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절경 가운데서도 절승인 만폭동에는 ‘거북소’라 불리우는 못이 있고 그 못 한가운데는 한 마리의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들고 만폭동의 절경을 넋을 잃고 살피는 듯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거북바위’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금강산을 찾아왔던 용궁거북이에 대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먼 옛날 동해용궁에 살던 거북이가 어느 날 용왕에게 금강산구경을 허락해달라고 간절하게 청원하였다. 선뜻 승낙하지 않는 용왕 앞에 엎드린 거북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쭈었다.

 “상감마마. 금강산 구경은 소신 거북이의 평생소원이오니 이 심정을 깊이 헤아려 주옵소서.”

그 말에 용왕은 흰 수염을 내리쓸며 은근히 웃었다.

“그대는 궁성을 지키는 신하로서 타고장에 나가는 일이 바이없었거늘 금강산이 좋은 줄은 어찌 알며 또 무슨 생각으로 제 소임을 떠나 구경 가려 하는고?”

“동해를 지키는 장수 고래며 삼치와 도미들이 바다로 나갔다가 매번 때를 어기고 늦게 돌아왔삽기로 이번에 그 까닭을 따져 물었더니 맑은 아침의 나라 동쪽 바다기슭에 우뚝 솟은 금강산이 용궁보다 황홀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닐다가 늦었다고 하옵나이다. 그러하옵기로 소신도 금강산을 한번 구경하고자 하나이다.”

용왕은 대답 없이 흰 수염만 한동안 매만졌다.

‘거북이는 무엇이든지 한번 입에 물기만 하면 목이 끊어져도 놓을 줄 모르는 고집쟁이이며 그만큼 충직하게 제 직분을 명심하고 궁성도 지켜온 충직한 신하였지.’  이렇게 생각한 용왕은 거북이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한가지만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천하명승 금강산은 이 세상 뭇산들과는 달리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은 풍악산, 겨울은 개골산 사시장철 절경이라 하고 그 가운데도 만폭동의 가을 풍경은 하늘의 별들조차 부러워 내려앉을만큼 황홀하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바야흐로 가을도 한창 무르익은 계절이라 아무리 곧은 목인 거북이라 해도 그 절경에 넋을 앗기고 돌아올 시일을 어기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라. 용왕은 생각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의 충직함을 믿고 특별히 허락하노니 단풍이 지기 전에 쉬이 돌아와서 짐을 기쁘게 하라”

“황공하오이다. 명심하여 때를 어기지 않으오리다.”

너무 기뻐 수십 번 절을 하고 용상 앞을 물러나온 거북이는 즉시 수정궁 큰 문을 나섰다. 오래간만에 동해의 푸른 파도 위에 두둥실 떠오르니 갑갑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갈아 숨이 후 - 나갔고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하였다. 그래서 거북이입에서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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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흰 구름 가볍게 뜨고
물 위엔 이 몸이 두둥실 떴네
에헤야 금강산 구경을 가세
바람아 스리슬쩍 내 등을 밀어다오
바닷물아 기세높이 파도를 일구어라
에헤야 금강산 유람을 다그치세

이렇게 즐거이 헤엄도 치고 자맥질도 하면서 여러 날 만에 금강산에 당도한 거북이는 지금의 거북소 곁에 있는 바위 확속을 빠져나와 만폭동에 이르렀다. 순간 너무도 황홀한 절경에 거북이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파시 고래와 삼치, 도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말이 헛소리는 아니었구나. 나도 이번에 명승구경이나 실컷 하고 빨리 돌아가리라.”

거북이는 목을 한껏 빼들고 사방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헌데 어디서부터 구경을 시작하는 게 좋을지... 작은 키에 아장걸음으로는 언제 가도 다 돌아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하던 끌에 아무튼 높은 곳에 올라가 금강산 전경부터 바라보리라 마음먹었다.

 거북이는 고개를 쳐들고 단풍이 붉게 타는 계곡과 봉우리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길을 아래로 돌려 비단필이 흐느적이는 듯한 폭포와 거울 같은 소를 굽어보기도 하면서 연신 감탄하였다. 그러다보니 산중턱에 올라가는 것만 해도 사흘은 실히 걸렸다.

 산중턱에 받침돌을 묘하게 고여 세워놓은 듯한 비석 바위에 눈이 팔려 한동안, 너럭바위가 담처럼 높직이 둘러선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배소에 마음이 끌려 또 한동안, 이렇게 올라가다가는 구경하고 구경하다가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겨우 떼어 올라가기를 그 몇 번이나 거듭한 후에야 화룡담 왼쪽의 둥글 넙적한 바위 위에 기어올랐다.

 사방을 둘러보니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여기에 비하면 옥과 돌의 차이였다. 동북쪽에는 천하의 문장과 말재주로도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용궁의 경치는 백옥을 다듬어 세워 놓은 듯한 중향성이 멀리 보이고 동으로는 월출봉, 혈망봉 등이 신기한 자태를 드러냈으며 남쪽으로는 만폭동의 여러 소들이 비단 끈에 꿰어놓은 진주구슬처럼 층층이 연이어 앉아있었다.

아! 저기가 유명한 팔담이로구나. 우리 용왕님이 턱밑에도 여의주구슬은 외롭게 한 개가 붙어있을 뿐인데 금강산은 한 골 안에만도 저렇게 많은 진주구슬이 있으니,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명승이 어디 또 있으리오.

거북이는 기막힌  승경에 취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날 밤은 화룡담 맑은 물에 잠겨 묵고 이튿날 골 안을 내려가면서 팔담을 차례로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하늘의 은하수가 그대로 내려비낀 듯하여 장쾌하고 아름다운 진주폭포와 맑은 하늘이며 푸른 나무숲의 그림자가 차분히 잠겨있는 진주담을 그냥 지날 수 없이 시원한 물맛을 보았다.

 금강산의 유명한 산삼뿌리를 씻으며 흘러내려선지 물맛이 아니라 꿀맛이었다. 언제인가 용왕을 따라 하늘나라에 갔을 때 신선들이 마신다는 물을 마셔본 일이 있었지만 이런 물맛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분설폭포와 그 물이 다시 모여 고여 있는 분설담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가.

 거북이는 제정신이 아닌 듯이 삼복더위에도 물보라 찬바람에 뼈 속까지 얼어든다는 분설담 맑은 물에 풍덩실 뛰어들어 어푸어푸 어- 시원하다 하고 한참동안이나 헤엄을 치고서야 기어나왔다. 그런 후에 비파모양을 하고 있는 비파담을 돌아보았다. 비파담은 모양만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라 기묘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고 메아리쳐가는 목포와 불어예는 바람소리까지도 비파를 타는 소리처럼 들렸다.

거북이는 흥에 겨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더덩실 춤을 추었다. 청룡담, 백룡담도 스쳐지날 수 없었고 금강대, 금강문도 무심히 볼 수 없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와보랴. 일생 후회가 없도록 보고 또 다시보고 가자.’ 이렇게 되뇌이며 거북소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경치구경만 하지 않고 바윗돌에 새겨놓은 글씨도 살펴보고 봉우리와 계곡들에 세워진 정자며 암자도 유심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두 번째로 만폭동을 돌아보던 거북이의 걸음은 분설담 오른쪽 법기봉가지의 아슬한 절벽에 구리기둥 하나를 의지하여 붙어있는 기묘한 보덕암에서 오랫동안 멎어섰다. 산천도 절경이거니와 사람들이 재간은 또 얼마나 슬기로운가.

‘우리 용궁에서도 저런 암자는 못 지었거든....’ 거부기는 이같이 감탄하고 만폭교 아래에 있는 너럭바위를 굽어보았다.

“<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허허, 봄가을 금강산의 아름다음을 다 지닌 만폭동이란 뜻이겠다. <천암경수만학쟁류> 그렇지, 천개나 될 듯 많은 바위는 수려함을 겨루고 만갈래나 되는 듯 무수한 개울물은 흐름을 다툰다는 뜻이군. 과연 명언이고 명필이로다!”

 감심한 듯 몇 번 고개를 끄덕거린 거북이는 그 자리를 떠나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으나 얼마 안가서 이내 멎어섰다. 벼랑 옆의 크지 않는 바위에 누군가가 금강산의 절경을 보고도 즐거운 줄 모르는 심정을 적은 글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허 정말 모를 일이군. 이 좋은 경치를 보고도 어찌하여 즐겁지 않단 말인고? 혹 임금님의 꾸중을 들은거나 아닌지. 원 못나기두. 그쯤한 거야 풍파 사나운 벼슬길에서 예상사인걸.’

거북이는 용궁생활에 비추어 이렇게 생각하였을 뿐 양반세도가들의 학정 밑에서 피를 빨리고 뼈를 깎이우며 살을 뜯기는 사람들의 고통과 울분은 짐직도 못하였다.

 아무튼 이 동해 용궁의 신하는 만폭동 골 안을 두 번, 세 번, 네 번.... 끝없이 돌면서 한번 보고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새롭기만 하였던 것이다. 금강산의 다른 골짜기를 다 보자면 어서 떠나야 했으나 거북이는 도무기 만폭동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만폭동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는데 문득 발아래 빨간 단풍잎 하나가 뱅글뱅글 돌면서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거북이는 소스라쳐 놀랐다. 옛날 어떤 사람이 오동나무 한 잎이 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줄 알았다고 한 것처럼 거북이는 땅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보고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산천구경에 정신이 팔려 세월이 가는 줄 몰랐고 그러다보니 단풍잎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거북이는 용왕의 영을 어기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임금의 영을 어기면 목에 도끼날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래나 삼치, 도미들이 “그것 보라구, 아무리 충직하다던 거북이도 금강산 구경에서는 별도리가 없지 않나.” 하고 비웃을 것쯤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거북이는 허둥지둥 거북소로 달려가 바위 돌에 뚫린 확구멍부터 찾았다.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동해바다에 들어서게 되고 바다에 나가면 혹시 고래를 만나고 그 등에 업혀 빨리 용궁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거북이는 돌확의 양쪽 언저리를 두 앞발로 덥석 잡고 구멍 속에 머리부터 쑥 들이밀었다. 하지만 양쪽어깨가 확모서리에 걸려 몸뚱아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허사였다. 기진맥진한 거부기는 확 속에 들이밀었던 머리를 도로 빼냈다.

금강산으로 올 때 빠져나왔던 구멍이 그새 작아졌던 말인가?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거북이는 산삼뿌리를 씻어내린 묽은 물을 마시었으며 사향내 풍기는 푹신한 풀방석에서 다리쉼도 하고 청신한 가을바람 속에서 즐겁게 지내는 사이에 어느덧 몸이 났던 것이다.

 한참 쉰 후에 다시 머리를 들이밀어 보고 그랬다가는 도로 뽑으면서 발버둥을 치던 거북이는 마침내 용궁으로 돌아갈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몹시 근심스러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쁘기도 하였다.

‘에라, 금강산이 하도 아름다워 온 천하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고 저 하늘의 선녀들도 내려오면 돌아갈 줄 모른다는데 나라고 용궁보다 더 훌륭한 이 명산에서 즐겁게 살면 안 된다더냐.’

거북이는 마침내 거북소에 보금자리를 잡고 나서 짧은 목을 길게 빼어 뭇봉우리와 계곡들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의 그 모습이 굳어져서 거북바위로 되었다고 한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 법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