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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수행이다⑥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6-02-15 (월) 09:56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

도인은 잘 못 알아보겠으나 수행하는 이를 알아보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그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지 듣고 있는지, 아니면 대화를 하는지 보면 된다.


말을 하고 있는 이는 열등감이 강한 이고
말을 듣고 있는 이는 자존감이 강한 이고
대화를 하는 이는 수행을 열심히 하는 이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고 묵언수행에 얽매인 침묵은 아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찾아야 안심되는 그런 깨침이란?

깨치고 나면 그만인데, 남들이 뭐라고 했는지 찾는다.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남의 말로 알려는 것은 깨치기 전의 일이다.


자존감이 없는 이가 무슨 도인인가?
자기 점검이 전부인 수행을 하면서
남들이 뭐라고 했는지부터 조사한다.
그리고는 깨달은 척한다.


그런 이들과 말하면 막힘이 없다.
다만 감동도 느낌도 울림도 없다.


남의 말을 조사하지 말고 그 사이에 앉아서 아니 행주좌와에서 관할 따름이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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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마낭 부근 불탑내부 만다라



위아래 1

별로 내키지 않는 단어 가운데 위아래라는 말은
그냥 사람들이 제멋대로 편의대로 정해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해진 100점 만점이란 진부한 막대그래프 상상에서
50점보다 조금이라도 높으면 윗사람이고
아니면 아랫사람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조차도 낚싯밥일 따름이다.


기준을 아는 이에게는 소용없는 말이다.
주변, 기준, 경계를 아는 이는 스스로 어디에 서 있는지 이미 안다.
그런 까닭에 굳이 위아래를 말할 이유가 없다.


기준을 모르고 떠들면 자만이고
이 기준을 알고 신중히 거론하면 자존감이 된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자존감이 없는 이유

어렸을 때 칭찬을 많이 받으면 그것도 문제이지만 못 받으면 상처를 받게 된다.
열등감의 숙주이기도 한 이 상처가 고맙게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만든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착하다, 잘했다'는 등에 얼굴이 붉어진다.
나이 들어서도 '칭찬'과 '아부'에 약해지는 이유인가 보다.
그런 이들은 '자존감'은 없고 '자존심'만 남는다.
지속적으로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 실제로 세세하게 고칠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게 교육인데, 이게 요즘 사라진 듯하다.


성장기에 없었어도 지금이라도 고칠 수 있다.
과거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잘 닦으면 될 따름이다.
이른바 '받아들임'이 필요할 따름이다.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지만 수건을 훔칠 수는 있다.
스스로 이걸 알았다면 지속적인 노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그게 수행이다.
그렇게 받아들임으로 실수나 상처를 치유하며 자존감을 키워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실천일 따름이다.
이게 자존감을 키우는 참교육 아닐까?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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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진신사리

 

 

왜 잘하려고 하는데 야단을 쳐야 하나?

다 큰 조카가 부모님들이 해 놓은 국을 떠준다고 가스에 불을 켰다. 부모님께 국을 떠다주기 위해 가는 쟁반 위의 국 사발이 좀 위태롭다. 결국 부모가 일어나서 쟁반을 받아들고는 조카에게 하나씩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한다. 부모도 아이의 성의가 고맙기에 웃으며 지나갔다. 식사를 하다 보니, 부엌에서 냄새가 난다. 국을 끓이기 위해 켜 놓은 가스를 제대로 끄지 않은 것이다. 부모는 얼른 뛰어가 불을 끈다. 그리고 아이에게 국을 펴기 전에 불을 반드시 끄라고 한다. 점잖게 타이른다. 하지만 대개의 부모는 야단을 치거나 손이 머리 위까지 올라갔을 수 있다.


아이도 뭐 그리 잘못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그런가? 다 잘하려고 한 일이다. 하지만 불을 미리 끄고 하나씩 옮기면 어땠을까? 정말 아이에게 잘못이 없을까? 아니다. 있다. 잘하기 위해 아니 칭찬받기 위해 결국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해 서두른, 어쩌면 아주 작은 잘못이 있다. 그러나 섣불리 부모(남 : 자기 이외의 객체를 의미)를 위한다는 이유로 더 큰 폐를 끼칠 뻔했다. 사람을 돕는 일이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아주 천천히 폐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살얼음을 걷듯이 도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랬을 때 진정으로 남을 돕기 위한 마음이 선업으로 완성된다. 뜻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중요한 이유다. 잘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정말 남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 뜻과 방법, 그리고 실제를 계속해서 회광반조(피드백)하면서 정말 잘 살펴야겠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이 글은 모두 스스로에 대한 글이다. 간혹 남의 이야기도 하지만, 그냥 남이 아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자화상이다. 결국 이글은 스스로를 경책하는 자경문인 셈이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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