고도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아빠와 딸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스민 그림책이 전하는 잔잔하고도 청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어른들은 마음의 위로와 위안을 얻고, 아이들은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와 지혜를 배우는 어린이와 성인이 다 함께 읽을 수 있는 멋들어진 동화책이다. 수불스님에게 직접 참선지도를 받기도 한 신예 화가 정윤경의 불교계 데뷔작이기도 이 그림책을 접하며 오랜 만에 불교문화계를 이끌어갈 재목을 만나는 기쁨도 만끽한다. 11,000원

 


*작가 소개


글: 정찬주 (법명 無染)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오던 그는 자연을 스승 삼아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늘 마음속에 그리던 남도 산중에 집을 지어 들어앉았다. 샘터사에 근무한 십수 년 동안 법정스님의 책들을 십여 권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도타운 사제지정을 맺었다. 스님은 작가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무지렁이 농부처럼 잊힌 듯 살면서 자연의 섭리를 좇아 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은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라는 집 이름에 담겨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하늘의 도』『다불』『만행』『대 백제왕』『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자기를 속이지 말라』『선방 가는 길』『돈황 가는 길』『나를 찾는 붓다 기행』『정찬주의 다인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을 받았다. 펼처보기 닫기


그림 : 정윤경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영국 킹스턴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그림책에 선과 색을 자신만의 터치로 섬세하게 펼쳐 세상 사람 모두와 소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은 소나무 스님의 순수한 품성과 동자승의 티 없는 마음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 풍경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첫 그림책이다. <아들아 너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라> 등 지금까지 몇 권의 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현재 ‘삼매화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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