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임박한 조선의 왕릉들은 조선왕조 27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추존 왕비의 능으로 총 42기가 있다. 한 왕조의 능이 모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것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가치가 있는 이유다. 이런 가치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진가를 잘 모른다. 이것이 저자와 사진작가는 조선왕릉 곳곳을 누비며, 왕릉의 이모저모를 담아낸 이유다. 작가와 사진가는 조선왕릉을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2년간 <현대불교>에 연재했고, ‘다할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냈다. 연재될 때에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두 권의 책으로 묶어놓고 보니 역저다.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2>는 조선왕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조선왕조 518년을 되돌아본다. 저자 이상우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죽음은 최상의 법문이며, 그것은 곧 자비라는 조용한 깨달음을 온전히 전한다.

크게보기이 책은 조선왕조 시대를 다룬 충실한 역사서이다. 더불어 숨겨진 야사를 이끌어와 진실의 양면을 흥미롭게 재조명한다. 또한 왕릉답사 가이드 코너를 마련하여 가이드북으로의 활용도 또한 높였다.

“최상의 법문은 죽음이다. 왕은 권력의 정점이다. 권력의 정점에 앉았던 이들의 죽음은 최상의 법문일까? 죽음 앞엔 누구나 숙연해진다. 하찮은 미물의 죽음 앞에서도 경건해진다. 500년 조선 왕조의 영욕을 온몸으로 받다가 이승을 하직한 왕들의 무덤에 찾아간다. 거기에 그들이 있다.” –p.6

크게보기조선의 국장제도는 태조 이성계가 죽자 처음 국장을 맞은 제3대 태종이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도입해 확립했다. 고려의 국장은 1개월 이내였고 두 달은 넘긴 예가 드물다. 조선은 신생 왕국의 위엄을 보이려 왕과 왕비의 국장 기간은 5개월, 정4품 이상 사대부는 3개월, 그 아래 관직은 1개월로 장례 기간을 국법으로 정했다. 장례가 겹치면 상복 입고 1년 내내 보내기도 한다. 죽은 자는 빨리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더운 날에 죽은 왕은 어떻게 모셨을까? 시신이 썩는 것은 어떻게 막았을까?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답이 이 책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정조 13년(1789년) 10월 4일, 사도세자의 영구가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으로 가는 날이다. 비참하게 죽은 지 27년 만에 벌어진 화려한 행차다. 목적지는 수원 용복면에 있는 화산이다. 지명조차 예사롭지 않다. 왕릉이 입지한 곳은 명당 아닌 곳이 없다. 택지할 당시 최고 명당을 찾는다. 물론 정성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지극정성을 누가 따르겠는가? 그래서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의 영릉과 함께 국내 최고의 길지로 꼽히는 곳이 수원 화산의 융건릉이다.” –p.143~144

요즘 능앞 개발문제로 시끄러운 융건릉에 관한 대목이다. 이 책은 왜 우리가 왕릉과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을 낸 출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조선왕릉, 왕은 죽지 못 한다.”

만백성 위에 군림하던 최고 권력자들, 내명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온갖 모략을 서슴지 않던 여인들, 왕가의 발치에서 숨죽여 살아가던 내시와 궁녀들. 한때 화려하고 찬란한 왕가를 이루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들이다. 그들은 과연 화려한 안식을 즐기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까?

진보를 향한 발걸음은 갈등과 분열에 끊임없이 맞서야만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 지난 시대의 비극이 숱하게 재생된다. 저자는 직접 조선왕릉을 누비며 옛 왕조가 넌지시 전해주는 ‘서늘한 교훈’을 체험한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의친왕의 의왕묘까지를 세심한, 그리고 정성어린 눈과 손으로 되살려낸 이 책은 능, 원, 묘를 답사하며 조선왕조 518년을 정리한 중요한 사료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능에 얽힌 이야기를 이어가면 그것은 곧 조선왕조 27대 왕과 그 일가들의 삶은 곧 조선의 역사가 된다.

어린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왕위에 오른 냉혈한 세조는 어린 자식을 잃고 비극에 잠긴 슬픈 아비였다.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 순간 훗날 왕의 자리에 오를 세자를 저주했다.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려진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이면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불어 조선왕가를 이루었으나 소리 없이 살아간 왕의 후손들과 내시궁녀의 삶도 빠뜨리지 않았다.

빛과 어둠은 실존을 위해 서로를 위협하나 변증을 이루며 세계 안에 공존한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물음은 ‘어떠한 생을 마감했는가’와 다르지 않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죽음을 통해 인생은 완성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죽음을 떠맡기고, 스스로도 죽음의 주인공이 된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저자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며 결국 죽음이 최상의 법문임을 우리에게 전한다. 능에서 불교적 삶과 교훈을 끌어내는 경계는 역시 불교문학대상을 받은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왕릉 순례는 ‘죽음과 역사’라는 두 가지 화두와의 만남”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사색과 성찰, 휴식과 운동이란 부가가치도 뒤따른단다.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조선 왕릉은 왕조 500년 역사의 타입캡슐이다. 대부분 경복궁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있다. 즐거운 소풍놀이다. 후손들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삶과 죽음으로 풀어본 조선왕조 500년사를 통해 옛 왕조의 혼을 느끼고, 왕릉답사 가이드를 따라 왕릉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역사 기행과 산책의 기쁨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각권 12,000원.

◆저자 소개

글_이우상

소설가. 경북 의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6년 ‘문학의 해’ 기념 5000만 원 고료 불교문학상 수상.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역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 유적에 관심이 많다.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사진_최진연

<옛다리, 내마음속의 풍경>의 사진가 최진연이소설가이우상씨와공저로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1,2>를 냈다. 1979년부터 수원화성 사진작업을 시작으로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는 우리의 성곽, 봉수, 옛다리 등 옛것을 찾아 발품을 팔고 다녔다.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1987), 한국사진문화상(2003)을 수상했다. 코리아라이프를 거쳐 지금은 데일리안 기자로 일하는 한편, 대한사진예술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