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 불교학과 110주년을 맞아 스님이사, 스님총장께 드리는 당부

건학이념 외치며 불교대학 퇴보 눈 감고 학교발전 운운하는 건 설득력 없어 

선문(禪門)에 명리공휴(名利共休)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명리’는 명문이양(名聞利樣)을 줄인 것인데 “명예가 세상에 퍼지는 것(名聞)과 재산을 탐하여 자기를 기름지게 하는 것(利樣)”을 의미한다. 또한 특별히 ‘승려가 명예를 구하고 재물을 탐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승려는 명리에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멀어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공휴’는 마땅히 잘라버리라는 뜻이니. ‘명리공휴’의 뜻은 보통 인간이라면 구하거나 차지하려고 혈안이 될 명리를 마땅히 잘라버리라는 것이다. 선문에서 다른 곳보다 명리공휴를 자주 강조한 것은 명리에 집착하는 마음이 수행에 장애가 되므로 수행자들은 이것을 버리거나 끊어내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불교계에서는 동국대 이사직과 총장직을 놓고 수행자 신분인 조계종의 중진 스님들이 다투어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쉽지 않은 일을 담당해야 하는 그 자리에, 더구나 일정한 보수도 없는 그 자리에 마땅히 휴헐(休歇)을 좇아야 할 내로라하는 중진 수행자들께서 구태여 나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불교계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명성을 가진 이 수행자들이 설마 명리를 구하기 위해 그 분주한 역할을 자임했을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동국대에 불교학과가 창설된 지 올해로 110년을 맞았다. 불교학과 동문회와 재학생들은 학과 창설 1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4월 29일 동국대에서 기념법회와 학술세미나, 만찬을 연다. 동국대는 불교계 대표종단인 조계종 종립대학인 까닭에 학교 측과 재단이사회도 이 행사를 후원한다. 특히 학교를 대표하는 법인의 이사장이 기념법문을, 총장이 축사를 하기로 예정돼 있다.

동국대의 건학이념이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술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니 이 대학의 여러 학과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학과인 불교학과의 창설 11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는 것, 이 행사에 학교의 최고 핵심관계자가 참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과 창설 110년의 긴 역사에는 불교계 선각자들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공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멈춤 없이 널리 퍼지고,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 세상에 두루 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켜켜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과연 동국대 불교학과 창설 110년을 가장 잘 기념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행사 자체를 거창하게 치르는 것보다는 동국대가 건학이념을 잘 실천하도록 불교학과(불교학부)를 잘 성장시키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기념이 될 것이다.

과거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혜화전문(동국대의 전신) 시대의 영화를 온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동국대는 서울시내 주요대학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불교학과(불교학부)는 상대적으로 성장이 멈췄거나,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교 경영의 최고 책임자인 이사들, 그리고 총장 등 학교의 운영진들은 불교학과 창설 110주년을 맞아 불교대학을 크게 발전시키겠다는 간절한 원력을 세워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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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동국대 불교학과(불교학부)의 현주소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동국대를 상징하는 불교대학(학부)는 개설 110년을 넘어도 자체 대학건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법학관, 과학관, 경영관, 사회과학관, 신공학관, 문화관(예술대), 명진관(문과대), 학림관(사범대), 혜화관(경찰사법대) 등은 있어도 어찌된 영문인지 불교관은 아직 없다. 현재 불교학과를 비롯한 불교학부는 법학관에 곁살이를 하는 신세다. 상대적으로 기독교계가 설립한 연세대에는 신학관은 물론, 언더우드관,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 동국대에는 동국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석비만 정각원 앞에 덩그러니 세워진 반면, 연세대에는 웅장한 규모의 100주년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동국대에서는 100주년이 훨씬 지난 지난해에야 ‘불교학연구센터’의 기능을 수행할 108주년 기념관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무성했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규모가 크든 작든 건학이념을 중심적으로 구현해나갈 학교의 중심대학이 사용할 불교관 마련에 동국대 스님이사들과 스님총장께서 적극 나서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불교대학의 교수가 정년퇴임하면 새 교수를 임용해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상식인데도 무슨 까닭인지 교수 채용을 하지 않는다. 교수직 유지를 위해 학과를 통폐합해 불교학부로 만든 것도 문제지만, 이영자(천태학), 권기종(중국불교), 서윤길(밀교), 조용길(불교윤리), 김용표(종교학), 김선근(인도철학), 현각스님(선학과), 법산스님(선학과) 등이 정년퇴임했지만 그 빈자리는 길게는 10년 가까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동국대 불교대학이 불교학에서조차 주변으로 밀려나는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학술원에 불교학 관련 회원으로 기독교의 성직활동을 하는 타 대학 교수가 임명되는 수모를 겪었겠는가. 동국대가 불교가 설립한 자랑스러운 대학이라면, 우수한 학자를 연줄이나 배경이 아닌 오직 실력을 기준으로 서둘러 임용해야 한다. 이 일에 스님이사들과 스님총장께서 적극 나서주셨으면 좋겠다.

불교학의 기반인 ‘역경원’을 홀대하는 것도 문제다. 역경원은 멀게는 고려시대 대장도감의 석독구결에서 연원하고, 조선 초 불경 언해본을 펴낸 간경도감에까지 이른다. 모두가 다 국가에서 설립한 역경기관들이었다. 동국대가 원력을 세워 역경원의 발전을 위한 플랜을 마련하고 한글대장경 간행을 지원해온 정부와 대화를 한다면 역경원은 얼마든지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기관이다. 따라서 대학이 마음먹고 나선다면 ‘민추’가 ‘고전번역원’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처럼 역경원도 대학의 범주를 벗어난 국역기관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역경원이 한글화한 한글대장경은 현재 무용지물에 가깝다. 번역의 수준은 차치하더라도, 역경원이 번역한 한글대장경은 장식용에 머물러 있다. 번역된 한글대장경을 윤문하고,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 버전으로 윤색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대학이 나서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안 될 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불교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불자로 알려진 당선자가 57명이다. 적지 않은 수인만큼 이들 국회의원들과 접촉해서라도 역경원을 지금처럼 불교학술원의 산하기관으로 방치해놓을 것이 아니라 고전번역원 이상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한문경전은 물론 빨리어, 산스크리트 등을 포함, 역경을 수행하는데 스님이사들과 스님총장께서 나서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학생을 상대로 학교가 법적 소송을 제기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지 법적 다툼의 대상이 아니다. 설사 학생이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가있더라도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 스승의 도리이고 본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이 자비문중에서 행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건학이념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일에 스님이사들과 스님총장께서 적극 나서주셨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동국대 이사로 선출된 9명의 스님들과 26년 만에 다시 선출된 스님총장께서는 적어도 ‘명리’를 좇지 않고 ‘명리공휴’를 생명처럼 여기는 수행자라는 점, 중책을 맡은 것은 위기에 놓여 있는 불교대학(학부)을 되살려 불교정신으로 사회와 나라, 나아가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원력으로 잠시 분주함을 자임한 것이라는 점을, 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널리 확인시켜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