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밀교가 전래된 것은 신라대까지 올라간다. 당(唐)으로부터 전해진 밀교는 이후 크게 번성하여 한국불교 신앙에서, 특히 의례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밀교의 의식이 고려시대까지는 각 사찰과 민간에서 폭넓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 밀교의 의식은 조선조 억불시기에 접어들면서 멸실되어 갔다. 흔적만 남아 있고, 사실상 그 맥이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 일부 승려들이 비교적 밀교의식이 온전히 남아 있는 일본 진언종 계통의 영향을 받아 밀교의례 일부를 국내에 들여왔으나 군소종단의 한계를 넘지 못한 채 흐지부지한 상태다.

현재 한국불교에서 밀교의 전통은 재가종단인 진각종과 총지종이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출가승려 중심의 밀교종단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한국불교계에서 정통 밀교의식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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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밀교승단과 밀교의식 복원 원력을 세우고 가평에서 정진 중인 도명스님

이런 와중에 신라대부터 고려까지 이어져온 우리나라 밀교의식 전통을 재현하고 선양한다는 원력을 갖고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스님이 있다. 다름 아닌 대한불교 법밀종의 법주 도명(導明) 스님(65, 가평 구원사(久遠寺) 주지)이 그 주인공이다. 일찍이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에 법화경을 만나 불연의 깊이를 더했고, 20대에는 청년불교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으며,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밀교를 공부한 스님이다.

“밀교의식이 왜 중요한가? 한국불교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천수경도 사실은 밀교의 영향이 지대한 경전입니다. 천수경은 사실 밀교의 대표적 의식 중의 하나인 호마(護摩, homa)의식을 위해 설해진 경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명 스님은 밀교식으로 장엄된 법당의 존상들과 도상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밀교와 밀교의식에 대한 스님의 설명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차 있다. 한국불교에서 멸실되어버린 밀교 전통을 되살리고자 원력을 세운 스님의 단심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리라.

“여기 있는 존상은 부동명왕상입니다. 밀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존상이지요. 호마의식 중에 따로 부동호마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밀교의 중요한 의식인 호마의식은 주존이신 법신으로서의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한 의식이지요. 석가모니는 흔히 화신으로 일컫지만 밀교에서는 삼신이 곧 일체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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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명왕상이 머리에 인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하고, 왼쪽 눈을 치켜뜨고 다른 오른쪽 눈을 내리뜬 것은 ‘아오훔’을 상징하며, 송곳니가 왼쪽은 위로 오른쪽은 아래로 뻗은 것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상징한다. 본존불은 대일여래가 아닌 법신으로서의 석가모니불이고, 그 수인이 선정인처럼 보이지만 엄지손가락 사이를 살짝 떨어뜨리고 있는 모양은 공(空)을 상징한다. 만다라에는 금강계만다라와 태장계만다라가 대표적인데, 다 밀교를 대표하는 상징들이다.

도명 스님의 설명은 물 흐르듯 끝없이 이어진다. 밀교와 밀교의식에 문외한인 기자에게 짧은 시간에 설명을 하려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사실 기자가 가평 구원사를 찾은 것은 밀교의 주요 의식은 호마의식을 재현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티베트에 가야 볼 수 있을 것같았던 호마의식을 직접 실행하는 절과 스님이 가평에 계시다는 것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도명 스님에 따르면, 호마의식이란 불을 태우는 의식으로 불교계에서 최고의 의식이다. 현재 잘 안 알려져 있으나 원래 한국불교에 오랜 전통으로 내려왔던 의식이라고 한다.

도명 스님이 속한 종단의 이름은 법밀종(法密宗)이다. 법화와 밀교를 합해서 만든 이름이다. 법밀종은 2013년에 창종되었으니, 현재 3년째인 신생종단이다. 종단의 설립 목적은 한국불교에서 명맥이 끊긴 밀교의 전통을 다시 복원시키고, 밀교승단을 재건하기 위해서이다. 

도명 스님은 요즘 정월(음력 1월) 호마기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정월에 올리는 호마의식 법회는 입재가 2월 13일 오전 10시이고, 2월 20일 오후 5시 노단(路壇) 호마법회를 여법하게 봉행하는 것으로 회향한다. 13일부터 20일까지는 매일 오전 10부터 법당에서 호마의식을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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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은 우리나라 대보름 전통놀이인 ‘달집태우기’도 밀교의 호마의식에서 연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호마의식 재현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노단 호마법회다. 법당 안에서 하던 호마의식을 바깥으로 끌어낸 것으로 호마의식의 대중화를 조속히 이뤄내려는 스님의 생각이 반영됐다.

도명 스님은 밀교를 공부하고 실행하면서 주위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분심이 일어나서 더 재밌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도 절에서 점안을 합니다. 그러나 근본을 모르고 점안을 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불부, 연화부, 금강부를 3부 소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다라 구경도 못한 분들이 3부 소청을 합니다. 3부 소청을 하려면 먼저 3부를 알아야 하고, 적어도 대일경 정도는 읽어봐야 하지요. 그리고 나서 점안을 해야 하는데, 앞뒤가 뭔지 모르고 점안의식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지요.”

아주 오래전 송광사 석지현 스님이 <밀교>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도명 스님은 바로 그 책을 읽어보고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서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밀교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천수경>을 밤낮 보면서 선(禪)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수경>이 어떤 목적에서 찬술된 경인지 모르고 하고 있지요. 천수경은 호마라는 의식을 하기 위한 다라니예요. 그러나 호마 자체를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법화와 밀교라는 것을 공부 좀 해보자는 의미에서 이 불교운동, 즉 한국불교에서 정통 밀교의식을 재현하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도명 스님은 지난해에 비로소 스님 7분에게 밀교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어렵다고 했다. 맨땅에 머리박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자신의 노력을 피력했다.

“우리나라에서 진언(다라니)의 맥이 되살아나려면 먼저 밀교승가가람이 형성되어야 하고, 이어 밀교 의식이 제대로 복원되어야 합니다.”

도명 스님이 복원하고자 하는 밀교의식은 티베트에 전해진 의식이 아니라 당나라 때 전해졌던 정순밀교, 즉 순수밀교이다. 당나라 시대의 밀교 모습을 비교적 잘 전수한 곳이 일본이다. 물론 일본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일본화된 것도 있지만,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서 일본화 된 것을 삭제하며 원형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혜초 스님도 밀교승이었고, 불가사의도 다 밀교승이었으며, 혜초가 천축국으로 간 것도 밀교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 도명 스님은 “바로 이 밀교가 순수밀교였으며, 고려대까지 우리에게 전해진 밀교였다”고 강조했다. 

당에서 전해온 순수밀교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일본 진언종을 연구해야 하고, 일본 진언종의 창종주인 공해라는 스님은 당나라의 혜과 스님에게서 밀교를 전수받았는데, 혜과 스님에게 밀교를 전수해준 불공삼장과 현초 가운데 현초 스님이 바로 우리나라 스님이었으므로 일본에서 전승되어온 밀교라고 하더라도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도명 스님은 강조했다. 단지 일본화된 것을 걷어내면 신라를 거쳐서 당까지 찾아올라가야 제대로 된 밀교의 전통을 찾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시작을 일본밀교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호마는 밀교에서는 가장 뛰어난 행법이라고 하는데, 호마의식이란 성스럽게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드린다, 태워서 부처님께 전달해드린다는 것으로, 인도에서 유행했던 조로아스터교의 흐름이 바라문을 거쳐 불교까지 이어져온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도명 스님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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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호마의식이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달집태우기의 연원이라는 근거는 약합니다. 호마의 자취가 한국불교계에서 다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시 밀교가 이미 들어온 이상, 호마가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고려 절 인취사에서 발견된 밀교의식 법구 '병향로'는 참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밀교의식을 집전할 때 매우 중요한 법구 ‘병향로’가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도명 스님은 ‘오고령’, ‘삼고저’ 등 밀교 법구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우리가 흔히 요령이라고 부르는 오고령은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 즉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와 중앙에 법계체성지를 말하는 것으로 즉 부처님의 지혜가 소리로 형상화 된 것, 즉 부처님의 음성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도명 스님은 가야금 연주의 대가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가야금을 가르치는 선생을 했을 정도이니 그 인연이 보통은 아니다. 국악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니 국악과 연관이 큰 종교인 불교와 인연이 시작되었고,  특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뚝섬 봉은사를 다니다가, 15~16세때 법화경을 만나면서 법화경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법밀종의 법주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20대 초반에는 의식을 배우러 다니다가 종파불교 공부하기 위해서 일본에 다녀왔고, 이후 재가불교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79년도 처음 절을 차려 점안을 할 때 원주 선행 스님과 인연이 되었고, 이후 혼자 수행한다고 가평에 들어온 지 30년 지났다.

“불교는 시대적인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선만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이끌 수 없다고 봐요. 승려도 잘 안 되는 선 공부를 일반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적인 불교가 중요합니다. 정법시대에는 율(律)이 흩어지고, 상법시대에는 정(定)이 흩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법시대에는 혜학(慧學)만이 남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혜문(慧門)밖에 없습니다. 이 혜문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불교의 가치도 달라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불교는 골동품 끌어내서 파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골동품 파는 시대가 아니라 현재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삶과 어우러진 불교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물질적, 현상적인 것을 이해하는 것이 떠 빠르고 적합한 시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법화경과 밀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상적인 것을 이해하는 것이 기존의 불교와는 조금은 다르지요. <대집월장경> 제55권에 ‘백법이 스러지고 대백법이 출현한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곧 부처님 가르침의 새로운 가치론이지요. 현실에 맞는 가치론 말입니다.”

도명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는 불교와 현실적 삶이 유리되어 있고, 이런 불교는 죽은 불교가 되는 만큼, 이제는 이런 실생활과 동떨어진 불교를 삶속에서 작동하는 불교로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 현실적인 불교인 법화와 밀교가 연구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밀교승단 재건과 밀교의식 복원을 원력으로 가평에서 30여 년째 정진하고 있는 도명 스님. 스님의 원력이 성취되는 날, 한국불교의 모습도 ‘죽은 불교’에서 일상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실천불교’로 정착될 것이다. 

문의 031-582-0734