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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껍질을 부수라”

진흙속의연꽃 | | 2016-02-15 (월) 18:44

“너, 몇 살이니?”
 
아이들이 얘기 하는 중에 “너, 몇 살이니?”라는 말을 듣는다. 나이로 서열을 구분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연장자와 연소자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다.
 
육체적 나이는 그 사람의 현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래서일까 TV를 보면 사람 소개를 할 때 자막에 나이가 표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직업이나 지위를 가지지 않는 일반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세상이 인정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지위를 가졌을 경우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직장과 직위가 나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육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하는 행위를 보면 미숙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가 어려도 하는 행위를 보면 어른 같은 경우도 있다.
 
육체적 나이는 들었어도 정신적 연령은 낮은 케이스가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비록 나이가 들어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이나 백세가 되었더라도 때 맞춰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가르침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계율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알맞은 말을 하지 못하고, 이유가 분명한 말을 하지 못하고, 한계가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를 두고 ‘어리석은 장로’라고 한다.” (A4.22) 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여기 백 살 먹은 노인이 있다. 그런데 행동하는 것을 보면 철부지 같다. 육체적 나이는 백 살이지만 정신적 연령은 매우 낮음을 말한다. 이는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에서는 때 맞춰 말하지 못하는 것’ 등 열 가지를 들고 있다. 이런 자에 대하여 ‘어리석은 장로’라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요즘 식으로 한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예가 하나 더 있다. 나이 어린 자가 ‘장로’처럼 보였을 때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비록 젊고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행복한 청춘을 부여 받은 인생의 초년생일지라도 때 맞춰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하고, 가르침에 맞는 말을 하고, 계율에 맞는 말을 하고, 기억에 남는 말을 하고, 알맞은 말을 하고, 이유가 분명한 말을 하고, 한계가 있는 말을 하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한다면, 그를 두고 ‘슬기로운 장로’라고 한다.” (A4.22) 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나이는 확실히 숫자에 불과하다.
 
법구경 인연담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법구경 260번 인연담을 보면 부처님께서 “한 장로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대들은 보지 못했다고?” 라고 재차 물었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 한 사미를 보았습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그는 사미가 아니라 장로이다.”라 하였다. 수행승들은 믿기지 않는 듯 “세존이시여, 지나치게 작았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고 장로의 자리에 앉았다고 장로라 부르지 않는다. 진리를 꿰뚫고 많은 사람에 대하여 불살생을 확립하면, 그를 장로라 한다.”라 하였다.

 



누가 손위인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지혜를 깨닫지 못하면 장로라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사미라도 깨달으면 장로라 부를 수 있다. 결국 누가 먼저 깨달았느냐는 것이다. 먼저 깨달은 자가 손위가 되는 것이다. 율장비구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존]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한 마리의 암탉이 있는데 여덟 개나 열두 개나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킬 때, 어떤 병아리가 병아리들 가운데 첫 번째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알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알 껍질을 깨고 나온다면, 그 병아리를 손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손아래라고 할 수 있습니까?”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90P, 전재성님역)

 
 
병아리 부화이야기는 맛지마니까야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외 상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등 도처에서도 볼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야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M16)’에 따르면 선종에서 말하는 ‘줄탁동기(啐啄同機)’와는 다른 것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에 대하여
 
선종에서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줄탁동기’라 하였다. 하지만 니까야에서 병아리 부화의 비유를 보면 어미 닭이 부리로 쪼았다는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한 마리의 암탉이 있는데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나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키면, 그 암탉은 ‘오!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이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 텐데.’라고 원하지 않더라도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 (M16) 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깨달음이란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남이 도와주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한다. 한 존재의 정신세계에 남이 개입하여 깨우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스승은 마치 어미닭이 알을 품어 주는 것처럼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도끼자루 비유의 경’ 에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의 계란이 있는데, 닭이 그것을 올바로 품지 못하고, 올바로 온기를 주지 못하면,  올바로 부화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닭은 발이나 발톱이나 머리나 부리로서 계란의 껍질을 부수어 병아리로 안전하게 부화시키고 싶어도 발이나 발톱이나 머리나 부리로서 계란의 껍질을 부수어 병아리로 안전하게 부화시킬 수 없다.” (S22.101) 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다.
 
깨달음은 자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어미닭이 부리로 알 껍질을 깨 주듯이 타자가 대신 깨달아 줄 수 없다. 깨달음은 철저하게 자력에 따른 것이다. 병아리가 스스로 알 껍질을 깨고 나오듯이 수행자 역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무명이라는 알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의 세계를 파괴 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거듭 태어남이다.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더 태어남이다. 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도 나타난다.
 
거듭 태어남
 
소설 데미안은 맛지마니까야 병아리 부화의 비유를 모티브로 쓰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헤르만 헤세가 삼촌의 집에 있었던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나서 감동을 받아 쓴 것이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는 데미안이라는 것이다.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거듭 태어나려는 자는 먼저 자신의 세계를 파괴 해야 된다는 것이다.
 
거듭 태어남은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이런 거듭 태어남은 깨달아서 성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앙굴리말라경(M86)’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부처님이 앙굴리말라에게 “앙굴리말라여,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 싸왓띠로 가라. 가서 그 부인에게 ‘자매여,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 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당신이 잘 되고 당신의 아이가 잘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라.”(M86)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연쇄 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부처님 교단에 들어 와서 거듭 태어났다. 살인자에서 성자의 삶으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앙굴리말라는 더 이상 연쇄 살인자가 아니었다. 성자로서 거듭 태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두려움을 느끼자 부처님이 “자매여,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 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한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거듭 태어났다. 비록 얼굴 모습과 육체적 형태는 살인자 이었을 때와 변화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마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이 자신이 구축해 온 한세상을 파괴한 것이다.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
 
부처님은 율장비구계에서도 병아리 비유를 들었다. 이유는 ‘손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어미닭은 여러 개의 알을 차례로 낳아 한꺼번에 부화 하지만 먼저 깨고 나온 병아리가 가장 손위라는 것이다. 마치 쌍둥이가 있는데 먼저 세상에 나온 아이를 손위로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병아리 부화 비유를 들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Evameva kho ahaṃ brāhmaṇa avijjāgatāya pajāya aṇḍabhūtāya pariyonaddhāya avijjaṇḍakosaṃ padāletvā eko'va loke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 Svāhaṃ brāhmaṇa, jeṭṭho seṭṭho lokassa.
 
[세존]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무명에 빠진 계란의 존재와 같은 뭇삶들을 위하여, 둘러싸인 무명의 껍질을 깨고 홀로 세상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히 깨달았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90P,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바라문 웨란자의 질문에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라 하였다. 이 세상에 부처님 보다 더 높은 자가 없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고귀한 님들 가운데 선구적으로 태어난 자이기 때문이다.”(Smp.140) 라고 하였다. 여기서 고귀한 님들은 부처님과 벽지불과 부처님 제자들을 의미한다.
 
부처님과 견줄 자는 이 세상에 없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부처님 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왜 이런 말을 하였을까? 이는 경에서 바라문 웨란자가 바라문들로부터 “수행자 고따마가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가 만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사성이 밝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은 고령의 바라문들에게 왜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도 권하지 않았을까? 바라문 입장에서 본다면 젊은 고따마가 무례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
“바라문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내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에 초대할만한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문이여, 여래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를 권한다면, 그의 머리가 부수어질 것이다.”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90P,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깨달은 자이다. 그것도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위없이 깨달은 자이다. 더구나 그 깨달음은 바르고 원만하여 흠 잡을 데가 없다. 이런 깨달음에 대하여 ‘아눗따라삼마삼보디(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라 한다. 한자어로 무상정등정각이라 한다. 이런 깨달음을 성취한 자를 정등각자로 한다.
 
정등각자로서의 부처님은 사성제에 대하여 앎과 봄이 ‘세 번 굴려서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청정해졌기 때문에 선언하였다. 어디에 선언하였는가? 그것은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S56.11) 라고 나타난다.
 
부처님에게 스승은 없다. 그래서 사명외도 우빠까를 만났을 때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자. 모든 상태에 오염되는 것이 없으니 일체를 버리고 갈애를 부수어 해탈을 이루었네. 스스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M26) 라고 말씀 하셨다. 스스로 깨달은 자이니 스승이 없는 것이다. 마침내 부처님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 (M26) 라 하신 것이다.
 
머리가 부수어질 것
 
부처님과 견줄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하느님(범천: 브라흐마)도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범천을 따르는 바라문도 대상이 아니다. 바라문이 제 아무리 나이가 들어 고령이어도 부처님 보다 손아래 인 것이다. 그래서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도 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를 권한다면  “그의 머리가 부수어질 것이다.”라 하였다.
 
여기서 ‘머리가 부수어진다’는 것은 호법신장의 ‘금강저’를 연상케 한다. ‘맛지마 삿짜까에 대한 작은 경’에 따르면 “악기베싸나여, 자, 해명해 보십시오. 그대는 지금 침묵할 때가 아닙니다. 악기베싸나여, 여래가 여법하게 세 번 질문할 때까지 답변하지 않으면,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터질 것입니다.” (M35) 라 하였다. 이는 부처님이 직접 머리를 일곱 조각낸다는 것이 아니라 야차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경에 따르면 야차 바지라빠니가 불타고 불꽃이 이글거리고 빛을 방출하는 쇠로 된 금강저를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과 대론을 하고 있는 자이나교도 삿짜까에 대하여 “악기베싸나여, 여래가 여법하게 세 번 질문했는데 답변하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그대의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터지게 할 것이다.” (M35)라 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손위인 이유 여덟 가지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손위’라 하였다. 더구나 누군가 고령의 바라문에게 일어나서 예를 표하고 자리를 권하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머리가 부수어질 것이라 하였다. 이런 말에 위축 되어서일까 바라문 웨란자는 바라문들이 부처님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알려 준다. 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이다.
 
 
1) 존자, 고따마께서는 멋이 없습니다. (Arasarūpo bhavaṃ gotamoti.)
2) 존자, 고따마께서는 즐김이 없습니다. (Nibbhogo bhavaṃ gotamoti.)
3) 존자, 고따마께서는 무작을 설합니다. (Akiriyavādo bhavaṃ gotamoti.)
4) 존자, 고따마께서는 단멸을 설합니다. (Ucchedavādo bhavaṃ gotamoti.)
5) 존자, 고따마께서는 혐오를 설합니다. (Jegucchī bhavaṃ gotamoti,)
6) 존자, 고따마께서는 제거를 설합니다. (Venayiko bhavaṃ gotamoti.)
7) 존자, 고따마께서는 학대를 설합니다. (Tapassī bhavaṃ gotamoti.)
8) 존자, 고따마께서는 입태를 거부합니다. (Apagabbho bhavaṃ gotamoti.)
 
(전재성님역)

 
바라문들은 부처님에게 왜 멋이 없다고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세존]
“바라문이여, 어떠한 이유로 나에 대하여 ‘수행자 고따마는 멋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형상의 멋, 소리의 멋, 냄새의 멋, 맛의 멋, 감촉의 멋, 사실의 멋이 있는데,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혀,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어떠한 이유로 나에 대하여 ‘수행자 고따마는 멋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대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87P,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바라문들이 ‘수행자 고따마는 멋이 없다.’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여섯 가지 감각적 대상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형상의 멋, 소리의 멋, 냄새의 멋, 맛의 멋, 감촉의 멋, 사실의 멋이라 하였다. 이런 대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뿌리 뽑은 것이다. 즐기지 않기 때문에 ‘멋이 없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세 번째 항을 보면 “고따마께서는 무작을 설합니다. (Akiriyavādo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고따마 존자는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분(도덕부정론자)입니다.”라 하여 괄호를 이용하여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여기서 아끼리야와다(akiriyavāda)는 무작론자를 말한다. 인간행위에서의 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덕부정론자라 한다. 부처님 당시 뿌라나 깟싸빠와 막칼리 고쌀라가 이에 된다.
 
바라문은 왜 부처님이 무작을 설한다고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 마땅한 이유에 대하여 “나는 신체적인 악행, 언어적인 악행, 정신적인 악행의 무작을 설하고 여러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무작을 설합니다.”라 하였다. 
 
네 번째 항을 보면 “고따마께서는 단멸을 설합니다. (Ucchedavādo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여기서 빠알리어 웃체다와다(ucchedavāda)는 단멸론자를 말한다. 인과적 연속성을 담보 할 수 없는 허무주의자를 말한다. 이런 오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단멸을 설하고 여러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단멸을 설합니다.”라 하였다.
 
다섯 번째 항을 보면 고따마께서는 혐오를 설합니다. (Jegucchī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어떤 혐오를 말할까? 주석에 따르면 맞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이 스스로 ‘극단적인 구차한 삶’이나 ‘극단적인 혐오의 삶’이라고 표현한 6년 고행을 말한다. 이런 오해에 대하여 “바라문이여, 나는 신체적인 악행, 언어적인 악행, 정신적인 악행의 혐오를 설하고 여러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혐오를 설합니다.”라 하였다. 
 
여섯 번째 항을 보면 “고따마께서는 제거를 설합니다. (Venayiko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어떤 제거를 말할까? 주석에 따르면 “바라문은 세존께서 인사하는 것 등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최상의 행동을 억제했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다.”(Smp.135) 라 하였다. 바라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부처님이 무례하게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빠알리어 ‘venayika’는 ‘조복자(調伏者), 지율자(持律者), 허무론자(虚無論者)’를 뜻한다. 이와 같은 오해에 대하여  “바라문이여, 나는 신체적인 악행, 언어적인 악행, 정신적인 악행의 제거를 설하고 여러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제거를 설합니다.”라 하였다. 
 
일곱 번째 항을 보면 “고따마께서는 학대를 설합니다. (Tapassī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어떤 학대를 말할까? 여기서 빠알리어 Tapassī는 학대론자 또는 고행주의자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헌신우종교성적고행(献身于宗教性的苦行)’라 한다. 바라문들에게 있어서 부처님은 고행승의 이미지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는 신체적인 악행, 언어적인 악행, 정신적인 악행에 대한 학대를 설하고 여러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학대를 설합니다.”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고따마께서는 입태를 거부합니다. (Apagabbho bhavaṃ gotamoti.)”라 하였다. 여기서 Apagabbho는 ‘Free from rebirth’의 뜻이다. 바라문들이 보기에 부처님은 저열한 태에서 태어난 자로 보았다. 그래서 입태를 거부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누군가에게 미래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혀,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를 두고 입태를 거부한 자라고 나는 말합니다.”라 하였다.
 
무명의 알 껍질을 깨기 위하여
 
바라문들은 부처님을 오해 하였다. 그것이 여덟 가지로 나타난다. 그 중에는 단멸론자로 오해한 것도 있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대하여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에 대하여 단멸론자들이 말하는 허무주의와 다름을 “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단멸을 설하고”라 하여 번뇌의 소멸로 말씀 하셨다.
 
부처님은 여덟 가지 오해를 불식시키며 병아리부화의 비유를 들었다. 알에서 가장 먼저 나온 병아리가 손위라 볼 수 있듯이, 무명이라는 두터운 한 세상을 파괴하고 나온 자가 ‘최상자’라 하였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이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를 권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하여 ‘무명에 빠진 계란’과 같은 존재로 보았다. 부처님이 최초로 무명에 덮인 한 세계를 파괴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스스로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 (Svāhaṃ brāhmaṇa, jeṭṭho seṭṭho lokassa.)”라 하였다.
 
세상에서 제일자 jeṭṭho) 또는 최상자(seṭṭho)로서 부처님은 모든 것이 선구이다. 그것은 무명이라는 알 껍질을 최초로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알 껍질을 깨고 나온 것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숙명통과 천안통과 누진통이다.
 
네 가지 선정에 들기 전에
 
부처님은 모든 존재들의 손위이고 또한 세상의 최상자가 된 것에 대하여 네 가지 선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네 가지 선정에 들기 위한 조건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Āraddhaṃ kho pana me brāhmaṇa, viriyaṃ. Ahos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ṃ.
 
“바라문이여,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권태로움이 없었고 새김을 확립하여 미혹에 떨어지지 않았고 몸이 고요하여 격정이 없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통일되었습니다.”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90P, 전재성님역)
 

 
위 문장은 네 가지 선정을 설명하는 정형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위나야(율장)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절이다. 그런데 네 가지 선정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함(Āraddhaṃ viriya), 사띠의 확립(Upaṭṭhitā sati), 몸의 고요(Passaddho kayo), 마음의 집중(Samāhitaṃ cittaṃ) 이렇게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네 가지 조건으로 불퇴전(asallīnaṃ), 불혹 (asammuṭṭhā), 무격정(asāraddho), 심일경(ekaggaṃ)이라는 결과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조건과 네 가지 결과로서 네 가지 선정을 이룰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네 번째 선정 단계에서 숙명통과 천안통과 누진통에 대하여 알껍질을 깨는 것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숙명통으로 첫 번째 무명의 알 껍질을 깨고
 
숙명통에 대해서는 자신의 전생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어떻게 전생을 알 수 있을까? 이는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흔적은 다름 아닌 현재 가지고 있는 몸과 마음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특정한 시간적 계기에 따라 조건 지어진 존재의 계기가 흔적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조건의 소멸에 수반되는 여실지견에 의해 전생으로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율장비구계 25번 각주) 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주 작은 흔적이나 실마리로도 대상을 파악할 수 있듯이 이 몸과 마음에 남겨져 있는 흔적으로 이전의 조건 발생과 소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생을 알 수 있는 능력은 인과론적으로 알 수 있는 직접지각이 아니라 하였다. 다만 네 번째 선정상태에서 다중적인 전생의 삶을 회상 할 수 있는 능력에 불과한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숙명통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Ayaṃ kho me brāhmaṇ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a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yaṃ kho me brāhmaṇa, paṭhamābhinibbhidā ahosi kukkuṭacchāpakasseva aṇḍakosamhā.
 
“나에게 한 밤의 초야에 첫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첫 번째 깨고 나옴 이었습니다.”
 
(Verañjakaṇḍo-베란자의 이야기, 제1장 승단추방죄법, 율장비구계 90P,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모두 보았다.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하고 초야에 첫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타파됐다(avijjā vihatā)’고 했다. 이어서 ‘명지가 생겨났다(vijjā uppannā)’고 했다. 이것이 숙명통이다. 숙명통으로 전생을 보자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다고 하였다. 이를 ‘무명의 껍질(avijjaṇḍakosaṃ)’ 을 깬 것에 대하여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천안통으로 두 번째 무명의 알 껍질을 깨고
 
무명의 껍질은 모두 세 번에 걸쳐서 깨졌다. 두 번째 무명의 껍질이 깨진 것은 천안통에 의해서이다. 부처님이 숙명통으로 자신의 무수한 삶의 전생을 보고 명지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천안통으로 타인의 삶의 모습을 보고서 중야에 두 번째 명지를 얻은 것이다. 그런 천안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천안통은 자신의 행위와 업보에 미루어 타자의 행위와 업보에 대해 파악하는 능력이 정제되고 확장된 것이라 설명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의 뭇삶들의 다양성을 그들의 업보의 다양성에 따른 인과응보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숙명통은 자신에 관련된 것이고, 천안통은 타인의 다양한 업보에 따라 등장하는 운명에 대한 것이다.
 
천안통은 자신의 숙명을 미루어 타자의 숙명에 관해 아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천안의 계발은 초감각적 초시간적 실재를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육안을 토대로 한다고 했다. 따라서 천안통은 현재적 사건을 보는 목적을 위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직접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천안통을 통하여 뭇삶들을 관찰하였다. 중생들의 생사와 미추, 행불행에 대하여 ‘업보에 따른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안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천안통으로 무명의 껍질을 부수었다고 하면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두 번째 깨고 나옴 이었습니다.”라 하였다.
 
누진통으로 세 번째 무명의 알 껍질을 깨고
 
부처님은 누진통으로 무명의 껍질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이는 다름 아닌 번뇌의 소멸이다. 사성제의 진리를 곧바로 알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했습니다.”라 하였다.
 
부처님은 마음의 의한 해탈을 이루자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야에 세 번째 무명의 껍질이 타파 되었을 때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해 마쳤으며,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라고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병아리가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세 번째 깨고 나옴 이었습니다.”라 하였다.
 
이 생에서 거듭 태어나려면

 
율장비구계를 보면 가장 먼저 바라문 웨란자와의 대담이야기가 나온다. 외도 웨란자가 부처님의 무례함에 지적하자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손위라 하였고 또 최상자라 하였다. 그런 이유로서 병아리부화의 비유를 들었다.
 
부처님은 무명에 빠진 뭇삶들에 대하여 계란의 존재와 같다고 보았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최초로 무명의 껍질을 깬 것에 대하여 세 가지 명지, 즉 숙명통과 천안통과 누진통으로 설명하고 하고 있다.
 
부처님은 네 번째 선정에서 삼명으로 세 번에 걸쳐 무명의 껍질을 부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 (M26) 라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하고 자리에 초대할만한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라 하였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무명의 껍질은 홀로 부수는 것이라 하였다. 누군가 대신 깨우쳐 줄 수 없음을 말한다. 이는 병아리 비유로 알 수 있다. 또 소설 데미안에서도 확인 된다. 이 생에서 거듭 태어나려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명의 두터운 알 껍질을 부수어야 함을 말한다. 새롭게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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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무상상 2016-02-15 20:26:04
답변  
언뜻 보면 참으로 그럴싸한 글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소감을 말해볼까 합니다.

깨달으면 모두다 아라한입니다. 붓다도 그 뒤의 1250여명의 제자들도 전부다 아라한입니다. 한데 절대로 붓다와 제자들을 같은 반열에 올려 놓지 않습니다. 같은 아라한이라도 붓다와 제자들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홀로 깨달았지만 제자들은 붓다께서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줄탁동기를 상당히 왜곡되게 아시는 것 같은데 님이 줄곳 인용한 계란으로 볼 때 ... 알이 깨기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줄탁동기며 그리고 바깥에서 알을 깨어주는 것도 줄탁동기 입니다. 왜냐하면 팔정도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며 팔정도가 무명을 파괴하는 무기이며 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전에는 붓다의 훈계를 듣고 대오각성하여 정진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졸다가 훈계받고 잠을 안자고 정진하다가 눈먼 제자도 있지요? 안그런가요? 이럴때 붓다의 훈계는 줄탁동기입니다. 그리고 팔정도 자체가 달걀 껍질을 깨고 알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줄탁동기의 날카로운 부리이며 무기이며 도구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 즉 계란이 잘 부화되도록 환경을 만드는게 곧 줄탁동기 입니다.

그리고 나이만 많다고 장로가 아니라 깨달으면 나이가 어려도 장로라고 한다는 말을 수십번은 써 먹는 것 같은데... 솔직히 황당합니다. 님은 아마도 승가내의 위계질서보다는 깨달으면 내가 왕이로소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붓다의 가르침을 무지무지 왜곡하는 습성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네요.

붓다께서 깨달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장로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다른 율장에서는 승가내의 위계질서에 대해서 빼곡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시말해서 깨달은 어린 사미가 70먹는 노인네 수염잡아도 된다는 말은 안했습니다. 안그런가요? 그런데 마치 붓다께서 그렇게 해도 되고 그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수십번 강조를 하는군요. 율장에 승가내의 위계질서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는 눈에 안 보이나요?

경전을 보면 붓다께서는 이런곳에서 이런 말을 했고 저런 곳에서 저런 말을 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같은 경전안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설법이 꽤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시나 보네요...

어린 나이라도 깨달으면 장로로 대우해야 한다는 말은 다시말해서 제자들에게 훈계를 하시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지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어린애가 노인 수염 잡아댕겨도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깨달으면 눈에 보이는것도 없고 예의범절도 없이 개망나니처럼 승가의 위계질서를 무시해도 된다고 어린 사미에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수십번도 더 넘게 여기저기 그 말을 하고 다니나요?

새해에는 정신 좀 차리세요.
무상상 2016-02-15 20:31:37
답변 삭제  
경전을 보는 눈을 좀 밝게 해 드리지요.
1) 경전은 많은 귀절이 부정문으로 되어 있다.
2) 경전의 귀절은 내용에 따라서 훈계 설법 충고등으로 나뉜다. 쉬운 예로 어린 사미이지만 깨달았으니 장로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어린 사미도 깨달았는데 출가한지 오래된 제자들은 뭐하고 있느냐.. 좀더 열심히 정진해라.. 라는 훈계입니다.
3) 재자가들에게는 대부분 설법의 형식입니다.
3) 바라문등 외도들과 논쟁을 할 때는 올바른 지혜를 갇도록 충고하는 것입니다.
다원 2016-02-17 12:35:38
답변  
<<언뜻 보면 참으로 그럴싸한 글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소감을 말해볼까 합니다. [이하 무상상=실론섬 뎃글 원문 인용]>>
<--[⚫다원 왈: 나도 언뜻 보면... 참으로 그럴싸한 (뎃글)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 다원이가 무상상의 글쓰기에 소감을 말해볼까 합니다.]

<<...깨달으면 모두다 아라한입니다. 붓다도 그 뒤의 1250여명의 제자들도 전부다 아라한입니다. 한데 절대로 붓다와 제자들을 같은 반열에 올려 놓지 않습니다. 같은 아라한이라도 붓다와 제자들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홀로 깨달았지만 제자들은 붓다께서 걸어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다원 왈: ...한데 절대로 붓다와 제자들을 같은 반열에 올려 놓지 않습니다...
연꽃은‘...부처님은 바라문 웨란자의 질문에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무상상은 꽃님이가 한 말과 같은 말을 하면서 <...한데 절대로>라고 꽃님이 글에 무슨 문제가 있는 듯이 뉘앙스를 풍기는 전제를 하고 글을 쓴다.]


<..줄탁동기를 상당히 왜곡되게 아시는 것 같은데 님이 줄곳 인용한 계란으로 볼 때 ... 알이 깨기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줄탁동기며 그리고 바깥에서 알을 깨어주는 것도 줄탁동기 입니다. 왜냐하면 팔정도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며 팔정도가 무명을 파괴하는 무기이며 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전에는 붓다의 훈계를 듣고 대오각성하여 정진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졸다가 훈계받고 잠을 안자고 정진하다가 눈먼 제자도 있지요? 안그런가요? 이럴때 붓다의 훈계는 줄탁동기입니다. 그리고 팔정도 자체가 달걀 껍질을 깨고 알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줄탁동기의 날카로운 부리이며 무기이며 도구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 즉 계란이 잘 부화되도록 환경을 만드는게 곧 줄탁동기 입니다.>>
<--[⚫다원 왈: 무상상은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 즉 계란이 잘 부화되도록 환경을 만드는게 곧 줄탁동기 입니다...>라고 용어 해설을 부언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됐지 않나???  꽃님이 말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같은 말로 결론을 맺으면서
<... 것도 줄탁동기며 ...것도 줄탁동기...> 라고 같은 말을 할 것이면서  <...줄탁동기를 상당히 왜곡되게 아시는 것 같은데...>라고 아주 고약한 이의를 단다. 그리고는 아무 의미도 없는 무상상 자신만의 문장유희로 비약하고 튄다.
<...왜냐하면 팔정도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며 ...무기이며 칼이기 때문...> 라고 하는 것인가? 
좋다. 줄탁동기가 스승과 제자들 간의 공부방법이라고 한다면 맞다. 그것의 목표가 대오각성이라면 당연히 초기불교에서 강조하는 팔정도인 것도 맞다.

꽃님이는 이러한 모든 방법들 중에
... 손위라는 여덟가지 현상과.
... 여섯가지 감각대상을 토대에서
... 삼독의 입장에서.
... 선정과 신통의 입장에서
경전을 토대로 일일이 인용해 가며 제한적인 자신만의 칼럼을 쓴 것이다. 교학이나 논문도 모오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데 수필이나 다름없는 글쓰기인 꽃님이가 모든 면을 다 다루어서 오류가 없는 글을 쓸 필요도 없는 것아 아닌가? 언급하지 못하는 남은 부분은 독자의 목이 아닌가?


<<... 님은 아마도 승가내의 위계질서보다는 깨달으면 내가 왕이로소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붓다의 가르침을 무지무지 왜곡하는 습성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네요.>>
<--[⚫다원 왈:
<...승가내의 위계질서보다는 깨달으면 내가 왕...>????
무상상은 왜곡을 시작할 때 이런식으로 논점을 돌리고 시작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승가내의 위계질서’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다면 그대가 그런 글을 쓰면 될 것이다.
꽃님이는 ‘깨달음만이 왕’이라고 한 적도 없고 더구나 깨달음만을 강조한 것도 없다. 수행자와 율장에 의거하면 깨달음을 기준으로 해서 출가자의 위의와 재가자의 윤리를 정리한 것일 뿐이다. 승가내의 위계질서라도 다름이 없다. 그런데 또 무상상은 ‘승가내 위계질서와 깨달음’에 무슨 유별난 차이라도 있는 듯이 말하고 있나???
 

<<...붓다께서 깨달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장로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다른 율장에서는 승가내의 위계질서에 대해서 빼곡하게 기록해 ... 다시말해서 깨달은 어린 사미가 70먹는 노인네 수염잡아도 된다는 말은 안했...  안그런가요? 그런데 마치 ...그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수십번 강조 ...뭐라고 했는지는 눈에 안 보이나요?>>
<--[⚫다원 왈:
또 왜곡의 극치... 무상상=실론섬에게 내가 독맹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다.
꽃님이는 ‘수염을 잡아도 된다.’라고 말한 적도 없다. 본문에도 없다. 단지 언린 출가 사미가 재가자 장로의 수염을 잡은 일로 생긴 율장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썼다 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수십번 강조...>라고 독자들이 해석해야 할 몫을 무상상이 짚어 내 주었다면 그건 불가에서 그렇게 혐오하는 지독한 편견이고 무상상의 개인 심성의 투사일 것이다. 정말 경전에 뭐가 써 있는지 잘 보고 있나 묻고 싶다.


<<..경전을 보면 붓다께서는 이런곳에서 이런 말을 했고 저런 곳에서 저런 말을 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같은 경전안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설법이 꽤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시나 보네요... >>
<--[⚫다원 왈:
내가 쓰는 글은 마땅치 않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비아냥이 어디 있나?
<... 경전에... 이런말... 저런말... 상반되는 설법이 꽤...> 있다고 하는데...  이것 자체도 근거가 애매한 인용 아닌 ‘게으른 인용(홍창성의 사유 방법)’이고 논증이 아닌 개인 주장일 뿐이다. 무책임하게 몰아가면서 남의 글의 맥락을 흐리고 매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를 내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 척 입술을 비틀며 깨무는 짓이 아닌가?


<<어린 나이라도 깨달으면 장로로 대우해야 한다는 말은 다시말해서 제자들에게 훈계를 하시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지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어린애가 노인 수염 잡아댕겨도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원 왈:
‘<수염을 잡아당겨도...>된다.’는 말은 본문에도 없지만 꽃님이가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곳도 없다. 당연 ‘수염을 잡아당겨도 된다.’는 말은 하면 안되지... 위계질서가 아니라 윤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하나마나 한소리를 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의도는 뭐나?

<<..깨달으면 눈에 보이는것도 없고 예의범절도 없이 개망나니처럼 승가의 위계질서를 무시해도 된다고 어린 사미에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수십번도 더 넘게 여기저기 그 말을 하고 다니나요?>>
<--[⚫다원 왈:
이 글을 이렇게 거꾸로 붙여보자
<...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까?> <... 개망나니처럼 승가의 위계질서를 무시해도 된다고...>
무상상의 ‘이해’가 꽃님이의 ‘위계질서의 무시’로 되어 버리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야 무상상의 자유이지만, 하지도 않는 말을 꽃님이가 한 것처럼 하는 것은 가증스런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새해에는 정신 좀 차리세요. <--이거는 그대가 쓴 말을 그대로 쓴다.


경전을 보는 눈을 좀 밝게 해 드리지요.
1) 경전은 많은 귀절이 부정문으로 되어 있다.
<--[⚫다원 왈: 무상상처럼 62견으로 말하면 자가당착에 빠지므로 부정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야]

2) 경전의 귀절은 내용에 따라서 훈계 설법 충고등으로 나뉜다. 쉬운 예로 어린 사미이지만 깨달았으니 장로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어린 사미도 깨달았는데 출가한지 오래된 제자들은 뭐하고 있느냐.. 좀더 열심히 정진해라.. 라는 훈계입니다.
<--[⚫다원 왈: 어린 사미의 일로 계율을 만든 것과 함께 설법이 시작된 것이지만, 어린 사미 때문에 깨닫지 못한 자들을 닦달한 훈계라는 것은 무상상의 상상 그대로일 뿐이다.
삼독에도 저촉되지만 부처님이 ‘옆집 애처럼 못하냐?’는 식으로 꾸짓으면서 훈계 했겠는가?
너무 상황논리로 글을 쓰는 무상상의 무조리를 긴 시간 너무 많이 보아온 다원의 충고이다. ]

3) 재자가들에게는 대부분 설법의 형식입니다. 
<--[⚫다원 왈: 무슨 설법????]


3) 바라문등 외도들과 논쟁을 할 때는 올바른 지혜를 갇도록 충고하는 것입니다.
<--[⚫다원 왈: 경전이 충고 어록이라고...????  정말 살다살다 별 훼괴한 주석을 다본다.]
다원 2016-02-17 12:40:55
답변  
[⚫다원의 사족]
내가 원불사에서 실론섬이 지도법사로 있을 때, 그의 해박한 불교 지식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때그때의 상황논리로 교학을 무질서하게 해설하는 것을 보고 초기불교(특히 연꽃 논단에서)를 논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가 단현은 나를 강퇴시켰다. 그 뒤 자중지란을 겪다가 원불사에서 나와서 연꽃의 글을 왜곡하는데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지적하고 알리기도 하지만, 그에 글의 문제를 알리면서 나 또한 불교의 공부를 갈고 닦는 것 또한 사실이다. 수행의 실천적 모습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남이 모르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이 모르게 할 수는 없다. 남이 모르게 수행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이고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지독한 요행이다. 내 오기傲氣에 승복하기를 바란다면 불자로서는 요행이 아니라 지독한 업이고 착각이다. 그러면 내가 왜 이렇까? 그건 양심이다. ‘수치심없음’은 몰라서 그럴 수 있지만 양심은 이미 불교물만 마셔도 구생심이나 다름이 없다. 그가 양심을 모르고는 불교를 말한다는 것이 아지랑이나 같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2016-02-16 14:54:44
다윈님은 그토록 많은 닉넴임 만들어 낼려니 참 머리가 아프겠네.
☛우바새 2016-02-16 16:22:05
무상상님 ! 글 잘 읽었습니다 . ...제가 당해보니 알겠더라구요. 연꽃과 그의 추종자 다윈류는 늘 그런식이였잖아요! ...무상상니도 그게 거슬리는것이지요? 저다윈이라는 작자의 하는 꼴을 좀 보십시요!  진드기 저리가라 입니다.
[⚫다원의 사족]
이 두 사람은 원불사의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닉네임을 스면서 나를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양심과 수치심도 없는 중생이라 비난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닉네임을 써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다원의 안티는 ‘실론섬=무상상’과 ‘원불사 쥔장 단현’외에는 없다. 단언한다. 그 외 ‘참괴’라는 비구가 원불사에서 부화뇌동을 하면서 직접 충돌하긴 했으나 그나마 양심과 비구의 성정이 있어서 직접 관련이 없으면 텍클은 없다.
꽃님이 방에서도 나와 부딪히고 나의 거침에 눈살을 찌프린 두 세분의 안티도 있었지만 단순히 거친 나의 행태에 반발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글 뜻까지 무시해버리지 않는 양심은 지켜서 나에게 배타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르다.
무상상=실론섬은 민낮 하나는 내놓고 이따금 분신술을 쓰지만... 단언하건데  단현이는 이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 일생에 가장 치욕적인 인상이다. 그는 충청도 공주에 까지 와서 나와 함께 막걸리까지 먹은 사이다. 그와 나는 헨폰 번호까지 공유하고 있다. 내가 전화를 걸어 모든 일을 확인하고 싶지만 그런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다. 다만 그의 불사를 살얼음 밟듯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양심이 없는 깨달음이 가능한지...
지식과 잘남은 아는 만큼이라 모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른다고 잠시 무시는 해도 양심이 없는 삶은 걸음걸음이 족쇄다. 볼 것도 없다.
배희정 기자 2016-02-16 10:01:00
답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떠한 주장이든 그 주장이 온당하거나 온당하지 못하고 황당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비하하는 비속어를 쓴다거나 욕설이 담긴다면, 또 "저를 지칭"하는 내용의 댓글이 올라온다면 모두 삭제하는 것이 저희 회사의 방침입니다. 품격 있는 언어로 논쟁을 펼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또한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삼가부탁드립니다.
무상종 2016-02-16 10:05:57
답변 삭제  
* 왜 내 글이 지워졌지요?.......
...................
실론섬= 무상상의 놀랍게 하는 경안 몇가지를 주물럭 거려보면.
이건 머 파헤칠 것도 사실상 없다............
.....................................
놀라운 경안의 소유자, 실론섬의 어록중에서.............ㅎㅎㅎ

@자유의지의 종교가 불교다===> 자아를 없애는 것이 불교라고 한다.외도의 주장을 함..완전히  꺼꾸로 감...........

@예전에는, 불교의 세계는 12처다.......===> 다투,칸다,아야타나(처)의 구별도 못하는 자의 경안이다.......감각기관과 감각대상만이 불교의 세계란 말인가?.........

불교의 세계는 삼계이다......그것을 일명오온이라고 한다.....

오온을 원소로 나눌때, 다투에서는 ....지수화풍/공/식이라고 한다.......

불교의 세계가 12처라고 한다면====> 1

2처가 눈하고 , 색이 따로 떨어져 있을때 식이 생기는가?....눈따로............경치 따로인데.......
 12처가 불교의 세계란 주장은 새로운 불교종파주장이란 말인가?

친절하게  하나는  갈켜주지........

잠잘때 눈가지고 있는데.........저 산의 경치가 보이냐?
각각 근과 경이  떨어져 있을때..............봄이 있는가?...........
참으로 놀라운 경안........솔직히 경안이런것 경전만 수천년봐도 사실 안 생긴다.........ㅎ.......
그냥 글자로 앞뒤 퍼즐 맞추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 또 전에는 외도의 삼매와 불교의 삼매가 동일하다고 한다....

이것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인심쓰는 김에........

싯다르타가.........외도의 삼매를 닦은 것이, 힌두 요기들의 짝퉁 삼매였다....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이것은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결국 올바른 삼매와 그릇된 삼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8정도의 올바른 사마디........라고 하는것이다.....
즉 그릇된 사마디가 있다는 것이다........

외도의삼매와 불교의 삼매가  다 같다는 주장은 참으로 기본도 모르는 무식하고 무지하고, 불교에 세균을 퍼트리는 고약한  짓이다.

쓸데없이 주접떨면서 남 비난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삿된 아는척은 한계에 부닥친다......===>정확히 이것은 8사도로 가는길이다....선이라는 덕행,계율에서부터 막가는 것.......또 그것을 사띠하지도 못함......

악의와 교만과 무지 무식의 극치에 불과.................

자유의지의 종교가 불교면, 자아의식의 족쇄 10가지는 다 헛소리인가?..
자아를 버리는것이 불교의 공부이고 불교의 수행이다........
그 자아를 만드는 주범이 , 의지,의도이고, 생각,상상, 충동에서 기생한
자유의지,자아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자외에는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다.
자아를 무너뜨려라........상카라의 원인과 결과라는 과정뿐이다....
그 상카라는 조건과 원인에 의한 것일뿐이다.......

새로운 불교종단 하나 만들라고 그러나?.
실론종, 무상종 이런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먼 그리 남을 악랄하게 악의적으로 비난하는지 원.............





걍 조용히 침묵하면서 좀 배워라........

이런 이야기 어디서 쉽게 듣지도 못한다........
가르쳐줄때 제대로 배우고 , 쓸데없이 악의에 가득찬 비난글 자중하길 바란다.....

아니면 새로운 불교 하나 만들던가?
무상종.....실론종........으로......
무명과사리사욕을어떻게벗어어야하나 2016-02-16 10: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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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껍질을 벗어 깨달음을 얻고자 함은 우리 불교 사부대중의 지향점이죠.
대승보살의 원력이기도 하고, 우리 선불교의 핵심입니다.

무명의 껍질을 벗어낼려면,

학자는 경전의 껍질을 벗겨낼줄 알아야 하고,
소승은 고 를 꿰뚫을줄 알아야 하며,
대승은 깨달음 수행으로 함께할줄 알아야 하는데요.....

이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죠.

그래서 개인과 인맥의,
사리사욕에 빠지기 쉽상인데요,

우리는 그런모습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조심해야 하죠.....
무명 2016-02-16 11:00:01
답변  
무상상님은 뭔 엉뚱한 애기를 하시네요.
나이가 많아도 그가 깨닫지 못하면 장로가 아니듯이요.
가사를 걸쳐다고 누구나 수행승이 아니듯이요.

연꽃님의 소중한 글에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고계시네요.
근본불교를 부처님 말씀을 믿는 불자중에 누가 8정도를 부정하나요?
구업을 짖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름 2016-02-16 11:23:17
답변 삭제  
근본불교도 근본불교나름 아닐까요?
소멸 2016-02-16 11:07:22
답변  
<소멸>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와 <대승교, 선교>의 차이

-------------------------------

<<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 >>

1. 무명(치) : << 사성제 >>를 모르는 것.
2. 지혜(정견) : << 사성제 >>를 아는 것.

-------------------------------

<< 대승교, 선교 >>

1. 무명(치) : << 사성제 >>를 아는 것.
2. 지혜(정견) : 오직 모를 뿐, << 사성제 >>를 모르는 것.

========================================================

<모로가면삼천포>

옳으신 말씀.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 이러지 말고…
대승교 또는 선교, 그렇게 부르십시다…

간화선 또는 참나의 유용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힌두의 불이법도 그 나름의 유용성이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답니다. 허나 사성제-팔정도의 부처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설하면서 그것을 불교라고 칭하니 그게 문제인 겁니다. 계-선정-지혜의 팔정도를 통한 열반-해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인 선정과 해탈을 부정하는 불이법을 말하면서도 부처님의 불교라는 용어를 같이 쓰고 있으니 초심자들은 당연히 사유적 혼돈의 오리무중을 헤매게 되는 거잖아요. 불편하게 살지 맙시다.

“저를 힌두교 브라흐마라고 매도해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자기 체험에 입각해서 진리가 실재함을 강력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비겁한 것입니다.”

님의 해설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대승교, 선교 ~ 우리, 이제 이렇게 나갑시다, 솔직하게…
아시나요 2016-02-16 11:25:19
답변  
모른다니, 뭘 모른다는건지...
소멸 2016-02-16 11:34:50
답변  
아시나요님! 혹시 이 글귀를 보고 말씀 하시는 것인가요?

<< 대승교, 선교 >>

2. 지혜(정견) : 오직 모를 뿐, << 사성제 >>를 모르는 것.

-----------------------------------

<< 대승교, 선교 >>의 핵심은 << 사성제 >>를 부정하는 '불이법'입니다.
※ '간화선의 불이법'은 '사성제'를 부정하는 '사견' 참조 : http://blog.daum.net/songusup/943

<< 대승교, 선교 >>에서는...
'불이법'이라는 가장 질이 나쁜 사견에 의지하는 '일심, 불성, 여래장, 참나'등은

'교리와 논리로 절대로 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 불립문자

그래서 '오직 모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혜(정견)라고 합니다.
'오직 모를 뿐'이니까 당연히 << 사성제 >>를 모르는 것이죠..

반대로, << 사성제 >>와 같은 교리를 아는 것은 무명(치)이라고 합니다.
말을따라가서 2016-02-16 12:09:23
답변  
말 쓰임새와 실천을 따로 보니까...
그런거 같은거죠?
소멸 2016-02-16 12:21:20
답변  
제가 그렇게 설명을 해도 납득하지 못하는...

<< 대승교, 선교 >>를 믿는 여러분들은 속고 있습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진리는 무상정등각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 사성제 >> 뿐입니다.

<< 사성제 >>를 아는 것이 => 지혜(정견)이고,
<< 사성제 >>를 모르는 것이 => 무명(치)입니다.

-------------------------------

그러나, << 사성제 >>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탐진치와 자존심이 약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 소수의 사람들 >>입니다.


탐진치와 자존심이 강한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 다수의 사람들 >>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찍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여열반하신 후 영향력이 줄어드니까...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를 갈아엎고(부정하고), 자존심이 강하니까
'대승불교'라는 명칭을 내걸고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와 정반대의 사상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태양 2016-02-16 14: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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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曰:

옛 바라문=아라한
줄닥동기는녀무나간것같아요 2016-02-16 1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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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보면, 항상 느껴지는 것인데요,

붓다의 귀하고 지혜최고 법문의 향기를,
생으로 앞뒤 짜른채, '뉘앙스'를 혼돈되게 섞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shake' 쉐이크 라고 해야할지...
쉐이크가 맛있지만. 자주 먹을 수는 없지않나요?
비만이 오기 때문입니다.
선불교왜곡하지말라 2016-02-16 1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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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에서  줄탁동시(줄탁동기)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선종의 깨달음을 타력으로 단정하는 것은 선종에 대한 무지다.

스승(어미닭)은 제자(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알 밖에서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스승(어미닭)이 알 밖에서 알을 쫀다는 상징적 의미를 모르고 진짜 '알 밖에서 알을 쪼아대서  병아리가 별 노력도 없이 알밖으로 나오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는 것은 선불교가 극도로 꺼려하는 문자주의의 폐해가 된다.

선어록 조금만 읽어봐도 줄탁동시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깨달은 제자들은 스승에 절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만 스승들은 당신들이  한 일이 별로 없다,라고 말한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알을 깨고 나온 것, 즉 깨달음을 얻은 것은 온전히 제자의 힘으로 나왔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선사들이 말하는 것이다. 선사들은 "내가 너를 깨닫게 했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선사는 끊임없이 제자가 자신의 본성을 보도록 자극만 해준다. 제자한테 맞는 화두를 주거나, 제자의 수행상태를 시시때때로 점검하면서 수행상태에 맞는 다른 방안을 고안하여 자극해 준다. 제자 입장에서 보면 스승이 밤낮으로 자신의 근기에 맞게 자극제가 되어준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스승 입장에서는 그정도의 약간의 도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금강(덕산)이 용담스님을 찾아갔을 때
용담스님이 한 일은 "촛불을 훅~ 불어서 꺼준 것" 밖에 없다.
촛불이 꺼질때 덕산스님은 깨달았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덕산스님은 자신의 본성을 본 것이다.

병아리인 덕산스님 스스로가 본성을 봤다(알을 깨고 나왔다).
용담스님은 그저 촛불만 꺼준 것이다. 덕산스님이 민감하게 깨어있지 않았다면 용담스님의 촛불끈 행위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담스님의 외부 자극에 감응하여 자신의 본성을 본 것은 온전히 덕산스님의 몫이다. 덕산스님이 감응하지 않았다면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용담스님 입장에서 덕산스님이 고마운 것이다. 용담스님의 자극에 덕산스님이 감응해 주었으니까.

용담스님 입장에서 촛불 꺼준게 무슨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피와 땀을 흘린 일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거룩한 일도 아니다. "도움"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민망한 일이다.

선불교에서 스승이 제자가 깨닫도록 90% 다 해놓고 제자는 숟가락만 얹어 깨닫는 타력신앙?? 줄탁동시가 그런 뜻으로 쓰인 사례가 선어록 그 어디에도 없다!  목마른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도, 물을 먹을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말 자신이다. 본성을 깨치고 말고는 오로지 제자의 몫이다. 스승은 깨닫는 방법만 제시하고, 본성을 깨치도록 자극만 주는 것이다. 이게 줄탁동시의 의미다.

어렸을 적 시골에 살아서 닭을 키워봤다. 부화할때 최초 알에 균열을 내는 것은 어미닭으로 유추한다. 알 속의 병아리가 나갈 때가 됐다고 신호를 보내면서 알을 쪼려고 하면 알 밖의 어미닭은 병아리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알아챈다. 이때 어미닭이 아주 살짝 알을 쪼아 알에 균열내준다. 어미닭 입장에서 세게 쪼으면 안의 병아리가  위엄해지니 크게 도와줄 수도 없다. 껍질에 균열이 갔을때 일부껍질을 어미닭이 제거해 주어 안에서 필사적으로 나오려는 병아리를 돕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작은 도움을 줬다고 해서 어미닭 때문에 병아리가 나온 것은 아니다. 어미닭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나오려는 병아리의 노력이 없으면 부화하다가 그냥 죽는다. 어미닭이 알에서 나오려는 의지가 없는 병아리를 나오게 하지는 않는다.

선승이 아무리 외부에서 자극해도 제자가 감응하지 못하면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불교왜곡하지마라 2016-02-16 13: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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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글 읽어보시죠? 선종의 줄탁동시의 내용을 진흙속의 연꽃은 "타력"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초기경은 병아리 스스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선불교는 어미닭이 밖에서 전적으로 쪼아주어서 병아리가 나올 수 있는 거라고 왜곡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줄탁동시라는 용어는 선불교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스승은 어미닭 처럼 알을 품어 알속의 병아리를 성장시키고 보호해주고, 이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알 밖에서 자극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가 깨어날 때(알을 깨고 나올 때) 관여하지 않습니다. 아니 관여할 수 도 없습니다. 본성을 보는 것 자체는 제자의 100% 능력이니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선어록 그 어디에서도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완성시켜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깨달음은 속성상 타력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본글 필자는 선불교의 깨달음이 전적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선물해주는 타력으로 왜곡하고 있어요. 본글 필자는 그저 "줄탁동기"라는 문자만을 근거로  선불교를 "타력"적인 깨달음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이런식의 막무가내식 왜곡이 왜곡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라구요?
독해력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반짝=깨달음...이후의 글은 본글 필자의 줄탁동시 왜곡과 관련도 없는 이야기이구요. 전부 엉터리입니다.
제가가 본성을 봤다고 해서 수행이 끝나는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보살행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초기불교라면 열반을 얻어 아라한이 됐으니 수행 끝이겠지만
대승,선불교는 견성(열반)을 한 그 싯점에서 상당기간 보림을 하구요
이후 점수수행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점수수행은 전생의 습을 없애는 동시에 화엄경에서 말하는 보살 1지, 2지, 3지...이렇게 윤회하면서 6바라밀이 점점 퍼펙트하게 나오게 하는 수행입니다. 보살 10지까지 가야 부처(성불)가 되는 겁니다. 6바라밀이 탐.진.치가 있는 상태에서 나와요? 탐.진.치라는 업장이 두터운데 어떻게 보시를 제대로 할거며 지계를 제대로 할거며, 인욕을 제대로 할거며...지혜가 제대로 나오겠습니까.
대승이 뭔지 모르고 소설 함부로 쓰지 마세요, 보고 있는 대승불자들 배꼽빠지게 웃습니다그려
선불교를왜곡하지마라 2016-02-16 14:36:36
답변  
"어쨌든?"  이 왜나와요?

진흙속의 연꽃이 줄탁동기라는 용어를 통해 선불교의 깨달음을 타력이라고 왜곡한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마당에

맥락도 없이 불이법이 왜 나오며, 참나가 왜 나오며,
고집멸도,사성제,팔정도가 왜나와요?

얘기하는 주제가 줄탁동시인데, 혼자서 주제와 관련도 없는 얘기 늘어 놓으면서 이야기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갑니다.
정신차려요. 당신은 불이법-참나, 고집멸도,사성제,팔정도를 떠들 일이 아니라, 진흙속의 연꽃이 줄탁동기의 내용으로 선불교의 깨달음을 타력으로 왜곡한 것에 대해 "왜 왜곡이 아닌지를  반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론을 못하니까 "어쨌든" 이라면서 불이법-참나, 고집멸도....주제와 관련도 없는 내용을 늘어놓으면서 횡설수설하는거죠.

본글 쓴 필자나 그를 묻지마 옹호하는 자나 다 왜곡의 달인들이라서 그런지 소통이 안되네요. 아무리 반론할 거리가 없다한들 자신의 정신, 양심까지 왜곡하지는 말자구요.
무명 2016-02-16 14: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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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보면 그냥 초기불교도는 확실히 아닙니다. 남들보고 무상종, 실론종이라고 하지만 실은 자신들이 연꽃종에 가깝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쉴드쳐 줍니다.
'선불교왜곡하지마라'님이 말한 '선종에 대한 무지' 때문이지만 단순무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무지라기 보다는 신념무지라고 보입니다. '선불교왜곡하지마라'님의 설명을 듣고 하는 말이 '어쨌든' 아니라네요.
아이고 2016-02-16 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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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알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승불자보고 사성제를 따르지 않는다고 우기는데 이게 선동문구거든요.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쓴 것 같아요. 근데 사성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말도 우습지만 그렇게 뭉뚱그려 쓰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四諦의 패턴은 기본적으로 병원 가면 다 있는 거에요. 아파서 병원 가면(고) 의사가 병의 원인을 찾고(집)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멸) 약이나 기타 치료를 하죠(도). 세간에서도 적용되는 이 네가지 공통의 패턴이 대승불교에는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적 선동이겠지만. 문자주의의 발로이겠지만. 어쨌든 사성제 어쩌고 두루뭉술하게 굴지 말고 구체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말도 우이독경이겠습니다만.
그리고 저 위에 누군가가 자유의지가지고 어떤 분을 작정하고 공격하는데 그 自에 대한 똑같은 논리로 연꽃님의 자력의 自에도 적용하셔야죠. 그렇죠? 연꽃님은 비판대상에서 애써 제외인가요? 같은 편이니까?
선정과해탈무시라고 2016-02-17 10: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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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기와 사자상승이 유혹?
선정과 해탈을 혜능이 무시?
선불교는 무능?

아예 '뉘앙스'로 정치좌판 차린듯...
좌선을 좌판으로 착각? 아닌가?
줄탁동기 2016-02-16 13: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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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상님의 글을 읽다보면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경전경구라도 그동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윗분이 댓글단 것처럼 불교에서 줄탁동기가 타력에 의한 깨달음을 얻는게 아닐진데 진흙속의연꽃님이 그런식으로 이해를 하면서 선불교를 비판하는 좁고 편협된 안목이 안쓰럽습니다. 왜냐하면 줄탁동기를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팔정도이든 화두이든 그것 자체가 부처님이나 앞서가신 스승님들이 남겨놓은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 다시말해서 곧 의지입니다. 진흙속의연꽃님의 주장을 곧이곳대로 해석한다면 팔정도도 부처님이 가르침을 의지하는 것이니 타력일뿐 결코 자력은 아닙니다. 부처님도 세상의 진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흙속에 묻혀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상상=실론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론섬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어보면 똑같은 주제라도 보통의 한국불자들의 시각과는 완연히 다른 글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 말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를 떠나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서 느끼는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 대한 실론섬의 시각은 그분이 그곳에 실제로 살고있기 때문에 피부로 생생하게 느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피상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 듣는 테라와다 불교와 직접 현장에서 보고듣는 테라와다 불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상상 2016-02-16 13:46:34
답변  
우루웰라 경2(A4:22)
1. “비구들이여, 한때 나는 우루웰라에서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처음 정등각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그때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한 많은 바라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나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바라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늙고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한 바라문들에게 절을 하거나 일어서거나 자리를 권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가 늙고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한 바라문들에게 이처럼 절을 하거나 일어서거나 자리를 권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2.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에게 ‘참으로 이 존자들은 장로나 장로가 되는 법을 알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구들이여, 비록 나이가 들어서 80이나 90이나 100살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시기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유익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법에 어긋나게 말하고 율에 저촉되는 말을 하며, 그리고 시의적절하지 않고 이유가 분명하지 못하고 특정한 주제에 제한되어 있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고 담아둘 만하지 못한 말을 하는 자라면, 그는 단지 ‘어리석은 장로’라는 이름을 얻을 뿐이다.

그러나 비록 나이가 젊어서 머리칼이 검고 축복 받은 젊음을 구족한 초년의 나이라 할지라도,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그리고 시의적절하고 이유가 분명하고 특정한 주제에 제한되어 있고 이익을 주고 담아둘 만한 말을 하는 자라면, 그는 ‘현명한 장로’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그는 빠띠목카[계목]를 구족하여 빠띠목카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공부 짓는다.

그는 많이 배우고[多聞] 배운 것을 바르게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나니, 이러한 법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그는 보다 높은 마음이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네 가지 선정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는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장로가 되는 법이다.”

4. “들뜬 마음으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이 산만하고 바른 법 즐기지 않고 어리석으며
  확고함이 없고 악한 견해 가진 자는 존경받지 못하리.
  계를 구족하고 잘 배웠고 지혜를 갖추었으며
  절제하고 현명하고 법들을 통찰지로 꿰뚫어 보며
  일체 법에 대해서 통달하고 온화하고 영감을 갖추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고 지고의 청정범행을 갖춘 자
  그를 나는 장로라 부르나니
  그에게는 이미 번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번뇌 다한 비구를 일컬어 장로라 하느니.”

+++

연꽃님이 인용한 a4.22경의 전문을 옮겨왔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경의 앞뒤 귀절을 칼질하여 짤라내고 자신 멋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아시는분들은 아실것 같습니다.

이 경은
첫번째로 늙은 바라문들에게 예를 차리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서 정통으로 맞받아 친 것입니다. ^^
두번째로 연꽃님의 말처럼 나이가 젊더라도 깨달으면 장로라고 해야 한다는 것 보다는 제자들에게 장로로써 갖추어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분들이라면 연꽃님의 글이 왜 틀린지 잘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실론종 2016-02-16 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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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상님 ....

님이 깨달음 판에서, 자유의지의 종교가 불교이다.......

먼저 잘못되었다고 인정부터 하는 것이 올바를듯........

족쇄 10가지의 내용을  전혀 이해못하고 있음.

불교성자의 족쇄 10가지들은 다 자아의식,자유의지를 향한 서슬퍼런 칼날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연꽃님글이  잘못되는 부분이 있을때도 있지.
나도 알아...........그런 부분들.......
그러나 무상상처럼 악의 없는 비난은 하지 않치.........

연꽃님 글에 비난할 만한 기본적인 경안이라도 있는가?

자유의지의 종교가 불교이다..............????
지금 선악과 따먹는 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지 타령은 교회가서 하시고...
실론종 2016-02-16 14: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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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불교는 자유의지다라는 무상상님의 주장대로라면...........

불교에는 성자가 단 한명도 나올수 없어........
수다원조차도...................

결국 자유의지 강조하면, 불교 완전히 망쳐놓는 것이지........ㅋㅋ

세속 8풍과 도/과의 담마 10가지도 구별못하면서 몬 연꽃님글을 그리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지...........

자유의지를 제일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일세
그리고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세속의 삶일세..........

아라한이란 의미는.............멀리 떨어진 ......분 이라는 의미도 있네.
존재,오온,세계,세상,번뇌,무명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분............

그래서 숲으로 가라.....닦아라 하것이네.
숲에서 자유의지 닦을 일이 뭐 있나?.
숲에서 사마디와 통찰을 닦아서 결국은 자유의지(자아의식)를 얕게 하는 것이 족쇄들의 순차적인 부서짐이라고 하네.....

...............................
자유의지 2016-02-16 14:54:44
답변  
다윈님은 그토록 많은 닉넴임 만들어 낼려니 참 머리가 아프겠네.
그런 잔 머리굴리는 1/10이라도 공부에 투자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나은 아빠며 남편이며 자식이 되었을텐데..ㅉㅉㅉ

내가댓글을 다는것도 자유의지요 그대가 댓글을 다는것도 그대의 자유의지에 의한것임.
왜 자업자득인줄 아는가?
왜 내가 지은 업을 다른 사람에게 떠님기지 못하는지 아는가?
그건 그대의 자유의지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야.
남의 물건을 훔칠것인가 훔치지않을것인가는 그대 결정이고 자유의지라네.
내 삶을 만드는것도 남이 아니고 그대의 자유의지라네.
나의 인생이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로봇처럼 행동하지 않는것도 자유의지라네.
아라한이 밥 먹는것도 자유의지라네.
자유의지선악과 2016-02-16 15:14:19
답변 삭제  
아라한은 깨어있음으로,고요에서 오는  분명한 앎으로, 사띠와 지혜가 저절로 작동되어서 식사를 하네.........

아라한에 대한 불경죄 그만 하고.....
아라한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네.......
존재에서 나오는 마음속 흘러나오는 번뇌의 주범인 자유의지,자아의식이 소멸되어 버렸다네..............

그래서 멀리 있는.................분... 그 분을 아라한이라고도 하네........


자유의지란 글을 쓴 자가 만약에 무상상,실론섬이라면............

정말 기본도 모르네.............
이정도 일줄이야.................

업,의도, 10가지 족쇄, 경계점. 역류도. 전혀 기본도 모르면서
저 피상적인 이해를 가지고 자칭 경안이 있는 자로 연꽃님의 글을 그리도 악착같이 쫒아다니면서 비난을 일삼았는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일문지십.
토론안하나 2016-02-16 14:33:59
답변  
문제는,

여기저기, 동시다발,
이러한 잘못된 개념이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산 되어지는것 같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누구의 다른이견과 수행권고 와 도, 토론,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선불교를왜곡하지마라 2016-02-16 14:51:47
답변 삭제  
동의합니다.
소멸 2016-02-16 15:15:55
답변  
정통 불교에서의 토론은 사실상 필요가 없습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에서는 토론이 필요가 없습니다. 수다원 성자만 되어도,
석가모니 부처님(불), 사성제(법), 상가(승 :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에, 토론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토론이 지속될까요?

최근에, 조계종의 현응과 수불의 깨달음 토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계종이 정통불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대승교, 선교 >는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정통불교를 반대하면서, 불교라는 명칭이 가당키나 합니까?

----------------------------------------------------------------------

이러한 추세는 < 대승교, 선교 >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소개합니다.

<모로가면삼천포>

옳으신 말씀.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 이러지 말고…
대승교 또는 선교, 그렇게 부르십시다…

간화선 또는 참나의 유용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힌두의 불이법도 그 나름의 유용성이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답니다. 허나 사성제-팔정도의 부처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설하면서 그것을 불교라고 칭하니 그게 문제인 겁니다. 계-선정-지혜의 팔정도를 통한 열반-해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인 선정과 해탈을 부정하는 불이법을 말하면서도 부처님의 불교라는 용어를 같이 쓰고 있으니 초심자들은 당연히 사유적 혼돈의 오리무중을 헤매게 되는 거잖아요. 불편하게 살지 맙시다.

“저를 힌두교 브라흐마라고 매도해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자기 체험에 입각해서 진리가 실재함을 강력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비겁한 것입니다.”

님의 해설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대승교, 선교 ~ 우리, 이제 이렇게 나갑시다, 솔직하게…

----------------------------------------------------------------------

< 대승교, 선교 >라고 명칭을 바꾼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를 믿는 <정통 불교도>들도 더이상 토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모든 혼란은 불교가 아니면서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데서 비롯됩니다.
뭐냐 2016-02-16 15:41:39
답변  
댓글란이 있는 것은 토론하라고 있는 것이란다!
소멸 2016-02-16 15:59:12
답변  
불교의 최종목적 << 무여열반 >>은 토론의 종말입니다.

불교는 토론의 종말을 위해서 창시된 것입니다.
뭐냐 2016-02-16 16:38:56
답변 삭제  
그건 당신생각이고요. 여기 인터넷 댓글란은 토론하라고 있는겁니다. 소멸님은 댓글란에서 제발 <무여열반>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곳 게시판에서 토론를 종말해 주세요.
토론안해서 2016-02-17 10:36:55
답변 삭제  
토론 동의합니다.
토론을 안해서...특히 맴돌때는...
장로의길 2016-02-16 15:26:50
답변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런 사람의 글을 여기저기 올리고 있느니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호숫물을 다 흐리는 격입니다. 연꽃이라는 중생의 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경전의 전문을 읽어보니 더욱더 확연해집니다. 그리고 경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줄탁동기 - 부처님의 삼명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간의 중생들이 가지각색이라고는 하지만 참 큰일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네가지 장로의 길이 어찌 출가수행승에게만 적용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을 올린 사람이 천번이고 만번이고 스스로 되짚어 볼 글 같습니다. 올바른 불교를 위해서라도 이런글은 하루라도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버젓이 대문에 걸려있으니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 큰일입니다.
소멸 2016-02-16 15:36:54
답변  
진흙속의 연꽃님이 아직 성자가 아니어서 경전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통불교를 알리는 공덕에 비하면, 그렇게 큰 허물은 아닙니다.

님이 경전의 내용을 정확하게 안다고 확신하면, 한번 정도는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님의 허물입니다.

님이 토론을 하고 싶다면, 토론을 할 대상은 진흙속의 연꽃님이 아니라,

불교가 아니면서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 대승교, 선교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타기그만 2016-02-16 15:43:51
답변 삭제  
정통불교 알리는 공덕도 중요한데 왜곡으로 인해 공덕을 까먹지는 말아야죠.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둔갑시키면서 까지 정통불교 알리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안씁 2016-02-17 10:48:14
삭제  
'뉘앙스' 정치, 가끔 쓸모있죠.
가끔 재치있어보이기도...
근데, 그러고만 있으면 발전이 없지않나요?
속없어 보이기때문이죠...
물타기그만의모순언행 2016-02-16 16:01:27
답변  
물타기그만 하는 님의 글이 바로 물타기의 정확한 표본입니다그려..
삼매 2016-02-16 17:48:43
삭제  
어떻게요?
진흙속의연근 2016-02-16 15:38:16
답변  
과거 글에서 금강경의 "법상- 법에 대한 아집"을 버리라는 구절을 "법 자체를 버리라"고 왜곡하더니 이번 글로는 선불교의 깨달음이 "타력"이라고 왜곡합니다. 근거는 선불교에서 줄탁동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선어록에 의하면" 이라고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걸핏하면 니까야 교도들은 "경전적 근거"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선불교를 비판할때는 "선어록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습니다.

"줄탁동기"를 선불교에서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문자만 살펴보니 마치 선사가 알을 깨주고 제자가 알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건 남의 도움으로 깨친것이니 타력이다, 라고 단세포적으로 판단하고 왜곡을 해 버린 것이죠. 금강경에서 '법상을 버리라'는 한자어 대신 함축적으로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이라는 한글 번역만 보고, 다짜고짜 어떻게 법(부처님 가르침)을 버리라고 하냐, 금강경은 부처님 법을 버리라고 하는 무지막지한 훼불을 하고 있다고 분기탱천한 사례처럼 말입니다.

니까야 교도들은 걸핏하면 '탐.진.치'를 떠듭니다.
그런데 이런 왜곡에 대해 바른 지적으로 하면  오류를 정정해야(사과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합니다.
그런데 정정도 하지 않고 사과도 안합니다.
이건 탐.진.치 3독 중에서 '치-어리석음' 심을 고칠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말로는 탐진치 제거가 불교 수행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자신의 어리석음이 벌어졌을 때에는 치심(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한 왜곡을 고치지도 사과하지도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거죠. 오히려 그들은 "치심으로 인한 왜곡을 지적하면" "분심(분노의 마음)"으로 나오거나 주제와 관련없이 물타기 하기 바쁩니다.

여기 댓글만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줄탁동기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자 본글 필자는 금강경 법상의 예처럼 일절 반응이 없고 오류 정정도 안하고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글 필자의 추종자로 추측되는 자들이 댓글의 지적(줄탁동기)과 무관한 얘기들만 늘어놓고 분심과 치심을 오가면서 물타기성 댓글만 반복게재하고 있죠.

이런 수준으로는 대승불교를 넘지 못합니다.
더불어 한국불교가 니까야 불교로 전환되는 일은 꿈도 꾸지 않는게 좋습니다.
말뽄새봐라 2016-02-16 15:46:46
답변  
한마디 합니다.....
금강경................좋은 내용입니다..............
정체불명의 저자와................
결론은.........여몽환포영이니........................결론은 금강경열심히 읽어라........입니다.........

대승이 대승으로 바로 설래면........니까야 교도? 진흙속의 연근?....
이런 단어나 쓰는 본인이 있는 한, 결코 불가 할 겁니다........

한국불교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잘 아시면서 .........ㅎㅎㅎ
진흙속의연근 2016-02-16 16:18:48
답변  
역시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시네요.
법상을 버리라는 내용을 법자체를 버리라는 내용으로 왜곡하고
선불교의 줄탁동기의 상징적인 뜻도 모르면서 선불교의 깨달음을 타력으로 왜곡한 부분에 대해서 반론하세요. 씰데없는 얘기하시지 말고.

스리랑카- 타밀족과 내전후 불교도들의 이슬람 사원 테러 극성, <불자여단>, <불자무력군>이라는 불교강경파 단체들이 테러를 하는 자들인데 스리랑카 인구의 75%차지하는 싱할리족이다. 이 불자 강경파들의 배후에 누가 있을까. 바로 정부군과 승려들이다.

스리랑카 정부의 부패와 무능 오래된 경제난으로 국민의 고통이 커지자 이런 불만을 소수인종과 종파로 공격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쓰는 것이다. 한국 군부정권이나 히틀러가 그랬듯이. 불교도들의 공격은 상업, 경제력을 가진 무슬림의 재산권을 빼앗는 것이다.

태국-말레이시아와 인접한 국경에서 정부군을 등에 업은 불교도들의 이슬람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정권이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을 가리는 수단으로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이슬람 공격하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고 여기에 승려들이 가담하여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추방과 학살이 벌어졌으며, 불교도들의 무슬림 가게 약탈, 무슬림 기업 불매운동, 보이콧으로 미얀마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남방불교권 불교도들의 극단주의로 인해 동남아 최대 무슬림의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 반작용으로 불교시설에 대한 이슬람의 테러가 벌어졌다. "자비"를 가르친다는 테라와다 불교가 "배타"성을 띄면서 세계의 지성인들이 불교 너마저 그러면 안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죽했으면 달라이 라마까지 긴급 호소을 하지 않았던가.

태국 불교의 부패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는 한국불교의 부패 그 이상으로 타락하였다. 고가의 외제 승용차 수집 전시 하거나 마약단속에 수십명이 걸려 들거나, 승려 개인 막대한 재산을 축적 속가 친인척에게 관리하거나 수십억의 차명계좌가 적발되거나, 여러명의 첩을 두었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  태국도 불교계 내부의 자체정화능력이 상실됐다고 판단하는 지식인들이 많으며, 결국 외부에 의한 강제적인 불교개혁을 해야할 시기라고 말하고들 있다.하지만 태국군부와 승려들간의 오랜밀착관계로 인해 외부개혁도 힘들 것이다.

스리랑카나 미얀마 역시 독재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도거나 아직 독재정권이라서 승려들이 정권에 매우 협조적이다. 소위 남방불교는 독재정권과 공존공생해 온 오랜 관계로 인해 만연된 부패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길이 요원해 보인다. 급기야 국민의 정권에 대한 불만, 반대의 여론을 잠재우려고 동원하는 불교민족주의는 근본불교의 적통이라는 집단에서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불살생, 불투도??? 힘없는 소수민족 테러하고 살해하고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게 불교냐? 자비냐?

대승불교 걱정하기 전에 남방불교의 배타주의가 퍼지지 않게 조치를 취하고 독재 정권과 결탁하여 부패하는 승가의 타락이나 막아보시지요.

진흙속에는 연근이 있어요, 뭐 잘 못됐나요?
회광반조 2016-02-16 18: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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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자님들의 해명이 있어야 합니다.
진흙속의연근 2016-02-16 16:34:27
답변 삭제  
"너네 엄마에게 개뼈다귀를 던졌다"라는 말이 당신같은 언어능력이 얕은 사람에게는 무난한 말이겠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의미가 "너네 엄마는 개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무명의 껍질을 벗고 병아리가 나온다는 니까야 내용만 얘기했으면 아무 말도 안하지만,, 곁다리로 슬쩍 줄탁동기와 데미얀을 꺼내면서 선불교를 타력으로 교묘히 까대는 짓, 그런걸 비열하다고 하는 것이다. 니까야는 자력이고 선불교는 타력이다,고 말하므로 해서 니까야가 우월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사실 줄탁동기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글전체에도 어울리고 글의 스피드도 살리는 것인데 필자의 글쓰기 습성상 대승(선불교)을 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일까. 굳이 집어 넣어니 첫댓글 부터 바로 '줄탁동기' 애기는 너무 나갔다고 다들 한소리하는 것이다. 심지어 니까야 입장에 있는자들도 한 마디씩 하지 않았나.

니까야 입장에 있는 자들이 보기에도 민망했던 것이다!
필요하지 않음에도 굳이 대승,선불교를 비판하는 내용을 집어넣어 논란거리를 만드는 거 자체를 보면, 필자는 아마도 싸우는 것을 즐기거나 남들로 하여금 싸우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성향의 사람같다.
진흙속의연근 2016-02-16 16:45:43
답변 삭제  
됐고 왜곡 좀 그만하라고 전하시오 끄읏
소멸 2016-02-16 15:48:56
답변 삭제  
왜 불교가 아니면서,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초심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불필요한 토론, 논쟁을 양산합니까?

< 불필요한 토론, 논쟁 > 언제까지 할렵니까? 이제 그만 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칠 수 있는 방법 있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정직해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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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불교에서의 토론은 사실상 필요가 없습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에서는 토론이 필요가 없습니다. 수다원 성자만 되어도,
석가모니 부처님(불), 사성제(법), 상가(승 :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에, 토론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토론이 지속될까요?

최근에, 조계종의 현응과 수불의 깨달음 토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계종이 정통불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대승교, 선교 >는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정통불교를 반대하면서, 불교라는 명칭이 가당키나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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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추세는 < 대승교, 선교 >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소개합니다.

<모로가면삼천포>

옳으신 말씀.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 이러지 말고…
대승교 또는 선교, 그렇게 부르십시다…

간화선 또는 참나의 유용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힌두의 불이법도 그 나름의 유용성이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답니다. 허나 사성제-팔정도의 부처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설하면서 그것을 불교라고 칭하니 그게 문제인 겁니다. 계-선정-지혜의 팔정도를 통한 열반-해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인 선정과 해탈을 부정하는 불이법을 말하면서도 부처님의 불교라는 용어를 같이 쓰고 있으니 초심자들은 당연히 사유적 혼돈의 오리무중을 헤매게 되는 거잖아요. 불편하게 살지 맙시다.

“저를 힌두교 브라흐마라고 매도해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자기 체험에 입각해서 진리가 실재함을 강력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비겁한 것입니다.”

님의 해설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대승교, 선교 ~ 우리, 이제 이렇게 나갑시다,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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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교, 선교 >라고 명칭을 바꾼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불교를 믿는 <정통 불교도>들도 더이상 토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모든 혼란은 불교가 아니면서 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데서 비롯됩니다.
선불교와다름 2016-02-16 15:42:39
답변  
(선불교불자분의 보살 1지..10지....에 대한 설명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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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서 말하는 보살 1지, 2지, 3지...이렇게 윤회하면서 6바라밀이 점점 퍼펙트하게 나오게 하는 수행입니다. 보살 10지까지 가야 부처(성불)가 되는 겁니다. 6바라밀이 탐.진.치가 있는 상태에서 나와요? 탐.진.치라는 업장이 두터운데 어떻게 보시를 제대로 할거며 지계를 제대로 할거며, 인욕을 제대로 할거며...지혜가 제대로 나오겠습니까.
대승이 뭔지 모르고 소설 함부로 쓰지 마세요, 보고 있는 대승불자들 배꼽빠지게 웃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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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꾸하는 것 자체도 매우 귀찮고 피로한데요.
보살 10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야기 해준 부처는 어느 부처입니까?.......

그래서 님의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소설이라고 하는 겁니다......

불교는........석가모니가 세존이 담마를 재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현시대의 불법이 생겨나왔구요.이름하여 불교.............
선불교와 초기불교는 많은 것이 다릅니다.........
선불교에서 불조.........에서 저 조사는.....초기불교에서는 없습니다.....

부처와 아라한들이지..............불조라는 조사 개념 자체도 성립이 안됩니다...

보살 10지라는 개념자체를 말한 부처는 어디 부처입니까?......
그래서 소설이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돈오 견성후......머 이상한 식으로 습기제거식 점수...를 이야기 하지만........

초기불교는...........점진적이다...........하지만 이미 성취한 도는 불퇴전이다..........습기제거식 점수..........이런거 없습니다.......
돈오 주장하다가, 막행막식하니까............방패용으로 쓰는 것이겠지만요...

선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선불교는 조사불교 아닙니까?
정체불명 모르는 부처들의 보살 10지로..............아라한 능멸용으로 써먹는........

그래서 소설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석존당시의 제자들은..........부처가 되겠다고 수행한 자들이 없습니다..........그들은 다 아라한이 목표입니다....석존역시 붓다가 되라고 한 적 없습니다...............

무리 좋게 포장해봐야, 조사불교아닙니까?......보살10지,조사불교.돈오,불이, 좌선선정무시..............심지어 막행막식.....계율무시등........

근본적인 깨달음이 선불교와 다릅니다........도교식 도사들의 깨달음이지.
본성을 안다고 햇을때........그 본성은 무상,고,무아입니다..
본래면목이니 부모미생전이니 아무리 거창한 슬로건 해봐야...

계율자체도 안 지키는 곳에서는 초기불교에서는 8정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한국불교의 현주소 아닐까요?.......
본래면목이 있다없다의 현란한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율부터 실천해서...............단계적으로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속의 번뇌들을 제거 해나갈때에, 마음의 본성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지.......
아무리 슬로건 해놓고, 견성성불 주장해봐야....
보살 10지 자체가 소설입니다........
조사불교란 말자체가 허구입니다.
아라한 불교입니다...........석존의 불교는.......
존재의 소멸을 지향하는..................
무언가를 배후에 두려고 하는  것 마저도 소멸되어비린 분들이 아라한입니다...........

전혀 다릅니다.......목적도 과정도 시작도 방법도.........
그것을 조사불교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2016-02-17 11:23:30
답변 삭제  
선불교의 교학과 수행방식이 '다르다' '아니다'는 일단 제쳐놓고,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방식은 '번뇌제거'마음본성 저절로드러남''존재소멸'
이라는 건가요? 계율실천? 구체적으로...
연꽃님께공개토론제안합니다 2016-02-16 16:05:55
답변  
우리가 불자라는 사부대중의 틀속에서, 같은시대, 같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지향하는 법우로서, 다른이견에 대한 서로간의 소통은 곧 올바른 소승아라한과 대승보살을 떠난 공동의 책무입니다.

한국불교는 현재 우리와 같은 재가수행불자등 많은분들의 어깨위에 미래가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님도 진정 한국불교를 걱정하는 재가불자 한사람이라면, 공개토론장에서 서로다른 이견에 대한 소통을 같이 공동으로 가져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초기불교와 선불교" 를 주제로,

연꽃님께 공개토론 제안합니다.
...
소멸 2016-02-16 16:23:32
답변  
진흙속의 연꽃님은 토론 당사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성자가 아니고, 삼장법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론 당사자로는 빤냐와로 삼장법사님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mediabuddha.net/news/section.php?section=60i0
뭐야 2016-02-16 16:36:50
답변 삭제  
진흙속의연꽃이 결정할 일을
왜 제 3자인 당신이 적합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려고 합니까.
뭐야 2016-02-16 17:49:14
답변  
쌈판이 될지 토론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미디어붓다를 통해 보건데 소승불자들끼리도 자기가 진짜고 상대가 가짜라고 구분하지 못하던데요?

대승은 고수가 널렸으니, 소승 선수 걱정을 하심이 어떨런지요.
진흙속의 연꽃도 토론 당사자로 적당하지 않다고 할 정도라고 스스로 인정하던데 나머지 댓글러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소승은 유명한 비구승 아니면 대론할 사람이 없나 보죠?
멀리서 2016-02-16 18:20:29
삭제  
빤냐와로 삼장법사님이 대승불교 기원에 대한 주장을 하시려면 정확한 학문적 근거를 가져오셔야 될 겁니다.
선불교는불교아님 2016-02-16 17:41:54
답변  
선불교는 불교 아닙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전승된 아함경 및 빠알리어로 전승된 5부 니까야
만이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입니다.
대승 선불교는 부처님을 배신한 외도들이다.
부처님 말씀 초기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대승경전류들은 다 소설이구 짬뽕
짜집기 입니다.

아예 불교자를 빼야 합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종교입니다.
대승교 선교들은 불자를 빼야합니다.
고장난녹음긴가 2016-02-16 17: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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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 지겹도록 반복했는데 성과있나요? ^^

또 시작이다 ㅠㅠ
대승외도 2016-02-16 18:07:50
답변  
부처님은 외도들과의 삿된 견해에 대해 무서울정도로 철저하셨다.
금강저를 든 야차가 머리를 7조각 낸다고 하였다.
밀라레빠 2016-02-16 19: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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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을 떠나서는 달리 붓다가 없네.
        생명 에너지와 나디보다 빠른 수행길은 없네.
        삼귀의(三歸依)에는 잔혹함도 원한도 없네.
 
        지복 공보다 더 큰 체득은 없네.
        스승의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은 없나니
        스승은 만인의 은둔처요 영광이도다.

        가슴속에 자애심이 자라나면
        사랑으로 만인을 돕게 되리라.
 
        스승을 붓다로 믿는 자는
        위대한 지복의 힘을 받게 되리라.

        지고한 광경은 볼 게 없나니
        깨달은 마음의 본질이 바로 그러하기에.
 
        지고한 얻음을 얻을 게 없나니
        마음의 본질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배이기에.
 
        지고한 진미(珍味)는 먹을 게 없나니
        무상삼매(無相三昧)의 음식이기에.
 
        지고한 음료는 마실 게 없나니
        보리심의 감로수가 바로 그러하기에.
 
        대지혜는 진아의 각성이나니
        일체의 언어와 설명을 초월하네.
 
        이는 소승 행자들의 경지도 아니요,
        바보들의 경지도 아니네.
 
        최상의 입문은 '이것'의 입문이요
        높낮이가 없는 평등성을 깨달은 자가
        최상의 경지에 오르고
        무위의 진리를 깨달은 자가
        지고한 정도(正道)를 걷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깨달은 자가
        지고한 소원을 성취하고
        논리를 따지지 않는 진리를 깨달은 자가
        최상승(最上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선악이 없는 진리를 깨달은 자가
        최상의 방편을 얻네.
 
        둘이 아닌 진리를 깨달은 자가
        지고한 정견(正見)을 성취하고
        바라봄이 없는 진리를 깨달은 자가
        지고한 선정을 아네.
     
        이원(二元)의 집착에 사로잡혀 벗어나려다가 도리어 묶이네.
        하여 떨어지고 떨어져 윤회의 바닥까지 떨어지나니
        음침한 삼악도에서 방황하고 헤매이네.

        덧없는 육신 안에는
        본래 불신(佛身)이 살고 있네.
        대광명을 밝히면
        안팍의 법신(法身)은 환히 빛나리.

        번뇌의 윤회 둥지 속에는
        보리심의 독수리 새끼가 사네.
        지혜와 방편의 양날개 펼치면
        전지(全知)의 광대한 하늘로 솟아오르네.

        장엄한 진아(眞我)의 설산에는
        의식의 새끼사자 사네.
        여섯 가지 의식[六識]에 집착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윤회와 열반을 모두 뛰어넘네.
 
        초월체(超越體)인 법신은 끝없는 하늘 같으니
        소원 성취의 여의주는 거기 있도다.
 
        명상에 전념하는 자는
        삼신의 불타 경지 필연코 성취하리.

        보옥과 같은 소중한 참 스승은
        핵심 가르침이 솟아나는 용천수
        불변의 신심 지녀 샘물을 마신 자는
        영원토록 목마름을 여의게 되리라.
말씨보니 2016-02-16 2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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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러, 선불교 사이드도,티벳불교사이드도, 어려울 것 같네요...
안타깝네요...
대승교불교아님 2016-02-16 19: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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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교는 부처님  말씀을 믿는가?
아니면 혜능조사를 믿는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지킨
일종식도 지키지 못하면서..
기본적인 계율이나  지킴이... 왜 계정혜 중에서 계가 우선 하는지 깊은 사유가 필요할듯.......
대승불설부정은무지탓 2016-02-16 19:43:03
답변  
권오민 경상대 교수,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 탓”
경상대 권오민 교수, ‘문사철’서 주장
“아함경·니카야도 붓다 친설 아니다”
부파 시대에도 진위논쟁 끊이지 않아
불설 기준은 역사․전통 넘어선 ‘法性’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281

위 잘읽어보세요..

아직도 경전만 믿고 들이대는 무지와 무식은,
초기불교를 더욱 실참에서 멀어지는 문자아집으로 결정케 할 것입니다....
반갑네요 2016-02-16 20:18:46
답변  
내가 얼마전 "호잔"이라는 닉에게 읽어보라 그렇게 권했던 내용임.
니까야 친설 논쟁 11개 부분.

여기서 마성스님,전재성 박사(이상 초기불교 승려와 재가 수행자)는
초기불교 전공학자인 권오민 교수한테 논쟁에서 밀림. 권오민은 실증적 근거를 들어 논박하는데 마성,전재성은 검증되지 않은 믿음,신념,개론 수준으로만 동어반복하여 권오민을 피곤하게 함.

만일 권오민 교수가 대승불교 학자였다면 초기불교도들은 난리를 폈을 것인데, 하필 '니까야 친설 아니다'는 주장을 초기불교 전공자가 근거를 들어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꼬.

권오민 교수도 니까야 친설,불설로 믿고 있었다가 연구를 거듭할 수록 자신이 생각했던 상식,믿음에 반하는 결과만 나와서 양심선언한 것임.
권오민이 해당 글을 기고했던 이유는 "니까야만이 친설이고 나머지는 다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대승경전을 불살라 버리고, 대승승려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까야 근본주의자들의 망언을 보고 쓰신것이라고 함.
저도반가워요 2016-02-16 20: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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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한국불교의 미래가 이런분들에게 달린거 같군요...
가지가지한다 2016-02-16 20:45:41
답변  
그래서 권오민 교수는.....

혜능의 불이법 견성성불, 관세음 보살,지장보살등도 불법이라고 합니까?.............

제일 많이 원음이 녹아 있다는 것과 완전히 개구라인 대승경전과는 비교자체가 안되지.
소설이 어떡해서 경전이 됩니까?.
장편판타지 대하소설이 대승경전 아닌가요?..........
뭘모른당 2016-02-18 11: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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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 친설?  논쟁을 촉발시킨 권오민 교수는 마성,전재성박사등과 논쟁하면서 무엇을 붓다의 친설로 볼 것이냐는 기준이 제시된 과거의 사례로 근거를 들었습니다. 니까야 마저 전승이 중단된 시기가 있었고
각 부파들이 서로 경전을 전승해 왔는데 내용이 다 다르다, 니까야 마저.  그래서 어떤 경전을 붓다의 친설로 볼거냐 토론이 벌어졌고 원칙을 세웠는데 그게 "중도"의 가르침 원리가 녹아 들어가 있는 경우 붓다의 친설로 규정한다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파불교에서 전승된 것들을 모아 "니까야"로 명명하고 붓다의 친설로 간주한거고. 대승경전들도 이 기준에 따르면 붓다의 가르침의 원리인 중도,연기등의 사상이 녹아 있으므로 "붓다의 가르침"으로 규정된다는게 권오민 교수의 말입니다.
수행에무지하면헛꽃만보일뿐 2016-02-16 19: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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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도 부파가 승인한 불설일 뿐”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484

“니카야만 불설 주장은 맹목일 뿐”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643

위주고 가셔서 잘 이해해 보시구요.
일부 초기불교 학자들의 경전만 믿는 빽은 사실 실체없는 허망한 믿음에 불과하다.
불교가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친설이라는, 친설도 아닌 경전빽 믿어도, 그믿음이 둑카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
선동과 구호로 해결된 삶이 있던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
만약 해결해준다면 그건 삶도 아니고 불교가 아니기에.....
이보세요 2016-02-16 20:01:56
답변  
자등명 법등명도 모르시나요담마 부처님 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대체 뭘루 해탈열반  하게요.

부처님이 걸어가신  8정도길이 아니면 그건 외도입니다.


읽어보지도 않구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문자아집 ㅎㅎ
부처님 말씀 아함부경전이나 제대로 읽고 여실지견 하세요.


법이 경전이구 여래 세존입니다.  대승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려면 신을믿는 인도 브라만교로  명칭변경해야합니다.
문자고집 2016-02-16 2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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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위에서 문자고집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한번 잘 구별해 보면...
테라와다의실상 2016-02-16 20:11:17
답변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23

불교국가인 태국 스님들이 군인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종교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외쳤지만 배경은 정부가 태국불교 최고 지도자 승왕 후보 승인을 미루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통신은 “15일 태국 나콘 파톰 지방의 사원 앞에서 수백여 승려가 경비 중이던 군인들과 충돌했다”고 같은 날 보도했다.

이 스님들은 태국불교보호센터(BPCT) 소속으로 세게 밀치는 등 군인들을 압박했다. 스님들의 행동은 텔레비전을 통해 태국 전역에 방송됐다.

이들은 정부가 20대 승왕 후보자 랏차망갈라찬(80)의 승인을 미루고 있는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군인들과 충돌했다. “정부는 종교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랏차망갈라찬은 부패와 탈세 스캔들에 휘말려 있다. 그가 관리하는 절에서는 희소성 있는 럭셔리 차량이 다수 발견됐다. 부품 형태로 이들 차량을 수입한 후 현지에서 조립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세금 탈루 의혹도 받고 있다. 태국불교연맹 승가 최고위원회는 지난해 그에게 수백만 달러의 횡령 혐의를 물어 주지직을 박탈했다.

반대파들은 “태국 정부가 랏차망갈라찬의 승왕 승인을 해서는 안 된다. 부패를 근절시켜야 한다. 태국 불교는 썩었고 길을 잃었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

태국불교의 부패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님
테라와다 승가가 계율을 목숨처럼 지켜?? 청정승가??

오죽했으면 군부정권이 불교개혁하려고 할까, 사실 군부정권과 승가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공생해왔고 서로의 부패,불법을 눈감아 주는 관계였다. 승려만 30만이상이고 그들은 공무원신분이다. 윗 기사는 가장 부유한 사찰의 최고 승려가 수백만 달러를 횡령하고, 수십개의 차명계좌가 발각되었고....

태국불교는 2000년 초반부터 승가의 부패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 됐고
자체정화능력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2000년 이전 부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 태국보다 더 노골적인 독재국가 미얀마, 스리랑카의 불교는 말할것도 없다.

니까야 교도들은 대승불교 걱정할 일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물든 태국, 불교민족주의에 묶여 소수민족과 이교에 테러행위하는 폭력불교로 명성 떨치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불교 걱정이나 하시라. 정법불교라는 자부심이 세계가 걱정하는 수치스런 불교로 전락하고 있는데 한가하게 대승비방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대승비불설 2016-02-16 20:29:34
답변  
@니까야에도 불순물이 섞여 있을수 있는데, 가장 붓다의 원음이 녹아져 있다는 것.

@법성을 기준으로 할때, 법성은  무상,고,무아 이지, 대승의 주장처럼 열반이 상락아정은 아니라는 것, 대승의 조사와 보살들은 열반을 경험한 자들이 없다는 것......관세음보살이 정법명왕 여래다.........라는것도 다 구라라는 것......

@불조란 말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붓다와 아라한이 되어야 한다는 것.....

@불이법,돈오, 견성성불, 좌선삼매 무시, 계율파괴.........이것은 붓다의 8정도에 정확하게 어긋난다는 것

@1600년 전통의 한국불교가, 짝퉁, 변형불교가 들어와서, 실상은 서양학자들보다도 진짜불교에 대해서 정말로 무지하다는 것, 러시아의 학자도
대승은 불교가 아니라는 것.....200년 역사의 서양불교학자들보다도 못하다는 것.....

@실참은.....계-정-혜-마음.............계율을 파고해서는, 8정도가 일어설수 없다는 것...

@수많은 대승경전은 정체불명의 저자가, 정체불명의 부처들과 보살들의 헛된 구라와 알맹이 없는 내용들이라는 것.......예) 결론은 금강경열심히 읽고 사경하라는 것.......그래서 대승비불설이 나오는 것임..

@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발판으로 한 종교임.......
거기의 근본바탕은 사성제의 도로, 보살이 되거나,조사가 되거나, 현실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하라는 실용주의적 종교개념이 아님........

@ 그리고 법성을 알래면 최소한 삼매에 들어야 하는데, 불이이기에,선정무시라는  혜능 발언은 정확하게  8정도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것...

@결론은..........200년 정도의 서양학자들이 1600년 전통 토박이 학자들보다도 더 치밀하고 더 깊숙하게 진짜불교에 대해서 연구해왔다는 것....
돈오라는 선불교의 주장도, 중관의 티벳한테 오래전에 왕창 깨져버린것 아닌가?........
정말 진짜 불교를 알라고하면, 차라리 서양학자들 책을 더 보는게 나을 듯...

열반이 상락아정인지 아닌지를  알래면 아라한이 되어야한다는 것, 보살이나 조사는 결코 알수 없다는 것...

보살 10지 자체도 매우 웃긴 것.....그래서 대승경전이 비불설을 더 드러내는 증거.....

보살은 세세생생 다시 태어남....이 자들은 아라한도 아니고 붓다도 아님.....윤회와 업의 지배를 안 받으면서  지멋대로 태어난다고 하는 자들이면, 붓다보다 훨씬 더 나은 자 들임.....그런 보살이 왜 굳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 보살 10지를 구차하게 닦아야 하는지.......
아라한을 모독하기 위한 보살사상을 만든것에 불과함  불과함......

관세음보살이 오래전에 부처였다고도 하고, 또 부처가 되기위해서 보살  10지를 닦아야 한다고,  대승경전의 주장도 오락가락, 횡설수설함...

실참을 할래면, 먼저 게율부터 지켜야 함......
진짜 불교에서는 8정도가 마지막 보루임.......
사상으로 립써비스로 백날 보살떠들어봐야.......
대중들 인기먹고사는 연예인 중밖에 더 되나?......

승속은 불이가 될수 없음......
승은............청정범행의 비구의 삶임..........
버리고 포기하고 떠나는........
그것들이 불교의 골수와 정수부분들이  있는 것임......

해탈이란, 선전구호가 아님.......철저히 계율부터 실천에 의한 실천도임..
이론도, 사상도, 선전도, 립써비스도가 아니란 말씀.......

그래서 허울좋은 대승경전을 비불설이라고 하는 것임....
궁금이 2016-02-16 21:42:41
답변  
현대 서양학자 누가 대승이 불교가 아니라고 그래요?
궁금함책봐 2016-02-16 22:46:12
답변  
칼루파하나...

법화경, 화엄경, 능가경 등
대승경전의 상당 부분을 구라라고 해...

용수의 중관사상과 세친의 유식사상도 대승애들이
지들 좋은 쪽으로 가져다 붙이고 있는 쪽으로 해석하고 있어..
금강 2016-02-17 11:14:22
답변 삭제  
칼루파하나는 임제종을 어떻게 보나요?
금강 2016-02-17 11: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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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출신 학자 단 두 명? 끝입니까?

*아상가도 서양학자입니까?
알려줘도비방만이목적인가 2016-02-17 10: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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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설부정은무지탓'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281
“아함도 부파가 승인한 불설일 뿐”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484
“니카야만 불설 주장은 맹목일 뿐”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57643
잘배워서 2016-02-17 11:44:19
답변 삭제  
남 주나요?
정치불교 2016-02-17 11:43:02
답변 삭제  
선불교의 교학과 수행방식이 '다르다' '아니다'는 일단 제쳐놓고,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방식은 '번뇌제거'마음본성 저절로드러남''존재소멸'
이라는 건가요? 계율실천? 구체적으로...
조폭승 2016-02-16 20:28:14
답변  
용주사  공양간에서 나이드신 사숙스님을 폭행하는
대승 깡패승들이 버젖이 활보하는게 대승불교 입니까?
부끄러운줄 아세요.

대승 승려들은 뭐 한게 있소??  신부들은 그나마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소.
남의 나라를 폄훼하지 마세요.  일본 대승불교도들이
우리선조들 무수히 죽인건 아실테지요...
절뺏기 2016-02-16 20:37:48
답변  
절뺏기 하는  그 조폭말인가요?
용주사공양간 2016-02-16 21:02:31
답변  
용주사 공양간 처보세요
ㅌ 조폭승 입니다.

이게 대승교의 정체입니다.
절뺏기연관 2016-02-17 09:54:40
답변  
절뺏기 연관?
깡패집단대승교 2016-02-17 11:26:41
답변  
조폭출신 승려가 주동이 되어 절뺏기 합니다.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추악한 대승교의 실체입니다.
이러구도 부처님을 애기하다니요.
용역 깡패들 동원해서 각목들고 서로 절 뺏기 하네요
소승교 2016-02-17 11:30:15
삭제  
소승교는 깨끗한가요? 대승교는 명함도 못 내밀정도로 추악하던데요?
예전정보갖고 2016-02-17 11:31:47
삭제  
요즘은 깡패들이 아니고요,
새로운 ..이던데?
요즘정보 2016-02-17 11:36:55
삭제  
한국불교는 새롭게 변했군요? 소승교는 아직 멀었습니다.
감사 2016-02-17 11:52:07
삭제  
소승교에서 대승불교를 비방할수록 우리 대승불자는 더 고맙습니다. 소승교님들의 누워서 침뱉기가 되니까요.
고거이고거다 2016-02-16 23:15:29
답변  
불교에 목숨 걸었어?
그럼 머리 깍아야지...
재가자면 재가자답게 공부해라.
이득없는 불설 비불설 논쟁은 스님이나 학자에게 맡겨라.
그리고 스님보단 중립인 학자들의 견해가 옳지 않겠나.
내머리남주지말자 2016-02-16 23:49:18
답변 삭제  
목숨 걸어도 될 가르침이 불교라서 다들 난리치고 있는 거 아냐?
머리 깍자니 아직은 코카서스 절벽에 매달려
족쇄가 채워진 프로메테우스 신세라 그게 그리 쉽지가 않네 그랴.

학자들이 중립이라고?

자신의 무명을 타이틀이라는 걸로 쉴드치는 사람들이 그들이네.
머~ 중보다도 자유롭다는 것이 그들의 복이면서 또 한계이고.
고거이고거다 2016-02-17 00:46:19
답변  
변명은..
목숨을 걸어도 될 가르침이면 앞뒤 볼 것 있어?
출가해라.
싫으면 더 공부해라.
무명이 제거되면 아라한이다.
스님이라고 아라한이 아니지.
심출가가나아 2016-02-17 11:28:28
답변 삭제  
심출가로 하세여.
일본의대승비불설을깨부수며 2016-02-17 10:11:36
답변  
일본의 대승비불설이 유행한 사회적 시기를 잘살펴봐야 한다.

생명의 실상-다니구찌 마사하루, 와 대승비불설 비판불교로.... 일본불교는 현재, 어떤모습인가를 잘살펴 보세요.

그리고 한국불교에 있어서 이 두개를 가슴깊이 간직 품고사는 분들의 삶의 모습과 형태을 잘 살펴보면 [친설] 이라는 약 으로 무장한 속내를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합니다.....


가만히 좌정하고 생각만 해봐도, 
믿음이 약 이 된다는건 불교가 아니라고 알수있는데도,
왜 이러한 광신적 믿음으로,
2천년 한국불교를 외면하는가의 이유이죠....
알아차림의묘약 2016-02-17 10:31:25
답변  
왜 그런가 하면요
1600년전통의 한국불교가 변질된 짝퉁불교로 들어온 이유는?......

인터넷이 없어서.......
대충 속이기 쉬웠거든요..
그러다가 알아차림이 생겼어요.....비불설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멀 그리 어렵게 생각하시나?
보살불교 조사불교..........오리지날 불교가 아닌것을 알아차린것이지요
아직도약물만 2016-02-17 10:46:36
답변 삭제  
인터텟의 가장큰 폐해가 바로 그것이죠.
자판만 치면 제가 법사....
아무나 누구나 우기면 되거든요.
인터넷 아직도 믿어요?

삼장법사 아세요?
알아차림은최면 2016-02-17 10:49:48
답변 삭제  
알아차림은 착각이죠.
남방만 갔다오면 죄다 부처님?....
뭔소린지 2016-02-17 11:05:10
답변 삭제  
무슨 감각적 쾌락?
세종대왕 2016-02-17 12:02:43
답변 삭제  
철자공부좀 먼저 해요 염화아줌씨.

졸탁동시===> 줄탁동기
감각적 퀘락=====> 쾌락

남들은 한문으로도 잘 쓰는데, 한글이라도 제대로 써야지.
두얼굴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1:40:36
답변  
테라와다 불교가 니까야신봉자들의 주장처럼 청정승가가 아니라는 근거가 넘쳐나고 있다. 대승이 붓다의 친설이 아닌, 삿된 가르침이고 니까야만이 정법이다, 대승불교가 타락한 것은 정법을 배우지 않아서,,, 라고 굳게 외치던 니까야 신봉자들에게 테라와다  불교의 부패상, 소수민족과 이교도들에 대한 폭력과 테러등을 보여주고 테라와다의 배타성을 본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불교사원에 보복 테러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까지 알려줬다.

정법인 니까야를 하는데도 그 지경인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이교도에 대한 테러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승려와 불자들은 없다.

한국 니까야 신봉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테라와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희망사항과 거리가 멀다. 

테라와다에 대한 무지의 알껍질 부터 깨는게 순서일 것이다.
그래야 진실의 세계가 열릴 테니까,
껍질속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거기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부패한 테라와다에 대해 말했는데 니까야 신봉자들은 아무도 반론하지 못했다!
역사공부 2016-02-17 11:55:53
답변  
없다고?

임진란때 서산대사,사명당등은 승병장 아니었던가?
역사공부좀 하셔.
원광법사의 살생유택도 있구만
죽여라............가끔 가려가면서 라고 혀
두얼굴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2:10:13
답변  
바보인증? ^^

스리랑카,미얀마가 침략 당한거냐?
임진왜란처럼 적이 대규모로 침공하여 백성을 유린하고 약탈하고 강간하고 그랬냐?
서산대사등 승병들은 침략에 맞서 방어적으로 대응한 것이고
스리랑카,미얀마 불교는 이교도라는 이유로 테러하고  그들의 상권,경제권등 재산을 약탈한 것이다.

비교를 하려면 좀 제대로 하시지?
이런경우를 자승자박이라고 하던가? ^^
무식한대승불자 2016-02-17 12:15:23
답변  
중의 계율에서 불살생도 아군, 적군  가려가면서 하는것이더냐?

불이래며?...적군 =아군...........
살생은 마찬가지인겨....
불교기본도 모르시누만.선블교냥반은...
당신 2016-02-17 13: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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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세요?
역사공부 2016-02-17 12:18:42
답변  
고려시대이야기 해줄까?.......ㅋㅋㅋ
민초들은 배고파 유랑하며 굶어 죽는데
중넘들은 연등회 팔관회..잉어방생하면서 지화자 했다우....
............
한국불교알래면 역사를 조금은 알아야되는겨....
법화 2016-02-17 13: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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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에서는 남 도우면 안 된다면서요?
정치불교 2016-02-17 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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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의 일체사회는,
봉건시대도 아니고.....
역사불교 2016-02-17 12:29:04
답변  
한국불교를 역사적으로 고찰.....짝퉁불교의 한계..
신라..원광법사의 가려가면서  죽여버리자....
원효와 요석공주의 짝짜꿍........설총자식둠.......파계
고려.....중넘들이 살판나서 깽판 오도방정 떨던 때......
왕사,국사, 권력과 재물욕의 망가진 중넘들........요새 꼬락서니하고 비슷하지요?..........
조선.......고려때 깽판으로 쫒겨나가 살다가, 전쟁을 핑계로 시내로 들어올라고  승병장하면서 불살생게 어김. 서산사명당등(한국인으로서 인정은 해두는데, 국적 저편에 넘어있는 것이 불법입장에서 명백한 파계짓임)
경허선사.....막행막식.......
성철스님............욕 잘했다고 하지요?.........후배중들한테.......
요즘........권력승 잡승...........진도개사건.용주사사건. 해외 탑뉴스로 나간것도 아마 있다고 하던데.중넘이 마누라 자식도 있다고 하고.대처승도 아닌데....

진짜 불교가 애초에 들어왔으면, 이러지 못하지..
계율에서 부터.............아웃.......이거든.
자자와 포살 없는 것은 석가모니 불교의 승가가 아닌겨.......
짝퉁이 들어와서 그런겨.
그 짝퉁도 도교와 결합된 수준떨어지는 짝퉁이.......
티벳은 그런대로 잘 꾸려가잔어
그러니 세게에서 좀 알아주고.
솔직히 선불교.......세계에서 누가 알아주냐?.
빛좋은 개살구지............솔직한 야그로.
비방만이해불가 2016-02-17 19: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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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에서 '계율' 좀 보여주시죠?
티벳은 왜? 그냥 넘어갈까?  그 편파적인 투로 봐선 이해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혹 아동기 감정일까?
동국 2016-02-17 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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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 최고지도자 후보 ‘벤츠 수집’ 파문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229
두얼굴의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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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신봉자들은 모두 바보인가, 왜 이렇게 논리력이 형편없는거야.
아직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답변했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니까야 신봉자들이 대승불교까대면서 했던 그동안 주장
:대승불교는 가짜(사법)불교이고 막행막식 범계승들이 판치는 것은
다 이런 사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반면 정법 니까야를 공부한 테라와다는
승가가 청정하다, 계율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물었잖아요.
정법을 배운 스리랑카,미얀마,태국등 테라와다(정법)를 기반으로 하는 불교에서 왜 소수민족에 대한 테러를 하며, 살생을 하며,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지를, 왜 태국불교는 자체정화능력이 없어 외부세력이 불교개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는지를

거기에 대한 답변은 안하고 임진왜란이 왜 나오며, 원광법사가 왜 나오며,
고려시대 얘기가 왜 나와??

//지금,현재//  오케이?

한국대승불교가 사법을 배워 승려들이 막행막식하는 거라는 당신들 주장이 맞다치고!!  사법이 아닌 정범을 배우는 테라와다는 왜 그모양이 됐냐? 고 물었잖아요. 그럼 거기에 대한 답을 해야 논리적으로 맞지 않겠어요?

이해가 안되요?
이보세요 2016-02-17 13:26:22
답변  
왜 남의 나라 애기를 합니까?
우리의 모습을 여실지견 해서 부끄러운 줄 알고 부처님 앞에 참회나 하세요.
나이드신 사숙스님을 폭행하고도 버젓이 승려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정상적이라 보십니까? 계율을 어긴 승려는 승속을 박탈하고 파계시켜야 되지 않을까요.

니까야는 아함부경전 이구..... 이것은 부처님 말씀입니다.
초기불교를 공부하지 않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대승불교는 허구 사이비 입니다.
초기불교를 부정하고  아함경 조차도 무시하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배신이고 모독입니다.   

외도인 기독교가 성경을 목숨처럼 여기는데.....우리 불교는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  부처님 법인 담마 경전 까지 무시하면서 그것을 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하연 2016-02-17 13: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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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파불교

 



  부파불교는 원시교단이 상좌부와 대중부의 두 부파로 분연된 이후의 불교를 말한다. 부파불교는 출가중심의 불교이다. 출가하여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한다. 승원에서 학문과 수행에 전념한다. 타인의 구제보다는 먼저 자기의 수행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분석적이고 치밀한 불교교리를 완성시켰다.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을 ‘근본분열’이라고 하고, 상좌부와 대중부가 각각 다시 분열하는 것을 ‘지말분열’이라고 한다. 지말분열의 결과 상좌부는 11부로 나뉘어지고, 대중부는 9부가 되어 20부가 된다.

 

  부파부교의 문헌을 ‘아비달마’라고 하는데, ‘법의 연구’를 의미한다. 아비달마에서는 법을 몇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승의의 존재(勝義有)와 세속의 존재(世俗有)로 나눈다. 병은 깨어지면 없어진다. 이와 같이 나누면 나누어지는 것을 세속유라고 한다. 병의 색깔이 청색일 경우, 그 청색은 병이 깨어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병의 조각을 무수히 부수면 최후에는 극미(極微)가 된다. 이 경우에도 청색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승의유라고 한다.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도 나눈다. 유위법은 무상한 법이고, 무위법은 상주하는 법이다. 대표적인 무위법은 열반이다.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으로도 나눈다. 유루법은 번뇌에 의해 더럽혀지는 법이고, 무루법은 번뇌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는 법이다.

 

  유부는 법을 세분하여 오위칠십오법으로 나눈다. 오위는 색(色), 심(心), 심소(心所), 불상응행(不相應行), 무위(無爲)의 다섯이고, 색법 11, 심왕법 1, 심소법46, 심불상응행법 14, 무위법 3이다.



 

2. 대승불교



 

(1) 대승불교의 흥기



 

  ‘대승’은 큰 수레를 의미한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미혹한 차안(此岸)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교의를 수레에 비유한 것이다. 대승불교는 ‘남을 구제함으로써 자신도 구제된다’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에 소승불교와 구분된다.

 

  대승불교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대중부와 같은 부파불교에서 발전한 것, 불전문학에서 발전한 것, 불탑신앙에서 발전한 것과 같은 세 가지 원류설을 설명한다. 대승경전에는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정토경』등이 있다.

 

  소승은 성문승이라고 하여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는 제자불교이었지만, 대승은 스스로 배우면서도 남을 가르치는 교사불교를 지향한다. 교사가 곧 불타이기 때문에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을 보살이라고 불렀다. 보살은 보리살타 마하살타(Bodhisattva Mah&#257;sattva)이다. 보리살타는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고, 마하살타는 위대한 사람이다.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의 수행이 시작된다. 아라한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하지만,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서원을 세운 사람이다. 대자대비의 소유자이다. 보살의 수행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기의 수행인 것이다. 이것이 육바라밀이다. 바라밀은 p&#257;ramit&#257;의 음역이다. ‘저쪽으로(p&#257;ram) 건너간 것(it&#257;)’이기 때문에 ‘도피안(到彼岸)’이라고 번역한다. ‘바라밀’은 ‘완성’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바라밀이다.

 

  보살이 육바라밀이 실천할 때에는 반야바라밀 즉 반야의 지혜를 바탕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한다. 보시바라밀을 실천할 때에도 보시하는 사람, 보시를 받는 사람, 보시물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비었다고 보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바라밀행을 통해 보살은 방편과 지혜의 자량을 쌓는다. 이를 통해 보살은 자량도(資糧道), 가행도(加行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를 통해 완전한 불타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



 

  (2) 대승철학의 확립



 

  1) 용수(龍樹)와 중관학파(中觀學派)



 

  A.D 3세기 경 인도의 남부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난 용수에 의해 대승불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용수는 <중론>, <육십송여리송>, <공칠십론>, <회쟁론>, <광파론> 등 중관의 철학을 확립하는 논서를 저술하여 반야의 공사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통해 유부 등을 포함한 불교 내외의 가르침에서 잘못된 것을 철저하게 논파했다.

 

  <중론>의 귀경게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연기로 이해했다. 연기하는 것은 무자성이고, 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야경>에서 설명하는 제법의 실상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제법의 실상은 엄밀하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승의제’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궁극적인 진리를 중생들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중생들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알 수 있도록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세속제’이다. 용수는 승의제로 모든 대립적인 개념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도 언어의 가치를 지워버리지 않기 때문에 중도를 지향한다. 모든 것이 비었다고 설명하지만 극단론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세속제 때문이다.

 

  용수의 사상은 <사백론>의 저자이면서 직제자인 제바, 라훌라바드라 등에 의해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그후 <중론>의 공사상을 주석하는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불호와 월칭의 귀류논증파와 청변 등의 자립논증파로 나뉘어져 발전하였다.



 

  2)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유식학파(唯識學派)



 

  무착은 북인도 간다라 출신이다. 처음에는 소승불교로 출가했다가 나중에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미륵의 가르침을 받고, 이를 발전시켰다. 무착의 주저는 <섭대승론>이다. 세친은 무착의 친동생이다. 세친의 저술은 <유식삼십송>, <유식이십송> 등이 있다.

 

  유식(唯識)은 범부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대상’ 즉 ‘외계의 대상’은 실제로는 식에 불과하다고 깨닫는 것이 유식이다. 범부의 식은 주관과 객관인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로 분열되어 있다. 식(見分)이 자기의 식(相分)을 보면서 그것을 외경(外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유식에서는 외경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식대상이 없으면 인식주관이 있을 수 없다. 인식대상이 허망하면 그것에 대응하는 인식주관도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이 경식구민(境識俱泯)이다. 불타의 인식은 경식구민이다. 이것이 식의 질적전환이고, 이를 전의(轉依)라고 한다.
마하연 2016-02-17 13:35:40
답변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상권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번역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8백만억의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유학(學)과 무학(無學)으로서 모두 아라한이었으니, 유위공덕(有爲功德)ㆍ무위공덕(無爲功德)ㆍ무학십지(無學十智)1)ㆍ유학팔지(有學八智)2)ㆍ유학육지(有學六智)3)ㆍ3근(根)4)ㆍ16심행(心行)5)ㆍ법가허실관(法假虛實觀)6)ㆍ수가(受假)허실관ㆍ명가(名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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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승 아라한이 갖추는 열 가지 지혜. 첫째 세속지(世俗智), 둘째 법지(法智), 셋째 유지(類智), 넷째 고지(苦智), 다섯째 집지(集智), 여섯째 멸지(滅智), 일곱째 도지(道智), 여덟째 타심지(他心智), 아홉째 진지(盡智), 열째 무생지(無生智)이다.

2) 무학십지에서 진지와 무생지를 제외한 8지(智)이다. 아나함(阿那含) 이하에서 가지는 지혜.

3) 사다함 이하에서 가지는 지혜로서 유학팔지에서 도지와 타심지를 제외한 나머지 6지이다.

4) 3무루근(無漏根)을 말한다. 첫째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둘째 이지근(已知根), 셋째 구지근(具知根)이다. 의(意)ㆍ낙(樂)ㆍ희(喜)ㆍ사(捨)ㆍ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아홉 근(根)이 견도(見道) 위에 있을 때를 미지근, 수도(修道) 위에 있을 때를 이지근(已知根), 무학도(無學道) 위에 있을 때를 구지근이라 한다.

5) 16행상(行相)이라고도 한다. 4제(諦)를 관찰하는 16종의 관법이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에 각각 네 가지 행상이 있다.

6) 5음(陰) 등의 법을 법가(法假)라 하고, 5음으로 중생이 이루어짐을 수가(受假)라 하고, 법가와 수가를 합하여 명가(名假)라 한다. 법이 거짓[假]이므로 가(假)라 한다. 허실관이란 허하기도 하고 실하기도 하여 허실이라 하니, 중생은 실이라고 보고, 지혜 있는 이는 허라 하며, 실은 곧 허이기에 허실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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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관ㆍ3공관문(空觀門)7)ㆍ4제(諦)ㆍ12연(緣) 등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8백만억의 대선연각(大仙緣覺)8)이 있었으니, 단멸도 아니요[非斷] 항상 하지도 않음[非常]과 4제(諦)와 12연(緣)을 다 성취하였다.

 

또 9백만억의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실지(實智)의 공덕과 방편지(方便智)9)의 공덕으로 홀로 대승(大乘)을 행하여 4안(眼)10)ㆍ5통(通)ㆍ3달(達)11)ㆍ10력(力)12)ㆍ4무량심(無量心)ㆍ4변(辯)13)ㆍ4섭(攝)14)ㆍ금강멸정(金剛滅定)15) 등의 일체 공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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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해탈문 또는 3공문(空門)이라고도 하며, 무루(無漏)의 3삼매(三昧) 혹은 3등지(等持)라고도 한다. 8)대선은 부처님을 가리키며 연각을 가리키기도 한다. 불교 이전에는 대선ㆍ연각ㆍ불타를 같은 뜻으로 보았다.

9) 권지(權智)라고도 하며, 현상계의 차별을 따라 방편을 행하는 지혜.

10) 네 가지의 눈. 첫째 육안(肉眼)은 육체가 가진 눈, 둘째 천안(天眼)은 색계(色界)의 하늘 사람이 가진 눈으로서 사람이 선정을 닦아 멀고 가까움과 안과 밖, 밤과 낮을 묻지 않고 능히 보는 눈, 셋째 혜안(慧眼)은 2승(乘)의 사람이 진공(眞空)으로 모양[相]이 없는 이치를 비춰 보는 지혜의 눈, 넷째 법안(法眼)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체의 법문을 비춰 보는 지혜의 눈이다. 여기에 불안(佛眼)을 합하여 5안(眼)이라 한다.

11) 3명(明)이라고도 하며,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누진통(漏盡通)을 통달함을 말한다.

12) 여래의 10력과 보살의 10력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보살의 10력을 말한다. 곧 10회향(廻向) 가운데 아홉 번째 무박무착해탈회향위(無縛無着解脫廻向位)의 보살이 갖추는 열 가지 힘이다. 첫째 심심력(深心力), 둘째 증상심심력(增上深心力), 셋째 방편력(方便力), 넷째 지력(智力), 다섯째 원력(願力), 여섯째 행력(行力), 일곱째 승력(乘力), 여덟째 신변력(神變力), 아홉째 보리력(菩提力), 열째 전법륜력(轉法輪力)이다. 경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13) 4무애변(無礙辯)ㆍ4무애해(無礙解)ㆍ4무애지(無礙智)라고도 한다. 네 가지 걸림 없는 변재로서 첫째 법무애변(法無礙辯), 둘째 사무애변(辭無礙辯), 셋째 요설무애변(樂說無礙辯), 넷째 의무애변(義無礙辯)이다.

14) 네 가지 법으로 중생을 거두어 주는 법이다. 첫째 보시섭(布施攝), 둘째 애어섭(愛語攝), 셋째 이행섭(利行攝), 넷째 동사섭(同事攝)이다.

15) 금강삼매와 같다. 보살이 수행하는 최후의 선정으로 견고하고 날카롭기가 금강과 같아 어떠한 번뇌도 쳐부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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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성취하였다. 또 5계(戒)를 지키는 천만억의 어진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아라한을 행하고, 10지(地)에 회향(廻向)하며, 오분법신(五分法身)16)을 구족하고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5계를 지키는 10천(千)의 청신녀(淸信女)가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아라한을 행하고, 10지를 다 성취하고, 시생(始生)공덕17)ㆍ주생(住生)공덕ㆍ종생(終生)공덕의 30생(生)18)의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10억이나 되는 7현(賢)19)의 거사가 있었으니, 덕행이 구족하고 22품(品)20)과 10일체입(一切入)21)과 8제입(除入)22)과 8해탈(解脫)과 3혜(慧)23)와 16제(諦)24)와 4제(諦)와 4품(品)ㆍ3품ㆍ2품ㆍ1품을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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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섯 가지 공덕의 법을 닦아서 불신(佛身)을 이루는 것이다. 첫째 계(戒)의 법신이니 여래의 3업[身口意]은 일체의 잘못을 여읠 수 있는 것, 둘째 정(定)이니 여래의 진심(眞心)은 고요하여 일체의 망령된 생각을 여읠 수 있는 것이요, 셋째 혜(慧)이니 여래의 참된 지혜는 원만하고 밝아 법성을 보고 통달할 수 있음이요, 넷째 해탈(解脫)이니 여래의 몸과 마음은 일체의 얽매임에서 해탈함을 말하니, 즉 열반의 덕이요, 다섯째 해탈함을 아는 것을 해탈지견법신이라 하니, 곧 후득지(後得智)이다. 계에서 정이 생기고, 정에서 혜가 생기고, 혜에서 해탈을 얻고, 해탈에서 해탈지견이 있는 것이다. 처음 셋은 인(因), 뒤의 둘은 과(果)에 대한 이름이다.

17) 시생(始生) 보살이 10지를 닦는데 각각의 지(地)에 처음 들어갈 때 생기는 마음의 공덕이다. 주생(住生)공덕이란 지에 들어가 머물러 생기는 공덕이요, 그 지를 원만히 이루어서 생기는 마음의 공덕이 종생(終生)이다.

18) 10지의 각 지마다 시생(始生)ㆍ주생(住生)ㆍ종생(終生)의 3생(生)이 있으므로 합하여 30생이 된다.

19) 소승의 견도(見道) 이전을 현위(賢位)라 하고, 그 후를 성위(聖位)라 하는데, 현위는 5정심(停心)에서 세제일법(世第一法)까지이다. 대승에서는 첫째 초발심인(初發心人), 둘째 유상행인(有相行人), 셋째 무상행인(無相行人), 넷째 방편행인(方便行人), 다섯째 습종성인(習種性人), 여섯째 성종성인(性種性人), 일곱째 도종성인(道種性人)이다.

20) 37조도품(助道品) 가운데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을 말한다.

21) 10일체처(一切處)라고도 한다. 일체 만유를 총합하여 보는 열 가지 방법으로 청ㆍ황ㆍ적ㆍ백, 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식의 열 가지.

22) 8승처(勝處)ㆍ8해탈(解脫)ㆍ8배사(背捨)라고도 한다. 여덟 가지 정(定)의 힘으로 탐착심을 버리는 것이다.

23)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를 말한다.

24) 16심행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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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인(忍)을 얻어서 일체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만만억의 아홉 범천[梵]25)과 3정천(淨天)26)ㆍ3광천(光天)27)ㆍ세 범천[梵]28)과 다섯 희락천(憘樂天)29)의 하늘 선정의 공덕[天定功德]과 선정의 맛과 신통을 항상 즐김과 18생처(生處)30)의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억억의 6욕(欲)의 모든 하늘 대중이 있었으니, 10선(善)의 과보와 신통의 공덕을 다 성취하였다. 또 열여섯 대국왕(大國王)이 있었으니, 각각 1만ㆍ2만 내지 10만의 권속이 5계(戒)ㆍ10선(善)ㆍ3귀(歸)의 공덕과 청신행(淸信行)을 구족하였다.

 

또 5도(道)의 세계에 일체 중생이 있었고, 또 타방의 헤아릴 수 없는 대중이 있었는데, 시방정토에 변화한 백억의 높은 자리가 나타나 백억의 수미산 보배 꽃[須彌寶華]으로 변화하니, 각각 그 꽃 위에 앉았다.

 

또 한량없이 많은 변화한 부처님[化佛]이 계시고 한량없는 보살과 비구와 8부(部) 대중이 각각 보배 연꽃에 앉았으니, 꽃 위에는 다 한량없는 국토가 있었고, 하나하나의 국토마다 부처님과 대중들이 지금과 같이 다름이 없었다.

 

하나하나의 국토에는 한 분 한 분의 부처님과 대중들이 각각 반야바라밀을 설하였으며, 타방(他方) 대중과 변화한 대중[化衆]이 삼계 가운데 대중인 12대중(大衆)이 다 모여서 9겁31) 연화좌(蓮華坐)에 앉으니, 그 대회가 바야흐로 너비가 950리였는데 대중이 다 그렇게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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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색계 4선천(禪天)의 9천(天)이다. 무운천(無雲天)ㆍ복생천(福生天)ㆍ광과천(廣果天)ㆍ무상천(無想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견천(善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이다.

26) 제3선(禪)의 3천(天), 즉 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이다.

27) 제2선의 3천(天)이니, 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광음천(光音天)이다.

28) 초선(初禪)의 3천(天)이니, 범중천(梵衆天)ㆍ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천이다.

29) 4선(禪)의 9천(天) 중에 뒤의 다섯 하늘, 곧 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현천(善現天)ㆍ선가견천(善可見天)ㆍ색구경천(色究竟天)의 다섯이다.

30) 색계의 18천처(天處)이다.

31) 9겁이란, 석존과 미륵이 함께 발심하였으나 석존이 용맹 정진한 힘으로 말미암아 곧 9겁을 뛰어넘어 먼저 성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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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10호(號)를 갖추신 삼명대멸제금강지석가모니불(三明大滅諦金剛智釋迦牟尼佛)께서 초년월(初年月) 8일(日)32)에 10지(地)에 앉아서 대적실삼매(大寂室三昧)33)에 들어 인연을 생각하여 대광명을 놓아 삼계를 비추었다.

 

다시 이마 위에 천 개의 보배 연꽃이 나와서 위로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34)에 이르니 빛도 또한 다시 그러하였으며, 나아가 타방 항하(恒河)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국토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 무색계(無色界)에는 한량없이 많은 변화한 큰 향과 꽃 향이 비처럼 내렸으니, 수레바퀴 같고 수미산왕과 같은 꽃들도 구름처럼 내렸다.

 

열여덟 범천왕은 백 가지 기이한 색의 꽃을 비처럼 내렸고, 6욕(欲)의 모든 하늘은 한량없는 색의 꽃을 비처럼 내렸는데, 그 부처님 자리 앞에 자연히 9백만억 겁[거란본에는 급(級)으로 되어 있다.]의 꽃이 생겨서 위로 비상비비상천에 이르렀고, 이 때 세계는 그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 때 모든 대중이 다 같이 의심하여 각각 서로 말하였다.

 

“4무소외(無所畏)35)와 18불공법(不共法)과 오안법신(五眼法身)인 대각(大覺) 세존께서 이미 우리 대중을 위하여 29년 간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과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蜜)과 천왕문(天王問)반야바라밀과 광찬(光讚)반야바라밀36)을 설하셨는데, 금일 여래께서 큰 광명을 놓으시니, 이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이 때 열여섯 대국왕 가운데 사위국(舍衛國)의 임금인 바사닉왕(波斯匿王)은 이름이 월광(月光)이었는데, 10지(地)와 6도(度)와 37품(品)과 4불괴정(不壞淨) 공덕의 행법으로 마하연(摩訶衍:大乘)을 행하여 교화하였다. 그는 차례로 거사(居士)인 보개법정명(寶蓋法淨名) 등의 8백 사람에게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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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여기의 월력[曆]으로 정월(正月) 23일을 말한다.

33) 대적정(大寂定)ㆍ대열반을 말한다.

34)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말하며, 무색계(無色界)의 제4천이다.

35) 설법하매 두려워함이 없는 네 가지 지혜이다. 첫째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둘째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 셋째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넷째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이다.

36) 부처님 혀에서 광명이 발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니 빛 속에서 연꽃이 생기고,그 꽃 위에 부처님이 출현하여 이 반야를 칭찬하였으므로 광찬반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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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또 수보리(須菩提)와 사리불(舍利弗) 등의 5천 사람에게 묻고, 또 미륵(彌勒)과 사자후(師子吼) 등의 10천 사람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 때 바사닉왕이 곧 신통력으로 8만 가지 음악을 연주하고 18범천(梵天)과 6욕(欲)의 모든 하늘도 또한 8만 가지 음악을 연주하니, 소리가 삼천(三千)세계에서 시방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불토에까지 이르렀다. 인연이 있어 이곳에 나타난 저 타방 불국(佛國) 가운데 남방의 법재(法才)보살은 5백만억 대중과 함께 이 대회에 왔고,

 

동방의 보주(寶柱)보살은 9백만억 대중과 함께 이 대회에 왔으며, 북방의 허공성(虛空性)보살은 백천만억 대중과 함께 이 대회에 왔고, 서방의 선주(善住)보살은 10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대중과 함께 이 대회에 왔다.

 

 6방(方)에서도 이와 같았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그러하였다. 다시 함께 한량없는 음악을 연주하여 여래를 깨웠다. 부처님께서 때를 아시고 중생의 근기를 아시어 선정에서 일어나셔서 비로소 연화사좌 위에 앉으시니, 마치 금강산왕(金剛山王)과도 같으셨다.

 

그러자 대중들이 환희하여 각각 한량없는 신통을 나타내어 땅과 허공에서 머물렀다.

 

 



2. 관공품(觀空品)

 


그 때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열여섯 큰 나라 왕의 뜻이 국토를 보호할 인연을 묻고자 하는 것임을 아노라. 내가 지금 먼저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불과(佛果)를 보호하는 인연과 10지행(地行)의 인연을 설할 것이니, 자세히 들으라. 자세히 듣고 잘 그것을 생각하여 법답게 수행하라.”

 

이 때 바사닉왕이 말하였다.

“거룩한 큰일의 인연[大事因緣]인 까닭이다.”

그리고는 백억 가지 빛깔의 꽃을 흩으니, 백억의 보배 장막으로 변하여 모든 대중을 덮었다. 그 때 대왕이 다시 일어나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아뢰었 다.

 

“세존이시여, 일체 보살은 어떻게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어떻게 10지행의 인연을 보호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4생(生)을 교화하매 색(色)이 이러하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이러하며, 중생(衆生)ㆍ나[我]ㆍ남[人]ㆍ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 이러하며, 지견(知見)ㆍ수자견[壽者]도 이러하며, 보살이 이러하며, 6도(度)ㆍ4섭(攝)의 일체행도 이러하며,

 

2제(諦)37)가 이러함을 관(觀)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일체법의 성품은 진실로 공(空)하여 오지도 아니하고 가지도 아니하며, 생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과 같으며,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 허공과 같다. 이런 까닭에 음(陰)ㆍ입(入)ㆍ계(界)에는 나도 없고 있는 모양[所有相]도 없나니, 이것을 보살이 십지반야바라밀(十地般若波羅蜜)을 행하여 교화한다고 하느니라.”

 

대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약 모든 법이 그러한 것이라면 보살이 중생을 보호하여 교화함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입니까?”

 

“대왕이여, 법성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나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나 색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색 아닌 데[非色]도 머물지 아니하고, 색 아님이 아닌 데[非非色]도 머물지 아니하며, 나아가 수ㆍ상ㆍ행ㆍ식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머물지 아니하고, 머물지 아니함도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색과 같지 않고[非色如], 색과 같지 아니함도 아닌 까닭이니, 세속제[世諦]인 까닭이요, 3가(假)인 까닭에 중생을 본다[見]고 이름하고, 일체 법성(法性)이 진실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ㆍ3승(乘)ㆍ7현(賢)ㆍ8성(聖)38)을 본다[見]고 이름하며, 또한 62견(見)도 역시 본다고 이름한 37)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진제란 출세간(出世間)의 사람이 알고 있는 진리이니,

 

곧 법성으로서의 본체는 무생무멸(無生無滅)의 공이라고 아는 것이다. 속제란 세간의 일반인이 알고 있는 물질계[現]를 인정하는 것이다.

 

 

38) 성문승의 아라한향(阿羅漢向)ㆍ아라한과(阿羅漢果)로서 사향사과(四向四果)를 말한다. 소승 성인의 총칭이다.

 

 



다.

대왕이여, 만약 이름으로써 일체법과 나아가 모든 부처님ㆍ3승(乘)ㆍ4생(生)에 이르기까지 본다고 이름한다면 일체법을 보는 것39)이 아님이 아니니라.”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법이어서 법 아님이 없는데 마하연(摩訶衍)이 어떻게 비춥니까?”

“대왕이여, 마하연은 법 아님이 아닌 법[非非法法]을 보나니, 법이 만약 법 아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을 법 아님도 아닌 공[非非法空]40)이라고 한다.

 

법성이 공하기에 색ㆍ수ㆍ상ㆍ행ㆍ식도 공하고, 12입(入)ㆍ18계(界)도 공하고, 6대법(大法)41)도 공하고 4제(諦)ㆍ12연(緣)도 공하다. 이 법은 바로 생(生)했다가 바로 머물고[住] 바로 멸(滅)하나니, 바로 존재했다가[有] 바로 공(空)하느니라. 찰나 찰나도 또한 이와 같아 법이 생기고 법이 머물렀다 법이 멸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90찰나(刹那)가 일념(一念)이 되니, 일념 가운데 1찰나에는 9백 번의 생멸(生滅)이 지나가며, 나아가 색(色)의 일체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바라밀이 공한 까닭으로 인연을 보지 못하고 진리[諦]를 보지 못하며, 나아가 일체법도 공하고, 안도 공하고[內空] 밖도 공하고[外空] 안과 밖이 다 공하며[內外空], 유위도 공하고[有爲空] 무위도 공하며[無爲空],

 

시작 없는 것도 공하고[無始空] 성품도 공하며[性空], 제일의도 공하고[第一義空] 반야바라밀도 공하며[般若波羅蜜空], 원인도 공하고[因空] 불과도 공하며[佛果空], 공도 공한[空空] 까닭에 공하다. 다만 법이 모인[法集] 까닭에 존재하고[有], 감수가 모인[受集] 까닭에 존재하며,

 

 





39) 위의 3가(假)에 의하여 일체법을 말하면 모든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40) 법 아님이 없는 공이니, 법이라든가 법이 아니라는 등의 생각이 다 없어진 상태의 공이다.

41) 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식을 말한다.

 

 

 



이름이 모인[名集] 까닭에 존재하고, 원인이 모인 까닭에 존재하며, 결과가 모인[果集] 까닭에 존재하고, 10행(行)인 까닭에 존재하고, 불과(佛果)인 까닭에 존재하고, 나아가 6도(道)의 일체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법과 중생과 나[我]와 남[人]과 지견[知見]을 본다면, 이 사람은 세간에 다니면서 세간과 다름이 없으며, 모든 법에 움직이지도 않고, 이르지도[到]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모양도 없고 모양이 없다는 것도 없으니, 한 모양의 법[一相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모든 불(佛)ㆍ법(法)ㆍ승(僧)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것이 곧 초지(初地)의 일념심(一念心)으로 8만 4천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여 곧 마하연(摩訶衍)이라 이름하고, 곧 멸하는 것을 금강(金剛)이라 하며, 또한 정(定)이라 이름하고, 또 일체행(一切行)이라 이름하나니, 『광찬(光讚)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설한 것과 같다.

 

대왕이여, 이 경의 명미구(名味句)42)는 백 부처님ㆍ천 부처님ㆍ백천만 부처님께서 설하신 명미구이니, 항하의 모래와 같은 삼천대천(三千大千) 국토에 있는 한량없는 7보(寶)로써 삼천대천 국토의 중생에게 베풀어서 다 7현(賢)과 4과(果)를 얻게 할지라도,

 

이 경 가운데에서 일념의 믿음을 일으키는 것만 같지 못하니, 하물며 한 구절[句]을 아는 사람이겠는가? 구절이란 구절이 아니요 구절이 아님도 아닌 까닭이며, 반야는 구절이 아니요 구절은 반야가 아니며, 반야도 또한 보살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10지(地)ㆍ30생(生)도 공한 까닭이며, 시생(始生)ㆍ주생(住生)ㆍ종생(終生)도 얻지 못하나니, 지지(地地) 가운데 3생(生)이 공한 까닭이며, 또한 살바야(薩婆若)도 아니며 마하연도 아니니, 모두가 공한 까닭이니라.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경계를 보고 지혜를 보고 설함을 보고 수(受:감수)를 보면 성견(聖見)이 아니며, 전도된 생각으로 법을 보면 범부이니, 삼계를 본다고 하는 것은 중생 과보의 이름이다. 6식(識)은 한량없는 욕심을 일으켜 끝이 없나니, 이름을 욕계장(欲界藏)의 공(空)이라 하고,

 

혹은 색 (色)이 일으키는 업과(業果)를 이름하여 색계장(色界藏)의 공이라 하며, 혹은 마음이 일으키는 업과를 이름하여 무색계장(無色界藏)의 공이라 한다. 삼계가 공하므로 삼계의 근본인 무명장(無明藏)도 또한 공하고,

 

 3지(地) 9생멸(生滅)43)의 앞의 삼계 가운데 나머지 무명습(無明習)의 과보도 공하고, 금강(金剛) 보살44)은 이진삼매(理盡三昧)45)를 얻은 까닭에 과(果)의 생멸도 공하며, 유과(有果)46)도 공하고, 인(因)도 공한 까닭에 공하다. 살바야(薩婆若)도 또한 공하고, 멸과(滅果)도 공하며, 혹은 앞에 이미 공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얻으신 3무위과(無爲果)47)인 지연멸(智緣滅)48)과 비지연멸(非智緣滅)49)과 허공(虛空)50) 그리고 살바야의 과(果)도 공하다.

 

선남자야, 만약 닦아 익히고 설법을 들어도 들은 것도 없고 설한 것도 없어서 허공과 같고, 법도 법성과 같고 들음도 같고 설함도 같으니, 일체법이 다 같으니라.

 

대왕이여, 보살이 불과(佛果)를 보호하여 닦는 것을 이와 같이 할 것이요, 반야바라밀을 보호하는 자는 살바야ㆍ10력(力)ㆍ18불공법(不共法)ㆍ5안(眼)ㆍ오분법신(五分法身)ㆍ4무량심의 일체 공덕의 과(果)를 보호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 한량없는 사람과 하늘 대중이 법안정(法眼淨)을 얻었고, 성지(性地)51)ㆍ신지(信地)52)의 백천(百千) 인이 다 대공(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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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계(三界) 9도(道)의 중생을 말한다. 성위(聖位)의 모든 지(地). 무루(無漏)와 생멸의 다른 번역이다. 9생멸은 9류(類)중생, 곧 삼계의 중생으로서 초선천(初禪天)에서 비상비비상천까지를 말한다.

44) 등각(等覺) 보살을 말한다. 등각은 부처님 지위에 오른 보살이다.

45) 최상의 이치[極理]를 비추어 아는 선정.

46) 유위과(有爲果). 유과가 공하다는 것은 고제(苦諦)의 무상(無相)이요, 인(因)이 공하다는 것은 집제(集諦)의 무상을 말하고, 살바야(薩婆若)가 공하다는 것은 열반이 공함을 말한다.

47)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세 가지로 설한다. 첫째 허공무위(虛空無爲), 둘째 택멸무위(擇滅無爲), 셋째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를 3무위라 한다.

48) 택멸(擇滅)이라고도 한다. 열반의 다른 이름으로 지혜의 힘, 곧 골라내는 힘에 의하여 얻어진 멸이다.

49) 비택멸(非擇滅)을 말한다. 지혜의 힘에 의하지 아니하고 얻은 멸, 과거의 인연이 현재 과로 나타나는 찰나에 없어지는 것.

50) 걸림 없는 성품으로 다른 것을 장애하거나 걸림이 없는 것.

51) 수행에 들어갈 수 있는 경지. 성이란 종성(種性)이란 뜻. 10주(住) 이상 통교(通敎) 10지의 제1 간혜지(乾慧地), 제2 성지(性地)이다.

52) 10신(信) 이하의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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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보살53)의 대행(大行)54)을 얻었다.

 



3.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0지행(地行)을 수호하는 보살은 어떠한 행을 행하여야 하며, 어떠한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떠한 모습의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5인(忍)55)이 이 보살의 법이니, 복인(伏忍)의 상(上)ㆍ중(中)ㆍ하(下)와 신인(信忍)의 상중하와 순인(順忍)의 상중하와 무생인(無生忍)의 상중하와 적멸인(寂滅忍)의 상하를 이름하여 모든 불ㆍ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처음 상신(想信)56)을 일으키는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중생들은 복인(伏忍)을 수행하고 삼보(三寶) 가운데서 습종성(習種性)57)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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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대공이란 소승의 편공(偏空)에 대하여 대승의 구경(究竟)인 공적(空寂)을 말하니, 곧 대승의 열반이다. 이 경지에 이른 보살이 대공 보살이다.

54) 선한 법을 가지고 모든 덕의 근본을 갖추는 것. 진여 일실(一實) 공덕의 보배 바다이다.

55) 보살의 수행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 첫째 복인(伏忍)은 번뇌를 제복(制伏)하였으나 아직 끊지 못한 지(地) 이전의 3현(賢), 둘째 신인(信忍)은 무루(無漏)의 신(信)을 얻은 초지ㆍ2지(地)ㆍ3지(地), 셋째 순인(順忍)은 이치에 순종하여 무생(無生)의 깨달음에 향하는 4지ㆍ5지ㆍ6지, 넷째 무생인(無生忍)은 모든 법의 무생의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한 7지ㆍ8지ㆍ9지, 다섯째 적멸인(寂滅忍)은 모든 미혹을 끊고 적정의 깨달음에 안주한 제10지 및 불과(佛果). 앞의 넷을 각각 상ㆍ중ㆍ하, 뒤의 하나를 상ㆍ하로 나누어 14인(忍)이라 한다.

56) 초발심의 10신(信) 보살의 위치.

57) 6종성(種性)의 하나. 보살 수행의 10주(住)의 보살. 공관(空觀)을 닦아 견혹(見惑)ㆍ사혹(思惑)을 끊고 이것으로 증과(證果)에 이르는 종자를 삼으므로 종성(種性)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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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心)을 내나니, 10심이란 신심(信心)ㆍ정진심(精進心)ㆍ염심(念心)ㆍ혜심(慧心)ㆍ정심(定心)ㆍ시심(施心)ㆍ계심(戒心)ㆍ호심(護心)ㆍ원심(願心)ㆍ회향심(廻向心)이다. 이것이 보살이 능히 적은 부분의 중생을 교화함이니, 이는 2승(乘)을 넘어선 일체 선지(善地)이다. 일체의 모든 불ㆍ보살은 10심을 장양(長養)하여 성태(聖胎)58)가 되느니라.

 

다음에 간혜(乾慧)59)의 성종성(性種性)60)을 일으키는 10심이 있다. 이른바 4의지(意止)인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이니, 부정(不淨)이며 고(苦)이며 무상(無常)이며 무아(無我)이다. 세 가지 의지(意止)인 3선근(善根)은 자비와 보시와 지혜이다.

 

세 가지 의지란, 이른바 3세 과거 원인의 인[因忍]ㆍ현재 원인과 결과의 인[因果忍]ㆍ미래 결과의 인[果忍]이다.

 

이 보살은 또한 일체 중생을 교화하며, 이미 능히 나와 남, 지견(知見)ㆍ중생 등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외도들의 전도된 생각으로 능히 허물지 못하느니라.

 

또 10도종성지(道種性地)61)가 있으니, 이른바 색(色)ㆍ식(識)ㆍ상(想)ㆍ수(受)ㆍ행(行)을 관하여 계인(戒忍)62)ㆍ지견인(知見忍)63)ㆍ정인(定忍)64)ㆍ혜인(慧忍)65)ㆍ해탈인(解脫忍)66)을 얻고, 삼계의 인과를 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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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의 3현위(賢位)를 말한다. 성인이 될 인(因)으로서 자신이 가진 종자를 인으로 하고 벗을 연(緣)으로 삼아 바른 법을 듣고 닦아 익혀 본성을 길러 초지에 이른다.

59) 지혜가 말라 없어짐을 말하는 것으로 선정의 물에 윤택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60) 6종성의 하나. 10행(行)의 지위에 있는 보살. 우주만유의 본성이 진공이라 증득하고 제법을 인정하여 중생을 제도하므로 이렇게 부른다.

61) 6종성의 하나. 10회향의 보살. 이 위에서 중도관(中道觀)을 닦으므로 도(道)라하고, 불과(佛果)를 내기 때문에 종(種)이라 한다.

62) 색음(色陰)을 관하여 금지하는 것을 범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계인을 얻는다.

63) 식음(識陰)을 관하여 일체법의 사정(邪正)의 견(見)이 다 식심(識心)에서 생긴다고 깨닫는 것.

64) 상음(想陰)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정인을 얻어서 전도의 망상에서 능히 선정에 들어가는 것.

65) 수음(受陰)이 고락(苦樂)의 상(相)이 없다고 관하여 지혜인을 얻고 모든 법이 다 공적하다고 분별하여 지혜가 생기는 것.

66) 행음(行陰)은 조작(造作)하는 상이 없다고 관하여 해탈인을 얻으며 행은 다 무상(無常)이며 결박이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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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공인(空忍)67)ㆍ무원인(無願忍)68)ㆍ무상인(無想忍)69)을 얻으며, 2제(諦)의 허실(虛實)과 일체법의 무상(無常)을 관함을 무상인(無常忍)이라 이름하나니, 일체법이 공하면 무생인(無生忍)을 얻는다. 이것이 보살의 10견심(堅心)으로 전륜왕(轉輪王)이 되며, 또한 능히 4천하를 교화하여 일체 중생의 선근을 생하게 하는 것이니라.

 

또 신인(信忍)70) 보살이란, 이른바 선달명(善達明)71) 가운데의 행자(行者)로서 삼계(三界)의 색번뇌(色煩惱)의 속박을 끊고 능히 백 부처님ㆍ천 부처님ㆍ만 부처님의 국토에서 교화하여, 신통력으로 백의 몸ㆍ천의 몸ㆍ만의 몸을 나타내느니라. 무량공덕에는 항상 열다섯 가지 마음을 으뜸으로 삼나니, 4섭법(攝法)ㆍ4무량심(無量心)ㆍ4홍원(弘願)ㆍ3해탈문(解脫門)이다.

 

이 보살은 선지(善地)72)에서 살바야에 이르는데, 이 열다섯 가지 마음으로 일체행의 근본 종자로 삼느니라. 또 순인(順忍)73) 보살이란, 이른바 견(見)ㆍ승(勝)ㆍ현(現)74)의 법이니, 능히 삼계의 마음 등에서 일어나는 번뇌의 결박을 끊는 까닭에 한 몸을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나타내어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신통으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또 무생인(無生忍) 보살이란, 이른바 원(遠)ㆍ부동(不動)ㆍ관혜(觀慧)75)이니, 또한 삼계(三界) 심색(心色) 등의 번뇌습(煩惱習)을 끊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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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삼계의 고과(苦果)는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

68) 삼계의 고인(苦因)은 다 공이라고 관하여 서원이 없는 인(忍)을 얻는 것.

69) 삼계의 인과 법이 공이라고 관하는 것.

70) 3인(忍)의 하나. 아미타불을 염하여 믿어 의심치 아니하는 것. 또 5인(忍)의 하나로서 무루(無漏)의 진지(眞智)가 일어나는 동시에 3보를 믿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초지(初地)ㆍ2지ㆍ3지의 보살을 말한다.

71) 선(善)은 환희지(歡喜地), 달(達)은 이구지(離垢地), 명(明)은 발광지(發光地)를 말한다. 곧 초지ㆍ2지ㆍ3지의 보살을 말한다.

72) 선각지(善覺地). 10신(信)의 보살.

73) 5인의 하나. 이치를 따라 무생(無生)의 과(果)에 향하는 위(位).

74) 염혜지(焰慧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승지(現勝地)로서 4지ㆍ5지ㆍ6지의 보살.

75) 원은 제7지의 원행지(遠行地)이며, 부동은 제8지의 부동지(不動地)이며, 관혜는 제9의 선혜지(善慧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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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말할 수도 없고 설할 수도 없는 공덕과 신통을 나타내느니라.

 

또 적멸인(寂滅忍)76)은 부처님과 보살이 같이 이 인(忍)으로써 금강삼매에 들어가느니라. 하인(下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보살이라 하고, 상인(上忍)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살바야라 하느니라.

 

같이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관하여 삼계의 마음의 습기[心習]와 무명(無明)을 끊어 모양이 다하면[盡相] 금강이라 하며, 모양과 모양이 없음[相無相]을 다하면 살바야라 하며,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밖을 뛰어넘으면 제11지(地)의 살바야라 하느니라.

 

있지도 않고[非有] 없지도 않음[非無]을 깨달아 고요하고 청정하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아니하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과 같으며 무연대비(無緣大悲)77)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매 살바야의 수레를 타고 오셔서 삼계를 교화하시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의 번뇌는 삼계의 창고[藏]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일체 중생의 과보인 22근(根)78)도 삼계를 벗어나지 아니하며, 모든 부처님의 응신(應身)ㆍ화신(化身)ㆍ법신(法身)도 또한 삼계를 벗어나지 아니하느니라. 삼계 밖에 중생이 없는데 부처님께서 무엇을 교화하시리오. 이런 까닭에 나는 말하노라. 삼계 밖에 다른 한 중생계의 창고[藏]가 있다고 하는 것은, 외도들이 『대유경(大有經)』에서 설한 것이지 7불(佛)께서 설하신 것은 아니니라.

 

대왕이여, 나는 항상 설하노라. 일체 중생으로서 삼계의 번뇌의 과보를 끊어 다하는 자를 이름하여 부처님의 자성이 청정해졌다고 하며, 살바야의 성품을 깨달았다고 한다. 중생의 본업(本業)은 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본래 수행하던 바이며 5인(忍) 가운데 14인(忍)을 구족하느니라.”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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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모든 혹(惑)을 끊어서 적정(寂靜)에 안주하는 제10지 및 불과(佛果). 여기에 상ㆍ하의 인(忍)을 나누어 하인은 보살, 상인은 일체지(一切智:佛智)라고 한다.

77) 분별할 대상이 없어진 대자비, 평등한 대자비를 말한다.

78) 6근(根)과 남근과 여근, 5수근(受根)과 5선근(善根), 3무루근(無漏根)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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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살은 본업이 청정하게 중생을 교화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1지(地)에서부터 마지막 1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행하는 곳과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곳의 일체 지견(知見)인 까닭이니라. 본업(本業)이란, 만약 보살이 백 부처님의 나라에 머물면 염부제[閻浮]의 사천왕(四天王)이 되어서 백의 법문(法門)을 닦아 2제(諦)에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初地],

 

만약 보살이 천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도리천왕(忉利天王)이 되어 천의 법문을 닦아 10선도(善道)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二地], 혹은 보살이 10만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염천왕(炎天王)이 되어서 10만 법문을 닦아 4선정(禪定)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三地], 혹은 보살이 백억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도솔천왕(兜率天王)이 되어서 백억 법문을 닦아 도품(道品)79)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四地],

 

혹은 보살이 천억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화락천왕(化樂天王)이 되어서 천억의 법문을 닦아 2제(諦)ㆍ4제(諦)ㆍ8제(諦)80)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五地], 혹은 보살이 10만억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타화천왕(他化天王)이 되어서 10만억의 법문을 닦아 12인연(因緣)의 지혜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六地]

.

만약 보살이 백만억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초선왕(初禪王)이 되어서 백만억의 법문을 닦아 방편의 지혜와 서원의 지혜[願智]81)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七地], 혹은 보살이 백만 미진수(微塵數)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제2선(禪)의 범왕(梵王)이 되어서 백만 미진수 법문을 닦아 서로 비추어 보는[雙照]82) 방편신통지혜(方便神通智慧)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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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도를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 보리분(菩提分)이라고도 한다.

80)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를 각각 네 가지로 나누어 세속 4제와 승의 4제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와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가리킨다.

81) 『구사론』에 여섯 종류의 아라한 가운데 최상의 부동(不動)나한이 일으키는 지혜로서 서원대로 아는 지혜이다.

82) 변증법의 한 형식으로 네 구로 분별한다. 정립(定立:有)ㆍ반정립(反定立:空)ㆍ긍정종합(肯定綜合:亦有亦空)ㆍ부정종합(否定綜合:非有非空) 가운데 제3구인 역유역공을 쌍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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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며[八地], 혹은 보살이 백만억의 아승기(阿僧祇) 미진수(微塵數)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제3선(禪)의 대범왕(大梵王)이 되어서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 법문을 닦아 4무애지(無碍智)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九地],

 

만약 보살이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제4선(禪)의 대정천왕(大靜天王)인 삼계의 주인이 되어서 불가설불가설의 법문을 닦아 이진삼매(理盡三昧)를 얻어서 부처님이 행한 곳[行處]과 같이 삼계의 근원[三界原]을 다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매 부처님의 경계와 같다. 이런 까닭에 일체 보살은 본업(本業)의 행으로 교화한다. 시방의 모든 여래도 같이 또한 이 업을 닦아 살바야의 과(果)에 올라가서 삼계의 왕이 되어 일체의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佛地].”

 

그 때 백만억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대중이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꽃을 흩고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향을 살라 석가모니불과 한량없이 많은 큰 보살들에게 합장하고 공양하였다. 바사닉왕이 반야바라밀을 설함을 듣고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세존께서는 도사(導師)이시니, 금강의 본체이시네.

마음의 적멸행으로 법륜 굴리시어

8변(辯)83) 큰 소리로 중생 위해 설하시니

그 때 백만억 중생이 도(道)를 얻었네.


그 때 여섯 천상과 사람들, 도(道)에 출가하여

비구 대중 되어 보살행을 하고

5인(忍) 공덕의 미묘한 법문 때문에

14정사(正士)84) 능히 진리 깨달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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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부처님의 여덟 가지 변재. 첫째 대중의 위엄에 억눌림을 여의어서 소리를 크게 하지 않음, 둘째 분명히 알아서 어지럽지 않은 것, 셋째 대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아니함, 넷째 교만하지 아니한 변재, 다섯째 뜻이 구족한 변재, 여섯째 경론에 통달하여 문자를 다 아는 것, 일곱째 여러 겁 동안 교묘하고 훌륭한 말을 모아 익힌 것, 여덟째 시절에 맞게 설법하는 것.

84) 보살을 말하는 것으로서 14인(忍) 보살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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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현(賢)과 10성(聖)85)은 인(忍) 중의 행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능히 근원 다하시네.

부처님 많은 법 바다, 삼보의 창고[藏]이니

한량없는 공덕 그 가운데 끼어 있네.


10선(善) 보살 큰마음 내어

길이 삼계의 고통 바다 이별하고

중품(中品)ㆍ하품 10선(善)은 속산왕(粟散王)86) 되시고

상품(上品) 10선(善)은 철륜왕(鐵輪王) 되시며


습종성(習種性)의 동륜(銅輪)은 천하의 왕 되시고

은륜(銀輪)은 3천하의 왕으로 성종성(性種性)이요

도종성(道種性)의 견고한 덕은 전륜왕 되시고

7보의 금빛 4천하의 왕 되시도다.


복인(伏忍)의 성태(聖胎) 30인(人)은

10신(信)ㆍ10지(止)ㆍ10견심(堅心)이니

3세 모든 부처님 그 가운데 행하니

이 복인에서 생기지 않음 없도다.


일체 보살행의 본원이 되니

이런 까닭에 발심하여 믿기 어려우나

만약 신심 얻으면 반드시 물러나지 않고

나아가 무생(無生)의 초지도(初地道)에 들어간다.


중생 교화는 깨쳐가는 가운데 행하니

 

 





85)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의 3현. 초지(初地)에서부터 10지(地)까지가 10성이다.

86) 좁쌀과 같이 작다는 뜻으로 작은 나라 국왕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초발심이다.

선각(善覺:初地) 보살은 사천왕 되어

2제(諦)의 평등한 도 같이 비추네.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백 나라에 노닐고

비로소 1승(乘) 무상도(無相道)에 올라

이반야(理般若)에 들어감을 머문다[住] 하고

머물러 덕행 생기면 지(地)라 하네.


초주(初住)에서 일심(一心)으로 덕행(德行)을 갖추고

제일의(第一義)에도 움직이지 않고

이달(離達:二地) 보살 도리왕(忉利王)은

6도(道) 일천 국토에 모양 나투네.


인연 없고 모양 없는 제3제(第三諦:勝義諦)에는

죽음도 없고 삶도 없고 둘 다 비춤도 없으며

명혜(明慧:三地)가 공함을 염천왕(炎天王)은 비추어

형상[形] 만국(萬國)에 응하여 많은 중생 인도하네.


인심(忍心)에 둘이 없는 3제(諦) 가운데

유(有)에서 나와 무(無)에 들어 변화 생기니

선각(善覺)ㆍ이달(離達)ㆍ명혜(明慧) 세 도인

능히 삼계 색번뇌(色煩惱)를 멸하였으나


도리어 삼계의 몸과 입의 색(色)을 관(觀)하여

법성(法性) 제일이 남김없이 비추네.

염혜(炎慧:四地) 묘광(妙光)은 대정진하여

도솔천왕 되어 억의 나라 노니네.

진실의 지혜 인연 적멸한 방편도로써

무생(無生) 통달하여 공(空)과 유(有) 비춰 알고

승혜(勝慧:五地)는 3제(諦)를 스스로 밝게 통달하여

화락천(化樂天) 왕으로 백억 나라 노닐며


공(空)ㆍ공제(空諦) 관(觀)하니 두 모양이 없네.

6도(道)에 변화하여 끊임없이 드나들며

법현(法現:六地) 보살 자재왕은

둘도 없고 비춤도 없고 이공(理空)을 통달하여


3제가 현전(現前)한 대지혜 광명으로

천억 국토 비추어 일체 교화하시고

염혜[焰]ㆍ승혜[勝]ㆍ법현(法現)은 무상(無相)의 선정으로

능히 삼계에 미혹한 마음의 의혹 씻어 주시네.


공한 지혜[空慧] 고요하여 연관(緣觀) 없으나

도리어 마음 공한데 무량한 보(報)를 보도다.

원달(遠達:七地인 遠行地) 무생(無生)의 초선왕(初禪王)은

항상 만억국토의 중생 교화하시네.


아직 보신(報身) 제도[度] 못하나 일생에 있으면서

나아가 등관(等觀)의 법류지(法流地)87)에 들어가고

비로소 무연(無緣)의 금강인(金剛忍)에 들어가면

삼계에 과보의 모습 길이 받지 않으리.


제3의 뜻 관하매 둘 비춤[二照]88) 없으며

 

 





87)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정법이 끊임없이 흘러 이어져 가는 경지. 즉 법운지(法雲地)를 말한다.

88) 주(主)와 객(客), 능(能)과 소(所)를 말한다.

 

 



21생(生)89)의 공적한 행이라.

삼계 애습(愛習:無明習)과 도정(道定)에 순종함을 원달(遠達)의 정사(正士)만이 알리라.


등관(等觀:八地) 보살 이선왕(二禪王)은 법신으로 변화한 한량없는 광명으로

백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국토에서 일체를 교화하시며 원만히 3세(世)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의 일 비추어 즐겁고 허무한 끝없는 근원[原] 반조하매 3제(諦)에 항상 고요할 뿐,

혜광(慧光:九地) 보살 삼선왕(三禪王)은 능히 천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국토 일시에 화현하며


항상 무위의 공적한 행에 있으면서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법장(法藏) 일념에 깨닫네.

 

관정(灌頂:十地)90) 보살 사선왕(四禪王)은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국토에서 많은 중생 교화하며


비로소 금강에 들어 일체를 깨달아 29생(生) 영원히 이미 건너고 적멸인(寂滅忍) 가운데 하인(下忍) 관하여 한 번 바뀌어 묘각(妙覺)에 항상 담연하여라.

 


등관(等觀)ㆍ혜광(慧光)ㆍ관정(灌頂) 3품의 보살 앞의 남은 습기[習] 무명(無明) 인연 없애고

 

 



89) 초지부터 7지까지 각 지마다 3세(과거ㆍ현재ㆍ미래)를 곱한 것.

90) 보살이 9지에서 10지로 들어갈 때 부처님께 지수(智水)를 그 정수리에 뿌려 법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

 

 

10주(住)의 10위를 관정주(灌頂住)라 한다.





무명 습기의 모습이므로 번뇌인 것을 2제(諦)의 이치로 궁구하여 일체 다하네.


원만한 지혜 모양 없는 삼계의 왕 30생(生) 다하면 대각(大覺)과 같고 큰 적멸 무위는 금강장(金剛藏)이요 일체 과보 다하니 끝없는 자비라네. 제일의제(第一義諦) 항상 안온하여 근원 다하고 성품 다하니 묘지(妙智)가 있네.

 

3현(賢)과 10성(聖)의 과보에 머무나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정토에 계시네. 일체 중생 잠시 과보에 머무나 금강의 근원에 오르면 정토에 살리. 여래 3업(業)의 덕 끝이 없어 내 이제 월광(月光) 등과 3보께 예배합니다.

 


법왕은 위없어 사람 가운데 큰 나무 대중 감싸주는 무량광(無量光)이여, 항상 설법하시매 뜻 없는 것 없고 마음의 지혜 적멸하여 무연(無緣) 중생 비추네. 사람 중의 사자 중생 위해 설하시매

대중들 환희하며 금꽃 흩으니 백억만 국토 여섯 가지로 크게 진동하며 생명 가진 중생 묘한 과보 받도다. 천존(天尊:佛)께서 명쾌하게 열네 왕 설하시니 이런 까닭에 제가 지금 간략히 부처님 찬탄하나이다.

 


이 때 모든 대중들이, 월광왕이 열네 왕의 한량없는 공덕장(功德藏)을 찬탄함을 듣고 큰 법의 이익을 얻었다. 곧 자리에 있던 1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천왕(天王)들과 1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범왕(梵王)과 1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귀신왕(鬼神王)과 나아가 3취(趣)에 이르기까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8부 아수륜(阿須輪) 왕이 현재에서 귀신의 몸을 바꿔 천상의 도를 받았고, 3생(生)의 8정위(正位)에 있는 자나 혹은 4생(生)ㆍ5생 나아가 10생에 이르기까지 정위(正位)에 들어가서 성인의 성품을 증득하여 일체의 한량없는 보(報)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모든 도과(道果)의 열매를 얻은 하늘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월광왕은 이미 과거 10천 겁 중에 용광왕(龍光王) 부처님 법 가운데서 4주(住) 보살이었고 나는 8주(住) 보살이었는데, 지금 내 앞에서 큰 사자후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니, 너의 말과 같아 참된 뜻을 얻어서 설함을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에 이 일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 설한바 14반야바라밀과 3인(忍)91)과 지지(地地)와 상ㆍ중ㆍ하의 30인(忍)은 일체의 행장(行藏)이요, 일체의 불장(佛藏)이며, 불가사의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 모든 부처님도 이 가운데서 나서 이 가운데서 멸하며 이 가운데서 교화하나, 생도 없고 멸도 없고 교화함도 없고,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제일(第一)이요 둘이 없으며, 교화함도 아니요 교화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음도 아니며,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허공과 같은 까닭에 일체 중생은 생김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얽매임과 풀려남도 없으며,

 

 인(因)도 아니요 과(果)도 아니요 인과(因果)가 아닌 것도 아니니라. 번뇌로 나와 남, 알고 보고 받아들임[受]이 다 내 것이라 하는 것이요, 일체 고(苦)를 받아들임의 행이 공(空)한 까닭에 일체 법집(法集)의 5음은

 





91) 복인(伏忍) 가운데 신인(信忍)ㆍ지인(止忍)ㆍ견인(堅忍)을 말한다.

 



환화(幻化)요, 모인 것도 없고 흩어질 것도 없고 법이 법성과 같아 고요하고 공한 까닭에 법의 경계도 공하다. 법의 모양도 없고 바뀌지도 아니하고 전도되지도 아니하고, 환화(幻化)에 순종하지도 아니하며, 3보(寶)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6도(道)도 없으며, 허공 같은 까닭에 반야(般若)는 아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고 행함도 아니요, 연(緣)도 아니요 인(因)도 아니요, 받아들이는 것[受]도 아니요 일체를 비추는 모양[照相]을 얻지 못하나니, 도를 행함과 이 도를 행하는 모양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법의 모양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얻음과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이 있겠는가? 이러므로 반야의 공덕이 다 중생 가운데 행으로는 할 수 없는 행이며, 5음(陰)의 법 가운데 행으로는 할 수 없는 행이며, 경계[境] 가운데 행으로는 할 수 없는 행이며, 해(解) 가운데 행으로는 할 수 없는 행이므로 반야는 불가사의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그 가운데서 행한다. 그런 까닭에 또한 불가사의하다. 일체 모든 여래는 환화(幻化)의 머무는 것이 없는 법 가운데서 교화하시니, 또한 불가사의하도다.

 

선남자여, 이 공덕장은 가령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제13 관정위(灌頂位)의 보살이 이 공덕을 설한 것을 백천억으로 나눈 것과 같나니, 왕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은 바다의 물 한 방울과 같다. 내가 지금 간략히 공덕의 일부분의 뜻을 말하리니, 일체 중생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며,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한량없는 모든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나 3현(賢) 10성(聖)을 한량없이 찬탄하였으나 이것은 월광왕의 일부분의 공덕이니라.

 

선남자여, 이 14법문(法門)은 3세의 일체 중생, 일체 3승(乘),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닦고 익히시는 것이니,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만약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이 문을 연유하지 아니하고 살바야(薩婆若)를 얻는다면,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부처님과 보살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일체 모든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으로서 모든 인(忍)의 법문인 신인(信忍)ㆍ지인(止忍)ㆍ견인(堅忍)ㆍ선각인(善覺忍)ㆍ이달인(離達忍)ㆍ명혜인(明慧忍)ㆍ염혜인(焰慧忍)ㆍ승혜인(勝慧忍)ㆍ법현인(法現忍)ㆍ원달인(遠達忍)ㆍ등각인(等覺忍)ㆍ혜광인(慧光忍)ㆍ관정인(灌頂忍)ㆍ원각인(圓覺忍)을 들은 이는 백 겁



천 겁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세의 생(生)마다 생기는 고난을 뛰어넘고 이 법문에 들어가서 현재의 몸[現身]에서 과보를 받느니라.

 

이 때 모든 대중 가운데 10억의 같은 이름의 허공장해(虛空藏海)보살이 법락으로 환희하며 각각 허공 가운데 꽃을 흩으니, 한량없는 꽃단[華臺]으로 변하였고, 그 위에 한량없는 대중들이 있어 14정행(正行)을 설하였느니라. 열여덟 범천과 6욕천(欲天)의 왕도 또 보배 꽃을 흩고 각각 허공의 대(臺) 위에 앉아 14정행을 설하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그 뜻의 이치를 알며, 한량없는 모든 귀신도 현신(現身)으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어떻게 중생의 모습을 교화합니까?’라고 하였는데, 만약 환화(幻化)의 몸으로 환화를 보는 것이라면 이 보살의 참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라. 중생 식(識)의 최초 일념의 식은 목석(木石)과는 달라 태어나면서 선을 얻고[生得善] 태어나면서 악을 얻어[生得惡] 악은 한량없는 악식(惡識)의 근본이 되고, 선은 한량없는 선식(善識)의 근본이 되느니라. 처음 일념에서 금강의 마지막 일념까지 그 가운데서 불가설 불가설의 식이 생겨 중생의 색심(色心)을 이루나니, 이것이 중생의 근본이니라.

 

색(色)은 색개(色蓋)이고, 마음[心]은 식개(識蓋)ㆍ상개(想蓋)ㆍ수개(受蓋)ㆍ행개(行蓋)이니라. 개(蓋)란 덮고 가리는 것으로서 몸[身]을 용(用)으로 삼으니, 이름하여 쌓아 모임[積聚]이라 하느니라.

 

대왕이여, 이 하나의 색법(色法)은 한량없는 색을 낳느니라. 눈이 얻으면 색(色)이 되고, 귀가 얻으면 소리가 되고, 코가 얻으면 냄새가 되고, 혀가 얻으면 맛이 되고, 몸이 얻으면 촉감이 되느니라. 단단한 것을 땅이라 하고, 물을 윤택하다고 하고, 불을 열이라 하고, 가벼운 것을 바람이라 하고, 5식(識)이 생기는 곳을 근(根)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한 색[一色], 한마음[一心]의 불가사의란 색심(色心)이 있느니라.

 

대왕이여, 범부의 6식(識)은 거칠기[麤] 때문에 가명(假名)의 푸르거나 누르며 모나거나 둥근 등의 한량없는 거짓의 색법[假色法]을 얻으며, 성인(聖人)의 6식은 깨끗하므로 실다운 법ㆍ색ㆍ향ㆍ미ㆍ촉과 실다운 색법을 얻느니라. 중생이란 세제(世諦)의 이름이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니, 다만 중생의 생각을 낳는 것을 세제라 한다.

 

세제는 거짓이요 속임이요 환화(幻化)인 까닭으로 있는 것[有]이요, 나아가 6도(道)도 환화(幻化)요, 중생의 견해[衆生見]도 환화,요 환화의 견해[幻化見]도 환화이며, 바라문(婆羅門)ㆍ찰리(刹利)ㆍ비사(毘舍)ㆍ수다(首陀)ㆍ신(神)ㆍ나[我] 등의 색과 심(心)도 환제(幻諦)라 하느니라.

 

환제란 법이 없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 명자(名字)도 없고 뜻도 없어 환법(幻法)이라 하느니라. 환화도 명자가 없고, 체와 상[軆相]도 없으며, 삼계(三界)란 명자도 없으며, 선악의 과보와 6도(道)의 명자도 없느니라.

 

대왕이여, 이런 까닭에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을 위하여 삼계와 6도의 이름을 지어서 설하시니, 이것을 한량없는 명자라 하느니라. 공법(空法)ㆍ4대법(大法)ㆍ심법(心法)ㆍ색법(色法) 같은 것이므로 거짓의 법이 상속하니,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않다.

 

하나도 또한 상속함이 아니요 다른 것도 또한 상속함이 아니며,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닌 까닭에 이름하여 상속제(相續諦)라 하느니라. 상대(相待)의 가법(假法)은 일체를 상대라 하고 또한 부정상대(不定相待)라 이름하나니, 5색(色) 등의 법과 일체의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등의 법 같은 것이니라. 일체의 법은 다 인연으로 이루어지고 거짓의 중생을 이루나니, 같은 때의 인과[俱時因果]와 다른 때의 인과[異時因果]92)와 3세의 선과 악 모두가 환화이니, 이것이 환제(幻諦)의 중생이니라.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위에 본 바와 같이 중생도 환화이니, 다 거짓이요 속임이요 허공 중의 꽃과 같기에 10주(住) 보살과 모든 부처님의 5안(眼)은 환제(幻諦)와 같이 보나니, 보살이 중생을 교화함이 이와 같으니라.”

 

이 법을 설할 때 한량없는 천자(天子)와 모든 대중이 복인(伏忍)을 얻은 이도 있었고, 공한 무생인(無生忍) 내지 1지(地), 10지와 말할 수 없는 덕행을 얻었다.

 





92) 인(因)은 앞에 있고 과(果)는 뒤에 있으므로 이시(異時)인과라 하고, 종자에서 현행(現行)이 생기고 현행에 의해 종자를 훈습하는 관계는 구시(俱時)인과라 한다.

 




4. 이제품(二諦品)

 


그 때 바사닉왕이 말씀드렸다.

“제일의제(第一世諦) 가운데 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없다면 지혜는 마땅히 둘이 아닐 것이요, 만약 있다면 지혜는 마땅히 하나가 아닐 것이니, 하나와 둘의 뜻과 그 일은 어떠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과거 7불(佛)께 이미 하나의 뜻과 둘의 뜻을 여쭈었느니라. 그대는 지금 들음도 없고 나도 지금 설함도 없나니, 들음도 없고 설함도 없는 것이 곧 하나의 뜻이요 둘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생각하고 법답게 수행하라. 7불의 게송은 이와 같으니라.

 


모양 없는 제일의(第一義)

스스로도 없고 남이 지음도 없으나

인연은 본래 스스로 있어

스스로도 없고 남이 지음도 없네.


법성은 본래 성품이 없고

제일의(第一義)도 공과 같으며

모든 존재[有]는 본래 있는 법[有法]

3가(假)는 거짓이 모여 있는 것이네.


없는 것도 없고 진리[諦]는 실로 없어

적멸한 제일의 공

모든 법은 인연으로 있는 것

있고 없는 뜻 이와 같도다.


있고 없음 본래 스스로 둘



비유하면 소의 두 뿔과 같아

비춰 보아 알면 둘 없음 보나니

2제(諦)는 항상 상즉(相卽)하지 않네.


마음 알면 둘 아님 보나니

둘을 구해도 얻지 못하며

2제(諦)를 하나라 아니하는데

둘 아님을 어찌 얻으리.


알면 항상 스스로 하나

법[諦]은 항상 스스로 둘

이 둘 없음 통달하면

참으로 제일의(第一義)에 들어가리라.


세제(世諦)는 환화에서 일어난 것

비유하면 허공의 꽃과 같고

그림자 같고, 세 손[三手] 가진 이 없듯이

인연인 까닭에 거짓 있는 것.


환화(幻化)로 된 이가 환화를 보고

중생은 환제(幻諦)라 이름하고

환사(幻師) 요술의 법 보는 듯

법[諦]은 실로 곧 없는 것.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관(觀)이요

보살의 관도 또한 그러하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제일의 가운데서 항상 2제(諦)를 비추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 부처님과 중생은 하나요 둘은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중생이 공하므로 보리의 공함을 얻고, 보리가 공하므로 중생이 공함을 얻으며, 일체법이 공하므로 공함까지도 공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반야는 모양이 없으며, 2제는 허공이요, 반야도 공이라 무명(無明)에서부터 살바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모양이 없고 남이라는 모양도 없는 까닭에 5안(眼)이 이루어질 때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나니, 행(行)도 또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不受], 행하지 아니함도[不行] 또한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행하지 아니함과 행하지 아니함이 아닌 것도 또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나아가 일체법까지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느니라.

 

보살이 아직 성불하지 아니하였
대승환타지소설 2016-02-17 13: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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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누구인가?..........나는 이와같이 들었다 에서 나는 이란 자는 누구인가?........

화자 (말한 부처)는 누구인가?......

그래서 구라 소설이라는 것이여....진품모방해서 각색한 구라 대하소설이라서 비불대승경전이라고 하는 겨.......
저자, 화자 양쪽이  다 구라잖어..............
불설이면 나는.그 저자가 붓다당시의 제자이어야 하거든....
부파이후에 소설쓸라고 하니, 가짜 저자만들어놓고, 가짜 화자섞어서
구라 공상과학 대하 만년체 소설 써놓고도 경전이라고 하니 비불설대승경전이라고 하 는것 아닌가?
오케이?..
빼앗긴천육백년한국불교역사 2016-02-17 13: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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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에서도 특히 조사불교,선불교, 헤능교는 돈오 헷소리로 8정도를 말아먹은 것이여....
이왕 대승을 할 참이면 티벳이 더 나은겨.......

8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것이 정법불교인,초기불교가 들어와서 이만큼 알려진 것이여.

8정도를 떠나서는, 불교의 성자가 생길수 없는 것이여....
헤능의 돈오,견성성불, 불이.............8정도 말어먹은겨.
아직도 그따위 소리나 하고 있으니.......

한국불교가 1600년이면, 진짜 정법불교가 들어왔으면, 백년에 1명으로 해도 아라한들이 최소한 16명이 나올수 있는 겨..
수다원이상의 성자들도 재가에서 조차 많이 나왔겠지..........

1600년 전통에 짝퉁불교에 저질스런 불이불교가 들어왔으니, 조사나 찾고 게율부터 망가지면서 선정도 망가지고.........쭉 앗사리 이판사판이 된겨....

정신좀 차리라구............
아직도 짱개불교타령인가?. 헤능짱개가 달마도 물말아먹은 겨.
도사와 선사 합한것이 조사 아닌겨?...........
돈오?...........
한해에 2000명이 화두든다는데, 한명이라도 초기의 깨달음 가진자들이 나오는가?...
삼매조차도 못 들잔어......선정무시 불이,돈오,견성성불 헤능짱개때문에......

조사는................은, 는,이,가 가 조사인겨..
불교에서 조사는 없어...............아라한이 있는 것인겨.
자기가 먹을 밥도 제대로 못찾아먹는주제에
어디서 힌두,보살 비슷한 대승경전만들어서, 아라한을 배출시킬 그 1600년의 시간을 일어버린역사,빼앗겨버린 불교역사를 만들어 버린주제에.

정신차리시게나...........하두 한심스러
불교가 말로 돈오 본래면목, 참나 상정하면 다 끝인 가?......
계율이 떵개의 개판 되갔는데 몬 불교라고 하는 지?..
8정도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여
남방은 8정도가 살아 있는 곳이 많아........아라한배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여기 선불교는 그 엉터리 조사라도 배출할 가능성이 있나?........
동양식, 도교와 결합한 힌두의 조사 아닌겨?..........
불교는.................부처와 아라한만 있는 겨......
마음 2016-02-17 13: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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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난삽합니다.
무아 2016-02-17 1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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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마음의 반영이죠. 수행의 정도를 가늠케 합니다.
무상 2016-02-17 14: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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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수행인데 실상은 수행이 시작도 안 되신 것 같아서요. 저 같으면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남의 허물은 기가 막히게 잘 보시면서 말이죠.

남의 잘못만 보는 눈은 무슨 눈이죠? 좌선 한번 하시고 자신이 쓴 글을 차분히 다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강병균 교수님 글이 불교닷컴에서 제일 읽을만하다고 한 지식과지혜님이신가요? 너무 판박이라서요. 아니면 다원님?

그리고 자칭 초기불자님들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초기불자님들은 수행도 없으면서 아는 척을 그렇게 심하게 해요? 혹시 남들이 모를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에요?
무상 2016-02-17 14: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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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척을 한다는 건 모른다는 건데 그걸 알고 있는지? 아님 그것도 모르고 있단 건지?
현대불교학에서 대승불교를 비불교로 보는 거의 보질 못했는데, 심지어 칼루파하나도 대승을 불교로 인정함, 다만 실체론적 사유를 경계할 뿐.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지식과지혜 닮은 분과 그 동조자가 서양은 대승을 불교로 보지 않는다고 하던데, 맞나요? 맞다면 서양학자 중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과 그 주장을 제시해 보시겠어요?

사성제, 팔정도 중 무엇이 없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죠. 그래야 주장이 주장이 되죠. 신앙고백하지 말고요.

티벳에서는 아시다시피 소승과 대승을 회통시키는데 거기도 사성제 팔정도가 없나요? 있으면 소승은 너무 타락했으니까 거기 꺼 배우면 되죠? 같은 대승이고 같이 여래장 사상이니까?

단언컨데, 이 지식과지혜님은, 글에서도 쉽게 보이듯이 수행이 없습니다.
진도개나떵개나다개들이지머 2016-02-17 14: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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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관세음보살,부동명왕상. 머 이런것 잇지 않나?...

너는 누구냐?........
나는 8정도다...........
8정도는 누구냐?
8정도는 나다.........
나는 누구냐?....
너는 개다...........
개는 누구냐?
개는 바로 너다.............

개중에서도.....삽살개,진돗개,................떵개가 있는데...
진돗개는 개 아닌가?.
진도개하고 삽살개가 8정도인가?........
너는 바로 개다..........
개가 누구냐?
개는 너다...........
너는 누구냐?
나는 8정도다.........

이해할랑가 멀라.....
소승님이라고 하네....ㅎㅎㅎ
정법불자님들.............이라고 고쳐야 하네..........
나는 8정도 이니까.....
8정도는 누구냐?
8정도는 나다........
나는 누구냐?.
너는 바로 개다..................
진도개나 똥개나  결국은 개에 속하는 과라고 하지........
나는 8정도.
너는 개........
초기불자와 대승불자와의 간격을 예리하게 세상속의 잣대로 세워놓는다면...........
나는 8정도다.
너는 개다...........그래봐야. 진도개나 떵개나 스피츠나.....
너무 잔인한가?.........ㅎ
감사 2016-02-17 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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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부터 소승님 말씀대로 티벳여래장불교를 한국불교에서 열심히 배워야겠습니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왜 그렇게 타락했죠?

지식과지혜님, 글을 쓰기 전에 심호흡이라도 한번 하고 쓰세요. 글은 남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배려도 좀 하시고요. 소승불교가 타락한 이유도 분석 좀 해 주세요. 물타기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서양학자 중에 대승이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학자 좀 말해보세요. 주장을 하셨으면 근거도 제시해야죠.
정말입니까 2016-02-17 15: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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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장 사상이 실체론이에요, 소승님들 눈에는?
혹시 소승님들 주장처럼 정말 서양에 대승을 비불교로 보는 학자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그 많은 학자 중에 전혀 없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티벳여래장불교는 실체론 아니니까 배우라고 권하신거죠, 소승님? 어차피 남방불교는 타락해서 배울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맞죠?
그럼 2016-02-17 15: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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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이는 없다고 하는 학자가 있나요?
무상상은어디로갔나어디로 2016-02-17 1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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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처럼 증발했는가?

한개도 아니고, 3개 씩이나 가르쳐 줬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치레 정도는 해야지 예의가 있는 사람이란 평을 받을수 있는 것이 세상사 이치이거늘.

앞으로 연꽃님 글에다가 줄창 또 헛소리하는 지 두고 볼것이여?
자유의지가지고 해보니, 순간삼매도 못들어가는구만.....ㅋㅋㅋ
__ 초기불교 사상검열 부장 백---
빼앗긴님 2016-02-17 14:16:01
답변  
옳으신 말씀입니다.
불교는 8정도가 아니면 외도입니다.
진아,힌두교 아뜨만, 본래면목,참나,견성성불
다 외도 입니다. 
8정도의 힘으로 바른 삼매  정정에 들어 해탈 열반수행 만이
붓다의 가르침 입니다............. 너무 쉬운 불교를 관념화 시키고
어렵게 만들고.... 붓다가 설하신 길을 그냥 천천히 가면 될 것을
기득권에 사로잡혀 집착하는 모습을 볼때 짱개불교에서  왜 깨달은
성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는지 이해가 갑니다.

대승권에 단 1명의 깨달은 아라한이라도 나오지 않은 이유는 부처님이 알려주신
정법의 길... 8정도의 길을 가지 않고.... 한 눈팔고 못된짓 하며..
중유한 것은 하루에 한끼 먹는 일종식 조차 지키지 못하고...탐진치의 버림을 관념화 시킴.
수행의 근본 자세, 토대가 무너져.... 도저히 앞으로 한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고. 설사
찰라적으로 갔다가도 원상태로 돌아와 막행막식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짝퉁불교목표 2016-02-17 14: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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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은 근본적으로 아라한이 나올수 없는 시스템이에요....

선불교는 조사...........
대승은 보살.............

조사불교, 보살불교를 유사불교라고 합니다........석가세존불교와 비교할때........
석존당시에 단 한명이라도, 보살이 되는수행을 하고 ,조사가 되는 수행을 한 자가 있어야 하는데, 단 한명도 없습니다.....아라한되는것이목표인것이 초기불교비구의 지향점입니다.

그래서 아라한불교인 석존불교와 다른 겁니다.........
좋은말로 짝퉁불교라고 하는 것이지요.......
불교는 먼?...........조사하고 관세음보살이 붓다와 몬 상관있나?.
아무리 부정해도 힌두의 브라흐마,아트만요소가 섞여 들어갈수밖에 없습니다.
정법에서의 이탈은 다른 불순물로 대신 메우는 법입니다.....
두얼굴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4: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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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은 사법이라서 막장 불교라고 치자
그런데 니들이 정법이라고 주장하는 테라와다 불교는 정법임에도 불구하고
왜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이교도에 대한 살해,박해,테러, 그들이 가진 재산을 강탈하는 것이냐? 정법을 배우면 막장불교를 할 수 없다며?
미얀마, 스리랑카는 왜 정법을 배웠는데도 막장불교냐고요?
태국불교는 왜 한국불교 저리가라할 정도로 부패했냐고요(수백만달러 횡령, 마약, 고가의 외제차 수집, 명품와인 과소비, 군부정권과 공생관계)

결국 대승사법이나 정법니까야나 부패하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따라서 니까야 정법 배우면 청정승가가 유지된다,
니까야 정법 배우면 승려가 막행막식하지 않는다,는 니까야신봉자들의 주장은 허황된 믿음일 뿐,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거지요.

4성제 8정도 다 배우는 테라와다 불교는 왜 부패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이 의문에 어떤 니까야신봉자들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얼굴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4: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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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무식하니? ^^

니까야 신봉자들의 주장(대승은 사법이라서 승려들이 막행막신하다)이
더 무식한거지. 니까야 정법(테라와다)을 배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승려는 왜 부패하고 타락했는데? 이 질문에 대을 해 보란 말입니다 ^^

답을 안하는 자가 무지한 자입니다 아시겠어요?
두얼굴의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4: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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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다들 횡설수설만 해대는 거야?

초기불교도들의 주장: 대승은 사법이다, 사법을 배운 승려들이라서 막행막식하는 거다. 니까야 정법 배운 테라와다 승가는 청정하다. 막행막식 안한다.

나: 그럼 현재, 스리랑카 미얀마 승려와 불교도들이 이교도를 살해하고 폭력을 가하고 그들의 사원을 테러하고, 그들이 가진 가게와 재산권을 약탈하는 것은 왜 그렇스니까? 태국의 승려들은 왜 마약하다 걸리고, 첩을 두었다 거리고 수백만달러를 차명계좌로 숨겼다가 발각됩니까? 테라와다 정법을 배웠는데도 왜 막행막식하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했잖아요. 그럼 거기에 맞는 대답을 하면 되지
왜들 질문과 관계도 없는 내용을 늘어놓죠?

대승불교에 대한 비방이 저의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변인가요? ^^
누구누가 동문서답 잘하냐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참 한심들 하십니다.
팔정도의중요성 2016-02-17 15: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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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너는 누구냐?
8정도......나는 8정도다

개.......8정도가 누구냐?
8정도............8정도는 나다........

개........나는 누구냐?
8정도.........너는 개다......

개.........개는 누구냐?
8정도.......개는 바로 너다.........

8정도없으면 바로 개가 되는 것이 불교라고 하지.
고상한 표현으로 축생(윤회,악처)의 학문이라고 하지......

8정도가 있으면 정법의 불교가 있고, 거기에는 불교의 성자들이 나오는 것이지...........

8정도인가?...........
8사도 (개들의 학문)인가?.......

쉽게 이야기해서 8정도할래? 개가 될래?.........
그게 정법불교, 초기불교라는 것이란 말씀.
걸식부터하자 2016-02-17 15:32:58
답변  
한국 테라와다 스님들은 왜 걸식을 안 하지?
말로만 테라와다?
개눈에개만보이는법 2016-02-17 15:50:03
답변  
남걱정하지말고, 자신부터걱정혀.

개눈에는 개만 보이는것이라고 누차 이야기 해줬건만.
나는 개다...........라는 걸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가?
적반하장 2016-02-17 15: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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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걱정하지말고, 자신부터걱정혀.
두얼굴의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6:07:51
답변  
남걱정 말고 자신이나 걱정하라고? ^^ 내가 하는 말이 여태 그거였어?

니까야 교도들은 테라와다 걱정이나 할 일이지
뭔 오지랖이라고 대승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냐 이거야?

대승비방하느라 여념이 없는 데
지금 테라와다 불교가 부패하여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자비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폭력,테러,약탈을 벌이고 있잖아
지금 대승불교 비방할 때가 아니라 테라와다불교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
별주접은 2016-02-17 16: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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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정도냐? 개냐? 여기나 거기나 간단한문제.
걸식부터하자 2016-02-17 1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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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속담 241 -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
저는 잘 못하면서 남만 잘 하라고 하는 사람.
두얼굴의니까야신봉자들 2016-02-17 17: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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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떤(대승,선,초기) 불교를 하냐의 여부에 따라서
막행막식하는 승려가 나오냐 나오지 않냐 판단한다는 것은 어리석은거지.

어떤 불교를 하든 부해한 승려들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마련이지
수행자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굴복당하며 다 부패하는거야
대승 승려라서 부패하고 파계하는게 아니라
소승 승려라도 얼마든 부패하고 파계한다는 말이지.
부처님 당시에도 파계하는 승려가 있었다!

계율이 어떻게 생겨났냐?
승려들이 잘못을 할때마다 부처님이 야단치고 잔소리 하면서
~한 행위를 하지 말라, 한게 전부 계율이 된거다.
만일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이 뻘짓거리를 하지 않았으면 계율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욕망 통제를 하냐, 욕망에 굴복 당하냐의 여부에 따라 파계, 막행막식, 부패하는 승려, 승가가 나오는 것이지
대승불교라서 타락하고 소승 불교라서 타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상 니까야신봉자들에 대한 가르침 끄읏 ^^
빙고 2016-02-17 18: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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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무-지렁이 한마리땜시루 도깨비시장이 되었네요 ㅋㅋㅋ
유치뿡 2016-02-17 18: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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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굴복하는 것이 계을 어기는 것 아닌가?
천하의 테라와다 정법을 공부하고 수행해도 욕망에 굴복하니까
파계,타락,부패하게 되는 것이지. 원래 진리는 쉽고 자명한 법이지.

어리석은 자들만 어렵게 말할 뿐
유치뿡 2016-02-17 18: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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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허접해?
부처님 재세시에도 타락한 승려가 나와서 "계율"이 제정된 것은
글 읽을 줄 아는 정도의 지혜만 있어도 다 아는 사실인데.

승가, 승려의 부패가 없던 시기를 증명하면
내가 해달라는 거 다해줄께.
계,율이 아무리 천문학적으로 많이 있어도
타락할 자는 타락하게 되어 있다는 거, 이런 것도 모르는게 허접한 거지
대승외도 2016-02-17 17:20:55
답변  
대승불교는 부처님법을 믿는게 아니라 용수보살과 혜능조사를
믿는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름침... 담마  법이다.
자등명 법등명.. 자신과 부처님법을 의지처로 삼으라 했다.
법을 알면 여래을 보는 것이라 했다.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으면서 불교란 말을 함부로 하는가..
부처님의 8정도의 길을 가지 않는 자들은 외도에 다름 아닙니다.
빙고 2016-02-17 18:38:19
답변  
개.........너는 누구냐?
8정도......나는 8정도다

개.......8정도가 누구냐?
8정도............8정도는 나다........

개........나는 누구냐?
8정도.........너는 개다......

개.........개는 누구냐?
8정도.......개는 바로 너다.........

8정도없으면 바로 개가 되는 것이 불교라고 하지.
고상한 표현으로 축생(윤회,악처)의 학문이라고 하지요
ㅋㅋ 2016-02-17 1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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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앤 더머 끼리 잘 논다
대승기신론 2016-02-17 18: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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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관쌍수(止觀雙修)


  제127강 지(止)와 관(觀)은 함께 수행해야 함을 밝힘 (2)


지난시간부터 지관쌍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현상의 그 자체 성품에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타를 닦고 난 다음에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다시 위빠사나를 닦아 나갑니다.
위빠사나는 모든 존재는 상호 관계를 갖고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죠.
그래서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습, 선악의 모습, 아름답고 추한 모습,
이런 것을 잘 관찰해 가는 겁니다.
사마타 수행해서 일어나는 선정을 바탕으로 해서 위빠사나를 닦기 때문에
생멸 인연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 본질은 생멸이 없음을 같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사마타를 닦고 위빠사나를 닦는 겁니다.

그 다음에 위빠사나를 잘 닦으면서
또한 모든 현상 자체가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세계는 독립된 게 없다,
자아도 없고 실체도 없음을 잘 보는 거죠.
그러니까 현상의 자체 성품이 없음을 같이 보는 겁니다.
그게 위빠사나를 닦으면서 사마타를 닦는 겁니다.
그래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이 둘 관계는 분리되어 있지 않는 것이죠.

또 무엇을 얘기했는가 하면,
사마타 수행은 아집과 법집을 타파하고,
또 하나 오온에 대한 이익을 얘기했죠.
매 순간 정신과 육체가 바뀌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이익이죠.
이렇게 집착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이익이 있고,
위빠사나 수행을 했을 때는
좁은 마음이 큰마음으로, 사랑과 연민심이 자꾸 커져가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면서 모든 상호관계성을 봤을 때는
시간적으로 매순간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해서 고정된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
빨리 진리를 깨치고자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게으름이 없어져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이익이 있습니다.

오늘은 358p 네 번째 단, 결론적인 얘기를 합니다.

 


 (논 - 83)

以此義故로 是止觀二門 共相助成하고 不相捨離니라.
若止觀不具이면 則無能入 菩提之道니라.

 

이 뜻으로 지(止)와 관(觀)은 서로 돕고 떨어질 수 없다.
지(止)와 관(觀)을 함께 닦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
 

 

[止-禪定-不動-空]
사마타[止]는 선정을 얻는 데 아주 유용합니다.
선정(禪定)이라는 것은 번뇌가 점점 없어지면서
깨끗하고 밝아지는 마음이 증장하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不動] 쪽으로 갑니다.
이 모습[不動]은 텅 비어서[空] 생멸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는 거예요.
그 다음에 위빠사나[觀]를 얘기하면서 말씀 드리죠.

[觀-智慧-緣起(隨緣), 動-不空]
위빠사나[觀]는 지혜를 얻는 방법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상호간에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리는 거죠.
연기하는 모습은 움직이는[動]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수연(隨緣)이라고 합니다.
인연을 따르는 모습을 잘 보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불공(不空)을 얘기합니다.

지혜를 등불에 비유하자면,
등불은 무엇에 약합니까? 바람에 약하죠.
그러면 이 불이라는 것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뭐가 필요하냐는 거예요.
가려주는 게 있어서 바람을 막아줘야죠.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선정입니다.
선정을 닦아서 지혜의 횃불을 올리는 겁니다.

관(觀, 위빠사나)만 닦는다면, 
언제든지 외부에 경계의 바람이 불어서
지혜의 불이 꺼질 수가 있는 거예요.
선정이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경허스님 어록에 보면
여자에게 홀려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거나
죽음에 임박해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선정의 힘이 약해서 그렇다고 얘기합니다.
대상에 따라서 내 마음이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선정의 힘이 약해서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선정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선정만 닦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예리함이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지혜가 계발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대승기신론」 앞에서 우리가 공부한 게 있죠.
보는 게 있으면 보지 못한 부분이 생긴다는 거예요.
사마타의 특징은 한 대상에 내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거든요.
그것이 텅 비어 있는 것이라든지
의식이 깨어 있는 점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랬을 때 보지 못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명료함이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선정만 닦으면 잘못하면 혼침이 옵니다.


위빠사나만 닦고 선정을 닦지 않으면
바깥경계에 계속 끄들려 가지고 마음이 흔들흔들 하는 거예요.
흔들린다는 게 마음이 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위빠사나만 닦으면 마음이 들뜨는 도거(掉擧)가 오는 겁니다.
그래서 지(止)와 관(觀)을 쌍수(雙修)했을 때
비로소 지혜의 등불은 선정이라는 든든한 방패막이에 의해서
꺼지지 않고 훤하게 비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 무명을 깨끗이 제거시킬 수가 있는 거예요.
사마타에 치우쳐서도 안 되고 위빠사나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대승의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하려면
제일 먼저 선정을 닦아야 되는데,
몸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몸 사라짐이라는 것은 몸삼매를 얘기합니다.
몸을 통해서 삼매를 얻는 겁니다.
가장 기초적인 거예요.
몸의 형상이 고도의 집중력에 의해서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그렇다고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서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 선정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의식만 남게 되고 이때부터 의식이 정화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삼매로 들어가는 겁니다.
 
결국 사라진다고 하는데 뭐가 사라지겠습니까?
몸은 마음의 현상이므로 모양과 색깔을 결정하는 고정관념이 타파됩니다.
그 중에서 상(想)심리가 사라지면 모양(相)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상(想)은 모양 상(相)과 같이 보는 것이죠.

상(想)심리는,
제일 처음에 접촉[觸]이 있고 그 다음에 작위(作爲), 마음의 동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감각[受]이 있고 그 다음에 상(想)심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선악의 갖가지 생각[思]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하다보면 촉각[몸]에서
상의 심리가 사라져 버리면 몸이 없어지는 겁니다.
적어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같이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제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대해서 다 끝났습니다.

『해심밀경(解深密經)』에서 분명히 얘기를 합니다.
십신(十信)으로 부터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를 거쳐서 등각(等覺), 묘각(妙覺)까지 이르는 데 있어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통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효스님께서는 모든 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 그랬습니다.

지관쌍수(止觀雙修)는 화두에도 바로 적용이 됩니다.
화두선(話頭禪)을 보통 지관쌍수 또는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도 얘기를 합니다.
바꿔서 얘기하면 화두참구법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서
안 벗어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죠.

360p로 넘어갑니다.
지(止)와 관(觀), 두 가지 수행이 서로 반드시 완성되어야 되는데,
 《소(疏) - 83》 두 번째 단에 보면 원효스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소(疏) - 83》

止觀二行은 旣必相成이니. 如鳥兩翼 似車二輪이라.
二輪不具이면 卽無運載之能이고 一翼若闕이면 何有翔空之勢리오.
故로 言에 止觀不具 則無能入菩提之道也라.

 

지(止)와 관(觀)이라는 두 가지 수행이 서로를 완성시키는 것은
반드시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두 바퀴가 다 갖추어진 수레가 아니라면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없고,
날개가 하나밖에 없는 새라면 어찌 그 새가 하늘을 날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止)와 관(觀)을 함께 닦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한다.
 

 

새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고,
수레는 한쪽 바퀴로 굴러갈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두 개를 같이 닦아야 된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수행자가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 방편 보여 줌’ 할 차례입니다.
이 얘기는 왜 하는가 하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그러다보면 어렵다고 생각하고 물러서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수행은 혼자 해야 되는데,
자기 혼자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자기 근기에 안 맞고
도저히 힘이 달려서 안 된다면, 조금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쉬운 방법을 다시 제시 했습니다.

 


 (논 - 84)

復次 衆生은 初學是法하며 欲求正信이나 其心怯弱이라.

 

또 중생들은 처음 이 법을 배우면서
바른 믿음을 갖고자 하지만 그 마음이 약하다.
 
 
 

전쟁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창을 들었지만
두려워서 못 나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번뇌의 적을 물리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치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분은 마음이 약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

以住於此娑婆世界에 自畏不能常値諸佛 親承供養이니라.

 

그 까닭은 이 사바세계에서는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만나 친히 공양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계신다면 공양 올리고 딱 기대면 되는데
부처님이 안 계시니까 두렵다는 거죠.
아이들은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것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죠.
그래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디 멀리 가려고 하면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웁니다.
 
그와 마찬가지에요.
마음이 약한 사람은 혼자 가기 힘든 거예요.
부처님이 안 계시는 이 사바세계에서는
혼자서 가는 길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

懼謂信心難可成就라 하며 意欲退者는 當知이니
如來는 有勝方便이어 攝護信心이라.

 

‘믿음은 이루기 어렵다’고 걱정하며 공부에서 물러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여래께서 ‘뛰어난 방편이 있어
믿음을 거두고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약해서 믿음을 제대로 못 내고
뒷걸음질 치는 중생들이 있다는 것을 부처님은 다 아신다,
그렇지만 방편은 시설해 두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

謂 以專意念佛因緣으로 隨願得生他方佛土하여
常見於佛하고 永離惡道니라.

 

이는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 바라는 사람의 원대로 다른 부처님의 세계에 태어나 늘 부처님을 보고
영원히 나쁜 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을 생각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 바라는 사람’, 이랬는데,
부처님이나 보살님과 감응하려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는 여기서 말하는 근기가 약한 사람이 하는 거예요.
자기 의지력이 굳건한 사람은 부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수행해 가는데,
근기가 약한 사람은 부처님의 형상을 못보고
부처님이 안 계시니까 두려운 거예요.
마치 부모님 계시지만, 아이들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안보이면
울고 두려움에 떨듯이 똑같은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기도가 필요한 거예요.
기도는 수행은 아니지만 기도 플러스 명상은 가능한 거예요.
기도만 하는 것보다는 명상과 같이 하면 훨씬 기도의 힘이 증폭됩니다.

기도는 왜 하느냐,
전화는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부처님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특이한 거예요.
단순히 ‘기도’ 이러면, 내 밖에 있는 부처님이나
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에게
소통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 하는데,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믿음을 강화 시키는 방법 중에서 기도가 들어가는데
하나는 잘 알다시피 신앙(信仰, 外)이라는 게 있고,
또 하나는 신심(信心, 內)이라는 게 있습니다.

신앙, 우러러 보는 것[信仰]은,
내 밖에 있는 불보살에게 기도하면서 소통을 하려고 하는 거죠.
신심은, 밖에 있는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의 성품이
내 안에 갖추고 있다고 믿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신앙차원에서
내 밖에 있는 불보살에게만 기도하는 것은
명상이 결여되어 있는 거고,
수행하는 사람이 기도를 한다면 기도 플러스 명상이 됩니다.
이런 분은 내 안의 부처의 성품하고 그대로 연결시키는 겁니다.
수행하다가 어렵고 힘들 때 기도하면
내 안의 부처 성품하고 바깥의 부처하고 소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보조스님이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深觀能禮所禮(심관능례소례)가
皆從眞性緣起(개종진성연기)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진성연기(眞性緣起), ‘참 성품이 연기한다.’,
능히 예를 드리는 수행자나 중생들이,
소례, 그 기도를 받는 부처님이나 보살하고 참 성품이 연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감응을 하는 거예요.

진성(眞性), 참 성품은 공(空)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드리는 주체도 텅 비어 있고,
기도 받는 객체도 텅 비어있는 겁니다.
주관과 객관이 텅 비어 있는 겁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소리가 아니고
관계성 속에 이루어져있다는 거죠.
관계성 속에서는 객체의 실체나 객체의 자아라는 게
결여되어 있는 것을 공이라 하는 겁니다.
텅 비어 있어야 만이 소통이 되잖아요.

‘부처님을 생각한’이 염불(念佛)인데,
바로 부처님에게 바라는 마음,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염(念)’은 ‘기억’, 잊어버리지 않는 것,
요즘말로 얘기하면 복사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부를 때,
한 번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소실되면 그 다음에 못 부르잖아요.
그래서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또 나무아미타불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염(念)이
기억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거죠.
이것을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생각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이 염념상속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하고 연결이 되어있어서 감응이 있는 거죠.
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거예요.
오늘얘기가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시간이 다 됐는데
다음 시간에 이 얘기를 한 번 더 하고 싶네요.
마치겠습니다.
대단한구라야 2016-02-17 18: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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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보살이 백만억의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초선왕(初禪王)이 되어서 백만억의 법문을 닦아 방편의 지혜와 서원의 지혜[願智]81)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요[七地], 혹은 보살이 백만 미진수(微塵數) 부처님 국토에 머물면 제2선(禪)의 범왕(梵王)이 되어서 백만 미진수 법문을 닦아 서로 비추어 보는[雙照]82) 방편신통지혜(方便神通智慧)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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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구라도 보통 구라가 아니야?.ㅋㅋㅋ
짜깁기는잘하니말은그럴듯해 2016-02-17 19:06:43
답변 삭제  
경허스님 어록에 보면
여자에게 홀려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거나
죽음에 임박해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선정의 힘이 약해서 그렇다고 얘기합니다.
대상에 따라서 내 마음이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선정의 힘이 약해서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선정이 필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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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막행막식을 경허선사는 했나요?
노년에 스스로 옷 벗고 서당 훈장질하고......
일종의 자진헌납식의 파계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말들은 다 그럴듯해......
초기불교에서 여기저기 베끼고 짜깁기에 보살사상 한접시 추가요..
실력도없는주제에 2016-02-17 19:07:14
답변 삭제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외도의 결정론이 되는거.
붓다를 부정하는거.
소설이다 2016-02-17 19: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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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선악과선택한 자유의지의 아담은 부처의 자식이냐?
여기에 부처가 왜 나와?
방구석에서 글질만 하덜 말고 행선도 해야지.
실력도없는주제에 2016-02-17 19:27:53
답변 삭제  
하나만 알려줄께.
뇌과학에서 결정론은 가설이야.
요즘 반론도 나오니 공부해.
구별해서사용해주세요 2016-02-17 19:59:43
답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와
선불교는 서로 달라요.

.
아니오 2016-02-17 20:25:35
답변  
대승불교와 선불교같아요.
대승불교의 대승선들 가운데 간화선을 특화시켜서 많은 깨달은 자들을 배출하는 바람에 선불교라고 따로 명칭만 불러주는 것이지. 선불교 자체는 대승의 교리에 매우 충실해 하고 있으며, 다만 교리적 측면이 아닌 실참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초기불교와 대승(선)불교가 달라요, 라고 말해야 맞고요
대승불교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선불교, 티벳밀교가 있는 겁니다.
대승불교는 대승경전,논장을 기반으로 하여(중관+유식사상)
개인열반에 반대하고 보살행 실천을 통해 중생을 이롭게 하자는 사상이면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대승불교입니다.

선불교,밀교==>대승
초기불교,힌두교==> 소승
미안혀요 2016-02-29 17:38:49
답변 삭제  
다르다니까요...
무아 2016-02-17 22:21:33
답변 삭제  
자유의지는 자아의식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나는 자유의지입니다.
문자에 집착하면 앵무새가 됩니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과거의 업을 실체화시켜 외도의 결정론이 돼 미래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수행이 불필요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거지는 거지로 평생 살아야 합니다.
힌두교의 카스트가 됩니다.
무아는 무아도 아도 아닌 것이 무아입니다.
무아 2016-02-17 22:27:52
답변  
무아를 실체화 시키면 이미 아가 됩니다.
무아를 실체화 하면 어느 초기불자가 말하는 로보트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는 문자에 집착해 정견이 바로 서지 못한 사견입니다.
열반의 상태는 누구도 모릅니다.
자유의지로 불교의 목적인 열반을 향해 정진해 갈 뿐입니다.
꼴두기장맛 2016-02-18 09:18:46
답변 삭제  
법의언어는 세상의 언어로 해독하지 못한다네
그래서 수행을 하는 것이야. 법으로 볼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원인과조건에 의한 텅빈과정을 완벽하게 여실지견한 분이 아라한이지
자유의지,의지,의도는 무명이 존재를 세뇌시킨것에 불과
삼계에 계속 묶어 둘라고.....
그것이 선업이든,악업이든, 업을 짓게 하려고..
그래서 대승에서 오직 함, 오직 모를뿐.....이라고 하더만 멀
실력도없는주제에 2016-02-18 12:41:33
답변 삭제  
오직 함, 오직 모를뿐.....이라는 건 분별 집착이 없다는 거.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법을 설 할 뿐이라는 거.
선업도 짓지 않는다는 건 선업을 짓되 선업을 지었다는 상이 없다는 거.
탐진치가 없다는 거.
자유의지,의지,의도가 없으면 시체라는 거.
오온을 떠나라 라는 건 오온을 버려라 가 아니라는 거.
오온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오취온)
불교의 원형을 보존하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수단이 잘못됐다는 거.
번뇌망상 오취온이라는 거.
설령 자신의 견해가 옳더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불법이 아니라는 거.
자신이 비난하는 짓을 자신이 행하고 있는 걸 모른다면 어리석은 이라는 거.
전란에 참가한 사명대사가 없었다면 조건이 변해 이순간 사명대사를 비난하는 자신도 불교도 없다는 거.
고민의 대상이지 무작정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
진리는 책이 아닌 삶속에 있다는 거.
기본도없는주제에 2016-02-24 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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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거리면 다 되는줄 아나보네
불교는 먼저 안을 버려야하는 것이라는 말이네.
사명당의 애국은 불도의 살생계, 안으로서의 중으로서 못 버린것이라네
그것을 호국불교라고 하네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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