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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의 쓸쓸함, 저 파도가 달래주었겠지?”

김진호 | zeenokim@naver.com | 2016-03-02 (수) 21:26

세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터벅터벅 가야산 해인사를 향해 길을 걷는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그 무거운 걸음에는 그의 삶의 회한의 무게가 걸음마다 실려 있지 않았을까? 최치원은 12세 어린나이에 홀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유학한지 7년 만인 19세에 빈공과에 급제, 중국의 관료가 된다. 하급관료 생활을 하다가 황소의 난으로 기회를 맞는다. 황소의 난을 막을 토벌총사령관인 고변의 종사관이 된 최치원은 드디어 그가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토황소격문이다.

 

쉼터 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동백섬 해안산책로 해파랑길의 풍경. 사진=김진호 기자

해운대 동백섬 해안산책로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수욕장의 풍경.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운 면모를 볼 수 있다.

금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넘실넘실. 부서지는 하얀 포말도 너무나 보기 좋은 해운대의 겨울바다이다.

인어공주 황옥공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 서 있자면 가슴은 어느 새 바다를 닮아간다.

이 토황소격문은 반란의 우두머리 황소에게 보내는 글로 그 내용은 세상 모든 사람이 황소의 무리를 모조리 죽여야 하며 땅 속의 귀신들 역시 그대들을 죽이기로 결정을 했다는 내용을 본 황소는 그 문장이 너무나도 실감이 나고 무서워서 침상에서 일어나다가 주저앉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대단한 문장가이지만 당나라에서 더 이상 발탁이 되질 못하자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29세 고국인 신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시의 신라는 국세가 이미 기울기 시작한 시기. 10여 년간 중앙과 지방관직을 돌며 신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개혁안을 만들었으나 결국 신라의 뿌리 깊은 골품제의 벽에 막혀 그의 뜻은 주저앉고 만다.

 

바다 건너 인어나라 미란다국의 인어공주 황옥공주의 동상이다. 덴마크 인어공주 보다 더 예쁘다.

 

황옥공주 동상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운대의 전경. 해수욕장에서 미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이다.

 

목제 데크로 깔끔하게 놓여 진 동백섬 해안산책로. 이 산책로는 해파랑길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동백섬의 길지 않은 해안산책로이지만 걷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신라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에 관직을 내려놓고 은거를 결심하는데 그 나이가 40세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길이 합천 가야산 해인사로 가는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난 부산 동쪽 바다의 작은 섬의 해안 절벽. 그 작은 섬이 바로 지금의 동백섬이다. 동백섬 동쪽 해안 절벽에 도착한 최치원은 이곳 풍경에 담뿍 반하고 말았을 것이다. 먹먹한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시원한 바다의 풍경. 아름다운 해안선. 거세게 달려온 파도는 갯바위에서 흰 포말로 부서진다. 아마도 시선을 던지는 곳 마다 환희심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 절경에 반한 최치원은 이곳 동백섬에서 한 동안 머물며 바위에 각자를 하게 되는데 그 세 글자가 그의 자(子) 해운을 딴 해운대(海雲臺)이다. 그 이후로 최치원은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며 불교에 관한 여러 글들을 남기게 되는데 주로 화엄종에 관한 글들이라고 한다. 생의 말년까지 해인사에서 머물렀다고 하는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 길은 없다.

 

 드넓은 바다 그리고 갯바위와 파도. 그림 같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다. 최치원도 이런 풍경에 반했으리라.

 

하얀 등대 왼쪽 절벽. 저 절벽 아래 고운 최치원 선생은 해운대라 각자를 해 놓았다.

 

동백섬 운대산 정상에는 최치원유적지가 있다. 동백섬과 인연이 깊은 이곳에 고운의 동상이 서 있다.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당대 최고의 천재 문인이자 학자 최치원. 그 최치원이 반한 동백섬의 해안 풍경을 따라 걸음을 옮겨본다. 드넓은 해운대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좋고 험한 듯 험하지 않은 해안 절벽도 운치가 있다. 걷기 좋게 잘 정비된 목재 산책로를 따라 걷자면 전설의 인어공주 황옥공주 동상의 슬픈 눈빛과 마주치기도 하고 눈을 들어 올리면 망망대해의 시원한 풍경이 가슴을 표백 시켜주는 것만 같다. 아마도 최치원이 이곳 풍경에 온전하게 반해 버린 것은 그의 쓸쓸한 가슴을 파도와 바람이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치원의 시선이 되어 해운대 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인생지사 공수래공수거(人生之事 空手來空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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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그는불법과함께했을까 2016-03-03 18: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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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잠시 의지했을뿐 일까?

의지한만큼은 밥값은 했어야 하겠다, 는 생각.....
달호대감 2016-03-05 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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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덕분에 직접 가지않아도현장에 있는듯 생동감이 느껴지네요
정말 갑사합니다요^^
병호성 2016-03-05 2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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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저두 꼭 가고싶었던곳인데
이렇게 지면으로도 경험을 할수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네여
기자님 다음 기사가 또 기대도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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